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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2011) - 최초의 해상 제국과 민주주의의 탄생

동방박사님 2024. 6. 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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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는 바다에서 비롯 되었다!

저자 존 R. 헤일은 그간 누구도 주목하지 못한 아테네 '해군'을 통해,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강대국의 위협 속에서도 문명을 꽃피우고,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세계 최강의 해상 제국으로 거듭난 아테네의 역사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현대 국가들이 직면하는 것과 똑같은 문제, 즉 동과 서, 진보와 보수, 과학적 탐구와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 아테네인들의 기지는 물론, 작은 도시국가를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변모시킨 비결이 숨어 있다.

문명의 동력이 되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에 힘을 부여하고, 평범한 시민을 탐험으로 이끌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아테네 해군에 주목한다. 그는 학자적 통찰력과 이야기꾼의 육감으로 해상 제국과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재조명하며, 아테네의 영웅들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고, 그들이 수행한 대 장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아테네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둔 위대한 승리와 눈부신 업적 뒤에는 뼈아픈 패배와 숱한 실패의 과정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아테네가 진정 위대해질 수 있었던 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나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는 데 있었다.

아테네는 완벽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벽해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였다. 우리가 한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그들의 실수를 타산지석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는 오늘날 우리를 비추어 주는 최고의 거울이다.

목차

머리말
서론

1부 자유
1. 한 사람, 하나의 비전(기원전 483년)
2. 함대 건설(기원전 483~481년)
3. 목재 담장(기원전 481~480년)
4. 통로를 막아라(기원전 480년 여름)
5.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 여름의 끝)

2부 민주주의
6. 그들만의 리그(기원전 479~463년)
7. 끝없는 야망(기원전 462~446년)
8. 아테네 황금기의 선원들(기원전 5세기 중엽)

3부 제국
9. 아테네 제국의 해군(기원전 446~433년)
10. 전쟁과 역병(기원전 433~430년)
11. 행운은 용감한 사람 편이다(기원전 430~428년)
12. 희극의 탈, 지휘관의 탈(기원전 428~421년)
13. 시칠리아 원정(기원전 415~413년)

4부 재앙
14. 악당의 귀환(기원전 412~407년)
15. 영웅과 사약(기원전 407~406년)
16. 하데스의 궁전으로(기원전 405~399년)

5부 부활
17. 횃불을 넘기며(기원전 397~371년)
18. 아틀란티스의 삼단노선들(기원전 370~354년)
19. 해군의 대변자(기원전 354~339년)
20. 마케도니아의 그늘에 가려(기원전 339~324년)
21. 최후의 전투(기원전 324~322년)

저자 소개

존 R. 헤일은 ‘함선’과 ‘해군’에 통달한 미국의 고고학자 겸 역사학자. 1973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켄터키 주 루이빌 대학에서 현장 고고학자로 유적 발굴 조사를 벌이다가 1983년부터 루이빌 대학의 고고학과 강사 겸 인문과학 대학 학장보를 지냈다. 이후 1988년부터 지금까지 동 대학의 교양학부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 <완전...
 
역 : 이순호
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욕 주립 대학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타타르로 가는 길』, 『살라딘』,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가상역사 21세기』, 『살라미스 해전』, 『발칸의 역사』, 『인류의 미래사』, 『페르시아 전쟁』, 『제국의 최전선』,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 『로마제국 최후의...

책 속으로

그리스 동맹군 가운데 전 시민을 동원한 곳은 아테네뿐이었다. 젊은 키몬과 그의 동료 기병들만 해도 ‘바다로 간 기사들’이 되었고, 중장보병들도 방패와 창 대신 노잡이 방석과 노를 손에 잡았다. 수천 명의 일반 시민들도 난생 처음 기병 및 중장보병과 진정으로 동등해진 느낌을 받았다. 노가 만인을 평등하게 만든 것이다. 노 젓기는 완전한 행동의 일치를 요구했으며, 훈련은 불가피하게 강렬한 단결심을 촉발시켰다. 부자와 빈자의 손에는 똑같이 굳은살이 박혔고, 엉덩이에 물집이 생겼으며, 근육이 뭉쳤고, 미래에 대해 동일한 희망과 두려움을 느꼈다. 삼단노선의 갑판과 노열이 아테네를 새롭게 통합시키고 있었다. --- p.104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아르테미시움 전투가 공염불이 되었다는 맥 빠진 사실을 바꿔 놓지는 못했다. 동맹군 함선들이 노를 저음에 따라 페르시아 함대도 그리스 핵심부로 착착 들어오게 될 터였다. 그 암울한 순간, 훗날 한 시인이 아르테미시움을 ‘아테네의 아들들이 자유의 빛나는 초석을 놓은’ 곳으로 노래하리라는 사실을 내다볼 수 있는 아테네인은 아무도 없었다. --- p.114

