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태평양전쟁의 전환점인 미드웨이 해전을 비롯해 수차례의 전투에서 결정적 전과를 올린 조종사 노먼 클리스의 회고록이다. 비행기에 매료된 캔자스 출신 소년이 미국 해군 항공대에 들어가 비행사로 성장하는 과정,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 여러 번의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로서 활약한 경험, 전쟁 중에 결혼한 평생의 사랑, 비행 교관 임무 수행, 전역 후의 삶 등이 진솔하게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회고록은 단순히 전투 이야기만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미 해군 항공대의 중요한 시기에 대한 역사적 증언이자 전쟁의 생존자가 무명의 전우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세상은 전쟁에서 전과를 세우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지만, 지은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은 용기를 발휘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다 산화한 전사자들이다. 지은이는 세상이 이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남겼다.
하지만 이 회고록은 단순히 전투 이야기만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미 해군 항공대의 중요한 시기에 대한 역사적 증언이자 전쟁의 생존자가 무명의 전우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세상은 전쟁에서 전과를 세우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지만, 지은이가 생각하는 진정한 영웅은 용기를 발휘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다 산화한 전사자들이다. 지은이는 세상이 이들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남겼다.
목차
한국어판에 부쳐
머리말
들어가며
1 캔자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 1916∼1932년
2 비행의 유혹 1932∼1934년
3 해군사관생도 1934∼1938년
4 사랑을 찾아 1938∼1939년
5 해군의 수상함대 1939∼1940년
6 비행 훈련 1940∼1941년
7 VS-6 제1부 1941년 5월∼6월
8 VS-6 제2부 1941년 6월∼11월
9 태평양전쟁의 시작 1941년 11월∼1942년 1월
10 마셜 제도 전투 1942년 2월
11 웨이크섬과 마커스섬 1942년 2월∼3월
12 중부태평양으로 돌아가다 1942년 3월∼6월
13 미드웨이 해전 제1부 아침 공격, 1942년 6월 4일
14 미드웨이 해전 제2부 오후 공격, 1942년 6월 4일
15 미드웨이 해전 제3부 1942년 6월 5일과 6일
16 본토 귀환 1942년 6월∼10월
17 비행 교관 1942∼1945년
18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삶 1946∼1976년
19 미드웨이를 기억하며 1976∼2016년
공저자 후기
감사의 말
부록: VS-6 부대원 명단, 1941년 5월∼1942년 6월
용어 해설
역자 후기
머리말
들어가며
1 캔자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 1916∼1932년
2 비행의 유혹 1932∼1934년
3 해군사관생도 1934∼1938년
4 사랑을 찾아 1938∼1939년
5 해군의 수상함대 1939∼1940년
6 비행 훈련 1940∼1941년
7 VS-6 제1부 1941년 5월∼6월
8 VS-6 제2부 1941년 6월∼11월
9 태평양전쟁의 시작 1941년 11월∼1942년 1월
10 마셜 제도 전투 1942년 2월
11 웨이크섬과 마커스섬 1942년 2월∼3월
12 중부태평양으로 돌아가다 1942년 3월∼6월
13 미드웨이 해전 제1부 아침 공격, 1942년 6월 4일
14 미드웨이 해전 제2부 오후 공격, 1942년 6월 4일
15 미드웨이 해전 제3부 1942년 6월 5일과 6일
16 본토 귀환 1942년 6월∼10월
17 비행 교관 1942∼1945년
18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삶 1946∼1976년
19 미드웨이를 기억하며 1976∼2016년
공저자 후기
감사의 말
부록: VS-6 부대원 명단, 1941년 5월∼1942년 6월
용어 해설
역자 후기
책 속으로
해군항공대는 해마다 커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지금이 해군 조종사가 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 해군사관학교 진학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관학교의 교과과정은 생도를 지휘관으로 양성하는 과정이지 조종사 양성 과정이 아니었다. 사관학교에서 4년을 보낸다고 해도 비행훈련을 개시하기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졸업 후 임관한 소위는 수상함대에서 2년을 보내야 했고, 그때까지 조종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 있는 조종사후보생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조종사가 되기까지 6년이 걸렸다.
