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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천연자원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류 역사를 파헤치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천연자원을 어떻게 획득해 이용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을 개발하고 거래하는지를 탐구한다. 역사에는 등장인물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저만의 사연을 간직한 토탄과 대마, 곡물과 철, 모피와 석유 등이다.
가용 자원의 불균질한 분포는 무역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무역은 다시 부의 축적·불평등의 증가·악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종류의 원자재는 서로 다른 정치적 함의를 띠며, 서로 다른 사회적 제도를 낳았다. 어떤 나라가 한 상품에 의존하는 데서 또 다른 상품에 의존하는 단계로 전환하면, 전쟁과 혁명이 뒤따르곤 한다. 하지만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이러한 위기들은 하나같이 물질·노동·국가 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세계는 인간과 자연이 허술한 조약을 체결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기후재앙에 직면하자 자연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우리의 투쟁에 가세했다. 그간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해온 우리로서는 지금이야말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할 때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천연자원을 어떻게 획득해 이용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을 개발하고 거래하는지를 탐구한다. 역사에는 등장인물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저만의 사연을 간직한 토탄과 대마, 곡물과 철, 모피와 석유 등이다.
가용 자원의 불균질한 분포는 무역을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으며, 무역은 다시 부의 축적·불평등의 증가·악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종류의 원자재는 서로 다른 정치적 함의를 띠며, 서로 다른 사회적 제도를 낳았다. 어떤 나라가 한 상품에 의존하는 데서 또 다른 상품에 의존하는 단계로 전환하면, 전쟁과 혁명이 뒤따르곤 한다. 하지만 저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이러한 위기들은 하나같이 물질·노동·국가 간의 관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세계는 인간과 자연이 허술한 조약을 체결한 결과물이다. 우리가 기후재앙에 직면하자 자연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우리의 투쟁에 가세했다. 그간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해온 우리로서는 지금이야말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해야 할 때다.
목차
감사의 글
머리말
1부 물질의 역사
01 불 다루기
02 곡물의 길
03 육류, 어류 및 각종 가죽
04 설탕, 향신료, 그리고 온갖 좋은 것들
05 섬유
06 금속
2부 관념의 역사
07 자원과 상품
08 자원 프로젝트
09 노동과 중상주의 펌프
10 실패한 자원들
3부 에너지의 역사
11 토탄
12 석탄
13 석유
맺음말
머리말
1부 물질의 역사
01 불 다루기
02 곡물의 길
03 육류, 어류 및 각종 가죽
04 설탕, 향신료, 그리고 온갖 좋은 것들
05 섬유
06 금속
2부 관념의 역사
07 자원과 상품
08 자원 프로젝트
09 노동과 중상주의 펌프
10 실패한 자원들
3부 에너지의 역사
11 토탄
12 석탄
13 석유
맺음말
책 속으로
증기와 전기는 생산적 노동력이 마구간·물레방아·풍차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고정된 특정 장소에 의존해야 했던 유구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로 얻은 이 자유는 산업과 무역, 자원 소비, 환경 오염의 전례 없는 증가로 이어졌다.1 화석연료 덕분에 생산은 “거친 대지의 속박에서 벗어났다(slipped the bonds of surly earth)”.〔미국인 조종사 존 길레스피 매기(John Gillespie Magee)가 1941년 지은 시 〈고공비행(Hight Flight)〉에서 따온 구절―옮긴이.〕 하지만 추출은 여전히 천연자원과 인간 노동력이 만나는 그런 장소들에 얽매여 있다. 우리가 재택근무를 하거나 제가 사는 도시들을 쏘다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우리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수가 휴대용 기기들 속에 나날의 일거리를 담아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언덕 위의 삼나무 숲을 점령한 길가메시에 의존하고 있다.산업 기술들로 무장한 우리는 이제 화석연료에서 풍력·수력·태양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같은 전환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재생 에너지가 오늘날의 농업 및 운송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에너지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는 조치가 필수 불가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십억 명이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
나는 2020년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 상황은 마치 이 과제를 완수할 수 없는 인간이 그것을 바이러스에게 아웃소싱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외식도 즐길 수 없지만,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풍력 발전 지대, 태양광 패널 및 정교한 배터리로 전환하면 모래에서 희귀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구(新舊) 원자재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게 된다. 21세기에 재생 에너지의 성장은 19세기의 증기력 발전보다 한층 더디다. 네 번째 에너지 전환은 달성할 수야 있지만,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열정으로 밀어붙이는 ‘친환경(green)’ 정치인은 이러한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대중과 공유해야만 한다.
