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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속사정 (2023) - 교수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교수사회 속살 파헤치기

동방박사님 2024. 5. 3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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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교수 명칭은 왜 그렇게 많을까?”
“교수가 가르치는 지식이 과거의 지식이라고?”
“어떻게 하면 교수가 될 수 있을까?”

고고한 진리의 수호자인가, 대학가 괴담의 주범인가?
전직 교수 최성락, ‘직업으로서의 교수’를 말하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고교생 10명 중 7명이 대학교로 진학한다. 대학교의 위상은 결코 이전만큼 드높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교의 또 다른 상징인 ‘대학교수’는 어떠할까? 여전히 진리를 수호하는 지식인일까? 아니면 횡령·표절·갑질 논란의 주범일까?

교수가 집필한 도서는 많다. 그러나 교수를 소개한 도서는 없다. 교수를 향한 말들은 많아도, 그것 모두 대학 밖에서 떠드는 외부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정작 교수 본인들은 교수의 정체가 무엇인지 진솔하게 고백한 적이 없었다. 수많은 작가가 앞다투어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고 있으나 정작 ‘직업으로서의 교수’를 다룬 책은 여태껏 없었다.

약 15년 동안 교수로 활동한 최성락은 『교수의 속사정』을 통해 교수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교수사회의 속살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대학가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어도, 대학가를 둘러싼 잘못된 편견을 타파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교수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교수라는 직업에 관한 유일무이한 안내서. 『교수의 속사정』을 통해 대학가의 남모르는 속사정을 알아보자.

목차

머리말 … 4

1장 교수라는 존재
어떤 교수가 좋은 교수일까? … 15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 21
교수는 외로운 존재 … 26
교수가 망가지는 이유 … 31
위선자로서의 교수 생활 … 36
교수의 방학 … 41

2장 직장인으로서의 교수
교수의 교사화 … 49
교수 명칭은 왜 그렇게 많을까? … 54
학과장 교수는 평교수보다 높은 사람일까? … 60
교수가 가장 꺼리는 수업 … 65
어떻게 하면 교수가 될 수 있을까? … 69

3장 교수와 학생
대학생과 교수 사이 … 81
대학생들이 '취업시험'에 매달리는 이유 … 86
대학이 취업률에 목매는 이유 … 92
취업할 수 있는 방법 … 98
출석이냐 실력이냐 … 103
교수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학생 …108

4장 교수와 대학원생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 … 115
일하는 대학원생, 돈 버는 교수 … 120
인건비를 빼돌리는 교수? … 126
박사과정생의 논문심사 … 131
박사과정과 박사학위의 의미 … 137
공동 저자란 무엇인가? … 143

5장 교수의 생활
수업에 늦는 교수 … 151
과거를 가르치는 교수 … 156
학점에 관하여 … 162
어렵지만 해야 하는 일, 학생모집 업무 … 172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 … 177

6장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
대학등록금 규제 때문에 나타난 현상 … 185
대학의 학과 개편은 왜 힘든가? … 195
온라인 강의는 대세가 될 수 있을까? … 200
학교 분위기를 좌우하는 건 재단이다 … 205
사학재단은 정말 문제 있는 집단일까? … 210

7장 교수를 둘러싼 문제들
논문표절,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219
폴리페서 … 225
교수의 학회 활동 … 230
고등학생이 논문을 썼다? … 236
교수라는 직업의 전망 … 242

맺음말 … 252
 

저자 소개

저 : 최성락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교수 생활을 하면서 경영학 박사학위도 추가로 취득했다. 2002년부터 대학 강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에 강의전담교수가 되었고, 2007년에 전임교수가 됐다. 정식 교수직은 2007년부터였으니 15년 6개월 동안 교수 생활을 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평생 학계에서 생활하니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읽고 쓰는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간 이후 읽고 쓰는 일을 주로 했다. 원래는 논문이나 프로젝트를 담당했는데 10여 년 전부터는 일반 도서도 집필하고 있다. 삶에서 경험한 이야기나 살면서 생각한 바를 주로 쓴다. 논문으로는 쓸 수 없는 것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중이다.

교수로 재직 중인 동안에도 ‘교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현직 교수가 자신의 직업을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다. 그것이 본인을 찌르는 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수에서 벗어난 이제는 상관없다. ‘교수’를 솔직히 말할 수 있고, 그래서 지금 『교수의 속사정』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은 책으로는 『말하지 않는 한국사』(2015), 『말하지 않는 세계사』(2016),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인가』(2016), 『경영학은 쉽다』(2018), 『대한민국 규제 백과』(2018),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2019), 『나는 카지노에서 투자를 배웠다』(2019), 『49가지 결정』(2020), 『규제의 역설』(2020), 『부자들의 지식 창고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2023) 등이 있다.