--- p.44
실전 연습에서 우리 비행대는 2개의 중요한 임무에 초점을 맞췄다. 급강하 폭격과 정찰 폭격이다. 급강하 폭격 연습을 할 때면 우리는 대형을 유지하며 2만 피트(6,096m) 고도로 순항하다 한 대씩 대형을 이탈해 선택된 목표물을 향해 강하했다. 연습 대상은 지상에 설치되거나 수상에서 선박에 예인되는 표적이었다. 급강하 폭격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아슬아슬한 조종술과 정확성을 과시하는 과정이었다. 급강하 폭격술을 배우는 것에 비하면 롤러코스터는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 p.135
우리가 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즉 일본군이 미드웨이 침공을 위해 항공모함 4척을 보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니미츠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썼다. 미 해군의 작전 가능한 항공모함 전부와 호위함들을 일본 해군이 자랑하는 기동부대 앞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태평양전쟁의 운명이 우리 어깨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
--- p.226
몇 초 만에 내 비행기가 급강하에 들어가자 내 앞에 보인 것은 눈앞에 닥쳐오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푸른 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연기를 뿜고 있는 적 항공모함이었다. 여러 번 말했듯이, SBD로 급강하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애들 장난으로 만드는 수준이었다. 바람이 조종석 주변으로 포효하며 휘몰아쳤다. 급격한 각도로 하강해 위가 눌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여러 번 실전에서 급강하를 해 봐서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효과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 p.252
10시 30분, 참극의 현장에서 5해리(9.3km) 떨어진 곳까지 이르자 나는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 너머로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전장을 바라보았다. 일본군 항공모함 3척이 거대한 모닥불처럼 불타고 있었는데 마치 캔자스에서 본 불붙은 건초더미 같았다. 아카기의 화염이 300피트(91m) 높이까지 치솟았다. 강철로 된 선체는 빨갛게 달궈져 있었다. 가가는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p.255
편집자에게 보낸 그 편지는 내가 미드웨이를 기억하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으로 나는 미드웨이 해전의 기억을 끌어안기로 결심했다. 과거에는 전투에 대해 말할 때마다 인상적인 이미지나 비행 일지에 의지해야 했다.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싫어서 건성건성 빨리 말했다.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미드웨이에서 사라지다」를 비판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의 배우이자 목격자였다. 나는 56년간 잠재의식 속에 꼭꼭 숨겨둔 기억을 풀어내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기억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 p.346
미드웨이 해전의 진정한 영웅은 전사한 이들, 공격 중 산화한 뇌격비행대 탑승원들과 연료가 떨어져 망망대해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은 전투기 조종사들이다. 톰 에버솔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의 기억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나는 톰에게 진 빚을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올바른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갚을 의무가 있다.
--- p.44
실전 연습에서 우리 비행대는 2개의 중요한 임무에 초점을 맞췄다. 급강하 폭격과 정찰 폭격이다. 급강하 폭격 연습을 할 때면 우리는 대형을 유지하며 2만 피트(6,096m) 고도로 순항하다 한 대씩 대형을 이탈해 선택된 목표물을 향해 강하했다. 연습 대상은 지상에 설치되거나 수상에서 선박에 예인되는 표적이었다. 급강하 폭격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아슬아슬한 조종술과 정확성을 과시하는 과정이었다. 급강하 폭격술을 배우는 것에 비하면 롤러코스터는 따분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 p.135
우리가 들은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즉 일본군이 미드웨이 침공을 위해 항공모함 4척을 보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니미츠는 엄청난 위험을 무릅썼다. 미 해군의 작전 가능한 항공모함 전부와 호위함들을 일본 해군이 자랑하는 기동부대 앞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태평양전쟁의 운명이 우리 어깨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
--- p.226
몇 초 만에 내 비행기가 급강하에 들어가자 내 앞에 보인 것은 눈앞에 닥쳐오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푸른 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연기를 뿜고 있는 적 항공모함이었다. 여러 번 말했듯이, SBD로 급강하하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를 애들 장난으로 만드는 수준이었다. 바람이 조종석 주변으로 포효하며 휘몰아쳤다. 급격한 각도로 하강해 위가 눌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여러 번 실전에서 급강하를 해 봐서 방향감각을 잃게 하는 효과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 p.252
10시 30분, 참극의 현장에서 5해리(9.3km) 떨어진 곳까지 이르자 나는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 너머로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전장을 바라보았다. 일본군 항공모함 3척이 거대한 모닥불처럼 불타고 있었는데 마치 캔자스에서 본 불붙은 건초더미 같았다. 아카기의 화염이 300피트(91m) 높이까지 치솟았다. 강철로 된 선체는 빨갛게 달궈져 있었다. 가가는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p.255
편집자에게 보낸 그 편지는 내가 미드웨이를 기억하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으로 나는 미드웨이 해전의 기억을 끌어안기로 결심했다. 과거에는 전투에 대해 말할 때마다 인상적인 이미지나 비행 일지에 의지해야 했다.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싫어서 건성건성 빨리 말했다.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미드웨이에서 사라지다」를 비판하기로 결심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 사건의 배우이자 목격자였다. 나는 56년간 잠재의식 속에 꼭꼭 숨겨둔 기억을 풀어내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기억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 p.346
미드웨이 해전의 진정한 영웅은 전사한 이들, 공격 중 산화한 뇌격비행대 탑승원들과 연료가 떨어져 망망대해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은 전투기 조종사들이다. 톰 에버솔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의 기억이 지금도 나를 괴롭힌다. 나는 톰에게 진 빚을 미드웨이 해전에 대해 올바른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갚을 의무가 있다.
