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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동방박사님 2021. 12. 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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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34년과 2020년의 능력주의
― 평등과 공정과 정의에 바탕한 엘리트 계급의 세습 사회


아이큐 125를 넘는 상위 5퍼센트의 ‘뛰어난 계급’에 속하지 못하면 하층 계급이 돼야 하고, 몇몇은 엘리트 계급에 고용돼 가내 하인으로 일해야 한다. 인구 전체의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엘리트들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손아귀에 쥔 채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내세워 자식 세대에게 지위를 세습하지만, 하층 계급과 그 자녀들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열반으로 나뉜 학교에서 단 한 번 치르는 시험이 인생을 판가름하고, ‘빌거’와 ‘휴거’와 ‘엘사’가 ‘강남 공화국’과 ‘스카이 캐슬’을 떠받히는 지금 여기 한국의 이야기일까?

영국 출신 사회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마이클 영은 사회학적 디스토피아 소설 『능력주의』에서 ‘지능(IQ)+노력(Effort)=능력(Merit)’이라는 도식에 바탕한 ‘능력주의’와 ‘능력주의 사회’를 그린다. 2034년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과두제에 붙인 ‘능력주의’라는 이름은 영어 사전에 올랐고, 이제 21세기 지배 계급의 신념이자 도덕 기준이 됐다. 성평등이나 비정규직 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때면 나이와 계급과 이념을 뛰어넘어 ‘86세대’부터 ‘일베’까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승자독식과 능력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에서, 이 사회학적 풍자 문학은 능력에 따른 차별과 능력 있는 엘리트 계급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개조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목차

감사의 말
트랜색션 출판사판 서론
서론

1부. 엘리트의 부상

1장 사회 세력들의 충돌
1. 공무원 모델 2.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 3. 가족과 봉건주의 4. 대외 경쟁이라는 자극제 5. 사회주의자 산파들 6. 요약

2장 종합학교의 위협
1. 학교 안 제3의 세력 2. 패배한 선동 3. 레스터의 절충형 학교 4. 요약

3장 현대 교육의 기원
1. 가장 근본적인 개혁 2. 교사 연봉 인상 3. 기숙형 그래머스쿨 4. 지능 검사의 발달 5. 요약

4장 연공에서 능력으로
1. 연장자 계급 2. 학교이기를 멈춘 공장 3. 나이에 맞선 도전 4. 요약

2부. 하층 계급의 쇠퇴

5장 노동자의 지위
1. 평등의 황금기 2. 계급들 사이를 가르는 심연 3. 천한 일을 수행하는 공병대 4. 새로운 실업 5. 다시 등장한 가내 하인 6. 요약

6장 노동운동의 몰락
1. 역사적 사명 2. 의회의 쇠퇴 3. 기술자들 4. 노동조합 내부의 조정 5. 요약

7장 부자와 빈자
1. 능력과 돈 2. 현대적 종합 3. 요약

8장 위기
1. 여성들이 처음 벌인 캠페인 2. 현대 페미니즘 운동 3. 위기의 도래 4. 새로운 보수주의 5. 마침내 일반 대중이 들고 일어서다 6. 여기서 어디로

옮긴이 글
 

저자 소개

저 : 마이클 영 (Michael Young)
 
영국 출신 사회학자, 사회운동가.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었다. 런던 정경대(LSE)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지역사회연구소(Institute of Community Studies)를 설립해 독자적인 연구 활동을 이어갔다. 학자로서 피터 윌모트하고 함께 《이스트 런던의 가족과 친족(Family and Kinship in East London)》(1965)을 쓰고 영국 사회과학연구협회 회장을 지냈다. 사회운...
 
역 : 유강은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불안한 승리』,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조종이 울린다』, 『좌파로 살다』,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 『자본주의에 불만 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 『The LEFT 1848~2000』, 『미국민중사』, 『핀란드 역으로』 등이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번역으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받았다.
 
 

책 속으로

20세기는 이 신조어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었다. 권력과 특권을 지닌 사람들은 현대 사회가 ‘국민이 아니라 현명한 소수의 지배’, 곧 ‘태생에 따른 귀족주의 정치나 부를 바탕으로 한 금권 정치가 아니라 재능에 따른 진정한 능력주의 정치’를 시행한다고 어느 때보다도 더 기꺼이 믿게 됐다. 귀족주의와 능력주의의 관련성은 특히 유리했다.
--- p.13

