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1.일본역사(고대.중세)

일본의 이중권력 쇼군과 천황

동방박사님 2021. 12. 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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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쇼군과 천황이라는 ‘권력과 권위의 이중적 지배구조’의 역사가 일본 정치문화의 주변성을 보여준다는 주장을 전개한 책이다.

의원내각제하의 일본의 수상,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수상은 현행 헌법상으로는 영국의 수상과 미국의 대통령의 권력을 합친 강한 권력을 소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을 예외로 한 역대 수상들은 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일본의 ‘권위와 권력의 이중적 지배 구조’에 있다고 본다.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신적 권위는 덴노(天皇, 천황)와 그의 정부인 조정朝廷이 가졌고, 정치적 권력은 쇼군(?軍, 장군)과 그의 정부인 막부幕府가 행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결국 쇼군과 천황의 이중권력체제에서 비롯된 천황의 ‘힘없는 권위’는 현대 일본의 정치상황에까지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고, 이것이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자가 없는 정치 풍토를 만들어냈음을 지적한다. 일본의 정치를 주제로 하지만 역사에서 그 원인과 뿌리를 찾는 것인 만큼, 쇼군과 천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역사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권위와 권력의 이중지배구조란?
대왕으로부터 덴노로 -고대 일본 중앙집권체제의 완성
덴노정부의 이중지배구조
이중정부에 의한 이중지배체제
메이지헌법체제에서의 정치권력 일원화와 좌절
일본 정치문화의 주변성을 극복해야 한다

저자 소개

저자 : 다카시로 고이치
현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조교수(일본지역 연구). 일본 주오(中央)대학 경제학부 경제학과와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받음. 광주대학교 문리대학 관광통역과 전임강사, 대진대학교 국제지역학부 일본학전공 조교수 역임. 저서로는 『알기쉬운 일본어』(공저) 등. 논문으로는「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조선정략론 연구」「임오군란에 대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정치평론」「후쿠자와 유키치의 정...
 
 
 

출판사 리뷰

일본의 수상(내각총리대신)은 외국정부에서 보면 당연히 수상의 권한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운영 면에서 많은 제약(내각 회의에서의 전원일치라는 의결방식과 파벌균형의 각료인사)이 있기 때문에 그 권한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주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자국민에게 복종을 강요할 수 있는 힘과 대외관계에서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두 가지가 필요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그 두 가지 모두에 문제가 있다.”라는 카렐 반 볼페른의 지적대로, 서로 대항하는 구성원에 대해서 복종을 강요할 만한 명확한 지배권을 가진 중심기관이 없기 때문에 일본은 정부가 한 약속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두 번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체제의 뿌리는 무엇인가?
필자는 그 원인을 일본의 ‘권위와 권력의 이중적 지배 구조’에 있다고 본다.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신적 권위는 덴노(天皇, 천황)와 그의 정부인 조정朝廷이 가졌고, 정치적 권력은 쇼군(?軍, 장군)과 그의 정부인 막부幕府가 행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권위와 권력의 이중구조’는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궁극적으로는 책임을 취하는 자가 없는 ‘무책임 정치체제’를 초래하였다고 주장하며, 필자는 이와 같은 ‘권위와 권력의 이중적 지배 구조’의 일본 정치사가 일본 정치문화의 ‘주변성(marginality)’을 나타낸 것임을 지적한다.

고대 일본의 덴노는 율령에 기반한 정치를 시행함으로써 호족에 의한 실질적인 지배를 극복하고 지배체제를 확립하였으나, 점차 후지와라 가문이나 퇴위한 덴노, 다이라 가문 등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덴노의 힘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방의 치안을 담당하며 토지를 기반으로 무사들을 거느리게 된 쇼군들은 자신들의 정부인 막부를 키워나가면서 세력이 커지자, 황위계승에도 개입하고 덴노 정부를 감시하는 등의 힘을 행사한다.
막부측의 힘이 커졌을 때에도 덴노라는 존재를 중앙정부에 그대로 둔 까닭은, 막부 스스로에게 독자적인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막부는 덴노를 막부의 위에 명목상으로 자신들의 위에 위치시킴으로써 덴노의 권위를 독점적으로 이용, 자기의 정권에 정통성과 권위를 부여하는 ‘장치’로서 덴노를 활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정부체제는 ‘왕정복고’라고도 불리는 메이지유신을 기점으로 사라졌고, 추락해 있던 덴노의 세력은 메이지정부가 ‘덴노는 민중이 믿고 있는 신사의 신 중 최고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노카미의 자손이고, 각 지역 신사에 있는 신의 지위는 천자天子인 덴노가 승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주입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권위는 있되 권력은 없는’ 덴노의 정체는 변하지 않았다. 덴노는 표면상으로만 절대성을 가졌을 뿐, 실제로는 의회나 내각, 원로 및 중신들 등의 보필을 받아 통치행위를 시행하였지만, 만약 통치행위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덴노가 아닌 ‘보필’ 또는 ‘협찬’한 자의 책임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