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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코비드를 계기로 감시와 권위주의로 사회를 통제하기 시작한 팬데믹 전략
그로 인해 탄생한 “생물의학 보안국가”라는 새로운 비정상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정신과 의사이자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아론 케리아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 속에, 공중보건과 과학이이라는 명분 아래 ‘내용 고지에 입각한 동의’, ‘피해 우선 고려’, ‘정의’와 같은 의료 윤리의 기본 원칙들이 공공 안전을 명분으로 사회적 논의 없이 무시되는 현실에 저항했다가 대학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자신이 해고되고 저항하는 과정, 그리고 진료 현장에서 비상사태라는 명목하에 점점 침입적 감시와 권위주의적인 사회 통제가 정당화되는 새로운 전체주의적 체제의 도래를 목도하게 된다. 저자는 팬데믹으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비정상’ 사회를 생물의학 보안국가로 명명하고, 그것을 공중보건, 감시와 통제의 디지털 기술, 국가의 경찰권이라는 3자의 위험한 동맹체제로 규정한다.
이 책은 인간의 몸을 건강과 치유의 근본적인 주체로 보는 전통 의학이 무시되고 인간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상실하게 된 현실을 고발한다. 또 기술 또는 과학, 그리고 자본으로 무장한 거대 세력들이 어떻게 대중을 통제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지, 공중보건 비상상태라는 명분하에 자행한 생체 감시와 차별의 조치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어떻게 빼앗기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와 같은 상황을 지금처럼 아무 저항 없이 수용했을 때 펼쳐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다. 2030년 시애틀의 모습을 그린 에필로그는 섬뜩하지만 그와 같은 현실이 결코 상상으로 그치지 않으리라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한다. 저자는 공동의 연대와 실천으로 우리는 그와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한다.
그로 인해 탄생한 “생물의학 보안국가”라는 새로운 비정상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정신과 의사이자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아론 케리아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 속에, 공중보건과 과학이이라는 명분 아래 ‘내용 고지에 입각한 동의’, ‘피해 우선 고려’, ‘정의’와 같은 의료 윤리의 기본 원칙들이 공공 안전을 명분으로 사회적 논의 없이 무시되는 현실에 저항했다가 대학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자신이 해고되고 저항하는 과정, 그리고 진료 현장에서 비상사태라는 명목하에 점점 침입적 감시와 권위주의적인 사회 통제가 정당화되는 새로운 전체주의적 체제의 도래를 목도하게 된다. 저자는 팬데믹으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비정상’ 사회를 생물의학 보안국가로 명명하고, 그것을 공중보건, 감시와 통제의 디지털 기술, 국가의 경찰권이라는 3자의 위험한 동맹체제로 규정한다.
이 책은 인간의 몸을 건강과 치유의 근본적인 주체로 보는 전통 의학이 무시되고 인간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상실하게 된 현실을 고발한다. 또 기술 또는 과학, 그리고 자본으로 무장한 거대 세력들이 어떻게 대중을 통제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지, 공중보건 비상상태라는 명분하에 자행한 생체 감시와 차별의 조치를 어떻게 정당화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다움’을 어떻게 빼앗기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와 같은 상황을 지금처럼 아무 저항 없이 수용했을 때 펼쳐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다. 2030년 시애틀의 모습을 그린 에필로그는 섬뜩하지만 그와 같은 현실이 결코 상상으로 그치지 않으리라는 합리적 추론을 하게 한다. 저자는 공동의 연대와 실천으로 우리는 그와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한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비상사태|혁명의 인큐베이터|메가머신|디지털 파놉티콘|모의전쟁 같은 팬데믹|과학주의 추종
제2장 락다운 & 락아웃: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
“증명서 좀 보여 주세요”|그라운드 제로|다른 팬데믹|케리아티 대 캘리포니아 대학|CDC 그리고 FDA와의 싸움|규제 포획
제3장 감금된 인간: 기술관료 디스토피아의 도래
생물보안이라는 신어|세계의 새로운 주인들|바이오디지털 감시|트랜스휴머니스트의 몽상|히포크라테스 의술 대 테크노크라트 의술|기계 속의 유령
제4장 자유의 회복: 더 뿌리 깊은 미래에서의 인간 번영
죽음에 이르는 병|얼굴을 보여 줄 때까지|정상상태|제도적 개혁|이성의 간교함|뿌리의 필요성
