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행복의 지혜를 알려주는 세네카의 조언!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진정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와 같은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을 우리 마음속에 던져주는 책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이런 물음에 세네카는 “진짜 행복한 삶이란 신뢰할 만하고 올바른 판단에 바탕을 두고 있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책에 소개된 세네카의 주옥같은 글들을 읽다 보면 지금 나에게 닥친 여러 가지 고민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가끔 내가 가진 행복이 남들보다 작은 것 같아서 속상할 때, 급작스럽게 찾아온 고난을 이기지 못해 좌절할 때 이 책을 한번 읽어보자. 세네카의 조언이 가슴 깊이 스며들어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그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 자신에게 묻는다면 ‘이성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며 욕망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원하는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라고 한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고 널리 알려진 길이라고 하지만 속임수인 경우가 빈번하다고 토로한다. 또한 쾌락의 유혹에 휩쓸리지 말고 미덕을 맨 앞자리에 두고, 말로만 미덕을 외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부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돈이 많은 것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타인의 잘못을 헐뜯고 평가할 시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독자들도 세네카의 진심 어린 충고와 논리적인 고찰을 살펴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계기를 얻길 바란다.
목차
1장 무작정 남이 하는 대로 따라 살지 말라
1 ―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2 ― 인생 여정은 여타의 여행과는 다르다
3 ― 그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향하지 않아야 한다
4 ― 군중과 멀찌감치 떨어져 건강한 삶을 회복하자
5 ― 무엇이 최선인지 꼼꼼히 따져 물어야 한다
6 ― 영혼의 눈으로 진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7 ―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선
8 ― 인생의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9 ― 자연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10 ― 최고의 선이란 무엇인가?
11 ― 명예로운 것을 유일한 선으로 여겨야 한다
12 ― 소소하고 일시적인 쾌락과 고통이 사라져야 한다
13 ― 쾌락을 정복하면 고통도 정복된다
14 ― 진정한 선으로 인해 생겨나는 부드러움과 쾌활함
15 ― 욕망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16 ― 운명의 여신이 위협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2장 쾌락은 나약하고 쉽게 쓰러진다
17 ― 쾌락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18 ― 미래에 다가올 쾌락에 정신이 팔리지 않는다
19 ―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20 ― 쾌락과 미덕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21 ― 미덕은 절대로 쾌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2 ― 미덕과 쾌락을 하나로 합치려 하지 말라
23 ― 쉽게 소멸하는 쾌락에는 본질이 존재할 수 없다
24 ― 쾌락은 가치 있는 삶의 안내자가 아니다
25 ― 쾌락과 욕구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26 ― 최고의 선을 이루면 쾌락의 위협이 사라진다
27 ― 미덕이 가져오는 쾌락은 그저 덤일 뿐이다
28 ― 미덕은 오직 그 자체를 바란다
29 ― 쾌락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채로 사는 바보들
30 ― 쾌락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31 ― 한낱 쾌락의 뒤를 따르면서 미덕을 논하지 말라
32 ― 쾌락과 미덕이 불러오는 완전히 다른 결과들
3장 쾌락이 아닌 미덕을 맨 앞자리에 두자
33 ― 쾌락과 미덕을 애써 결합시키려 하지 말라
34 ― 쾌락을 찬양하는 것이 위험한 까닭
35 ― 쾌락을 충족시키기에 자연은 턱없이 부족하다
36 ―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쾌락이라고 믿는 사람들
37 ―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38 ― 미덕이 모두를 이끌 수 있도록 하라
39 ― 미덕이 맨 앞자리에서 기준점을 잡도록 하라
40 ― 쾌락을 섬기는 노예로 전락하지 말라
41 ― 쾌락을 위해 자신을 팔아넘기는 사람들
42 ― 미덕과 쾌락이 합쳐져 최고의 선이 될 수는 없다
43 ― 소소한 쾌락에 흔들려서는 미덕은 있을 수 없다
44 ― 미덕의 계단을 올라서야만 최고의 선이 가능하다
45 ― 인생의 장애에 부딪쳤을 때 지나치게 흥분하는 사람들
46 ― 가혹한 운명 앞에서도 결코 당황하지 말라
47 ― 진정한 행복은 미덕 안에 존재한다
48 ― 미덕 하나면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충분하다
4장 완벽하지 않기에 나의 악덕을 곱씹다
49 ― 왜 실제 삶이 아닌 말로만 미덕을 외칩니까?