뱃사람들의 도시 피레우스는 모든 종교에 관용을 베풀었다. 따라서 그릇된 신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것과 불경뿐이었다. 아테네에서는 이데올로기 논쟁이, 신전이 아닌 철학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벌어졌다. --- p.210

코린토스는 함대가 도착하기 무섭게 스파르타로 달려가 조약 파기 사실을 알리며 아테네를 맹비난했다. 그러자 다른 동맹국들까지 아테네 성토에 가세하고 나섰다. 메가라는 페리클레스의 봉쇄 조치로 아테네 통제 하에 있는 항구들에 접근하지 못한다고 불평했고, 아이기나는 자치권을 잃었다고 푸념했다. 심지어 마케도니아까지, 북쪽에 미치는 아테네의 힘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겨울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공격하여 오만한 콧대를 꺾어 버리자는 동맹국들의 등쌀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 p.240

아테네 민주주의의 명성은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알키비아데스와 다른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것만큼 재앙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 아테네인들은 사상 초유의 위기를 떨쳐 버리고 신속히 회복을 했다. 목재를 구하여 함선도 건조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머나먼 전초기지에서 삼단노선과 병력도 들여왔다. 동맹 도시들의 아테네 수비대에도 재빨리 사자를 보내, 스파르타가 지원하는 과두제 쿠데타의 발발 가능성을 일러 주고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지시했다. 아테네는 그 모든 조치를 겨울에 취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사람들의 그런 역동적 반응에 주목하면서, 민주주의는 과연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 가장 빛을 발하는 모양이라고 기록했다. --- p.328

이솝 우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항해 중이던 선박이 갑자기 침몰하자 선객에 포함돼 있던 아테네인이 신들에게 도움을 간청한다. 해안가로 헤엄쳐 가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한다. “기도 열심히 하세요! 다만 팔도 같이 움직이세요!” 데모스테네스는 바로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한 아테네인들에게, 그런 현명한 조언자가 되려는 것이었다.
--- p.441

출판사 리뷰

99%의 아테네 시민은
1%의 귀족층이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상태에서,
어떻게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었는가?


“감히 말하건대 평범한 시민이 명문거족을 눌러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함선들을 추진시키고 도시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 아니던가?” 웅변가 크세노폰의 이 같은 연설은 그가 아테네 태생이었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해 보인다. 아테네는 왕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던 이웃 나라들과 달리, 민회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안이 결정되는 최초의 민주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깊숙이 파고들면 초기의 아테네 민주주의는 로마의 공화제보다도 민주적이지 못했다. 시민들은 법이 정한대로 민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공직 진출은 금지되어 있었다. 게다가 소소한 일상에 얽매여 민회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 사이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 직과 ‘장군’ 직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었고, 최상위 귀족 계층으로 구성된 ‘아레오파고스(귀족회의)’는 500인회와 민회의 힘을 지속적으로 침해하였다.

당시 아테네 시민은 가장 부유한 300여 명의 귀족층과 1,200명의 기사, 1만여 명의 중장보병(호플리테스)과 시민의 대다수를 이룬 2만 여명의 테테스(노동자 계층)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1%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층 300명이 99%에 해당하는 나머지 3만 여명의 시민을 제치고, 부와 권력을 거머쥔 채 아테네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1%에게 집중되었던 부와 권력이 서서히 99%의 시민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자기 일에 얽매인다고 하기보다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페리클레스의 말이 단적으로 이를 표현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테네는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황금기를 이룩하게 된다. 어떻게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가능했을까? 무엇이 아테네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눈부신 위업을 달성하도록 이끌었을까? 답은 뜻밖에도 ‘아테네 해군’에 있었다.

