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계국가의 이해 (독서>책소개)/5.중동이슬람

팔레스타인 현대사 - 하나의 당, 두 민족

동방박사님 2022. 10. 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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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계급적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객관적이고도 깊이 있게 파헤치는 역사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이자 수정주의 역사학계의 대표 주자인 일란 파페는 기존의 시온주의적 서사를 식민주의로서 강력히 비판할 뿐 아니라 그 대항 서사로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적 서사가 아닌 하위주체(민중, 여성, 노동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를 제안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모두 아우르는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역사 해석과 유럽중심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기존의 관점 모두에서 탈피해 그간에 ‘민족’이라는 외피가 왜곡하거나 감추고 있던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모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이스라엘 민족 내에도 ‘민족’으로 아우를 수 없는 수많은 분열과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감 없이 폭로함으로써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허상을 남김없이 부숴 버린다.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쉽고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넘어 중동 역사에 대한 교과서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인명사전과 용어사전, 연표 등을 수록해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된 낯선 용어들에 독자들이 쉽게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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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감사의 말

서론 : 현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관찰

1 세기말(1856~1900): 사회적 평온과 정치적 드라마
농촌의 풍경과 사람들
팔레스타인 도시와 사회
정치 없는 사회
지역 경제의 세계화
1880년대 ‘현대 팔레스타인’의 정치경제
시민사회의 확산: 현대 오스만 국가의 형성(1876~1900년)
한 시대의 종언: 농촌의 족장과 명사 가문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세력
시온주의의 자극
새로운 십자군: 성전협회, 식민지 개척자, 모리배

2 폭정과 전쟁 사이(1900~1918)
압둘 하미드 치세 말기의 팔레스타인(1900~1908년)
시온주의의 출현
청년투르크당 혁명 직후의 팔레스타인(1908~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팔레스타인

3 위임통치국:식민주의, 민족화, 동거
앨런비의 팔레스타인
도시들의 민족화(1918~1920년)
‘남시리아’의 종말
위임통치 초기(1920~1929년)
정치와 사회가 만나는 곳: 1929년의 분수령
시온주의 집단 거주지의 형성(1929~1936년)
팔레스타인 농촌의 빈곤화(1929~1936년)
지도부와 민족주의의 문제(1930~1936년)
1936년 반란
1939년 백서
민족주의와 조우하다: 동거의 촉구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팔레스타인

4 ‘재앙’과 독립 사이:1948년 전쟁
운스콥 시기
팔레스타인의 인종 청소(1948년 3~4월)
팔레스타인 전쟁(1948년 5월~1949년 1월)
팔레스타인의 인종 청소(1948년 5월~1949년 1월)

5 분할의 시대(1948~1967)
축출과 강탈
반응의 유형: 게릴라 투사, 고립, 흡수
수에즈 전쟁
정치의 혁명화: 제도화되는 저항운동
가짜 팔레스타인해방기구(1964~1968년)
이스라엘 정치의 개간: 국가의 제도화
이스라엘 사회 내 ‘아랍 문화’의 주변화
지옥의 변방: 베두인족과 드루즈인

6 대이스라엘과 점령지 팔레스타인(1967~1987):상위정치의 흥망성쇠
1967년 6월 전쟁
생존을 위한 투쟁: 1967년 전쟁 이후의 팔레스타인 난민
민중 봉기, 게릴라 전투, 테러리즘(1968~1972년)
점령(1967~1982년)
정착과 이스라엘 내부의 논쟁(1967~1973년)
점령하의 생존
팍스 아메리카나, 전쟁과 평화(1973~1977년)
국경 문제: 요르단 선택지와 대이스라엘
미즈라히 혁명
베긴 혁명
의제 사이를 헤쳐 나가다: 팔레스타인의 정치(1967~1987년)
레바논 전쟁과 그 여파(1982~1987년)
금 간 벽: 이스라엘 사회의 양극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1967~1987년)
인티파다로 가는 길

7 봉기와 정치적 결과(1987~1996)
젠더와 계급
오슬로 과정과 그 후
정치의 그늘 아래: 종교, 민족주의, 다문화주의

8 포스트시온주의의 은총의 순간?
학계의 논쟁 : 포스트시온주의 학자들
정치적 배경
학문적 배경
다른 시기의 탈시온주의화
포스트시온주의 시, 팝음악, 문학
포스트시온주의 연극과 영화
포스트시온주의 미디어

9 자살 트랙: 오슬로의 종말과 지옥으로 가는 길
2차 인티파다
자포자기식 순교로 기울다
포스트시온주의의 종언

후기: 아라파트 이후 시대와 새로운 샤론 시대
옮긴이 후기

미주
참고문헌
인명사전
용어사전
찾아보기
연표
 

저자 소개

저 : 일란 파페 (Ilan Pappe)
 
1954년 하이파 출생으로, 부모는 나치의 억압을 피해 독일에서 이스라엘로 건너 온 유대인이었다. 예루살렘의 헤브루 대학을 졸업했으며, 저명한 아랍 역사학자 앨버트 후라니와 로저 오웬의 지도로 옥스포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4년부터 2007년까지 하이파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있었다. 이스라엘 학자로서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에 도전하는 대표적인 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유대인 학자 ...
 
