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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 잊힌 사건을 찿아서

동방박사님 2022. 9. 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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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그러나 잊힌
34꼭지에 담긴 독립운동 사건들

『독립운동 열전 1―잊힌 사건을 찾아서』는 독립과 해방을 위해 온힘을 기울인 인물들, 개인의 일신을 위해 그들을 배신했던 이름들,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갖가지 사건들을 찾아 떠난 책이다. 구 코민테른 문서보관소의 한국 관련 자료와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기록을 비교?검토하는 연구에 힘을 기울여온 저자 임경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과)는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5쪽) 중 기억되어야 함에도 잊힌 사건들을 34꼭지에 담아 펼쳐 보인다.

저자는 특히 한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주목한다. “지도적 지위에 있던 사람이나 영웅적 업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발굴”(7쪽)한다. 또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주된 지위를 부여한다. 독립운동에 몸 바친 사람들 중 다수가 사회주의자였음에도 오랜 시간 그들이 공식적인 독립운동 역사서에서 배제되어왔음을 지적하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 같은 노력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독립운동 사건과 무명 독립운동가의 헌신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목차

『독립운동 열전』을 펴내면서

1장 망명

01_『소년』 잡지 권두시의 비밀
02_『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의 망명길
03_상하이 망명객들의 삶―심훈의 소설 『동방의 애인』

2장 김립 암살 사건

04_누가 독립운동가를 쏘았는가―김립 암살 사건 1
05_동지가 동지를 쐈다―김립 암살 사건 2
06_모스크바 지원금의 진실―김립 암살 사건 3
07_독립군 부대를 107개나 더 만들 수 있었다―김립 암살 사건 4

3장 15만 원 사건

08_일제의 돈을 갖고 튀어라!―‘15만 원 사건’ 1
09_밀고로 스러진 무기 마련 꿈―‘15만 원 사건’ 2
10_의병투쟁의 거목 엄인섭의 두 얼굴―‘15만 원 사건’ 3

4장 의열투쟁

11_경성 천지를 뒤흔든 김상옥의 총격전
12_의열단 사건이 경이로운 이유
13_불발에 그친 의열단의 황포탄 의거
14_다나카 저격범 오성륜의 탈옥
15_혁명가로 키우려던 김익상의 딸은 어디로 갔는가

5장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16_독립지사 정순만과 개척리 살인 사건
17_개척리 살인 사건의 여파, 이상설·안창호 등돌리다
18_독립운동가 찍어낸 일본 비밀경찰, 기토 가쓰미
19_첫 번째 독립 정부 계획―대한광복군 정부와 권업회

6장 배신

20_역사에 정의는 있는가, 밀고자 오현주
21_임시정부 파괴공작에 나선 김달하
22_3·1운동 학생대표 김대우의 변절
23_젊은 여성 동지를 팔아넘긴 독고전
24_밀정이 된 독립운동가 김성근

7장 비밀결사

25_조직 살리려 안간힘 쓴 책임비서 김재봉
26_조선공산당 제2대 책임비서 강달영의 하루
27_비밀결사를 다시 일으킨 수배자, 권오설
28_‘혁명의 별’을 새긴 강철관에 잠든 채그리고리
29_공과 엇갈리는 제4대 책임비서 안광천

8장 옥중투쟁

30_법정에서도 당당히 항변했던 박헌영
31_고문에 희생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
32_예방구금에 맞서 105일 단식투쟁으로 옥사한 이한빈

9장 국제주의

33_코민테른 특사 존 페퍼의 조선 여행
34_12월테제 조선어 필기본의 발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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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임경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사학과 78학번. 민청련 성대 78학번 계반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정책실 산하 [민주화의 길] 편집부에서 일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수선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사에 오랫동안 천착해『이정 박헌영 전집』(전9권, 역사비평사) 간행 과정에 참여했을 뿐...
 