50 ― 하루의 잘못된 행동 속에서 악함을 곱씹어본다
51 ― 제일 먼저 나의 악덕을 곱씹어보려고 한다
52 ― 악의로 가득한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53 ― 나는 운명이 정해준 길을 향해서 떠난다
54 ― 현인들을 비난하는 사악한 자들의 악행
55 ― 철학의 추구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56 ― 비록 넘어지더라도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자들
57 ― 내가 가진 것이 모든 이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다
58 ― 세상의 이목이 아닌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59 ― 선한 양심과 고귀한 염원을 진정 사랑하다
60 ― 거사를 이루려고 했으나 아쉽게 추락하다
61 ― 선한 자들에게 상처를 남기려는 이들의 말로
5장 부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자
62 ― 부를 완전히 등한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63 ― 굳이 재산을 거부하지 않고 미덕을 실행하다
64 ― 현인이 부유하다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65 ― 부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들 중 하나다
66 ― 부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67 ― 지혜로움은 가난과 직결되는 게 아니다
68 ― 행운의 여신이 베푸는 친절을 거부하지 말자
69 ― 불명예스러운 부는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
70 ― 그저 내키는 대로 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71 ― 선행을 베풀 때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72 ― 자연은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말한다
73 ― 부유함이 선은 아니지만 유용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74 ― 왜 부를 선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가?
75 ― 맨발로 다니기보다는 제대로 옷을 갖춘다
76 ― 고통을 억누르며 살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즐긴다
77 ― 기왕이면 더 만족스럽고 즐거운 것이면 좋겠다
78 ― 현인은 돈의 주인이 되지만 바보는 돈의 노예가 된다
79 ― 내가 가진 재물에 넋이 나가면 안 된다
80 ― 현인도 부를 빼앗길 수 있지만 진정한 재산은 그대로다
6장 타인의 악함을 평가할 여유가 없다
81 ― 최선을 다해서 나를 고양시켜나갈 뿐이다
82 ― 남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승리자가 되고 싶다
83 ―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84 ― 선을 찬양하는 게 힘들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라
85 ― 그들이 나를 공격해 내 명성이 더욱 빛나다
86 ― 타인의 악함을 평가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가?
87 ― 왜 자신의 악덕은 살피지 못하는가?
88 ― 남의 악덕에 관심을 가지면 당신의 영혼이 위험하다
책 속으로
얼마나 좋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또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도 말아야 한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의 눈으로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하라. 언젠가 영혼이 잠시 뒤로 물러나 속내를 고백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다소 자책감은 들겠지만 이렇게 진실을 고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을 돌이켜보니, 차라리 벙어리였으면 싶다. 내가 했던 모든 기도들이 적들의 저주와 같고, 내가 두려워했던 일들은 알고 보니 대단히 위대한 것들이었다. 많은 이들과 적이 되었지만, 이후 적개심을 버리고 사악한 것과도 우정을 나누는 것이 가능하리라 믿고 다시 우정을 쌓았다. 하지만 나 자신과는 아직도 적으로 지내고 있다. 수많은 군중들 사이에서 눈에 띄고 싶어 죽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 결과 스스로를 악의에 노출시키고 상처받기 쉬운 틈새를 보인 꼴이 되었구나.” --- pp.26~27
인간이 가진 선의 개념은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이는 군대가 똑같은 시간에 작전 지역에 배치되지만, 때로는 멀리 떨어진 곳에 때로는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때로는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형태로 혹은 중앙을 비운 동그란 원형으로, 아니면 적진을 앞에 두고 직선으로 길게 정렬되어 있는 것과 같다. 병사들이 어떤 형태로 정렬되든지 그 힘은 다르지 않으며, 똑같은 이유로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인간이 가진 최고의 선이라는 개념도 때로는 조금 크게 확대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압축되어 짧게 표현될 수도 있다. “최고의 선이란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을 무시하고 미덕을 즐기려는 마음가짐에 있다.”라고 말하거나, “최고의 선이란 절대로 흔들리지 않으며, 경험이 풍부하고 차분하게 행동하면서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마음의 힘을 말한다.”라고 해도 본의는 똑같다. --- p.32