에필로그: 시애틀, 2030
옮긴이 말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비상사태|혁명의 인큐베이터|메가머신|디지털 파놉티콘|모의전쟁 같은 팬데믹|과학주의 추종
제2장 락다운 & 락아웃: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
“증명서 좀 보여 주세요”|그라운드 제로|다른 팬데믹|케리아티 대 캘리포니아 대학|CDC 그리고 FDA와의 싸움|규제 포획
제3장 감금된 인간: 기술관료 디스토피아의 도래
생물보안이라는 신어|세계의 새로운 주인들|바이오디지털 감시|트랜스휴머니스트의 몽상|히포크라테스 의술 대 테크노크라트 의술|기계 속의 유령
제4장 자유의 회복: 더 뿌리 깊은 미래에서의 인간 번영
죽음에 이르는 병|얼굴을 보여 줄 때까지|정상상태|제도적 개혁|이성의 간교함|뿌리의 필요성
에필로그: 시애틀, 2030
옮긴이 말
책 속으로
20세기 의료 윤리의 보루인 정보에 입각한 동의를 토론도 별로 없이, 기성 의학계와 과학계의 반대도 거의 없이 어떻게 그리고 왜 서둘러 포기하게 되었나? 이전 세기 우생학 운동이 벌어졌을 때 과학, 의학 그리고 공중보건을 지배한 이데올로기인 냉정한 공리주의 윤리 의식이 우리 시대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리의 공중보건기관들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민하지 않은 채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선뜻 수용했다. 내가 생물의학 보안국가로 명명한 1) 공중보건, 2) 감시와 통제의 디지털 기술, 3) 국가의 경찰권, 이 삼자의 위험한 동맹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생물의학 보안국가’의 등장이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생체보안과 감시라는 패러다임은 팬데믹 기간에 돌연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최소 20년을 두고 진화해 왔다. 이 책에서 설명하겠지만 미국의 코비드 대책은 뉴 애브노멀, 즉 새로운 비정상으로 진입하는 사회적 변화를 보여 주는 시작일 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격리 조치와 휴교에서부터 마스크와 백신 접종 의무화 혹은 접종 증명에 이르기까지 침입적 정책들 하나하나는 비상사태 선포로 이른바 법적 정당성이라는 것을 획득했다. 그러나 환자 발생 건수, 입원 환자 수, 사망자 수 같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건은 의도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비상사태의 최소한의 계량적 구성 요건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광범위한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의료 기반 시설에 대한 위협, 일정한 치명률과 사망률, 최종 변이 바이러스의 특성, 이런저런 계량적 요소의 조합 등으로 비상사태가 규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신중을 요하는 결정은 반드시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내려져야 한다.
---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중에서
대중 감시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제 일종의 세계적인 디지털 파놉티콘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는 시민 각자가 간수이자 동시에 수감자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배자의 질책을 두려워하고, 서로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웃이 잠재적 밀고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잠재적 밀고자는 주머니 안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이것은 디지털 파놉티콘이 단순히 은유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감시하고 있다. 대학 관리자들이 코비드 기간에 코비드 방역 대책의 세부 사항들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밀고자 역할을 하라고 부추긴 것을 상기해 보라.
---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중에서
과학주의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철학적 주장이다. 즉 과학만이 지식의 올바른 형태라는 것이다. “과학에 따르면……”이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는 사람은 과학주의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혹은 “이 메타분석의 결론은……” 같은 말로 문장을 시작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학주의는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인 경우가 많다. 아감벤은 “과학이 우리 시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은 요즈음 들어 명백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신념 체계인 종교가 되면 우리는 과학주의를 상대하는 것이다.