책 속으로

이 책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긴 시대에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이야기이지요
--- p.5

『소년』 잡지 권두시는 바로 신민회 망명자들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었다. …… 기약 없이 망명길에 오르는 동지들을 바라보는 젊은 최남선의 가슴 속에서는 격정과 비애감이 끓어올랐다. 그는 망명자들을 축복하는 두 편의 시를 썼다. 「나라를 떠나는 슬픔」과 「태백의 님을 이별함」이 그것이다
--- p.20

이미륵은 …… 유럽 유학길에 올라 독일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 그는 일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헌신했다. 대지주의 후손이자 의사라는 전문직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위한 싸움에 투신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은 그의 희생과 헌신에 빚지고 있다. 공공선을 위해 기꺼이 소중한 가족과의 생이별까지 감수했던 이미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p.29

작가 심훈은 1920~1921년 상하이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다. 심훈 자신이 상하이 망명객이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녹여 이 소설(『동방의 애인』)을 썼다. 상하이의 거리 풍경에 관한 묘사라든가, 상하이에서 막 발아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 및 단체 활동 양상에 관한 서술 등을 보라. 어떤 사료보다도 생생하게 역사적 진실을 전해준다. …… 이렇게 『동방의 애인』은 1920년 상하이 한인 망명자 사회의 내면, 특히 사회주의가 처음으로 수용되어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형상화한다
--- p.37

김립에게 방아쇠를 당긴 사람들은 …… 바로 오면직과 노종균이었다. 그들은 임시정부에 소속된 ‘경호원’이었다. …… 당시 상하이에서는 …… 경호원은 임시정부 내무부 소속 직원으로서 경무국장의 지휘를 받아 공공업무에 종사하는 사람, 다름 아닌 경찰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 p.51

왜, 무엇 때문에 그랬는가? 경무국장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모스크바 자금 40만 루블은 소비에트러시아 정부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지급한 것인데,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와 비서장 김립이 공모하여 횡령했다고 한다. 이동휘와 김립은 임시정부 ‘공금 횡령범’들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립은 그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혐의가 있었다. 김구에 따르면, 김립은 비리를 저질렀다. 김구는 김립이 “북간도 자기 식구들을 위하여 토지를 매입”했고, “상해에 비밀리에 잠복하여 광동 여자를 첩으로 삼아 향락했”다고 비난했다
--- p.53

김립은 내부의 적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그의 죽음은 독립운동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왔다. 상하이 망명자들 사이에 존재했던 동지적 유대감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정견과 조직이 다르면 한때 동료였던 사람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위구심을 만연케 했다. …… 그뿐인가. …… 김립의 죽음은 모스크바 자금의 추가 수령을 불가능하게 했다. 김립 암살 사건을 계기로 모스크바 자금 집행에 관한 의혹이 제기됐고, 이 의혹을 중시한 코민테른은 자체 감찰을 실시했다. 그 결과 약속된 총 지원금 가운데 잔여액의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 p.79

김립 암살 사건은 일종의 국가폭력이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내각의 결정에 의거하여 경무국이 집행한 이 사건은 한국 독립운동에 큰 위해를 가져온 불행이었다. …… 김립은 오늘날에도‘공금 횡령범’이라는 불명예 속에 갇혀 있다. 사후 근 백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범한 정책적 과오의 그늘 속에 놓여 있다. …… 그를 억누르고 있는 허위의 낙인을 지워내고, 그 자리에 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는 꽃을 한 다발 놓아야 할 때이다
--- p.80

15만 원 사건의 네 주역이 김하석과 더불어 중국-러시아 국경을 넘은 것은 사건 발생 후 3일째 되던 날이었다. …… 기선에 탑승한 네 청년은 안도감을 느꼈다. 일본은행의 현금 수송대를 습격하여 얻은 자금으로 조선 독립군을 무장시킨다는,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계획이 성공한 것만 같았다
--- p.93

