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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은 전체3부 〈제1부 수용 편〉,〈제2부 전개 편〉,〈제3부 영향 편〉으로 나누어 11편의 논문들을 싣고 있다. 제1부에서는 마테오 리치의『교우론』, 정약종의『쥬교요지』및 이류사의『주교요지』 그리고 남회인의『교요서론』과 한글본『교요셔론』들을 분석하여 천주교 수용과 확산 그리고 평민신자의 증가 등에 관해 다루었다. 제2부에서는 정조(1776-1800)때부터 고종(1863-1907)때까지의 천주교의 역사를 개설적으로 정리하여 큰 흐름을 이해하도록 당시의 이야기 즉 담론談論을 인용하면서 정리하여,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오히려 더욱 흥미를 가지며 읽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천주교가 우리나라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동학의 창도와 관련하여 엿보기도 하였으며, 또한 과부들의 재개 허용 문제 및 임성구의 신극 운동 문제 등에 대해서도 검토하였고, 1930년대의 한국사회에 끼친 천주교 영향에 관한 주요일간지들의 보도 내용을 분석하였다.
목차
제1부 수용편
제1장 조선후기 천주교의 수용과 마테오 리치의『교우론』
제2장 정약종의『쥬교요지』와 이류사의『주교요지』
제3장 남회인의 『교요서론』수용 및 한글본『교요셔론』유포와 조선후기 천주교의 성장
제2부 전개 편
제1장 자발적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우다 ―정조(1776-1800) 때―
제2장 순교와 배교의 여울목에서 헤쳐 나오다 ―순조(1800-1834) 때ㆍ헌종(1834-1849) 때―
제3장 민중과 더불어 커가는 교회 ―철종(1849-1863) 때―
제4장 운현궁에도 성모송이 울려 퍼지다 ―고종(1863-1907) 때―
제3부 영향 편
제1장 천주교가 동학에 끼친 영향
제2장 개화기 과부의 재가와 천주교
제3장 1910년대 임상구의 신극 운동과 천주교
제4장 1930년대??한국사회에 미친 천주교의 영향??논의 ―주요 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제1장 조선후기 천주교의 수용과 마테오 리치의『교우론』
제2장 정약종의『쥬교요지』와 이류사의『주교요지』
제3장 남회인의 『교요서론』수용 및 한글본『교요셔론』유포와 조선후기 천주교의 성장
제2부 전개 편
제1장 자발적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우다 ―정조(1776-1800) 때―
제2장 순교와 배교의 여울목에서 헤쳐 나오다 ―순조(1800-1834) 때ㆍ헌종(1834-1849) 때―
제3장 민중과 더불어 커가는 교회 ―철종(1849-1863) 때―
제4장 운현궁에도 성모송이 울려 퍼지다 ―고종(1863-1907) 때―
제3부 영향 편
제1장 천주교가 동학에 끼친 영향
제2장 개화기 과부의 재가와 천주교
제3장 1910년대 임상구의 신극 운동과 천주교
제4장 1930년대??한국사회에 미친 천주교의 영향??논의 ―주요 일간지의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저자著者가 지난 20년 동안 한국천주교회사에 관해 공부해오면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에다가, 간행을 준비하며 새로이 완성한 3편의 논문을 함께 모아 펴내는 것이다. 지금껏 지녀온 관심 분야별로 나누어 전체적으로는 제1부 수용 편, 제2부 전개 편, 제3부 영향 편으로 구성하는 바, 천주교가 중국을 통해 한국에 언제 왜 수용되었으며, 그래서 한국천주교회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것이 또한 한국의 역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나름대로 조망眺望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하면서도 기왕에 나온 다른 학자들의 그것들과 중복되지 않게 하느라, 다소 거창하지만 서명書名을『한국천주교회사의 연구』라 정하였다.