최고의 선을 쾌락과 동일한 선상에 두었던 사람들도 그것이 선에게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자리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쾌락은 미덕과 따로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즐겁게 살지 않고서는 명예롭게 살지 못하고, 명예롭게 살지 않으면 즐겁게 살지 못한다고 억지 주장을 한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것을 어떻게 하나의 수레에 담으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왜 쾌락과 미덕을 따로 떨어트려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인가? 모든 선한 것들이 미덕에서 비롯되며, 우리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들이 미덕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인가? 만약 미덕과 쾌락이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로 즐겁지만 명예롭지 못하며, 반대로 명예롭지만 고통을 겪어야만 힘들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존재하겠는가? --- p.47
이성이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뾰족한 출발점이 없기 때문에 보통은 감각의 자극을 받아서 다시 내면으로 복귀한다. 온 세상을 품고 우주를 좌우하는 신조차 외부를 향해 나아가지만, 어디로 가든 결국 내면을 향해 돌아오게 마련이다. 우리의 영혼도 그렇게 움직이도록 하라. 감각을 따라서 외적인 것들을 향해 나아갔다가 외적인 것과 스스로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라. 이런 삶의 방식을 통해서 자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소소한 에너지와 힘이 생긴다. 또한 자아와 대립하는 대신 의구심을 품지 않아도 되는 확고한 의견과 개념, 그리고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성은 스스로를 조화롭게 하고 다른 모든 것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만들어, 말 그대로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잘못 뒤틀리거나 이성을 흔들고 위협하며 넘어트리려고 하는 온갖 위협들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 pp.54~55
누군가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다. “많은 잡념들이 영혼을 어지럽힐 테니 그들도 힘들 겁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해서 마음이 불안할 테니까요.” 나 또한 그 부분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고 변덕스럽고 만날 후회만 일삼는 자들은 짜릿한 쾌락을 맛보고 싶어할 것이다. 본인들은 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만큼 갖가지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오히려 극도의 광기에 휩싸여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신이 나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현인들이 느끼는 쾌락은 편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활기가 느껴지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아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쾌락은 일부러 부를 수도 없으며, 만약 쾌락이 스스로 다가온다고 해도 쾌락을 느낀 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지도 못한다. 현인들이란 쾌락을 맛보는 순간에도 진지한 인생살이에 다소간의 농담과 즐거움을 더하듯 마구 뒤섞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 pp.66~67
미덕과 쾌락을 평등하지 않은 상태로 결합시키는 자는 선의 강한 부분을 떼어내 다른 나약함에 가져다 붙이는 식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유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 완벽해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유는 행운의 여신의 도움 없이는 견딜 수 없게 되고 그 자체로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다. 결국에는 불안과 의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행여 예기치 못한 불운이 닥쳐 모든 게 바뀌면 어쩌나’ 하고 근심걱정으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된다. 이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곳 대신 불안하고 흔들리는 밑바탕 위에 미덕을 세워두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행운의 여신에 대한 기대, 육체에 온갖 영향을 주는 다양한 변화보다 더욱 불안정한 것이 어디 있으랴? 소소한 쾌락과 고통에도 흔들린다면, 어떻게 신에게 복종하고 어떠한 일도 흔쾌히 받아들이며, 불평불만 없이 운명에 순응하고 본인의 불운을 진실한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고향을 지키는 수호자나 승자가 될 수 없으며, 제일 친한 벗을 변론할 수도 없는 법이다. --- pp.85~86
“그럼 말과 행동이 다른 거군요.”라고 누군가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가장 고귀한 것들을 무조건 비난하기 바쁜 사악한 자들은 들으라. 그대들이 말하는 것은 과거 플라톤, 에피쿠로스, 제논 또한 들었던 것들이다. 그들 또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미덕에 대한 것이지 나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다. 내가 악덕을 비난하려고 할 때는 제일 먼저 나 자신의 악덕을 곱씹어보려고 한다. 앞으로도 가능한 올바른 방식으로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독설이 가득한 악의를 보인다고 해도 최상의 것을 위해 살려는 나를 끌어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당신은 그 독으로 스스로를 죽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까지 죽이려고 하지만, 살고자 하는 인생을 향해 나아가려는 나의 마음과 미덕을 찬양하며 저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가고자 하는 나를 그 무엇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 pp.101~102