배출량은 확실히 경제성장의 족적을 따라간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 총생산―전 세계에서 생산·구매·판매되는 모든 ‘(좋은)재화(goods)’와 ‘나쁜 재화(bads: ‘goods’의 상대어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나 경제 행위지만 동시에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재화―옮긴이)’의 총합―은 매년 3∼4퍼센트씩 성장했으며,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2∼3퍼센트씩 증가했다. 이 두 과정의 분리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논의하고 관료들이 약속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7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와 2015년 파리협정(Paris Agreement)으로 정점을 찍은 일련의 국제회의에서 각국 정부는 선의에 입각해 서명했다. 그러나 그 어떤 선진국도 자국이 파리협정의 일환으로 약속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합의된 목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1880년 대비 1.5도 상승으로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 지구의 평균 기온은 2050년까지 2도, 심지어 3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는 아직껏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남아 있다. 가장 오염이 심한 연료인 석탄은 계속해서 채굴 및 연소되고 있다. 경제성장은 예나 지금이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부가 원하는 목표다. 재생 에너지 사용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런 간헐적인 좋은 소식들은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나오는 나쁜 소식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배출량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한 잠정적 조치들마저 폐지했다. 2018년 폴란드 석탄 산업의 전통적 중심지 카토비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유엔 전문가들은 인류가 배출량을 2분의 1로 줄이기 위해―우리는 오직 이렇게 해야만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으로 제한하겠다는 오래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 결론이 아니었다. 미국·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4대 석유 강국이 그 조치의 채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기후는 이미 빙하기 이전만큼 따뜻해졌지만, 지금 해수면은 그때보다 30미터나 더 높다. 온난화가 더 진행되면 산호초가 파괴되고 섬나라와 항구도시들이 침수되며 전 세계적으로 생산 위기가 닥치고 인구가 대규모로 이동할 것이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국가들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향후 전 세계 생산량을 10∼25퍼센트 감소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예측 중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1950년 이후 홍수 발생 건수는 15배, 산불 발생 건수는 7배나 불어났다.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이들은 우리와 지구를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와 달리 자신들을 보호해줄 의복도 집도 에어컨도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 50년 동안 척추동물 개체수는 60퍼센트 감소했다. 과학자들은 곤충이 사라지는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다. 곤충의 총 바이오매스는 매년 2.5퍼센트씩 줄어들고 있다.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금세기 말에는 더 이상 곤충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 꿀벌 개체수의 절반 이상이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수많은 식물의 수분(受粉)을 담당하는 곤충은 어류와 조류의 먹이원이다. 따라서 어류와 조류 수천 종도 사라질 것이다.
한계 없는 성장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긴 어렵지만, 우리는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해온 개념의 상당수―이를테면 진보―를 이미 포기해야 했다. 우리 부모와 조부모는 우리보다 더 형편없이 살았지만 우리 자녀와 손주들은 우리보다 더 잘살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사랑 및 자부심의 정서적 패턴과 일치한다. 하지만 부국에서는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30대 미만이 제 부모나 조부모보다 더 가난해진 세대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보다 1도나 2도 더 따뜻해질 세상에서는 삶이 훨씬 더 불편해질 것이다. 홍수와 화재로 수조 달러의 손실이 발생해 노동시장이 한층 더 악화될 터다. 팬데믹과 전쟁은 기대수명을 단축하고 대량이주를 촉발함으로써 정치 풍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아마도 소박한 삶이 선사하는 일상적 축복, 즉 집, 자동차, 관광 여행, 시골지역에서 보내는 휴가, 궁극적으로 ‘자연’ 그 자체는 사치품이 될 것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계급 불평등이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그저 잠시 감소했을 뿐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불평등은 여성이 정규직 노동시장에 진출한 데 힘입어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성별 격차는 심각한 상태다. 국가 간 불평등은 자연과 역사의 가변성을 반영하며, 지구온난화는 이러한 차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 것이다. 다양한 연령집단 간 불평등은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부모에게 거듭 촉구해온 도덕사상가에게는 낯익을지 몰라도, 사회과학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주제다. 종말을 앞둔 세계에서 집단 간 평등이라는 이상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노력으로 미래 세대의 고통을 막을 수 있을까?