엄인섭嚴仁燮이었다. 15만 원 사건 주인공들의 거처를 일본 총영사관에게 알려준 사람이 말이다
--- p.107

엄인섭의 밀고로 체포된 ‘15만 원 사건’ 주역들은 금각만 부두에 정박 중이던 일본 군함 지쿠젠마루호로 압송됐다. …… 청년들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순순히 불지 않았다. 자신들을 돕고 지원해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했다
--- p.112

15만 원 사건에 직접 가담한 윤준희, 임국정, 한상호 3인에게는 사형을, 현금 수송 정보를 제공한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사무원 전홍섭에게는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선고가 이뤄진 지 4개월 20일이 지난 뒤였다. 사형이 집행됐다. 1921년 8월 25일이었다. …… 서대문형무소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사형장에서 세 청년은 영영 눈을 감았다. 세 사람의 시신은 서대문형무소 사형수들이 으레 묻히는 홍제동 밖 신사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 p.113

김상옥은 죽는 순간까지 권총을 놓지 않은 채 두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검시관은 김상옥이 오른손 둘째손가락을 방아쇠에 건 상태로 힘껏 쥐고 있었다고 썼다
--- p.127

국경도시 신의주와 식민지 수도 경성, 두 도시에서 대규모 폭발물이 은닉되어 있었음이 드러났다. 신의주경찰서는 3월 14일 밤에, 경기도 경찰부는 15일 새벽에 일제히 검거 작전에 착수했다. 그 결과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올렸다. 폭탄 36개, 폭탄장치용 시계 6개, 권총 5자루, 실탄 155발, 뇌관 6개, 「조선혁명선언」과 「조선총독부 관공리에게」라는 제목의 불온문서 900여 매를 압수했다. 또 연루 혐의자로 18명의 조선인을 체포했다
--- p.130~31

1922년 3월 28일 다나카 일본군대장 저격 사건이 발발했다. 이 사건을 ‘황포탄 의거’라고 부른다. 사건 직후 의거의 주역 중 두 사람이 체포됐다. 김익상(28)과 오성륜(23)이었다
--- p.145

과연 김익상은 그의 가족과 재회를 했던 것일까? 제 한몸과 가족을 희생하여 피억압 동포의 해방을 꾀했던 한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유언은 끝내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던 것 같다. “딸을 공부시켜 여성 혁명가가 되도록 교도하기를 부탁한다.” 이 유언을 이행해야 할 사람은 이제 의열단장 김원봉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해방된 세상에 살고 있는 공동체 성원들이 마땅히 지키고 이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다
--- p.164

개척리의 두 살인 사건은 독립운동에 치명상을 입혔다. 운동권의 두 중진이 목숨을 잃어서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바로 독립운동의 예기를 꺾어버린 점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에 걸쳐 해외 한인들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려던 거창한 노력이 좌절됐다. 각지에 국민회를 결성하고, 그를 통해 반일역량의 통일을 도모하던 움직임이 분열되고 위축됐던 것이다
--- p.184

기토 가쓰미가 탁월한 비밀경찰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바로 밀정 덕분이었다. 그는 밀정들을 선발하고 활용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밀정 네트워크를 짜는 음습한 업무에 능통했던 것이다
--- p.192

갑인년에 전쟁이 발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쟁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쟁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정세가 급변했다. 1914년 8월 1일 독일과 개전한 러시아는 전쟁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러시아와 일본은 연합국의 일원이 됐다. 적이 아니라 같은 편이 된 것이다. 러시아는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여 연해주가 반일운동의 기지가 되는 것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영토 내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나 단체는 탄압의 대상이 됐다. …… 비밀결사 대한광복군 정부의 독립전쟁 계획은 넘을 수 없는 장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 p.204

오현주는 결국 남편과 형사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부부와 언니 오현관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애국부인회의 비밀 문건을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 1919년 11월 28일이었다. 애국부인회 구성원들에 대한 일제 검거가 개시됐다. 회장 김마리아를 필두로 전국에 걸쳐 70명의 애국부인회 회원들이 체포됐다
--- p.213