‘지능(I. Q.)+노력(effort)=능력(merit)’이라는 명제는 새로울 게 없었고, 다만 그 명제가 정식화된 방식이 신선했다. 산업 혁명 이래, 아니 산업 혁명 이전에도 ‘재능 있는 사람에게 열린 출세의 길(la carriere ouverte aux talents)’은 …… 사회 개혁의 주된 목표 중 하나였다. 공직을 획득하는 수단이던 정실주의와 뇌물 수수, 상속은 이제 모두 사라져야 한다. 물론 이런 관행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지만, 정실주의와 뇌물 수수, 상속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게 내버려두는 일은 잘못이라는 믿음은 굳어지고 있다. 이제 개인의 능력이 유일한 잣대가 됐다.
--- p.14

1914년에 상층 계급에는 공정한 몫의 천재와 둔재가 있었고, 노동 계급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다르게 말하자면, 똑똑하고 운 좋은 몇몇 노동 계급 남성들은 사회에서 종속된 상황인데도 언제나 상층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열등 계급에도 거의 상층 계급 자체만큼이나 높은 비율의 우월한 사람들이 있었다. 지능은 어느 정도 무작위로 분포됐다. 각각의 사회 계급은 능력으로 볼 때 사회 자체의 축소판이었다. 부분은 전체하고 똑같았다.

지난 세기에, 그러니까 1963년 이전에 이미 어지간히 시작된 근본적인 변화는 지능이 계급들 사이에 재분배되고 각 계급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재능 있는 이들은 자기 능력에 부합하는 수준까지 올라갈 기회를 부여받는 한편, 그런 변화에 따라 하층 계급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몫이 됐다. 이제 부분은 전체하고 똑같지 않다.
--- p.28~29

“여기 있는 나는 노동자다. 내가 왜 노동자인가? 나는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내가 제대로 기회만 있었다면 세상에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의사? 양조업자? 장관? 나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을 텐데.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노동자다. 그렇지만 내가 다른 누구보다도 정말로 무능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누구보다 뛰어나다.” 불공정한 교육 때문에 사람들은 환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불균등한 기회 때문에 인간의 평등이라는 신화가 자라났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신화라는 점을 알지만, 우리 조상들은 알지 못했다.
--- p.171~172

기회 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모든 어린이는 단순히 사회에 필요한 잠재적인 직무 담당자가 아니라 소중한 개인이다. 학교는 직업 구조에 밀접하게 결부돼 어떤 특정한 순간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배출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재능을 장려하는 데 전념해야 한다.
--- p.269~270

한 세기 전에 단행한 교육 개혁은 하층 계급에서 능력의 낭비를 줄이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그렇지만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걸러져서 상층 계급으로 이동할 때마다 거기에 상응해서 이 과정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약해졌다. 1990년 무렵에 이르면 아이큐 125 이상인 모든 성인이 능력주의 체제에 속하게 됐다. 아이큐 125 이상인 어린이는 대부분 바로 이 성인들의 자녀였다. 오늘의 상층 집단이 내일의 상층 집단을 길러낼 가능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높다. 엘리트 집단은 이제 세습화되는 중이며, 세습의 원리와 능력의 원리가 결합되고 있다.
--- p.278~279
 

출판사 리뷰

능력주의 사회의 도래
― 현실 같은 소설과 소설 같은 현실 속 능력주의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이 이야기는 1870년부터 시작한다. 1870년 영국은 무상 공교육과 공무원 공개 시험 채용을 시작하고, 승진 시험을 도입한다. 1944년에는 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중등학교가 귀족 학교(대학 진학이 목표인 그래머스쿨)와 서민 학교(직업 교육을 하는 현대식 중등학교)로 나뉜다. 『능력주의』가 출간된 1958년에는 교육 평등화가 진행되고 기회 균등이 확대되지만, 중등학교에 들어가는 11세에 인생이 결정되는 방식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대안으로 미국식 종합학교가 도입된 뒤에도 명문 사립 학교와 그래머스쿨을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기회 균등이 능력주의에 동일시되면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육이라는 이상은 흔들리고 만다.

이야기는 1958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1958년 이전을 다룬 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 뒤는 지은이가 현실의 흐름을 바탕으로 예상하고 상상한 허구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단어와 ‘지능(I)+노력(E)=능력(M)’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낸 영은 능력주의 사회는 ‘지능’을 기준으로 능력, 실력, 업적, 재능을 가늠하게 된다고 상상한다. 어떤 사람들의 자손은 기업, 정부, 교육계, 과학계에서 책임 있는 지위를 획득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교육과 선발 분야 전문가들은 미래 지도자를 가려내는 데 과학적 원리를 적용한다. 우리는 지능에 관련해 등급, 자격, 경험, 적용 등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지위를 획득하는 데 요구되는 일정한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미래의 새로운 사회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만 한다.