제1부 수용 편에는 중국中國에서 서양인 신부들에 의해 한문漢文으로 저술된 천주교 교리서, 이른바 서학서西學書 가운데 오늘날의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 역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마테오ㆍ리치Matteo Ricci(이마두利瑪竇, 1552-1610)의『교우론交友論』, 루이지ㆍ뷜리오Luigi Buglio(이류사利類思, 1601-1682)의『주교요지主敎要旨』, 페르디난트ㆍ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남회인南懷仁, 1623-1688)의『교요서론敎要序論』등을 분석한 논문들을 실었다. 이 서학서들이 각각 한국에 언제 어떻게 왜 수용되었는지를 살펴서, 특히 이류사의『주교요지』는 서명書名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한동안 같은 책의 번역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던 정약종丁若鍾(1760-1801)의 한글교리서『쥬교요지』저술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남회인의『교요서론』역시 어찌 수용되어 종내에는 한글본『교요셔론』으로 무슨 이유에서 번역飜譯되고 결국에는 필사筆寫되어 널리 유포되게 되었는지 등등에 대해 저자著者 스스로 지니게 되었던 의문을 집중적으로 밝혀보려고 한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천주교회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한국 천주교에 영향을 끼친 서학서라고 하면 의례히 마테오ㆍ리치의『천주실의天主實義』만을 떠올리는 게 다반사茶飯事라는 사실은 학술 토론회 석상 등에서 수차에 걸쳐 체험적으로 느낀 바이지만,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제대로 된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나아가 한국의 근ㆍ현대사 서술이 사실대로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이마두利瑪竇의 뒤를 이어 70년 이상의 시차時差를 두고 천주교가 중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힘썼던 남회인南懷仁ㆍ이류사利類思 등의 저술들에 대한 연구도 이마두의 그것에 대한 것 못지않게 요긴하다고 믿어 왔다. 명나라 말기인 1600년대에 이루어진 이마두의 저술들이 제1세대의 기초적ㆍ원론적인 것으로서 요즘의 표현을 빌어 구舊 버전version이었다고 할 수 있다면, 강희제康熙帝가 재위하며 청나라의 국력이 승승장구하던 1670년대에 남회인의 그것은 제2세대의 심층적ㆍ현실적인 것으로서 그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중국인과 조선인을 막론하고 신新 버전이어서 읽기에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라고 비유해서 좋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저자著者로서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본격적으로 시도해본 적이 거의 없는 이 분야에 자그마한 초석礎石 하나를 간신히 마련해 놓은 데에 불과하므로, 한중韓中 혹은 동서東西 문화교류사文化交流史라는 측면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많이 진척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2부 전개 편에서는 천주교가 수용된 정조正祖 때부터 1백년 가까운 박해기迫害期를 거쳐 신앙 및 선교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고종高宗 때까지의 한국천주교회사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을 전문적인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해서 개설槪說로 정리한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시민市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시기별로 나누어 상황의 특징을 드러내고자 각 제목도??자발적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우다??(제1장)→??순교와 배교의 여울목을 헤쳐 나오다??(제2장)→??민중과 더불어 커가는 교회??(제3장)→??운현궁에서 성모송이 울려 퍼지다??(제4장)로 설정하였다. 그럼으로써 저자著者로서는 한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천주교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천주교 신자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이 없이 세계 어느 나라의 시민이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올바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아울러 서술에 있어서는 당시의 생생한 기록들을 제시하며 옛날 얘기를 나누듯이 담론談論의 양식을 취하였는데, 여기의 이??담론??이란, 이미 저자의 다른 저술『한국현대사담론』에서도 반영했던 바로서, 바로 그때의 일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 즉 담화談話를 통해 그 역사적 의미를 논의論議하자는 의도로, 당시 사람들의 말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을 빌어서 있었던 그대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세부적으로 각 장의 머리말과 맺음말로서 각각??해진 대바구니로 소금을 긁어 담기??―??우리는 장차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제1장),??씨도 남김없이 모두 쳐 없앨 것??―??마치 요원의 불길과도 같다??(제2장),??전쟁도 평화도 진정한 의미의 박해도 평온도 아니다??―??안으로는 사주구령, 밖으로 좋은 표양 세우기??(제3장),??아들이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한 감사미사를 드려 달라??―??천주교의 사상은 궁중에까지 전파되어??(제4장) 등을 내세웠다. 그릇된 종교적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한국의 역사 자체에 진정으로 관심이 깊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꼭 읽어주기를, 그래서??한국사, 시민과 공유하기??에 서로서로 동참하여 함께 호흡하기를 희망한다.