역 : 유강은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미국의 반지성주의》, 《AK47》, 《전쟁에 반대한다》, 《전쟁 대행 주식회사》, 《미국민중사》,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등이 있다.
 
 

출판사 리뷰

팔레스타인 문제는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으로 인해 한층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와 근본 원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언론은 팔레스타인 분쟁의 폭력과 참상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를 전해 주지만 오히려 날것의 폭력 속에서 문제의 본질과 해결 방법을 차분히 숙고해 보는 것은 더욱 더 쉽지 않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여하는 시민사회 진영의 움직임 역시 일방적으로 친이스라엘이나 친팔레스타인의 입장 어느 한 쪽으로 경도되어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은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항 폭력에는 눈을 감아 버리는 모순적 위치에 놓이기 십상이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방관자적(더 나아가서는 공모의) 태도가 이스라엘의 폭력을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아직도 우리에게 이러한 양자의 민족주의를 모두 비판할 줄 아는 대담하고 참신한 관점은 전달된 적이 없다. 이런 선악구도에서는 갈등과 폭력의 순환 고리를 넘어선 해결을 찾기란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후마니타스의 신간 『팔레스타인 현대사』는 이런 모순과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역사서이다. 이 책은 특히 양쪽의 민족주의를 넘어서 계급적 관점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객관적이고도 깊이 있게 파헤치는 역사서로,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이자 수정주의 역사학계의 대표 주자인 일란 파페(그는 우리나라 학계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근 사이드와 촘스키의 찬사를 받으며 미국 학계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춘 스타 지성인으로 등극했다)가 쓴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이다. 그는 기존의 시온주의적 서사를 식민주의로서 강력히 비판할 뿐 아니라 그 대항 서사로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적 서사가 아닌 하위주체(민중, 여성, 노동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서사를 제안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모두 아우르는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설득력을 갖춘 저자이다.

◎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민족주의적 분리 서사를 넘어
언뜻 보기에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역사 해석은 이스라엘 시온주의의 폭력과 유럽중심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기존의 관점에 대한 가장 쉬운 대안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페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의 등장 역시 서구화(곧 근대화)를 통한 민족국가 형성의 필수불가결한 일부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의 역사나 이스라엘 민족의 시온주의적 역사는 팔레스타인 땅 전체의 역사인 체하지만 그것이 어느 쪽에서 서술되든지 간에 다수의 역사가 아닌 소수의 역사, 여성의 역사가 아닌 남성의 역사, 빈자의 역사가 아닌 부자의 역사일 뿐이다.

파페는 이러한 양자의 민족주의적 서사에서 탈피해 그간에 ‘민족’이라는 외피가 왜곡하거나 감추고 있던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참화의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사회 내부의 모순에 대해서도 신랄하다. 즉, 이스라엘 민족 내에도 ‘민족’으로 아우를 수 없는 수많은 분열과 차별(아랍계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이스라엘 민족 내의 계급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가감 없이 폭로함으로써(심지어 홀로코스트에서조차 유대계 민족은 모두 같은 존재가 아니었으며 선택적으로 이주가 가능했다)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허상을 남김없이 부숴 버린다.

◎ 엘리트의 역사를 넘어, 노동자 · 여성 · 민중의 역사 쓰기
파페의 현대사에서 팔레스타인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들은 ‘민족’이 아니라 ‘민중(서발턴/하위 주체)’이다. 이들은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여성, 아동, 농민, 노동자, 평범한 도시 거주자, 평화운동가, 인권 활동가”이다. 반면 ‘악당’은 오만한 장군, 탐욕스런 정치인, 냉소적인 외교관, 여성 혐오적인 남성들이다. 이들은 인종, 성별, 계급, 직업, 문화 등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다. 이들은 민족적 정언명령 때문이 아니라 훨씬 더 세속적이고도 인간적인 이유에서 땅이나 자기 재산에 집착한다. 그들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 가족의 땅에 머무르는 것 등은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또한 파페는 이를 통해 기존의 엘리트의 역사를 넘어서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의 근대화 서사는 대부분의 근대화가 그렇듯 ‘민중’의 이야기가 아니라 엘리트의 이야기였다. 엘리트들은 자기들 세계에 관해 문자화된 기록을 남겼고 역사가들은 이를 통해 엘리트의 역사를 마치 팔레스타인 전체의 역사인 양 구성해 냈다. 하지만 파페가 보기에 현지 엘리트들은 근대화라는 연극에서 부차적인 역할만 할 뿐 주인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연배우는 외국인들이었으며 여기서 엘리트들은 서로 경쟁하느라 영국과 시온주의자들에 맞서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무능한 존재였다. 더구나 엘리트들이 만들어 낸 사건들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며, 또 같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라는 점, 더구나 전쟁이나 평화협정과 같은 사건들보다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이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강조한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의 역사를 넘어 연대의 역사를 찾아서
파페는 또한 복잡하게 뒤얽힌 충돌의 역사 속에서도 빛나는 연대의 순간들을 발굴해 낸다. 그는 충돌을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의 본질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땅의 역사는 억압과 점령, 추방의 역사인 동시에 공존과 협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1920년대 아랍인과 유대인 노동자들이 영국인 고용주에 대항하여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싸웠던 이야기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어두운 장막을 걷어 낼 방도를 보여주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또한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나 경제 위기와 같은 시기에 사람들은 민족 정체성을 초월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위험한 직업 환경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공동의 선택지를 알게 되었고, 반정부 정서를 공유했으며, 흉년이나 기근, 전염병에 직면할 때면 민족 간 공동 대응이 나타났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 사람들은 계급 연대나 공통 직종, 고용주와 실업 같은 공통의 문제에 대해 비민족적 차원에서 공존하고 협력하게 되었다.