책 속으로

타인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 지내게 될 때 성격이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교수 중에서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줄곧 듣는데, 그건 교수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30, 「1장 〈교수라는 존재〉」 중에서

교수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권력이 없으나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은 없고 자신의 말에 주위 사람들이 곧바로 움직인다. 공식적인 권력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교수의 심리 상태가 권력자의 심리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자기 맘대로 해도 된다는 심리가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교수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 p.34, 「1장 〈교수라는 존재〉」 중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강의교수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강의교수도 정년이 보장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강의교수로 오려고 한다. 그러나 교수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능력 있고, 인성도 좋아 보이고, 강의도 잘할 것으로 생각되어도, 이런 사람을 뽑을 수는 없다. 이 사람을 뽑아서 ‘직장을 그만두고 강의교수로 오라’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사람 인생을 망치는 짓이다.
--- p.55, 「2장 〈직장인으로서의 교수〉」 중에서

대학은 지식수준을 평가하는 곳이다. 소속 학과의 전문지식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면 졸업시키고,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면 졸업시키지 말아야 한다. 태도가 어떻든, 얼마나 노력했든 관계없이 학생의 지식수준이 평가 기준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수업 출석 상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게 원칙이다.
--- p.103-104, 「3장 〈교수와 학생〉」 중에서

연구비를 이용해 식사를 할 수 있고, 장비를 살 수도 있고, 더 많은 대학원생을 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수가 개인적으로 허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 교수가 여러 프로젝트를 따오는 건 교수 개인에게 그렇게까지 좋은 일이 아니다. 버는 돈은 똑같은데 하는 일만 많아지니까. 그런데도 교수가 프로젝트를 더 따오는 것은 자기가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을 때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연구실이 제대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실상 교수들은 자신보다는 대학원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프로젝트를 따오는 것이다.
--- p.129-130, 「4장 〈교수와 대학원생〉」 중에서

박사학위는 논문을 어떻게 쓰는지 확실히 알고, 이후에 학술지 논문을 혼자서 문제없이 쓸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 박사학위는 바로 그걸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러니 학술지 논문을 혼자서 쓸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학위를 주고, 논문을 혼자서 쓸 수 없는 사람에게는 주지 말아야 한다. 박사과정을 오래 다녔다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수 아래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134, 「4장 〈교수와 대학원생〉」 중에서

물론 교수가 논문에 관해 도움을 제공했다고 반드시 공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연구주제, 방법론, 결과 등에 영향을 주는 경우에만 공저자 자격이 있다. 단순히 자료 수집을 도와주었다거나, 논평을 하더라도 주제, 방법론,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공저자가 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박사논문은 주제, 방법론, 결과 모든 측면에서 교수의 의도가 개입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교수는 박사논문의 공저자가 될 자격이 있다.
--- p.147, 「4장 〈교수와 대학원생〉」 중에서

학교 내부든 외부든, 교수가 수업을 위해 일어나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붙잡는 경우는 없다. 다른 일 때문이라면 몰라도, 수업이 이유일 때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런데도 늦는다면 그 교수가 강의보다 다른 일을 절대적으로 우선했다는 의미이다. 교수도 월급 받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어쩌다 한두 번은 그런 일정을 더 우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럴 수는 없다. 이건 교수가 강의에 별 신경 쓰지 않을 때, 외부 사람과의 관계만 중시할 때나 가능하다. 다른 일 때문에 수업시간에 계속 늦는다면, 그 교수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은 중시하되 학생들과의 약속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신경 써야 하지만, 강의 듣는 학생들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학생들을 무시한다는 뜻이다.
--- p.154, 「5장 〈교수의 생활〉」 중에서

등록금 동결은 학생들의 부담은 줄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 구성원들, 교수와 교직원들의 실질 소득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이런 처우는 앞으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설사 이제 등록금 동결 규제가 풀린다 해도 다른데 메울 곳이 많아서 구성원들 처우가 개선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구성원들의 처우가 점점 안 좋아지는데 그 분야가 발달할 수는 없다.
--- p.194, 「6장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 중에서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어쨌든 교실에 앉아있으니 좋든 싫든 교수의 말이 들린다. 교실에 앉아있는 동안 어쨌든 듣는 게 있다. 그러나 온라인은 그렇지 않다. 온라인 수업을 그냥 틀어놓고 얼마든지 딴짓을 할 수 있다. 1시간 동안 틀어놓았는데 하나도 듣지 않을 수 있다. 출석은 되었는데 배우는 건 없다. 온라인 수업은 스스로 열심히 하려고 달려드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지 없이 졸업하기 위해서 수업을 듣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 그런 학생이라면 오프라인이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된다.
--- p.204, 「6장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 중에서

과거에도 표절, 중복게재라고 비판받는 논문들이 있었다. 그런데 학술지와 학문분야가 완전히 분리되어있던 당시 상황에서 애매한 상황도 분명히 존재했다. 표절이 나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때는 무엇이 표절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20년 전의 논문을 가지고 표절이라고 비판을 할 때, 필자가 해당 교수를 비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건 2000년 초중반 이전 논문에 한정된 설명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논문 검색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에는 학술지, 학문의 분리는 옛날 일이 되어버린다. 이때 이후 중복되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건 분명히 표절로 인정되어야 마땅하다.
--- p.222, 「7장 〈교수를 둘러싼 문제들〉」 중에서