현인들의 삶이나 누군가의 죽음은 악의에 찬 무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그뿐인가. 탁월한 업적을 세워 위대한 명성을 얻은 자들을 두고 이방인을 마주한 개처럼 짖어대기 바쁘다. 타인의 미덕은 악의에 가득 찬 자들이 저지르는 온갖 사악한 행동에 대한 비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끌어내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질투에 눈이 멀어서 고귀한 것들과 자신의 오명을 비교해보지만,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해악이 될지는 미처 알지 못한다. 만약 미덕을 찬양하는 자들이 그토록 탐욕스럽고 욕심이 많으며 야망에 눈이 멀었다면 미덕이라는 이름 자체도 싫어하는 자들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그들은 말만 번드르르할 뿐, 그 말을 제대로 지키며 사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한다. 수없이 많은 풍랑을 견디고 살아남은 위대한 자들을 용감하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현인들은 십자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사악한 자들은 자기 손에 못을 박고 있는 꼴이다. --- pp.106~107
그들이 세운 이상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자연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친구들에게는 기쁨을 주고 적들에게는 너그러움과 관용을 베풀 것이다. 또한 타인이 관용을 구하기 전에 먼저 베풀고, 예의바른 청을 받으면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전 세계를 고향으로 여기고, 신들이 세상을 주관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저 위에서 나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를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숨을 거두어야 하는 순간이 오거나 혹은 이성의 목소리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면 순순히 따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양심과 고귀한 염원을 진정 사랑했으며, 나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의 자유도 침해하지 않았노라고 증언할 것이다.”--- p.114
“어떠한 이유로 철학에 헌신하면서 여전히 부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까? 왜 재산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요? 왜 건강을 하찮게 생각하라고 말하면서 그리 건강에 신경을 쓰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씁니까? ‘사는 곳을 바꾸는 것이 그리 괴로운 일인가?’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은 고향에서 늙어가고 싶어하지요? 수명이 짧건 길건 아무 상관없다고 단정지어 말하면서도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수명을 연장하며 평화롭게 늙어가려고 합니까?” 물론 그런 부분들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지 완전히 등한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삶에서 여러 부분에 집착하지 않고 살다 보면 오히려 친절한 손님처럼 아무 말 없이 따라와주게 마련이다. 언제든 때가 되어 돌려달라고 했을 때, 불평불만 없이 순순히 내어준다면 행운의 여신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안전히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 pp.121~122
현인은 불명예스러운 것이라면 한 푼도 집안에 들이지 않겠지만, 행운의 여신이 준 선물이나 미덕의 결실로 얻은 것이라면 엄청난 재산이라도 굳이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러 좋은 것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정직한 재산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해야 마땅한 일이다. 현인은 진부한 사람들처럼 재산을 떠벌리지 않을 것이며, 괜히 소심해지고 겁이 나서 선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처럼 재산을 감추지도 않을 것이며 문 앞에서 발로 걷어차지도 않는다.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한단 말인가? “돈 따위는 필요 없어.” 혹은 “돈이 있어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라고 말해야 할까? 마치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는 사람도 마차에 타는 것을 좋아하듯이 가난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왕이면 부자가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현인은 재산을 소유하되 언제든지 훨훨 날아가버릴 수 있는 덧없는 것으로 여기며, 그 재산이 다른 사람이나 스스로에게 짐이 되는 것은 피할 것이다. --- pp.132~133
