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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문서와 해방정국 (1945~1948) : 미군정중위의 눈에 비친 한반도

동방박사님 2021. 12. 1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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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해방 정국과 미군정 시기를 재조명하는 비밀문서 박스가 열렸다
정치적 통념이 아니라 생생한 증언과 자료로 해방 후의 역사를 다시 읽는다


박태균 교수는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서 ‘버치 문서 박스’를 뜻밖에 발견하고 전율을 느꼈다. 일부는 이미 미군정 자료에 공개된 것도 있었지만, 버치 중위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미공개 자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는 당시 한국의 정치인들과 소통하면서 기록한, 특정 인물이나 단체에 대한 조사ㆍ분석ㆍ보고의 문서부터 명함, 편지, 사진, 메모에 이르기까지 보물 같은 자료들이 가득했다.

레너드 버치(Leonard Bertsch) 중위는 1945년 12월 15일에 한국에 배치되어 주로 한국의 정치인들을 담당하는 미군정 정치고문단 소속으로 활동했고, 1948년 5월 총선거 직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해방 직후의 한반도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조국의 운명을 걸고 맹렬하게 투쟁하던 혼돈의 시기였다. 버치는 바로 그 현장에서 당대의 저명 정치인들과 교류하면서 보통의 한국인보다 더 한반도의 앞날을 염려하며 정치적 중재자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버치가 남긴 자료는 해방 정국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버리기 일쑤다. 미군정과 이승만 사이의 정치적 반목 관계, 이승만에 대한 미군정과 맥아더의 상이한 판단, 신탁통치와 반탁운동에 대한 가짜 뉴스, 여운형의 친일 행위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사적 야욕으로 자행된 음모와 테러, 그리고 결국 실패했다고 평가한 미군정의 정치적 구상 등, 그 시대를 관통하는 버치의 날카로운 통찰과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던 해방 정국의 역사가 재검토되어야 함을 일러주고 있다.

목차

1 미군정은 왜 실패했는가 ― “맥아더는 완고”했고, “하지는 순진”했다
2 여운형에 대한 미군정의 구애 ― “잘 도망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중요하다.”
3 여운형의 친일 행적을 찾아라
4 여운형의 친일 행위에 대한 최종 조사 보고서
5 “내가 테러리스트들의 애국적 행위를 중지시켜야 하는가”
6 이승만의 귀국을 막아라
7 이승만과 김구 ― 문제는 돈이었다
8 내조의 여왕인가, 국정농단의 기원인가 ― 프란체스카 여사
9 강용흘을 아시나요
10 현직 경찰은 왜 장덕수를 죽였을까
11 김구의 권위를 떨어뜨려라 ― 1년 전에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김구 암살
12 미군정이 믿는 구석은 경찰, 경찰이 믿는 구석은 이승만
13 ‘한민당 코트’라는 말은 왜 나왔을까
14 이승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 경찰과 청년단
15 서북청년단이 못마땅했던 미군정
16 친일파의 악행을 고발한다
17 우익의 정치자금은 어디에서
18 어떻게 음식을 확보할 것인가
19 미군정이 발간한 ??당신과 한국??
20 해방 후 최초의 복권, 올림픽 복권
21 장군의 아들인가, 테러리스트인가
22 여운형의 죽음과 친일 경찰
23 미군정이 만들려고 했던 정부 ― 해방 직후 최초의 헌법 초안
24 농지개혁으로 혁명을 막아라
25 버치와 한국민주당의 갈등, 그리고 내각책임제의 실패
26 버치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 김규식
27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28 버치가 평가한 미군정과 해방 한국
29 현재 한국 사회의 기원을 찾아서 ― 미군정기의 역사

[부록 l 버치 문서 Box의 자료]
· 여운형 조사를 위해 전 일본 총독부 인사들을 심문한 기록
· 여운형과 일본 정부의 관계에 대한 조사의 최종 보고서
· 정치 관련 자료
· 가짜 뉴스 관련 자료
· 지방 정세 분석
· 메모와 편지
· 버치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의 자료
 

저자 소개 

저 : 박태균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2007년과 2017년 ‘한국현대사’와 ‘한미관계사’로 학부와 대학원 강의를 했으며, 계간지 [역사비평] 주간과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주간을 역임했다. 쓴 책으로는 『조봉암 연구』, 『한국전쟁』,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원형과 ...
 