---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중에서
2021년에 백신 정책이 전개되면서 나는 이러한 기본적인 면역학적 사실들을 알고 있고 백신 의무 접종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 교수, 수련의, 사무 직원, 그리고 환자 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더 우수한 자연면역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백신을 맞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의학적 혹은 공중보건적 측면에서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종교를 이유로 면제받을 자격을 얻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가 양심에 따른 백신 접종 거부의 중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조하라는 엄청난 압력에 직면해 위협, 박탈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꼈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는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 공중보건 담당 관리들은 불편한 과학적 진실을 무시하고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억눌렀으며 회의적인 의사나 과학자를 위협해 입을 다물도록 만들었다. 백신 접종 명령을 내린 기관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명을 씌워 처벌했다. 나는 의학계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 「제2장 락다운 & 락아웃: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 중에서
일상적인 업무에서 생체 정보 인증을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기술을 관례화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생체 정보 인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많은 교육구敎育區에서 학교 점심 급식 때 학생들의 이동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안면 인식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지문과 같은 생체 정보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범죄 혐의로 기소하거나 중요한 문서를 공증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보안 목적에만 사용되었다. 오늘날 휴대전화에서 점심 급식에까지 활용되고 있는 일상적인 생체 정보 인증은 몸이 거래에 이용되는 도구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무의식적이고 교묘한, 그러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몸을 도구로 만들어 가고 있다.
--- 「제3장 감금된 인간: 다가오는 기술관료적 디스토피아」 중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전통 의학은 인간의 몸을 건강과 치유의 근본적 주체로 본다. 몸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건강과 번성을 지향하는 유기적으로 통합된 완전체다. 하지만, 몸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질병과 부상이라는 위협적인 존재와 장애물을 만난다. 의학의 일차적인 역할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해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외과 의사는 사실 외과적 상처를 ‘완치’하는 것이 아니다. 외과의사는 몸이 치유할 수 있도록 조직을 봉합할 뿐이다. 왜냐하면 몸은 원래 건강과 완전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몸 자신이 치유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 「제3장 감금된 인간: 다가오는 기술관료적 디스토피아 」 중에서
사람들은 저항함으로써 잃을 것이 많습니다. 나는 직업을 잃었습니다.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중상모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궐기하여 맞서고 튀는 행동을 하면, 시종일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순응하지 않으면 우정과 인간관계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얻는 것도 많습니다. 매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자녀나 손자, 조카, 즉 다음 세대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나는 거기에 저항하려고 애썼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나는 어떤 것이 스며드는지, 무엇이 발전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앞으로 일어날 것을 보며 “아니오,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소수 입장을 취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양심을 성찰하여 어느 땅에다 저항의 말뚝을 박을 것인지, 어디에 기준선을 그을 것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역풍과 압력에 부딪혀도 버틸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면 잃는 게 있지만 모든 것을 얻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격리 조치와 휴교에서부터 마스크와 백신 접종 의무화 혹은 접종 증명에 이르기까지 침입적 정책들 하나하나는 비상사태 선포로 이른바 법적 정당성이라는 것을 획득했다. 그러나 환자 발생 건수, 입원 환자 수, 사망자 수 같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건은 의도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비상사태의 최소한의 계량적 구성 요건에 관해서는 두말할 나위 없이 광범위한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의료 기반 시설에 대한 위협, 일정한 치명률과 사망률, 최종 변이 바이러스의 특성, 이런저런 계량적 요소의 조합 등으로 비상사태가 규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신중을 요하는 결정은 반드시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내려져야 한다.
---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중에서
대중 감시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제 일종의 세계적인 디지털 파놉티콘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는 시민 각자가 간수이자 동시에 수감자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배자의 질책을 두려워하고, 서로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웃이 잠재적 밀고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잠재적 밀고자는 주머니 안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이것은 디지털 파놉티콘이 단순히 은유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감시하고 있다. 대학 관리자들이 코비드 기간에 코비드 방역 대책의 세부 사항들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밀고자 역할을 하라고 부추긴 것을 상기해 보라.