사회는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으며, 경제생활은 그에 따른 생태적 결과와 별개가 아니다. 개인이 소비행위를 할 때마다 또 한 번의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되는데, 식물·동물·사람 등 우리 모두 그것을 들이마신다. 생태 개혁은 혁명에 버금갈 만한 인간 행동의 변화에 달려 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급진적 국제관계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앙은 오로지 글로벌 공동체 차원에서만 피할 수 있으며,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혁명은 전 세계적일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뉴딜은 한 개별 국가에서 효과가 있었지만, 그린뉴딜은 전 지구적 규모로 추진되어야만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임박한 재앙의 규모는 글로벌 주권의 확립에 버금간다. 그로 인한 공포는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가이아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캉디드가 어쩌다 햇볕이 잘 드는 우리 세상에 등장한다면 자신에게 낯익은 주제들을 이내 알아차릴 것이다. 그는 지금의 팬데믹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끔찍한 전염병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병에서 완치된 팡글로스를 보며 기뻐하고, 기술을 둘러싸고 발전하는 우리 엘도라도의 온갖 장치를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이 물가와 석유재벌들, 교통체증과 산불에 대해 지겹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한층 더 놀랄 것이다. 그는 리스본 지진이 정말이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지진은 인명을 앗아갔지만 인간성을 훼손하지는 않았다. 희생자는 수천 명을 헤아렸으나 가해자는 없었다. 반면 인간이 야기한 공포는 그와 완전히 다른 문제로, 인간에게 굴욕감을 안겨주고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캉디드는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세상을 돌아보면서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인간은 시종 선량함과 평화에 대한 설교를 되풀이하면서 서로에게 고통을 가해왔다. 그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일부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탐욕과 어리석음은 자연이 우리 안에 심어준 연대의 토대를 시시각각 갉아먹는다. 그 때문에 인류는 마치 아름다운 자연의 몸에 자라는 악성 종양처럼 자연의 즙을 게걸스레 빨아먹고 유독물질로 자연을 더럽힌다.
캉디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만 합니다."
나는 2020년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지금 상황은 마치 이 과제를 완수할 수 없는 인간이 그것을 바이러스에게 아웃소싱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외식도 즐길 수 없지만,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풍력 발전 지대, 태양광 패널 및 정교한 배터리로 전환하면 모래에서 희귀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구(新舊) 원자재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게 된다. 21세기에 재생 에너지의 성장은 19세기의 증기력 발전보다 한층 더디다. 네 번째 에너지 전환은 달성할 수야 있지만,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열정으로 밀어붙이는 ‘친환경(green)’ 정치인은 이러한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과학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대중과 공유해야만 한다.