김달하金達河 사건은 1925년 3월 30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북쪽 안정문 인근의 한 주택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가리킨다. 반일 조선인 사회의 유력자로 알려진 57세 초로의 남자가 일본 밀정 혐의를 받고 한때 동지였던 사람들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 p.218

반민족행위자 김대우의 탄생은 바로 3·1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던 4월 9일 예심판사와의 신문 도중에 이뤄졌다. 조선 독립을 더이상 희망하지 않는다는 고백 속에서, 현존 권력관계에 순응하여 공동체의 안위와는 관계없이 일신의 이익만을 도모하겠다는 결심 속에서 태어났다
--- p.237

독고전이 …… 비밀접선에 관한 정보를 일본 형사에게 넘겨준 탓에 약속 장소에 나갔던 동지가 체포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체포된 ‘동무’는 누구인가. 김명시金命時였다.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하고 식민지 조선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뛰어든 25세 여성, 기나긴 옥고를 겪은 뒤에도 굴하지 않고 해외에 망명하여 항일 무장투쟁에 가담한 거인이었다
--- p.242

김성근은 해방 이후까지 살았다. …… 사망에 이르기까지 일본영사관 경찰부의 밀정 노릇을 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그러기는커녕 사후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1963년 3월 1일 독립유공자상훈심의회의에서 건국공로훈장 단장短章을 수여받았다. 오늘날의 건국훈장 독립장에 해당하는 높은 훈격이었다. …… 김성근은 지금도 독립유공자로 등재되어 있다
--- p.253

1925년 12월 19일 밤이었다. 경성 돈의동에 잠복 가옥을 정하고 당무에 여념이 없던 김재봉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위해 종로에 나왔다가 그만 종로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 그래도 천만다행인 게 있었다. 체포되기 며칠 전에 후계 집행부를 조직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김재봉은 체포와 망명 탓에 결원이 된 중앙집행위원을 보선했다. 후계 책임비서로는 경남 진주의 열렬한 혁명가이자 사회주의자인 강달영을 선정했다
--- p.262~63

일본 경찰의 암호 해독 기술이 알고리즘을 뚫었을 때,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그(강달영)의 결심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미쳐버렸다. 정신이상자가 되고 말았다. 옥중에 있을 때도 그랬고, 출옥 후에도 그 증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쓸쓸히 지내다가 1940년 7월 12일, 향년 5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진주 3·1운동의 유공자, 조선 노동운동의 지도자, 평생을 헌신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혁명가, 그의 명복을 빈다
--- p.271

권오설 덕분에 비밀결사 고려공청은 12명 구성원이 투옥되는 피해를 입었지만, 별다른 위축 없이 신속하게 역량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 p.281

사진이 남아 있다. 등신대의 철제 관이 세워져 있고 7인의 청년이 둘러싸고 기념 촬영을 했다. 채그리고리와 비밀결사를 함께했던 동료들로 보인다. 철제 관 머리맡에는 혁명을 상징하는 별이 양각되어 있었다
--- p.291

안광천 책임비서 시기는 조선 사회주의운동사의 전성기 중 하나였다. 그의 재임과 동시에 사회주의운동 진영이 하나로 통일될 수 있었고, 그의 사임과 더불어 조선공산당이 새롭게 분열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안광천은 조선공산당 성쇠의 척도였다. 또 안광천 책임비서 시기는 전환기이기도 했다. 이전의 내부 다양성이 화요파와 서울파 사이의 갈등으로 대표됐다면, 안광천 이후에는 엠엘파와 비엠엘파의 대립으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 p.300

박헌영의 법정투쟁은 시종 당당했다. 고문과 억압 속에서 심리적으로 짓눌려 있던 피고인들의 자긍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이때 이후로 그는 동지들 사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믿음직한 지도자감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혹한 보복이 뒤따랐다. 박헌영은 공판이 끝난 뒤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했다. …… 자살을 기도하고 자기 똥을 퍼먹는 것과 같은 박헌영의 ‘정신이상’ 현상은 이 폭행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 p.314