영이 볼 때 인간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협소해지는 현실은 능력주의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이다.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나 우리가 지금 겪는 능력주의는 모두 획일화된 시험을 중요한 도구로 활용한다. 대입 시험, 입사 시험, 자격시험, 국가고시 등이 모두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험 형태를 취한다.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는 지능 측정이 점점 과학화되고 정밀해지면서 잠재적 아이큐, 곧 미래에 높아질 수 있는 아이큐 최대치를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도 발달 한다. 한때 ‘평등의 황금기’를 이끈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운 좋은 정자 클럽’에 든 기득권층과 세습 엘리트들만 올라가는 출세의 사다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이제 엘리트들의 능력은 기득권 계급의 자격증이 되고, 능력 있는 엘리트들의 계급은 자식 세대로 이어진다. 능력은 계급이 되고, 계급은 세습된다.

진정한 기회 균등
― 능력과 계급의 세습을 넘어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는 좀처럼 갈피를 잡기 어렵지만, 이야기의 배경과 줄거리를 정리한 옮긴이 글을 먼저 읽고 책장을 넘기면 2034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능력주의와 능력주의 사회를 조감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1부에서는 전쟁 때문에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커지고 낮은 생산성이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귀족주의와 세속주의를 나누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한편, 교육 분야와 산업 분야에서 능력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서술된다. 2부에서는 능력주의가 가져온 여러 부작용, 특히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의 변화된 상황이 묘사되면서 포퓰리스트 그룹을 대표로 한 저항 시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동안 순조롭게 작동하던 능력주의 체제는 계급 간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지면서 계층 사이의 사회적 이동이 가로막히자 포퓰리스트 운동이라는 새로운 저항 세력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지능 검사 기법이 발달하고 유능한 아버지가 유능한 자녀를 낳는 지능우생학과 일자리 상속 관행이 확산된 결과, 어느 정도 무작위로 분포하던 지능은 폭넓은 재분배 과정을 거쳐 계급 간 격차를 그대로 드러낸다. 재능 있는 상층 계급들은 자기 능력에 합당한 수준까지 올라갈 기회를 부여받지만, 하층 계급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최고 수준의 지능과 업무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만 상을 받고 나머지 대부분은 벌을 받는 유토피아 사회는 마침내 악몽으로 치닫고, 하층 계급이 일으키는 혼돈과 반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소설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마이클 영은 소설 속 「첼시 선언」을 통해 ‘기회 균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진정한 기회 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모든 어린이는 지능 검사의 대상이 돼야 하는 ‘인적 자원’이기에 앞서 ‘소중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직업 구조에 맞춰 일자리를 채우는 데 몰두하지 말고 ‘인간의 모든 재능’을 장려하는 데 힘을 쏟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를 타도하자
― 무한 경쟁과 양극화의 디스토피아를 넘어 새로운 교육, 능력, 평등을 상상하기


20세기, 영국 노동당을 지지한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를 쓴다. 2001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미국을 뒤따라 영국을 완전히 능력주의 사회로 바꾸자는 연설을 하자, 영은 왜곡된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노동당 정부에 발끈해 『가디언』에 ‘능력주의를 타도하자’는 칼럼을 쓴다. 『능력주의』를 둘러싼 핵심적인 모호성은 이렇게 좀더 명확해진다. 현실 속의 마이클 영과 소설 속의 마이클 영은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서 있지만, 능력주의가 지닌 양면성처럼 서로 겹치기도 한다. 그런 양면성 탓에 『능력주의』는 풍자 소설이나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현대 세계의 주요한 조직화 원리를 예언한 책으로 받아들여지고, 능력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근대화의 척도이자 현대인의 신앙이 된다.

21세기,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는 비로소 한국에서 만개한다. 정치적 견해와 사회적 계급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른 보상’의 ‘공정함’을 신앙하는 한국 사회는 단 한 번 치르는 공정한 대입 시험으로 미래의 인생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신뢰한다. ‘영원한 군비 경쟁’을 떠올리게 하는 입시 전쟁은 무한 경쟁과 양극화를 낳고, 엘리트 계급을 둘러싼 세습 경쟁에서 탈락하고 안정된 일자리에 목마른 대부분의 무능력자는 모자란 능력을 탓하면서 낮은 자존감에 시달린다. 앙상한 도식으로 제시되는 능력주의와 빈약한 논리에 갇힌 능력주의 비판을 넘어서 어떻게 공정하고 새로운 교육, 능력, 평등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이클 영이 아니라 우리에게 되물어야 하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