---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중에서
과학주의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철학적 주장이다. 즉 과학만이 지식의 올바른 형태라는 것이다. “과학에 따르면……”이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는 사람은 과학주의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혹은 “이 메타분석의 결론은……” 같은 말로 문장을 시작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학주의는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인 경우가 많다. 아감벤은 “과학이 우리 시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은 요즈음 들어 명백해졌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신념 체계인 종교가 되면 우리는 과학주의를 상대하는 것이다.
--- 「제1장 가둠: 생물의학 보안국가」 중에서
2021년에 백신 정책이 전개되면서 나는 이러한 기본적인 면역학적 사실들을 알고 있고 백신 의무 접종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 교수, 수련의, 사무 직원, 그리고 환자 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미 더 우수한 자연면역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백신을 맞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의학적 혹은 공중보건적 측면에서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종교를 이유로 면제받을 자격을 얻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종교가 양심에 따른 백신 접종 거부의 중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조하라는 엄청난 압력에 직면해 위협, 박탈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꼈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는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했다. 공중보건 담당 관리들은 불편한 과학적 진실을 무시하고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억눌렀으며 회의적인 의사나 과학자를 위협해 입을 다물도록 만들었다. 백신 접종 명령을 내린 기관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명을 씌워 처벌했다. 나는 의학계에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 「제2장 락다운 & 락아웃: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 중에서
일상적인 업무에서 생체 정보 인증을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기술을 관례화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생체 정보 인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많은 교육구敎育區에서 학교 점심 급식 때 학생들의 이동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안면 인식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지문과 같은 생체 정보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범죄 혐의로 기소하거나 중요한 문서를 공증하는 것과 같은 고도의 보안 목적에만 사용되었다. 오늘날 휴대전화에서 점심 급식에까지 활용되고 있는 일상적인 생체 정보 인증은 몸이 거래에 이용되는 도구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무의식적이고 교묘한, 그러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몸을 도구로 만들어 가고 있다.
--- 「제3장 감금된 인간: 다가오는 기술관료적 디스토피아」 중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전통 의학은 인간의 몸을 건강과 치유의 근본적 주체로 본다. 몸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건강과 번성을 지향하는 유기적으로 통합된 완전체다. 하지만, 몸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질병과 부상이라는 위협적인 존재와 장애물을 만난다. 의학의 일차적인 역할은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해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외과 의사는 사실 외과적 상처를 ‘완치’하는 것이 아니다. 외과의사는 몸이 치유할 수 있도록 조직을 봉합할 뿐이다. 왜냐하면 몸은 원래 건강과 완전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몸 자신이 치유의 대부분을 수행한다.
--- 「제3장 감금된 인간: 다가오는 기술관료적 디스토피아 」 중에서
사람들은 저항함으로써 잃을 것이 많습니다. 나는 직업을 잃었습니다.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중상모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궐기하여 맞서고 튀는 행동을 하면, 시종일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순응하지 않으면 우정과 인간관계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얻는 것도 많습니다. 매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자녀나 손자, 조카, 즉 다음 세대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 나는 거기에 저항하려고 애썼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나는 어떤 것이 스며드는지, 무엇이 발전하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앞으로 일어날 것을 보며 “아니오, 나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소수 입장을 취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양심을 성찰하여 어느 땅에다 저항의 말뚝을 박을 것인지, 어디에 기준선을 그을 것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역풍과 압력에 부딪혀도 버틸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면 잃는 게 있지만 모든 것을 얻습니다.
--- 「제4장 자유의 회복: 더 뿌리 깊은 미래에서의 인간의 번영」 중에서
출판사 리뷰
침입적 감시와 권의주의적 사회 통제 그리고 인간의 상실
이 책은 먼저 팬데믹이라는 공중보건의 비상사태에서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내려진 락다운 정책의 문제와 그 속에 감춰진 의도를 짚는 것으로 시작한다. 행정명령에 의한 비상사태는 사회적 논의나 민주적 절차 없이 너무 쉽게 선포되었다. 그것이 이미 선포되고 나면 국가권력은 초법적으로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권위주의적 대책들을 서슴없이 시행한다.