--- p.353
출판사 리뷰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전함 세 척에 폭탄을 명중시킨
전설적인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
참전용사가 쓴 생생한 전투 기록물이자
전쟁의 비애를 가슴에 묻었던 군인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
“살아남은 자들 중에는 영웅이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죽은 자만이 영웅이 될 수 있다.
나를 영웅이라 부르지 말아 주오.”
1942년 태평양전쟁의 판도를 바꾼 미드웨이 해전. 미국 해군은 시종일관 우위를 차지하던 일본제국 해군을 미드웨이에서 대파하고 마침내 승기를 잡는다. 이 전투에 대해 미국에서는 많은 논문과 단행본,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크게 활약한 해군 항공대 장교 노먼 잭 클리스가 쓴 회고록이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여러 전투에 참전해 비행수훈십자장과 미 해군 최고 훈장인 해군십자장을 받은 전설적인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다. 특히 미드웨이 해전에서 하루 동안 일본 전함 세 척에 폭탄을 명중시켜 미군이 결정적 승기를 잡는 데 기여했다.
2011년 미드웨이 해전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로라 오르는 역사가이자 남편인 티머시 오르와 함께 아흔다섯 살의 노먼 클리스 대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클리스 대령과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이야기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클리스 대령은 전시 비행 일지와 전투 기록, 제6정찰폭격비행대의 공식 교전 보고, 전장에서 여자친구(훗날 부인)와 주고받은 편지 등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들과 서른세 시간에 걸친 구술 인터뷰를 기초로 해 초고를 작성한 오르 부부는 클리스 대령과 함께 여러 번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2017년 이 책을 출간했다. 클리스 대령은 2016년 100세 생일을 맞은 지 한 달 후 타계해 책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출간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한 미 해군 조종사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작은 마을의 이름 없는 젊은이가 전쟁터로 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경험을 묘사한 오디세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큰 전과를 세웠음에도 오랫동안 노먼 잭 클리스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자신이 군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아 외부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전투에 참전했던 조종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자 전투의 당사자이자 목격자로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소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임무의 결과물이다.
클리스는 제6정찰폭격비행대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의 시작부터 마셜 제도 전투, 웨이크섬과 마커스섬 습격, 미드웨이 해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상세하게 서술했다. 이것은 자신의 비행 일지와 일기, 편지, 교전 보고, 일차 사료 등을 비교 확인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드웨이 해전과 나』가 클리스 자신의 전투 활약상에만 초점을 둔 맞춘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해군 조종사들이 이룬 공적을 제대로 알리고자 했다. 초창기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이 겪은 열악한 훈련 상황과 무장, 혼란스러운 전투 상황에서도 서로를 신뢰하며 대담하게 목표를 향해 급강하한 조종사들과 사수들, 그리고 바닷속으로 스러져 간 수많은 전우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짙은 비애를 담아 독자에게 전달한다. 클리스는 미국 함대가 우연과 행운을 만나 승리했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그는 해군 비행대 조종사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들이 미국 함대의 승리에 공헌했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미드웨이 해전의 진정한 영웅은 공격 중 산화한 뇌격대비행대 탑승원들과 연료가 떨어져 망망대해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은 전투기 조종사들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이 책은 노먼 클리스의 일생이 담긴 자서전이기도 하다. 캔자스주 커피빌의 대담한 소년이 비행에 매료되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빈센스함의 승조원 시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전쟁 중에 결혼하는 과정, 전투 현장에서 물러난 후 비행 교관, 엔지니어,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어머니와 자식을 병과 사고로 잃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전설적인 급강하폭격기 조종사의 회고록
참전용사가 쓴 생생한 전투 기록물이자
전쟁의 비애를 가슴에 묻었던 군인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
“살아남은 자들 중에는 영웅이 있을 수 없으며
오로지 죽은 자만이 영웅이 될 수 있다.