저자 존 R. 헤일은 그간 누구도 주목하지 못한 아테네 ‘해군’을 통해, 내부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강대국의 위협 속에서도 문명을 꽃피우고,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세계 최강의 해상 제국으로 거듭난 아테네의 역사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그 속에는 현대 국가들이 직면하는 것과 똑같은 문제, 즉 동과 서, 진보와 보수, 과학적 탐구와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 아테네인들의 기지는 물론, 작은 도시국가를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변모시킨 비결이 숨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아테네의 위대함을 나날이 주목하고, 그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뒤에는 아테네를 위대하게 만든 게 다름 아닌 모험심 넘치고, 자신들의 할 일을 알고, 일정 기준에 미달되는 것을 수치로 알았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페리클레스의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아테네의 역사는 곧 시민 개개인이 일군 역사였다. 자유·평등·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묵묵히 걸어온 아테네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는 바다에서 비롯되었다!

해상 제국 아테네는 지중해 150여 개의 섬과 도시국가를 거느린 광대한 나라였다. 흥미로운 건 이 놀라운 업적이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아테네 해군력은 여러 척의 삼단노선에서 비롯되었고, 이 배에는 오직 아테네 시민만이 탑승할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함선도 노를 저을 시민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기에, 해군력은 그들의 힘과 땀에 의존하였다. 해군력과 함께 시민의 힘이 커지자 소수의 귀족층으로 집중되었던 권력도 자연히 다수의 시민들에게 넘어갔고, 이는 결국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아테네 황금기였던 기원전 5~4세기는 서양 문명의 뼈대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 1위에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이 지어졌고, '페르시아인들','안티고네' 등 현대 연극의 기원이 된 유명한 그리스 희·비극이 창작되었다. 서양 철학의 토대를 마련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의술의 전통을 수립한 히포크라테스, 최초의 도시 건설자 히포다모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도 바로 이 시기에 태어났다.

“나를 아테네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세계 시민이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탄생에 기여를 한 ‘해군’은 시인, 예술가, 극작가, 역사가, 정치가, 철학자, 법률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학자들은 노의 메커니즘, 풍향과 별의 움직임을 연구했으며, 정치 이론가들은 해군이 아테네인들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상연된 연극에도 비극, 희극 가릴 것 없이 항해에 관련된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군이 평범한 아테네인들을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활동적이고, 모험적이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는 진정한 시민으로 성장하였다. 소크라테스가 “나를 아테네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나는 세계 시민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해군이 넓혀 놓은 지평 덕분이었다.

아테네의 지도자들은 타고 난 게 아니라,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해군은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들의 양성소였다. 아테네 지도자들은 ‘메티스’라는 특유의 지략을 갖고 있었고, 해전을 치를 때에도 폭력보다는 술책과 간계를 이용하여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를 이끌어냈다. 테미스토클레스만 해도 거짓 정보를 흘려 페르시아 함대를 좁은 해협으로 끌어들였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키몬은 그리스 함선과 선원을 페르시아 기장으로 위장하여 적군을 기습했고, 트라실로스는 삼단노선 두 척을 한 쌍으로 묶어 선단의 규모를 작아 보이게 하는 속임수로 적군을 꾀어 들이는 전법을 사용했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아테네 지도자들은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으며 영광의 자리에 올랐다. 반면 적군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할 경우, 지도자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처벌을 받거나 해외로 추방당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끊임없이 정적들의 방해를 받았고, 정책을 실행하기 전에는 민회에서 안건을 발표하여 시민들의 동의를 얻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는 다수의 지배자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계기가 되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나 스파르타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건 왕이나 귀족처럼 타고 난 이들이 아닌, 철저한 노력으로 실력을 검증 받은 이들이 나라를 이끌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작지만 ‘큰’ 차이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완벽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

존 R. 헤일은 이 매력적인 역사서를 통해 문명의 동력이 되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에 힘을 부여하고, 평범한 시민을 탐험으로 이끌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아테네 해군에 주목한다. 그는 학자적 통찰력과 이야기꾼의 육감으로 해상 제국과 그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재조명하며, 아테네의 영웅들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고, 그들이 수행한 대 장정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아테네의 역사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둔 위대한 승리와 눈부신 업적 뒤에는 뼈아픈 패배와 숱한 실패의 과정들이 숨어 있다. 하지만 아테네가 진정 위대해질 수 있었던 건 모든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나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는 데 있었다.
아테네는 완벽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완벽해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나라였다.
우리가 한 나라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유는, 그들이 걸어간 길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그들의 실수를 타산지석 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는 오늘날 우리를 비추어 주는 최고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