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의 역사
빌립보는 원래 바다 건너 타소스에서 온 식민자들이 이곳 금광에서 일하며 정착했는데 당시 아덴에서 도망온 (BC361) 웅변가 칼리트라투스 가 이들 정착을 도왔다고 전한다. BC356년 필립2세는 이곳을 확장하고 성벽을 수축했으며, 헬라식 극장도 건축했다. BC335년에 알렉산도 대왕은 압비볼라에서 트라키아로 진군할 때 이곳을 통과 한 것으로 여겨진다. BC167년에는 로마의 집정관인 에밀리우스 파울루스에 의해 네구역으로 분할 될때 제1구역에 속했으나 이 지역의 수도는 압비볼리에게 돌아갔다. BC42년에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양진영 간의 전투가 이곳 빌립보에서 일어 났으며 (빌립보 전투), 전쟁 후 빌립보는 로마의 퇴역군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후에 안토니우스 편에 섰던 자들에게 이 도시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 했다. 이후 빌립보는 2세기 초엽에 잠깐 문학 역사에 등장했다.
빌립보의 성채는 오르벨로스 중앙 산괴의 돌출부 위에 있고, 성읍은 그 아래 지역에 위치해 있다. 평야를 지나고 바로 빌리보 성읍을 지나 아시아로 부터 서방까지 통하는 육로가 나 있고 이 육로는 고대의 군사 도로와 무역로의 구실을 했는데. 로마 시대에는 비아 에그나티아 로 알려졌다. 도시 둘레에 남은 성벽은 빌립2세가 수축했던 것이고 언덕 기슭에 있던 극장 역시 그때 지었다고 본다.
빌립보의 역사2
빌립보는 대규모의 유적지로 아테네의 에콜푸랑세즈에 의해 1914~1937 년까지 고고학적 발굴이 행해졌다.
그 결과, 도시 대광장은 에그나티아 대로 바로 옆에 있으며, 그면적은 길이91m, 폭이 46m가 넘는 장방향이다. 그리고 북편 중앙에 연사들이 연단으로 사용한 것이 틀림없는 장방형 주춧돌이 있다. 또한 대광장의 북동쪽과 모서리에는 두 개의 대신전이 정면으로 마주보고 서 있다. 그리고 도서관 건물, 줄지어진 기둥들, 건물의 현관, 분수, 목욕탕 등이 발굴되었다. 특히 이 유적지에는 바울의 감옥으로 여겨지는 감옥터가 보존되어 있으며 , 빌립보에 있는 회당식교회인 바실리카의 기둥과 벽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그 남아 있는 규모만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기독교가 부흥 했는가를 짐작하게 된다. 이도시 서쪽으로 1.6km 지점에는 강기데스 강 부근에 로마때 아치 페허지가 있는데 이 아치는 일반적으로 도시경계선 혹은 포페리움을 상징한다.
이 포페레움 내에는 이방종교의 성소와 같은 불순한 것들이 세워질 수 없었는데 이는 바울과 실라가 "기도 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행16:13) 라고 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이기도하다. 오늘날 이지역의 강기테스 강가에는 루아디아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오늘날 이곳은 대규모 유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광범위한 지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빌립보가 얼마나 큰도시 였는가를 실감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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