박길양朴吉陽은 옥중에서 죽었다. 서른네 살, 한창 나이였다. 1928년 1월 19일 겨울날 새벽 6시에 서대문형무소 차디찬 철창 속에서 숨을 거뒀다. …… 그는 ‘조선공산당 재판’의 피고인이었다. 조선공산당 재판은 1927년 9월 13일부터 이듬해 2월 13일까지 5개월간 계속된, 조선총독부 경성지방법원이 담당한 형사재판이었다. 피고인 숫자가 101인이라 ‘101인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 p.316~17

105일간의 단식 끝에 자기 목숨을 공동체에 바친 사람이 있다. 처절한 단식투쟁을 통해 철벽같이 강고한 지배체제에 맞선 사람이다. …… 일제 식민지 시대에 피억압 민족의 해방운동에 헌신하다가 일본 관헌의 손에 희생된 조선 청년 이한빈李翰彬이다
--- p.325

페퍼는 …… 모스크바에서는 조선에 관한 최신의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제당이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는 낡아서 실제를 반영하지 못했다. …… 그는 유럽인을 조선에 파견하기로 한 국제당의 결정이 애초에 무리였다고 꼬집었다. …… 국제당의 현실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었다
--- p.342~43

12월테제란 1928년 12월 10일에 코민테른 정치비서부가 채택한 조선 문제 결정서를 가리킨다. 조선혁명운동의 기본 방침에 관해 논하고 있는 강령적 문서이기 때문에 ‘테제’라고 불렸다. 이 테제는 일제하 조선 사회주의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기념비적인 문헌이다
--- p.344~46
 

출판사 리뷰

잊힌 독립운동 사건들을 찾아 떠나다

저자는 심훈의 소설 『동방의 애인』을 통해 독립운동을 위해 고국을 떠나 상하이로 망명한 망명객들의 지난했던 삶을 살피고, 동지가 동지를 쐈던 불행한 사태 ‘김립 암살 사건’과 일제의 돈으로 무장투쟁을 꿈꾸다가 밀고로 무산된 ‘15만 원 사건’의 실상을 들춰본다. 경성 천지를 뒤흔든 김상옥의 총격전과 다나카 육군대장을 저격하려 했던 의열단의 황포탄 의거를 통해 의열투쟁의 면면을 둘러보고, 법정에서도 당당히 항변했던 박헌영과 고문에 희생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 예방구금에 맞서 105일 단식투쟁으로 옥사한 이한빈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했던 옥중투쟁을 들여다본다. 임시정부 파괴공작에 나섰던 김달하, 비밀활동 정보를 넘기고 신변 안전을 보장받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초대 회장 오현주, 젊은 여성 동지 김명시를 일제에 팔아넘긴 조선 사회주의운동 1세대 독고전 등 독립운동가들을 배신했던 밀정들의 진상도 파헤친다.

박제화와 영웅 서사 경계 … 무명의 헌신에 주목하다

저자가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은 “무명의 헌신”(8쪽)이다. 저자는 오늘날 독립운동사 저서와 논문 대다수가 “독립운동가 개인이나 독립운동 단체를 돋보이게 하려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도드라지게 부각”하는 “박제화와 영웅 서사”(8쪽)에 힘써왔다고 지적하면서 그러한 작업은 지루하고 권태롭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정의에 헌신했으되 잊혀져버린 이름 없는 투사들”(7쪽)에게 눈길을 준다. 일본은행의 현금 수송대를 습격하여 얻은 자금으로 조선 독립군을 무장하려 했던 ‘15만 원 사건’을 살필 때는 사건의 주역은 아니었지만 현금 수송 정보를 제공하여 결국 무기징역형을 받았던 조선은행 용정출장소 사무원 전홍섭의 활약상을 언급하고, 일본 경찰의 체포 작전을 피해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건의 주역 최봉설에게 블라디보스토크 애국부인회 회장 채계복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묘사한다. 모스크바 유학까지 다녀온, 장래가 촉망되는 간부급 인물로 비밀결사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예방구금(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관헌의 심증만으로 치안유지법 위반의 전력을 가진 사람을 수감할 수 있는 행정처분)에 맞서 무려 105일간 단식투쟁을 감행하고 결국 옥사한 이한빈처럼 낯선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기도 한다.