제3부 영향 편에는 천주교가 수용된 이후 그것이 한국 사회의 사상ㆍ사회ㆍ문화 등의 여러 분야에서 어떤 영향을 어떻게 끼쳤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서, 지금까지 전혀 간과되었던 점들을 밝혀 보려고 시도한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처음의 두 편은 개화기 이전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앞의 것은 천주교가 동학東學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분석하였고, 뒤의 것은 과부寡婦의 재가再嫁에 대해 천주교가 취한 입장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그래서 천주교가 최제우崔濟愚의 동학 창도부터 교세 확장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으며, 또한 천주교에서는 홀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였던 과부들이 온갖 악행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1857년 베르뇌(한국식 성명, 장경일張敬一) 주교主敎의 명의로 된 문서를 통해 놀랍게도 이들의 재가를 대단히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적시摘示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사회사상사社會思想史나 여성사女性史 분야와도 직결되는 것이니만치, 앞으로의 심도 있는 논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중의 두 편은 일제日帝 치하의 침울한 역사 속에서 천주교가 신극新劇 운동을 비롯해서 한국사회에 미친 사상적,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조목조목 주요 일간지의 보도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밝히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신극 운동의 선구자였던 임성구林聖九의 여러 활동상에는 천주교의 영향이 깊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가 권선징악과 미신타파를 부르짖었던 것이라든가 지방 순회공연을 거듭하면서 자선 행위로서 걸인乞人 잔치를 빠뜨리지 않은 것이라든가 하는 측면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의 주요일간지『동아일보東亞日報』와『조선일보朝鮮日報』의 보도 기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천주교의 수용이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우리나라에 공헌하였음은 물론, 사회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천주교가 제사 폐지, 사회적 악폐 제거 그리고 계급 타파 등에 크게 앞장섰다는 점이 당시에 이미 널리 인식되고 있었음을 제시하였다. 한국천주교회사의 이런 측면에 관한 저자著者의 접근 시도가 하나의 사례事例가 되어 앞으로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제1부 수용 편에는 중국中國에서 서양인 신부들에 의해 한문漢文으로 저술된 천주교 교리서, 이른바 서학서西學書 가운데 오늘날의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우리 역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마테오ㆍ리치Matteo Ricci(이마두利瑪竇, 1552-1610)의『교우론交友論』, 루이지ㆍ뷜리오Luigi Buglio(이류사利類思, 1601-1682)의『주교요지主敎要旨』, 페르디난트ㆍ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남회인南懷仁, 1623-1688)의『교요서론敎要序論』등을 분석한 논문들을 실었다. 이 서학서들이 각각 한국에 언제 어떻게 왜 수용되었는지를 살펴서, 특히 이류사의『주교요지』는 서명書名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한동안 같은 책의 번역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던 정약종丁若鍾(1760-1801)의 한글교리서『쥬교요지』저술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남회인의『교요서론』역시 어찌 수용되어 종내에는 한글본『교요셔론』으로 무슨 이유에서 번역飜譯되고 결국에는 필사筆寫되어 널리 유포되게 되었는지 등등에 대해 저자著者 스스로 지니게 되었던 의문을 집중적으로 밝혀보려고 한 것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천주교회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한국 천주교에 영향을 끼친 서학서라고 하면 의례히 마테오ㆍ리치의『천주실의天主實義』만을 떠올리는 게 다반사茶飯事라는 사실은 학술 토론회 석상 등에서 수차에 걸쳐 체험적으로 느낀 바이지만,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서 제대로 된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나아가 한국의 근ㆍ현대사 서술이 사실대로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이마두利瑪竇의 뒤를 이어 70년 이상의 시차時差를 두고 천주교가 중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힘썼던 남회인南懷仁ㆍ이류사利類思 등의 저술들에 대한 연구도 이마두의 그것에 대한 것 못지않게 요긴하다고 믿어 왔다. 명나라 말기인 1600년대에 이루어진 이마두의 저술들이 제1세대의 기초적ㆍ원론적인 것으로서 요즘의 표현을 빌어 구舊 버전version이었다고 할 수 있다면, 강희제康熙帝가 재위하며 청나라의 국력이 승승장구하던 1670년대에 남회인의 그것은 제2세대의 심층적ㆍ현실적인 것으로서 그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중국인과 조선인을 막론하고 신新 버전이어서 읽기에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라고 비유해서 좋지 않나 생각한다. 