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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근대의 스승인가 침략전쟁의 선동가인가
지금도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 초상인물로서 존경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의 스승”, 더 나아가 “일본 근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침략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어두운 쇼와의 터널로 빠져들기 전, 활기차고 지적이며 영광스러운 메이지시대의 이미지를 전후 적극적으로 일본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후쿠자와의 본모습일까?
‘대일본제국’의 침략전쟁으로 고통 받은 아시아 민족들에게 후쿠자와는 “근대화과정을 짓밟고 파탄으로 내몬 우리 민족 전체의 적”(한국)이나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대만)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에 죽은 한 인물에 대한 이 아찔한 평가의 온도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진실은 무엇일까?
책은 그동안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환상을 덮어씌우고, 그 이미지를 뒤흔들 만한 발언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진정한 후쿠자와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다름 아닌 후쿠자와의 텍스트들에 정면 도전한다. 후쿠자와의 입으로 후쿠자와를 설명하는 그의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은 엄밀한 연구자의 성실성이 무엇인지 소리 없이 웅변해준다.
일본근대의 스승인가 침략전쟁의 선동가인가
지금도 일본의 최고액권 지폐 초상인물로서 존경받고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의 스승”, 더 나아가 “일본 근대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침략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어두운 쇼와의 터널로 빠져들기 전, 활기차고 지적이며 영광스러운 메이지시대의 이미지를 전후 적극적으로 일본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후쿠자와의 본모습일까?
‘대일본제국’의 침략전쟁으로 고통 받은 아시아 민족들에게 후쿠자와는 “근대화과정을 짓밟고 파탄으로 내몬 우리 민족 전체의 적”(한국)이나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대만)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도 전에 죽은 한 인물에 대한 이 아찔한 평가의 온도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진실은 무엇일까?
책은 그동안 전후세대의 사상가들이 전쟁과 패전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자유주의자’라는 환상을 덮어씌우고, 그 이미지를 뒤흔들 만한 발언은 외면한 채 오로지 입맛에 맞는 문구들만 주목해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진정한 후쿠자와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다름 아닌 후쿠자와의 텍스트들에 정면 도전한다. 후쿠자와의 입으로 후쿠자와를 설명하는 그의 치밀하고 집요한 작업은 엄밀한 연구자의 성실성이 무엇인지 소리 없이 웅변해준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서장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의 7대 불가사의
1. 정치 바깥의 천황 vs 친정親征하는 천황 2. “일신독립=일국독립”의 본뜻 3. 후쿠자와의 상황적 사고와 발언 4. 대상에 대한 내재화의 태만―학문적 과정으로부터의 일탈 5. 후쿠자와는 ‘원칙이 있는 철학가’인가 6. 빌려온 수식어―“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7. 일본 근대화의 스승, 혹은 가증스런 민족의 적