배출량은 확실히 경제성장의 족적을 따라간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전 세계 총생산―전 세계에서 생산·구매·판매되는 모든 ‘(좋은)재화(goods)’와 ‘나쁜 재화(bads: ‘goods’의 상대어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나 경제 행위지만 동시에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재화―옮긴이)’의 총합―은 매년 3∼4퍼센트씩 성장했으며,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2∼3퍼센트씩 증가했다. 이 두 과정의 분리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논의하고 관료들이 약속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7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와 2015년 파리협정(Paris Agreement)으로 정점을 찍은 일련의 국제회의에서 각국 정부는 선의에 입각해 서명했다. 그러나 그 어떤 선진국도 자국이 파리협정의 일환으로 약속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합의된 목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을 1880년 대비 1.5도 상승으로 제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 지구의 평균 기온은 2050년까지 2도, 심지어 3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는 아직껏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남아 있다. 가장 오염이 심한 연료인 석탄은 계속해서 채굴 및 연소되고 있다. 경제성장은 예나 지금이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부가 원하는 목표다. 재생 에너지 사용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런 간헐적인 좋은 소식들은 엄청난 기세로 쏟아져나오는 나쁜 소식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가 배출량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한 잠정적 조치들마저 폐지했다. 2018년 폴란드 석탄 산업의 전통적 중심지 카토비체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유엔 전문가들은 인류가 배출량을 2분의 1로 줄이기 위해―우리는 오직 이렇게 해야만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를 1.5도 상승으로 제한하겠다는 오래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 결론이 아니었다. 미국·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4대 석유 강국이 그 조치의 채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기후는 이미 빙하기 이전만큼 따뜻해졌지만, 지금 해수면은 그때보다 30미터나 더 높다. 온난화가 더 진행되면 산호초가 파괴되고 섬나라와 항구도시들이 침수되며 전 세계적으로 생산 위기가 닥치고 인구가 대규모로 이동할 것이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국가들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향후 전 세계 생산량을 10∼25퍼센트 감소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예측 중 일부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1950년 이후 홍수 발생 건수는 15배, 산불 발생 건수는 7배나 불어났다.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이들은 우리와 지구를 공유하고 있지만 우리와 달리 자신들을 보호해줄 의복도 집도 에어컨도 없는 사람들이다. 지난 50년 동안 척추동물 개체수는 60퍼센트 감소했다. 과학자들은 곤충이 사라지는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다. 곤충의 총 바이오매스는 매년 2.5퍼센트씩 줄어들고 있다.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금세기 말에는 더 이상 곤충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미국 꿀벌 개체수의 절반 이상이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수많은 식물의 수분(受粉)을 담당하는 곤충은 어류와 조류의 먹이원이다. 따라서 어류와 조류 수천 종도 사라질 것이다.
한계 없는 성장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긴 어렵지만, 우리는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해온 개념의 상당수―이를테면 진보―를 이미 포기해야 했다. 우리 부모와 조부모는 우리보다 더 형편없이 살았지만 우리 자녀와 손주들은 우리보다 더 잘살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사랑 및 자부심의 정서적 패턴과 일치한다. 하지만 부국에서는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30대 미만이 제 부모나 조부모보다 더 가난해진 세대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보다 1도나 2도 더 따뜻해질 세상에서는 삶이 훨씬 더 불편해질 것이다. 홍수와 화재로 수조 달러의 손실이 발생해 노동시장이 한층 더 악화될 터다. 팬데믹과 전쟁은 기대수명을 단축하고 대량이주를 촉발함으로써 정치 풍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아마도 소박한 삶이 선사하는 일상적 축복, 즉 집, 자동차, 관광 여행, 시골지역에서 보내는 휴가, 궁극적으로 ‘자연’ 그 자체는 사치품이 될 것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계급 불평등이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그저 잠시 감소했을 뿐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불평등은 여성이 정규직 노동시장에 진출한 데 힘입어 서서히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성별 격차는 심각한 상태다. 국가 간 불평등은 자연과 역사의 가변성을 반영하며, 지구온난화는 이러한 차이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 것이다. 다양한 연령집단 간 불평등은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부모에게 거듭 촉구해온 도덕사상가에게는 낯익을지 몰라도, 사회과학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주제다. 종말을 앞둔 세계에서 집단 간 평등이라는 이상은 정말이지 중요하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노력으로 미래 세대의 고통을 막을 수 있을까?