다만 저자著者로서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본격적으로 시도해본 적이 거의 없는 이 분야에 자그마한 초석礎石 하나를 간신히 마련해 놓은 데에 불과하므로, 한중韓中 혹은 동서東西 문화교류사文化交流史라는 측면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많이 진척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2부 전개 편에서는 천주교가 수용된 정조正祖 때부터 1백년 가까운 박해기迫害期를 거쳐 신앙 및 선교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고종高宗 때까지의 한국천주교회사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을 전문적인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해서 개설槪說로 정리한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시민市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 시기별로 나누어 상황의 특징을 드러내고자 각 제목도??자발적으로 최초의 교회를 세우다??(제1장)→??순교와 배교의 여울목을 헤쳐 나오다??(제2장)→??민중과 더불어 커가는 교회??(제3장)→??운현궁에서 성모송이 울려 퍼지다??(제4장)로 설정하였다. 그럼으로써 저자著者로서는 한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천주교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천주교 신자이거나 아니거나 상관이 없이 세계 어느 나라의 시민이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올바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아울러 서술에 있어서는 당시의 생생한 기록들을 제시하며 옛날 얘기를 나누듯이 담론談論의 양식을 취하였는데, 여기의 이??담론??이란, 이미 저자의 다른 저술『한국현대사담론』에서도 반영했던 바로서, 바로 그때의 일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 즉 담화談話를 통해 그 역사적 의미를 논의論議하자는 의도로, 당시 사람들의 말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을 빌어서 있었던 그대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세부적으로 각 장의 머리말과 맺음말로서 각각??해진 대바구니로 소금을 긁어 담기??―??우리는 장차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제1장),??씨도 남김없이 모두 쳐 없앨 것??―??마치 요원의 불길과도 같다??(제2장),??전쟁도 평화도 진정한 의미의 박해도 평온도 아니다??―??안으로는 사주구령, 밖으로 좋은 표양 세우기??(제3장),??아들이 왕위에 오른 것에 대한 감사미사를 드려 달라??―??천주교의 사상은 궁중에까지 전파되어??(제4장) 등을 내세웠다. 그릇된 종교적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이 한국의 역사 자체에 진정으로 관심이 깊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꼭 읽어주기를, 그래서??한국사, 시민과 공유하기??에 서로서로 동참하여 함께 호흡하기를 희망한다.
제3부 영향 편에는 천주교가 수용된 이후 그것이 한국 사회의 사상ㆍ사회ㆍ문화 등의 여러 분야에서 어떤 영향을 어떻게 끼쳤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서, 지금까지 전혀 간과되었던 점들을 밝혀 보려고 시도한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처음의 두 편은 개화기 이전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앞의 것은 천주교가 동학東學에 끼친 영향에 대하여 분석하였고, 뒤의 것은 과부寡婦의 재가再嫁에 대해 천주교가 취한 입장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그래서 천주교가 최제우崔濟愚의 동학 창도부터 교세 확장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면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으며, 또한 천주교에서는 홀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였던 과부들이 온갖 악행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1857년 베르뇌(한국식 성명, 장경일張敬一) 주교主敎의 명의로 된 문서를 통해 놀랍게도 이들의 재가를 대단히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적시摘示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사회사상사社會思想史나 여성사女性史 분야와도 직결되는 것이니만치, 앞으로의 심도 있는 논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중의 두 편은 일제日帝 치하의 침울한 역사 속에서 천주교가 신극新劇 운동을 비롯해서 한국사회에 미친 사상적,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영향을 조목조목 주요 일간지의 보도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밝히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 결과 신극 운동의 선구자였던 임성구林聖九의 여러 활동상에는 천주교의 영향이 깊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가 권선징악과 미신타파를 부르짖었던 것이라든가 지방 순회공연을 거듭하면서 자선 행위로서 걸인乞人 잔치를 빠뜨리지 않은 것이라든가 하는 측면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의 주요일간지『동아일보東亞日報』와『조선일보朝鮮日報』의 보도 기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천주교의 수용이 사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우리나라에 공헌하였음은 물론, 사회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천주교가 제사 폐지, 사회적 악폐 제거 그리고 계급 타파 등에 크게 앞장섰다는 점이 당시에 이미 널리 인식되고 있었음을 제시하였다. 한국천주교회사의 이런 측면에 관한 저자著者의 접근 시도가 하나의 사례事例가 되어 앞으로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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