독립운동가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저자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돌보지 않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가 고초를 겪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 즉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던 어린 자식들, 남편 없이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아내들, 자식을 잃은 고통에 애타하던 노부모에게도 주목한다. ‘15만 원 사건’을 살필 때는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밀정 엄인섭의 밀고로 붙잡혀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건의 주역 임국정의 어머니 ‘임뵈뵈’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다나카 일본군 대장을 저격하려 했던 의열단의 ‘황포탄 의거’를 들여다볼 때는 의거에 가담한 김익상의 남은 가족들이 겪은 비참한 삶을 조명한다. 일제의 고문으로 한창 나이였던 서른네 살에 옥사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박길양의 처절했던 삶을 둘러볼 때는 그의 장례식이 반일운동의 상징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갖가지 방해공작을 일삼던 일본 경찰에 맞서 장례 관련 요구사항을 분명하게 전했던 박길양의 부인 김씨의 용감한 행적도 아울러 언급한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제자리 찾기

저자는 “독립운동사에서 사회주의를 배제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그러기는커녕 정면으로 배치”(7쪽)된다고 강조한다. “일제하 사회주의운동은 마땅히 독립운동사에 포함되어야 할 뿐 아니라 역사적 기여만큼 온당한 지위와 비중을 인정받아야 한다”(7쪽)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 아래 저자는 조선공산당의 역대 책임비서들, 사회주의운동에 매진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꼼꼼하게 훑는다. 조선공산당 조직을 살리려 안간힘을 썼던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 소련 총영사관을 통해 국제공산당과의 교신을 유지하고 업무 인계를 위해 ‘암호일기’를 남겼으나 체포된 후 일본 경찰이 암호를 해독하자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정신이상자가 되고 만 제2대 책임비서 강달영, 당대회에서 선출된 강력한 책임비서로 사회주의 진영 통합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으나 영남친목회 참여 등으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 사임했던 제4대 책임비서 안광천,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일본 경찰의 검거 확산에도 코민테른과의 연락선을 복구하여 별다른 위축 없이 신속하게 고려공청의 역량을 회복하는 데 성공한 권오설, 비주류 사회주의운동의 지도자로 ‘혁명의 별’을 새긴 강철 관에 잠든 고려인 3세 채그리고리 등의 삶은 그동안 외면받았던, 그러나 잊혀서는 안 되는 독립운동사의 또 다른 측면이다.

배신과 변절, 역사에 정의는 있는가

저자는 독립운동가의 삶 반대편에서 배신과 변절을 일삼은 밀정과 밀고자의 삶에도 준엄한 눈길을 던진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나 남편 강낙원의 제의를 받아들여 자기 부부와 언니 오현관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애국부인회의 비밀 문건을 양도하기로 합의하고 김마리아를 포함하여 70명의 애국부인회 회원들을 체포되도록 만든, 그 대가로 요즘 돈 3억 원을 받아 챙기고 반민특위 처벌도 피하고 천수를 누린 오현주,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고 애국계몽운동에도 참여했으나 일본의 밀정이 되어 임시정부 파괴공작에 나섰다가 결국 비밀결사 다물단원들에게 처형된 김달하, 3·1운동 학생대표였으나 친일파이자 대지주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변절하고 만 김대우, 조선 사회주의운동 제1세대 멤버로 1928년 조선공산당 사건 때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으나 국경 연락 책임자로 있으면서 비밀접선에 관한 정보를 일본 형사에게 넘겨 젊은 여성 동지 김명시가 체포되게 만든 독고전, ‘급진 독립운동’에 뛰어들 정도로 뜨거운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일본 경찰의 밀정 노릇을 했던, 그럼에도 문책은커녕 서훈을 받고 독립유공자가 된 김성근의 생애는 역사에 정의는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