나는 행운의 여신 자체를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더 좋은 부분을 취하고 싶다. 무슨 일이 생기든 선한 것으로 만들겠지만 기왕이면 더 만족스럽고 즐겁고 다루기 쉬운 것이면 좋겠다. 아무런 노력 없이는 미덕을 얻을 수 없지만 미덕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때로는 박차를 가해야 하고, 때로는 고삐를 매어 다스려야 한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는 지지대가 필요하고 반대로 내려갈 때는 몸을 지탱할 것이 필요한 것처럼, 때로는 미덕도 가파른 언덕 위를 오르고 내리막으로 향하기도 한다. 인내심과 결단력, 끈기 등의 미덕은 운명의 여신과 갖가지 어려움에 어떻게든 맞서 싸워 이겨내 언덕 위를 오르려고 노력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자애로움과 절제, 그리고 친절함은 가파른 언덕 아래로 향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미덕들의 경우에는 아래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박차를 가해야 하지만, 반대로 고난에 맞서 싸우는 미덕들은 고삐를 잡아 한껏 부추겨야 한다. --- pp.142~143
우리는 지혜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영예롭고 용감하며, 당당히 주장하는 바를 일부러 곡해해서 들을 필요가 없다. 지혜를 위해 헌신하는 자와 이미 지혜를 습득한 자가 다르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 지혜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입 밖으로 꺼내는 말들은 훌륭하나, 나는 지금도 악덕의 늪에 빠져 있다. 그러니 원칙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마시길. 나는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를 고양시키고 인격을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느 정도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그때는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고 강요해도 될 것이다.” 반대로 최고의 선을 습득한 사람들은 이와 다른 말을 할 것이다. “여러분보다 나은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사악한 자들의 비판을 얻어내는 것에 성공했으니, 올바른 본성을 가졌다는 증거인 셈이다.” --- p.151
나는 얕은 바닷물 사이에 외딴 바위처럼 서 있다. 오랜 세월 끝없이 파도가 몰아쳐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바위처럼. 누구든 강한 파도처럼 내 몸을 공격해보아라. 끝까지 견뎌내어 마침내 이겨내고 말리라. 굳건하고 강한 것에 제 몸을 던지는 자는 스스로의 힘만 소진할 뿐이다. 그러니 사악한 무리들이여, 화살이 꽂힐 만큼 물렁하고 부드러운 목표물을 찾아보아라. 그런데도 타인의 악함을 뜯어보고 이를 평가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단 말인가? “왜 저 철학가는 넓은 저택을 가지고 있는가? 왜 저 사람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잘 차려 먹는가?” 자기 얼굴에 있는 커다란 땀구멍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얼굴에 있는 뾰루지는 눈에 잘 띄는가? 이는 온몸에 흉측한 곰보 자국이 난 사람이 아름다운 육체에 있는 작은 주근깨와 사마귀를 보고 비아냥거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출판사 리뷰
저자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는 기원전 4년 스페인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성장했으며,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이기도 했다. 세네카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정치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스토아 철학자인 아탈로스,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자인 소티온에게서 철학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치 무대에 나설 나이가 되었을 때, 천식이 심해 6년간 휴양생활을 했다. 그 후 다시 로마로 돌아온 세네카는 정치적인 시련을 겪었지만 네로가 황제에 등극하고 그의 최측근이 되면서 권력의 정상에 오른다. 그는 플라톤, 에피쿠로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혼과 육체의 구별을 강조하면서, 언제나 도의를 부르짖으며 윤리 문제에 힘썼다. 또한 세네카는 스스로 세속에 물들면서도, 끝내 인간이 인간다운 까닭은 올바른 이성과 유일의 선(善)인 덕(德)을 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는 스토아주의를 역설하고, 모순과 불안에 찬 생애를 보냈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무작정 남이 하는 대로 따라 살지 말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가지 말라고 하며, 인생의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 2장 ‘쾌락은 나약하고 쉽게 쓰러진다’에서는 미래에 다가올 쾌락에 정신이 팔려 현재의 삶에서 최상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3장 ‘쾌락이 아닌 미덕을 맨 앞자리에 두자’에서는 진정한 행복이 미덕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쾌락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토로한다. 4장 ‘완벽하지 않기에 나의 악덕을 곱씹다’에서는 하루 동안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고 말한다. 5장 ‘부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자’에서는 내가 가진 재물에 넋이 나가서는 안 되며, 더 탐하거나 덜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설파한다. 6장 ‘타인의 악함을 평가할 여유가 없다’에서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며, 자신의 악덕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을 읽고 진정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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