사회는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으며, 경제생활은 그에 따른 생태적 결과와 별개가 아니다. 개인이 소비행위를 할 때마다 또 한 번의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되는데, 식물·동물·사람 등 우리 모두 그것을 들이마신다. 생태 개혁은 혁명에 버금갈 만한 인간 행동의 변화에 달려 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급진적 국제관계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재앙은 오로지 글로벌 공동체 차원에서만 피할 수 있으며,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혁명은 전 세계적일 때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뉴딜은 한 개별 국가에서 효과가 있었지만, 그린뉴딜은 전 지구적 규모로 추진되어야만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임박한 재앙의 규모는 글로벌 주권의 확립에 버금간다. 그로 인한 공포는 리바이어던이 아니라 가이아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캉디드가 어쩌다 햇볕이 잘 드는 우리 세상에 등장한다면 자신에게 낯익은 주제들을 이내 알아차릴 것이다. 그는 지금의 팬데믹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끔찍한 전염병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병에서 완치된 팡글로스를 보며 기뻐하고, 기술을 둘러싸고 발전하는 우리 엘도라도의 온갖 장치를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이 물가와 석유재벌들, 교통체증과 산불에 대해 지겹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한층 더 놀랄 것이다. 그는 리스본 지진이 정말이지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지진은 인명을 앗아갔지만 인간성을 훼손하지는 않았다. 희생자는 수천 명을 헤아렸으나 가해자는 없었다. 반면 인간이 야기한 공포는 그와 완전히 다른 문제로, 인간에게 굴욕감을 안겨주고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캉디드는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세상을 돌아보면서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인간은 시종 선량함과 평화에 대한 설교를 되풀이하면서 서로에게 고통을 가해왔다. 그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일부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탐욕과 어리석음은 자연이 우리 안에 심어준 연대의 토대를 시시각각 갉아먹는다. 그 때문에 인류는 마치 아름다운 자연의 몸에 자라는 악성 종양처럼 자연의 즙을 게걸스레 빨아먹고 유독물질로 자연을 더럽힌다.
캉디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만 합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천연자원의 문화사, 아래로부터의 역사
좋은 역사 저술은 늘 다양한 민족과 분야를 한데 아울러왔다. 여기서 자원과 제도의 관계는 가장 깊은 차원에 놓인다.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열성이지만, 가장 낮게 드리운 부분인 원자재는 대체로 무시해왔다. 고유한 생명을 지닌 이 원자재 상품들은 저마다 역사 연구에서 풍부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이룬다. 또한 인류와 함께 우리 공동의 역사를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과 상품이야말로 모든 공동체의 진정한 힘”이라고 썼다. 행위주체성은 늘 불완전하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주권적 통치자든 그 어떤 단일 행위체도 완벽하게 자율적이지는 않다. 곡물 한 자루, 목화 한 가마니, 석유 한 배럴 등 모든 자원은 저만의 행위주체성을 띤다. 자원의 역사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다. 게다가 저만의 고유한 행위주체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인간 경험에 대한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밀알 하나, 대마 섬유 한 가닥, 석탄 한 덩어리에서 파트너를 찾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더없이 다양한 천연자원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지상에서부터 국가로, 즉 아래로부터 위로, 그것들의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삶을 탐구한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이동에서는 저마다 다음 4단계를 거친다. 첫째, 원자재의 고유한 특성을 살펴본다. 둘째, 요구되는 노동의 세부사항을 규정하는 그 가공법을 확인한다. 셋째, 노동을 조직하고 이 원자재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제도에 관심을 기울인다. 넷째, 주어진 자원에 의존하는 국가의 정치적 특색을 다룬다.
가이아의 반격: 자연은 ‘공짜’가 아니다
지금은 석유의 부가 점점 더 자연과 긴밀히 연관되었을 뿐 아니라 자원 자체가 부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1차적 자원인 공기·토지·물은 여전히 고르게 분포해 있고, 이러한 자원은 기본적인 필수품이다. 그리고 인간은 지구상에서 이러한 자원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만 거주한다. 이번 세기에 우리는 석유보다 공기가, 토지보다 물이 더 빨리 바닥나리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2023년 7월 뉴스는 한반도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관측 이래 최고치이자, 전 지구 평균인 417ppm을 상회하는 425ppm이라고 보도했다. 전 지구 평균을 웃도는 결과는 선진국 문턱에 진압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얼마든지 추정 가능한 것이다. 사상 최고치라는 결과 또한 저간의 인간 활동에 획기적 변화가 없는 실상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뿐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공짜’로 쓰고 있지 않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2차적 자원의 소비가 경제적 가치가 없는 1차적 자원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잦은 산불, 대규모 홍수, 극심한 무더위 등 이상 기후의 일상화다.