필자는 이 점에 관해 분명히 단언할 수 있다. 고등학생은, 아니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논문에 공저로 올라갈 수는 없다. 논문 과정에 참여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연구자들이 회의하는 장소에 참석했다 해도, 실험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다 해도 논문 공저자가 될 수는 없다. 일단 고등학생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열심히 했다면 논문 공저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논문 쓰기를 너무 간단한 작업으로 오해한 잘못에서 비롯된다.
--- p.237-238, 「7장 〈교수를 둘러싼 문제들〉」 중에서

사회에 새로운 지식을 전파해줄 수 없는 교수는 그냥 단순히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일 뿐이다. 그것도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대학 교재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결국 교수는 중고등학교 선생과 별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현재 교수의 위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한 가치를 사회에 제공하지 못한다.
--- p.251, 「7장 〈교수를 둘러싼 문제들〉」 중에서

출판사 리뷰

■ 대한민국에서 교수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에서 교수로 산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교수를 동경하기도 하지만 오해하기도 한다. 그들이 지식인의 양심을 따르고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라 굳게 믿고 싶은 탓인지, 언론에서 소개되는 각종 논란을 마주할 때마다 분노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은이 최성락은 단호히 강조한다. 교수는 교사와는 전혀 다른 직업이며 세간에 알려진 대학가 괴담에는 교수만이 알고 있는 속사정이 있다고 말이다. 그들은 괴팍한 성향을 타고난 연구자라기보다는 일종의 지독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직업인’에 가깝다.

1장 〈교수라는 존재〉와 2장 〈직장인으로서의 교수〉는 이른바 ‘교수의 생리학’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생활 습관, 업무, 사고방식 등을 묘사하면서 교수들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소통 능력의 부족, 다른 사람을 무심코 하대하는 버릇. 이런 것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결과이다. 지은이의 말처럼, 교수란 외로운 존재이며 그로 인해 대체로 어느 한 부분이 망가지곤 한다. 평생 수많은 학생을 만나지만 모순적이게도 타인과 단절되어 과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교수다. 그런 교수의 고독과 아집이 직업병의 정체라 할 수 있겠다.

■ 대학생은 모르고 대학원생은 오해하는, 교수와 대학의 의미

대학생은 교수를 모른다. 그들에게 교수란 성적을 평가하는 선생이고, 강의를 진행하는 교육자다. 그러니 그들에게 교수는 한없이 머나먼 존재이다. 대학이라는 성에 갇힌, 신성하거나 기이한 인물로 보일 따름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3장 〈교수와 학생〉과 4장 〈교수와 대학원생〉을 통해 교수가 교사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최성락은 이 당연한 명제를 설명하고자 긴 지면을 할애했다. 교수와 교사의 차이를 나열하여 대학과 대학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출하고, 나아가 국가가 교육을 통제하는 상황의 모순을 폭로한다.

대학은 학습자의 생활태도를 지도하는 공간이 아니고, 대학생과 대학원생은 교수로부터 올바른 생활습관을 교육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다. 즉 출석 여부를 성적에 반영하는 일이나 학교에서 성적분포를 강제로 규정하는 일은 ‘자치’와 ‘학문’이라는 대학의 두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현상이 마치 상식처럼 굳어진 이유는 국가가 대학 지원금을 빌미로 대학 교육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 국가의 명령에 순응하고, 교수는 생업을 지키고자 대학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따르게 된다. 대학생은 교수에게 진리를 수호하는 지성인이자 참된 교육자이기를 기대하지만, 작금의 교수는 국가와 대학이 만든 이상한 규제에 시달리는 직업인에 불과하다.

■ 대학의 미래, 교수의 미래

성적 외에도 국가는 대학의 많은 부분에 간섭한다. 대표적으로 취업률과 강의 내용이다. 취업률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대학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강의 내용이 국가가 제시한 일종의 ‘가이드라인’과 엇비슷해야 지원금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은 학문의 자유를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아가 교수는 지성인의 책무를 다한다고 평할 수 있을까? 대학의 존재 가치가 무너져가는 오늘날, ‘교수’의 존재 의의는 무엇일까?

언론은 종종 논문표절, 공저자, 연구비 횡령 논란 등을 보도한다. 지은이 최성락은 6장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과 7장 〈교수를 둘러싼 문제들〉을 통해 이러한 논문이 예상보다 과장되었거나 와전된 이야기라는 점을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논문표절 논란 중 표절이 아닌 사례도 많고, 제자 논문에 지도교수 이름이 공저자로 게재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현재 대학원 상황을 고려했을 때 연구비 횡령은 거의 있을 수 없다.

지은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논란들이 발생한 원인은 바로 대학과 교수사회에 있으며, 이 둘을 이른바 ‘사양산업’으로 몰아세우는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목적이 전도된 대학가의 분위기, 스스로 품질을 갉아먹는 교수들, 그리고 대학과 교수로부터 학문의 자유와 지성인의 책무를 박탈한 국가의 잘못을 낱낱이 폭로한다.

최성락의 신간 《교수의 속사정》은 전직 교수가 전하는 일종의 고해이자 동시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지식사회를 염려하는 비평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