감염자를 강제격리하고 휴교와 휴업을 명령하며 출입과 이동을 제한한다. 디지털 기술은 공공 안전을 위한 획기적인 발명품처럼 선전되지만 그 기술로 수집된 정보는 때로 차별과 낙인찍기에 악용되고, 사회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데 이용된다. 지문, 홍채, 안면, 보행 같은 생체 특성이 신분 확인과 동선 감시, 개인 건강 정보를 통한 질병 전파 위험 감시,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에 적극 이용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거대한 ‘디지털 파놉티콘’에 갇히게 되지만 아무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우리는 기꺼이 동조했다. 간혹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는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매도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민권이 아무렇지 않게 침해되고, 이웃과 친구를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차별과 배제다. 심지어 때로는 의도가 전혀 없는 행위마저도 매도당해 사회적 비난을 초래한다. 이와 같은 일은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뿐 아니라 팬데믹 시기에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벌어졌다. 저자는 팬데믹 기간 동안 행해진 침입적 감시와 권위주의적 사회 통제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성찰해야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견한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난 몇 년 사이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자유만이 아니다. 더 비극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훼손당했다는 것이다.
“대중 감시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제 일종의 세계적인 디지털 파놉티콘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는 시민 각자가 간수이자 동시에 수감자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배자의 질책을 두려워하고, 서로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웃이 잠재적 밀고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잠재적 밀고자는 주머니 안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이것은 디지털 파놉티콘이 단순히 은유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감시하고 있다.”(70쪽)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다
저자는 코로나19가 기술의 시대, 과학이 승리한 시대에 등장한 첫 번째 팬데믹으로 정의한다. 팬데믹과 관련한 많은 설명과 대응조치는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사람들은 전문가, 과학이라는 이름 앞에 겸손해지는 경향이 있다.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은 그런 대중심리를 이용한다. 그들은 합리주의를 추종하는 엘리트 행정가들로, 과학기술의 힘을 숭상한다. 공공복리를 위해 과학적 방법론과 데이터를 근거로 정책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과학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수단이 된 듯하다. 상대의 반론 제기를 몰상식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일 확률이 높다. 과학주의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띤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신념이고 종교일 뿐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정책이 과학과 전문가에 근거에 행해졌고, 공포에 눌린 사람들은 말없이 따랐다. 케리아티처럼 이에 저항한 사람들은 ‘비과학적’이라거나 불순분자 취급을 받으며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케리아티는 이런 과학에 대한 맹신의 위험성을 경고함과 동시에 많은 기술관료와 과학자들이 거대 자본에 포획된 사실도 폭로한다.
“과학의 특징적인 요소는 정당한 불확실성이다. 여기서 지적 겸손이 발로한다.
과학주의의 특징적인 요소는 부당한 확실성이다. 이것은 지적 오만으로 귀결된다.” (98쪽)
“20세기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모두 ‘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자신의 순환논리에 의해 허위를 입증할 수 없었다. 과학주의는 합리적 주장을 통해 정립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선전을 위한 세 가지 도구에 의존했다. 잔인한 폭력, 비판자에 대한 모욕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 모든 전체주의 체제가 이것과 똑같은 도구를 사용했다.” (99쪽)
‘당신은 백신 반대자인가?’라는 어리석은 질문
팬데믹 기간 동안 백신의 안정성과 코로나 대응조치에 대해 어떤 반대나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 많은 경우, 코비드 부인자, 백신 반대자(거부자), 음로론자로 낙인찍혔다. 자연면역을 인정해 달라며 ‘백신 의무 접종’에 관한 소송을 낸 케리아티에게 사람들은 ‘당신은 백신 반대자’냐고 묻는다. 그는 그와 같은 질문이 ‘당신은 약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같은 질문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어떤 약을 어떤 환자 혹은 환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 그리고 어떤 적응증에 쓴다는 말인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그런 약이나 백신은 결코 없다.”(209쪽) 백신의 안정성에 의구심을 품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백신 접종 후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상당수 있다. 그들이 백신 반대자면 애당초 왜 백신을 접종했겠는가.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도 피해를 입게 된 상황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감추고,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한 혐의를 씌어 매도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인 것이다.