책 속으로

이승만은 그에 대한 우리의 혐오를 알고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두 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는데 하지 장군과 버치 중위’라고 했다.
--- p.19

여운형은 일제강점기에 진정한 정치를 하려고 했던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식민지에서 핍박받고 있었던 조선인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총독부에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적과도 대화하고, 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무엇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자세, 그것이 진정한 정치인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라고 대통령을 선출했는데, 정치는 하지 않고 공작만 하는 한국 현대사의 대통령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여운형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 p.48

이승만은 1945년 10월 귀국한 이래로 통합의 아이콘이라기보다는 분열의 상징이었다. “덮어놓고 뭉치자.”라고 했지만, 실상 ‘자기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빼고’ 덮어놓고 뭉치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비난했다.
--- p.72

돈에 대한 두 사람(이승만과 김구)의 태도는 두 사람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며,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돈에 대한 이승만의 욕심은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권력 그 자체는 돈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 작동한다. 반면에 김구는 집단의 수장으로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돈을 추구한다. 돈이 많았을 때 그는 북한으로부터 월남한 난민을 위해 사용했고, 극빈자를 구호하는 데 썼으며, 그에게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기부했다.
--- p.78~79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암살을 했다는 것은 과도정부의 한국인 관료들을 놀라게 하는 효과가 있다. 암살자들은 장덕수의 부인에게 그들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 p.115

친일 지주는 지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청년단을 불러들였다. 서북청년단과 광복청년단이었다. 이들은 그 지역 출신이 아니었다. 조용했던 마을은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하기 시작했다.
--- p.163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정치는 국민들의 정서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정권을 잡는 데만 몰두했다. 해방은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 p.183

결과적으로 볼 때 미군정의 정책은 모두 실패했다. 여운형 암살과 장덕수 암살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한국민주당 자체 가 다수당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정당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남은 희망은 김규식밖에 없었다. 특히 버치로서는 이승만과의 관계가 안 좋았기 때문에 김규식을 중심으로 해서 다른 정치 세력들을 묶어야 했다. 그러나 김규식은 결코 버치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김규식의 대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 p.243

분단 정부를 수립해서는 안 된다는 김규식의 신념, 그리고 이승만이 갖고 있었던 돈과 지방에서의 정치적 힘이라는 두 요소를 제외하고도 김규식이 지도자가 될 수 없었던 또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여운형의 죽음이었다. … 1949년 6월 김구의 암살은 김규식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 p.259

한국을 떠난 직후 쓴 글에서 버치는 특히 미군정의 정책에 대해서 비판했다. 즉, 친일파를 기용했던 미국의 정책,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대한 미군정 요원들의 잘못된 태도 등은 미군정이 실패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 p.267

하지와 버치의 예상은 적중했다. 미군정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대한 정책은 번번이 이승만 대통령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과 미국은 동맹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 p.277

버치 문서는 미군정기의 실패와 함께 한국 사회가 겪었던 좌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곧 해방과 통일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를 상실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기회의 상실은 곧 전쟁이라는 위기로 다가왔으며,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 p.286
 

출판사 리뷰

미군정 시기는 오늘날 한국 정치가 지닌 흑역사의 기원일지도 모른다

저자 박태균이 ??버치 문서와 해방 정국??을 저술한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의 상황을 좀 더 실증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폐단의 기원을 찾는 것이다. 특히 후자는 그때로부터 70년이 넘도록 고치지 못한 정치적 악습들인데, 가짜 뉴스를 이용한 정치 구도 왜곡, 가장 합리적인 정치인들의 배제 혹은 도태, 보수 정치 세력을 등에 업은 극우단체의 폭력성, 기득권 주류 세력을 대체할 건전한 세력의 부재 등은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고스란히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상기시키고, 또 희망하면서 책을 마무리했다.

“버치 문서는 미군정기의 실패와 함께 한국 사회가 겪었던 좌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곧 해방과 통일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를 상실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기회의 상실은 곧 전쟁이라는 위기로 다가왔으며,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의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오늘, 버치 문서를 통해 보는 미군정기 한국 사회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더 소중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2016년과 2017년 시민의 힘이 좌초 직전의 한국호를 구해냈다면, 이제 그 한국호가 또다시 좌초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버치가 가장 존경했던 김규식과 여운형이 그렸던 꿈이 7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실현될 수 있다면, 좌우합작위원회를 지원했던 버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소개되었던 미디어

“‘버치 보고서’를 통해서 본 해방 전후 한국 현대사”
― KBS1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2021년 8월 13일.

“해방 정국의 잊힌 영웅들”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2021년 6월 3일.

“미군정의 속사정, 버치 보고서”
― KBS, [역사저널 그날] 2020년 2월 18일.

“박태균의 버치 보고서”
― [경향신문] 2018년 4월 1일 ~ 10월 7일, 27회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