나를 영웅이라 부르지 말아 주오.”
1942년 태평양전쟁의 판도를 바꾼 미드웨이 해전. 미국 해군은 시종일관 우위를 차지하던 일본제국 해군을 미드웨이에서 대파하고 마침내 승기를 잡는다. 이 전투에 대해 미국에서는 많은 논문과 단행본,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크게 활약한 해군 항공대 장교 노먼 잭 클리스가 쓴 회고록이다. 그는 태평양전쟁의 여러 전투에 참전해 비행수훈십자장과 미 해군 최고 훈장인 해군십자장을 받은 전설적인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다. 특히 미드웨이 해전에서 하루 동안 일본 전함 세 척에 폭탄을 명중시켜 미군이 결정적 승기를 잡는 데 기여했다.
2011년 미드웨이 해전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로라 오르는 역사가이자 남편인 티머시 오르와 함께 아흔다섯 살의 노먼 클리스 대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클리스 대령과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이야기를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클리스 대령은 전시 비행 일지와 전투 기록, 제6정찰폭격비행대의 공식 교전 보고, 전장에서 여자친구(훗날 부인)와 주고받은 편지 등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이 문서들과 서른세 시간에 걸친 구술 인터뷰를 기초로 해 초고를 작성한 오르 부부는 클리스 대령과 함께 여러 번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2017년 이 책을 출간했다. 클리스 대령은 2016년 100세 생일을 맞은 지 한 달 후 타계해 책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출간 이후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한 미 해군 조종사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작은 마을의 이름 없는 젊은이가 전쟁터로 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간 경험을 묘사한 오디세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큰 전과를 세웠음에도 오랫동안 노먼 잭 클리스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가 자신이 군인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아 외부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전투에 참전했던 조종사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자 전투의 당사자이자 목격자로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소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수행한 임무의 결과물이다.
클리스는 제6정찰폭격비행대의 일원으로 태평양전쟁의 시작부터 마셜 제도 전투, 웨이크섬과 마커스섬 습격, 미드웨이 해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상세하게 서술했다. 이것은 자신의 비행 일지와 일기, 편지, 교전 보고, 일차 사료 등을 비교 확인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미드웨이 해전과 나』가 클리스 자신의 전투 활약상에만 초점을 둔 맞춘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태평양전쟁에서 해군 조종사들이 이룬 공적을 제대로 알리고자 했다. 초창기 해군 항공대 조종사들이 겪은 열악한 훈련 상황과 무장, 혼란스러운 전투 상황에서도 서로를 신뢰하며 대담하게 목표를 향해 급강하한 조종사들과 사수들, 그리고 바닷속으로 스러져 간 수많은 전우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짙은 비애를 담아 독자에게 전달한다. 클리스는 미국 함대가 우연과 행운을 만나 승리했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그는 해군 비행대 조종사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들이 미국 함대의 승리에 공헌했다고 단언한다. 무엇보다 미드웨이 해전의 진정한 영웅은 공격 중 산화한 뇌격대비행대 탑승원들과 연료가 떨어져 망망대해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은 전투기 조종사들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이 책은 노먼 클리스의 일생이 담긴 자서전이기도 하다. 캔자스주 커피빌의 대담한 소년이 비행에 매료되어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빈센스함의 승조원 시절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전쟁 중에 결혼하는 과정, 전투 현장에서 물러난 후 비행 교관, 엔지니어,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어머니와 자식을 병과 사고로 잃은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23.전쟁연구 (박사전공>책소개) > 4.태평양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 미술 (2019) - 비주얼 속의 아시아태평양전쟁 (0) | 2024.07.14 |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731부대 (2020) -의학자 의사들의 양심을 건 일본군 세균전부대 규명 (1) | 2024.06.13 |
태평양전쟁의 지상전 (2021) (1) | 2024.02.03 |
대동아공영권의 허상과 모순 (2022) -『사진주보』로 보는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 (0) | 2023.05.28 |
군도의 역사사회학 (2017) - 바다 노마드의 섬에서 본 근대의 형상 (0) | 2023.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