저자는 이 같은 자연의 반격을 자애로운 ‘가이아’가 제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또 다른 면모인 괴물의 속성을 발현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가이아 가설을 공식화한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가이아를 위태롭게 만들 경우, 가이아는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그 인간을 희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가이아는 …… 인류만큼이나 무수히 많고 사회만큼이나 다원적이다. 악의 자연사는 무궁무진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각 천연자원은 나름의 고유한 정치적 특성을 띤다. 각 자원은 그것을 추출하고 가공하고 거래하는 인간들과 함께, 자연이 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적 제도다. 인간과 자연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에 시민권을 부여하고, 인간의 목소리뿐 아니라 자연의 이야기도 국민투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동안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았기에 저자는 비관적이다.
에너지의 역사: 인류 문명의 역사
증기와 전기는 생산적 노동력이 마구간·물레방아·풍차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고정된 특정 장소에 의존해야 했던 유구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로 얻은 이 자유는 산업과 무역, 자원 소비, 환경 오염의 전례 없는 증가로 이어졌다. 저자는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 이 글을 썼는데, 당시 상황은 마치 이 과제를 완수할 수 없는 인간이 그것을 바이러스에게 아웃소싱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외식도 즐길 수 없지만,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에너지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는 조치가 필수 불가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십억 명이 생활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산업 기술들로 무장한 우리는 이제 화석연료에서 풍력·수력·태양광으로 돌아가고 있다. 풍력 발전 지대, 태양광 패널 및 정교한 배터리로 전환하면서 모래에서 희귀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구(新舊) 원자재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게 되었다. 21세기에 재생 에너지의 성장은 19세기의 증기력 발전보다 한층 더디다. 네 번째 에너지 전환은 달성할 수야 있겠지만, 쉽지 않은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재생 에너지가 오늘날의 농업 및 운송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자원의 축복과 저주는 각국 차원의 문제지만, 자원의 오용이 빚어낸 기후변화라는 궁극적 결과는 공공선에 입각한 국가의 선택 및 정치적 의지, 그리고 국제공조로만 해결할 수 있는 전 지구적 문제다. 기후재앙의 위협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첫 번째 공동 관심사이자 여러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글로벌 이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생태학·정치학·경제학은 늘 불화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조화를 꾀해야 할 때이며, 이 새로운 질서는 분명 생태학이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천연자원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좋은 역사 저술은 늘 다양한 민족과 분야를 한데 아울러왔다. 여기서 자원과 제도의 관계는 가장 깊은 차원에 놓인다. 사회사는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열성이지만, 가장 낮게 드리운 부분인 원자재는 대체로 무시해왔다. 고유한 생명을 지닌 이 원자재 상품들은 저마다 역사 연구에서 풍부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이룬다. 또한 인류와 함께 우리 공동의 역사를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흄은 “인간과 상품이야말로 모든 공동체의 진정한 힘”이라고 썼다. 행위주체성은 늘 불완전하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주권적 통치자든 그 어떤 단일 행위체도 완벽하게 자율적이지는 않다. 곡물 한 자루, 목화 한 가마니, 석유 한 배럴 등 모든 자원은 저만의 행위주체성을 띤다. 자원의 역사는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다. 게다가 저만의 고유한 행위주체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인간 경험에 대한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밀알 하나, 대마 섬유 한 가닥, 석탄 한 덩어리에서 파트너를 찾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더없이 다양한 천연자원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지상에서부터 국가로, 즉 아래로부터 위로, 그것들의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삶을 탐구한다.
아래로부터 위로의 이동에서는 저마다 다음 4단계를 거친다. 첫째, 원자재의 고유한 특성을 살펴본다. 둘째, 요구되는 노동의 세부사항을 규정하는 그 가공법을 확인한다. 셋째, 노동을 조직하고 이 원자재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 제도에 관심을 기울인다. 넷째, 주어진 자원에 의존하는 국가의 정치적 특색을 다룬다.
가이아의 반격: 자연은 ‘공짜’가 아니다
지금은 석유의 부가 점점 더 자연과 긴밀히 연관되었을 뿐 아니라 자원 자체가 부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1차적 자원인 공기·토지·물은 여전히 고르게 분포해 있고, 이러한 자원은 기본적인 필수품이다. 그리고 인간은 지구상에서 이러한 자원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만 거주한다. 이번 세기에 우리는 석유보다 공기가, 토지보다 물이 더 빨리 바닥나리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2023년 7월 뉴스는 한반도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관측 이래 최고치이자, 전 지구 평균인 417ppm을 상회하는 425ppm이라고 보도했다. 전 지구 평균을 웃도는 결과는 선진국 문턱에 진압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얼마든지 추정 가능한 것이다. 사상 최고치라는 결과 또한 저간의 인간 활동에 획기적 변화가 없는 실상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뿐 아니라 그 어느 나라에서도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공짜’로 쓰고 있지 않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2차적 자원의 소비가 경제적 가치가 없는 1차적 자원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잦은 산불, 대규모 홍수, 극심한 무더위 등 이상 기후의 일상화다.