필연론과 운명론을 넘어 공동의 노력과 연대로
케리아티는 지구적 문제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내세우는 WHO(세계보건기구), WEF(세계경제포럼,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기구가 거대 기업과 특정 재단으로부터 엄청난 자본을 지원받으며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지배계급들은 필연론과 운명론을 주장하며 미래에 닥칠 위험을 경고하는 것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만, 케리아티는 더 인간적인 미래를 위해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것은 공동의 노력과 연대로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는 “미래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잊지 마시라는 겁니다. 미래는 분명히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0년, 20년, 혹은 30년 안에 깨어난다면 우리는 모두 다음 세대에게 인간적이고, 살 만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반드시 물려주기 위해 결과가 어찌 됐든 떨쳐 일어나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말하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자신의 한 인터뷰 기사로 책을 끝맺는다.
“나는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양심을 성찰하여 어느 땅에다 저항의 말뚝을 박을 것인지, 어디에 기준선을 그을 것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역풍과 압력에 부딪혀도 버틸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면 잃는 게 있지만 모든 것을 얻습니다.”(323쪽)
이 책은 먼저 팬데믹이라는 공중보건의 비상사태에서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내려진 락다운 정책의 문제와 그 속에 감춰진 의도를 짚는 것으로 시작한다. 행정명령에 의한 비상사태는 사회적 논의나 민주적 절차 없이 너무 쉽게 선포되었다. 그것이 이미 선포되고 나면 국가권력은 초법적으로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권위주의적 대책들을 서슴없이 시행한다.
감염자를 강제격리하고 휴교와 휴업을 명령하며 출입과 이동을 제한한다. 디지털 기술은 공공 안전을 위한 획기적인 발명품처럼 선전되지만 그 기술로 수집된 정보는 때로 차별과 낙인찍기에 악용되고, 사회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데 이용된다. 지문, 홍채, 안면, 보행 같은 생체 특성이 신분 확인과 동선 감시, 개인 건강 정보를 통한 질병 전파 위험 감시,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에 적극 이용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는 거대한 ‘디지털 파놉티콘’에 갇히게 되지만 아무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우리는 기꺼이 동조했다. 간혹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는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매도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민권이 아무렇지 않게 침해되고, 이웃과 친구를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게 하고,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면 돌아오는 것은 차별과 배제다. 심지어 때로는 의도가 전혀 없는 행위마저도 매도당해 사회적 비난을 초래한다. 이와 같은 일은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뿐 아니라 팬데믹 시기에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벌어졌다. 저자는 팬데믹 기간 동안 행해진 침입적 감시와 권위주의적 사회 통제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성찰해야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예견한 디스토피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난 몇 년 사이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자유만이 아니다. 더 비극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훼손당했다는 것이다.
“대중 감시 기술의 등장으로 우리는 이제 일종의 세계적인 디지털 파놉티콘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는 시민 각자가 간수이자 동시에 수감자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배자의 질책을 두려워하고, 서로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모든 이웃이 잠재적 밀고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잠재적 밀고자는 주머니 안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 이것은 디지털 파놉티콘이 단순히 은유가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감시하고 있다.”(70쪽)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다
저자는 코로나19가 기술의 시대, 과학이 승리한 시대에 등장한 첫 번째 팬데믹으로 정의한다. 팬데믹과 관련한 많은 설명과 대응조치는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사람들은 전문가, 과학이라는 이름 앞에 겸손해지는 경향이 있다.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은 그런 대중심리를 이용한다. 그들은 합리주의를 추종하는 엘리트 행정가들로, 과학기술의 힘을 숭상한다. 공공복리를 위해 과학적 방법론과 데이터를 근거로 정책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과학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수단이 된 듯하다. 상대의 반론 제기를 몰상식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주의일 확률이 높다. 과학주의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이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띤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신념이고 종교일 뿐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정책이 과학과 전문가에 근거에 행해졌고, 공포에 눌린 사람들은 말없이 따랐다. 케리아티처럼 이에 저항한 사람들은 ‘비과학적’이라거나 불순분자 취급을 받으며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케리아티는 이런 과학에 대한 맹신의 위험성을 경고함과 동시에 많은 기술관료와 과학자들이 거대 자본에 포획된 사실도 폭로한다.