제1장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 유키치의 국제관계인식―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론’을 검토하다
1. 방약무인, 약자에 대한 횡포, 무정잔혹, 힘이 곧 정의이다 2. 초기 계몽기의 국제논쟁―대만 출병과 강화도사건 3. 아편전쟁의 인식과 평가―중국의 민족적 영웅 임칙서에 대한 비난 4. 메이지 정부와 후쿠자와의 관계―초기 계몽기 후쿠자와 사상의 정리와 평가
제2장 중기의 후쿠자와 유키치, 보수사상의 확립―임오군란, 갑신정변, 탈아론
1. 보수사상으로의 과도기―통속국권론과 민정일신 2. 보수사상의 확립―시사소언과 제실론 3. 임오군란갑신정변과 후쿠자와 유키치 4. 아시아 멸시사상과 문명사관에 의한 침략의 합리화, 탈아론 5. 청일전쟁으로 가는 길은 불가피했나
제3장 청일전쟁기의 후쿠자와 유키치―조선 왕궁 점령여순 학살사건 민비살해 대만정복전쟁
1. 후쿠자와 유키치의 전쟁 캠페인―‘거류민 보호’라는 구실 2. 다시 ‘문명사관’에 의한 침략의 합리화 3. 조선의 자립독립을 위해서라는 구실 4. 아시아에 대한 멸시편견마이너스 평가의 무차별 방류 5. 전쟁 승리에 대한 열중열광―전쟁보도의 나쁜 전통 6. 일관된 군비확대 요구 7. 메이지 천황의 적극적 전쟁지도와 그 찬미―야스쿠니사상 8. 대만정복전쟁, 무단적 식민지배와 후쿠자와 유키치 9. 저널리스트 후쿠자와의 은폐보도―조선왕궁점령, 여순운림학살사건, 민비살해
제4장 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가는 길―후쿠자와 유키치가 깔아놓은 ‘어두운 쇼와’의 궤도
1. 말년의 후쿠자와 유키치 2.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밝지 않은 메이지’에서 ‘어두운 쇼와’로 3. 전쟁책임의 관점에서 학문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마무리글
역자후기
추천사―후쿠자와 유키치의 동아시아 침략사상을 바로 알기 위하여
부록주석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인식의 궤적
머리말
서장 후쿠자와 유키치 연구의 7대 불가사의
1. 정치 바깥의 천황 vs 친정親征하는 천황 2. “일신독립=일국독립”의 본뜻 3. 후쿠자와의 상황적 사고와 발언 4. 대상에 대한 내재화의 태만―학문적 과정으로부터의 일탈 5. 후쿠자와는 ‘원칙이 있는 철학가’인가 6. 빌려온 수식어―“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7. 일본 근대화의 스승, 혹은 가증스런 민족의 적
제1장 초기 계몽기 후쿠자와 유키치의 국제관계인식―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론’을 검토하다
1. 방약무인, 약자에 대한 횡포, 무정잔혹, 힘이 곧 정의이다 2. 초기 계몽기의 국제논쟁―대만 출병과 강화도사건 3. 아편전쟁의 인식과 평가―중국의 민족적 영웅 임칙서에 대한 비난 4. 메이지 정부와 후쿠자와의 관계―초기 계몽기 후쿠자와 사상의 정리와 평가
제2장 중기의 후쿠자와 유키치, 보수사상의 확립―임오군란, 갑신정변, 탈아론
1. 보수사상으로의 과도기―통속국권론과 민정일신 2. 보수사상의 확립―시사소언과 제실론 3. 임오군란갑신정변과 후쿠자와 유키치 4. 아시아 멸시사상과 문명사관에 의한 침략의 합리화, 탈아론 5. 청일전쟁으로 가는 길은 불가피했나
제3장 청일전쟁기의 후쿠자와 유키치―조선 왕궁 점령여순 학살사건 민비살해 대만정복전쟁
1. 후쿠자와 유키치의 전쟁 캠페인―‘거류민 보호’라는 구실 2. 다시 ‘문명사관’에 의한 침략의 합리화 3. 조선의 자립독립을 위해서라는 구실 4. 아시아에 대한 멸시편견마이너스 평가의 무차별 방류 5. 전쟁 승리에 대한 열중열광―전쟁보도의 나쁜 전통 6. 일관된 군비확대 요구 7. 메이지 천황의 적극적 전쟁지도와 그 찬미―야스쿠니사상 8. 대만정복전쟁, 무단적 식민지배와 후쿠자와 유키치 9. 저널리스트 후쿠자와의 은폐보도―조선왕궁점령, 여순운림학살사건, 민비살해
제4장 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가는 길―후쿠자와 유키치가 깔아놓은 ‘어두운 쇼와’의 궤도
1. 말년의 후쿠자와 유키치 2.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가는 길―‘밝지 않은 메이지’에서 ‘어두운 쇼와’로 3. 전쟁책임의 관점에서 학문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마무리글
역자후기
추천사―후쿠자와 유키치의 동아시아 침략사상을 바로 알기 위하여
부록주석 후쿠자와 유키치 아시아인식의 궤적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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