저자는 이 같은 자연의 반격을 자애로운 ‘가이아’가 제 안에 똬리 틀고 있는 또 다른 면모인 괴물의 속성을 발현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가이아 가설을 공식화한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가이아를 위태롭게 만들 경우, 가이아는 지구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그 인간을 희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가이아는 …… 인류만큼이나 무수히 많고 사회만큼이나 다원적이다. 악의 자연사는 무궁무진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각 천연자원은 나름의 고유한 정치적 특성을 띤다. 각 자원은 그것을 추출하고 가공하고 거래하는 인간들과 함께, 자연이 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적 제도다. 인간과 자연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자연현상에 시민권을 부여하고, 인간의 목소리뿐 아니라 자연의 이야기도 국민투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동안 정반대 방향으로 치달았기에 저자는 비관적이다.
에너지의 역사: 인류 문명의 역사
증기와 전기는 생산적 노동력이 마구간·물레방아·풍차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고정된 특정 장소에 의존해야 했던 유구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로 얻은 이 자유는 산업과 무역, 자원 소비, 환경 오염의 전례 없는 증가로 이어졌다. 저자는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 이 글을 썼는데, 당시 상황은 마치 이 과제를 완수할 수 없는 인간이 그것을 바이러스에게 아웃소싱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더 이상 여행도 다니지 못하고 외식도 즐길 수 없지만, 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에너지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는 조치가 필수 불가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수십억 명이 생활방식을 바꿔야만 한다.
산업 기술들로 무장한 우리는 이제 화석연료에서 풍력·수력·태양광으로 돌아가고 있다. 풍력 발전 지대, 태양광 패널 및 정교한 배터리로 전환하면서 모래에서 희귀 금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구(新舊) 원자재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게 되었다. 21세기에 재생 에너지의 성장은 19세기의 증기력 발전보다 한층 더디다. 네 번째 에너지 전환은 달성할 수야 있겠지만, 쉽지 않은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재생 에너지가 오늘날의 농업 및 운송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자원의 축복과 저주는 각국 차원의 문제지만, 자원의 오용이 빚어낸 기후변화라는 궁극적 결과는 공공선에 입각한 국가의 선택 및 정치적 의지, 그리고 국제공조로만 해결할 수 있는 전 지구적 문제다. 기후재앙의 위협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의 첫 번째 공동 관심사이자 여러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글로벌 이슈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생태학·정치학·경제학은 늘 불화하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조화를 꾀해야 할 때이며, 이 새로운 질서는 분명 생태학이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천연자원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미래에 대비하는 교훈이 되기를 기대한다.
추천평
통찰력과 유익한 정보가 가득한 도발적인 이 책은 대마·석탄·밀 같은 원자재의 소박한 토대 위에 구축된 문화적·경제적·역사적 제도들을 탐구한다. 그는 이 책에서 물질의 역사와 관념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놓는다. 문명의 개념과 그 기원 및 미래에 대해 다시금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에드워드 루커스 (Edward Lucas, 전 〈이코노미스트〉 선임편집자이자 《신냉전(New Cold War)》 저자)
- 에드워드 루커스 (Edward Lucas, 전 〈이코노미스트〉 선임편집자이자 《신냉전(New Cold War)》 저자)
옛킨트의 책은 천연자원의 물질적·문화적·정치적 삶을 파헤친 귀중한 보물창고다. 그는 지적·생태적·도덕적 역사를 정말이지 독창적이고도 매혹적으로 한데 아울러놓았다. 놓쳐서는 안 될 훌륭한 책이다.
- 낸시 프레이저 (Nancy Fraser,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저자)
- 낸시 프레이저 (Nancy Fraser,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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