“과학의 특징적인 요소는 정당한 불확실성이다. 여기서 지적 겸손이 발로한다.
과학주의의 특징적인 요소는 부당한 확실성이다. 이것은 지적 오만으로 귀결된다.” (98쪽)
“20세기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모두 ‘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자신의 순환논리에 의해 허위를 입증할 수 없었다. 과학주의는 합리적 주장을 통해 정립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선전을 위한 세 가지 도구에 의존했다. 잔인한 폭력, 비판자에 대한 모욕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약속. 모든 전체주의 체제가 이것과 똑같은 도구를 사용했다.” (99쪽)
‘당신은 백신 반대자인가?’라는 어리석은 질문
팬데믹 기간 동안 백신의 안정성과 코로나 대응조치에 대해 어떤 반대나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 많은 경우, 코비드 부인자, 백신 반대자(거부자), 음로론자로 낙인찍혔다. 자연면역을 인정해 달라며 ‘백신 의무 접종’에 관한 소송을 낸 케리아티에게 사람들은 ‘당신은 백신 반대자’냐고 묻는다. 그는 그와 같은 질문이 ‘당신은 약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 같은 질문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어떤 약을 어떤 환자 혹은 환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 그리고 어떤 적응증에 쓴다는 말인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그런 약이나 백신은 결코 없다.”(209쪽) 백신의 안정성에 의구심을 품었던 많은 사람들 중에는 백신 접종 후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상당수 있다. 그들이 백신 반대자면 애당초 왜 백신을 접종했겠는가.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도 피해를 입게 된 상황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감추고, 자신들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한 혐의를 씌어 매도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인 것이다.
필연론과 운명론을 넘어 공동의 노력과 연대로
케리아티는 지구적 문제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내세우는 WHO(세계보건기구), WEF(세계경제포럼, 다보스포럼) 같은 국제기구가 거대 기업과 특정 재단으로부터 엄청난 자본을 지원받으며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한다. 나아가 그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혁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지배계급들은 필연론과 운명론을 주장하며 미래에 닥칠 위험을 경고하는 것으로 공포를 조장하고,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만, 케리아티는 더 인간적인 미래를 위해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것은 공동의 노력과 연대로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는 “미래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걸 잊지 마시라는 겁니다. 미래는 분명히 지금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0년, 20년, 혹은 30년 안에 깨어난다면 우리는 모두 다음 세대에게 인간적이고, 살 만하고,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반드시 물려주기 위해 결과가 어찌 됐든 떨쳐 일어나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말하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자신의 한 인터뷰 기사로 책을 끝맺는다.
“나는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양심을 성찰하여 어느 땅에다 저항의 말뚝을 박을 것인지, 어디에 기준선을 그을 것인지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역풍과 압력에 부딪혀도 버틸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면 잃는 게 있지만 모든 것을 얻습니다.”(323쪽)
추천평
“우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더 인간적인 길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할 책이다.”
- 라이언 T. 앤더슨 (RYAN T. ANDERSON, 윤리와 공공정책 센터 회장, 『Tearing Us Apart』 저자)
- 라이언 T. 앤더슨 (RYAN T. ANDERSON, 윤리와 공공정책 센터 회장, 『Tearing Us Apart』 저자)
“케리아티 박사는 코비드-19 대책의 배후에 있는 생물의학 보안국가의 역할을 폭로한다. 그는 이러한 음험한 카르텔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용한 철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의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ROBERT F. KENNEDY JR., 『The Real Anthony Fauci: Bill Gates, Big Pharma, and the Global War on Domocracy and Public Health』 저자)
-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ROBERT F. KENNEDY JR., 『The Real Anthony Fauci: Bill Gates, Big Pharma, and the Global War on Domocracy and Public Health』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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