◎ 하나의 땅, 두 민족 : 한 국가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아서
파페의 이와 같은 역사 새로 쓰기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역사를 분리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지 않다. 기존의 역사서들은 1948년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 이후에는 아랍-이스라엘 분쟁이라는 특정한 맥락을 제외하고 두 민족의 역사를 하나의 단일한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파페는 “하나의 땅에서 두 민족이 공존해 온 역사”를 하나의 대안적 서사로 구성해 냄으로써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역사를 종식시키는 데 있어 한 국가 해결책이 유효함을 시사하고 있다. 즉, 그는 두 민족이 하나의 땅 덩어리에 ‘민족’이라는 분열선을 넘어서 공존해 살아 왔던 역사를 발굴해 내고, 근대화 이후 ‘민족’이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체성으로 부각된 이후에도 민족 간 노동자 계급의 연대 사례를 통해 민족을 넘어선 공존 가능성을 강력히 피력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끊임없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이러한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선 협력의 역사를 새로 쓰는 데 있다고 말한다.

◎ 교과서적인 섬세함과 낯선 중동을 친숙한 존재로 만드는 친절한 역사 서술
이 책은 이와 같은 최신 관점에서 서술한 팔레스타인 역사서임에도,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쉽고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 현대사를 넘어 중동 역사에 대한 교과서 역할을 하기에도 충분하다. 오스만제국 치하에 있던 1800년대부터 시온주의자들의 출현을 거쳐 제1,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영국의 점령과 유엔 위임통치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의 1948년 국가 건설과 네 차례의 중동전쟁, 두 차례의 인티파다와 오슬로협정 이후의 교착상태에 이르기까지 파페는 시온주의의 탈을 쓴 식민주의와 그에 대응하여 급조된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의 역사를 차분하게 보여 준다. 특히 책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인명사전과 용어사전, 연표 등은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된 낯선 용어들에 독자들이 쉽게 익숙해 질 수 있도록 친절히 배려하고 있다.

◎ 시온주의의 신화 깨기 : 이스라엘의 다섯 가지 거짓말
1. 다윗 유대인 vs. 골리앗 아랍?
시온주의적 역사에 따르면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전쟁은 다윗으로 상징되는 유대인과 골리앗으로 상징되는 아랍인의 싸움이자 민족해방운동이었다. 하지만 파페를 비롯한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유대 군대는 전쟁의 대부분의 국면에서 전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이는 이스라엘의 최신식 무기에 수제 미사일로 맞서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또 유대 국가와 가장 강력한 아랍 군대인 트란스요르단의 아랍 군단 사이에는 이전에 모종의 협약(팔레스타인의 병력을 무력화하고 그것의 활동 범위를 대예루살렘 지역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존재했다. 이러한 모종의 협약은 팔레스타인인의 희생을 대가로 영국 위임통치 이후의 팔레스타인을 유대인과 요르단의 하심가로 양분했다. 파페의 연구에 따르면 1948년 당시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로 400개 이상의 마을, 11개 이상의 도회지가 파괴되었으며, 75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되었다.

2. 홀로코스트 속에 숨겨진 진실 : 유대인들은 모두 같은 희생자인가?
탈시온주의 역사가들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시온주의 진영의 노력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많은 충격적인 사실들을 폭로했다. 홀로코스트 시기 이스라엘 지도부는 이주할 의사가 있거나 정신적 · 육체적으로 유대 공동체의 성공에 기여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구출하는 데 관심을 보였으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그들의 곤경에 대해 오만하고 깔보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스라엘 토박이들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혐오한 것은 이들의 존재와 경험 자체를 시온주의와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이 벌이는 영웅적 투쟁의 대립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랍계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유럽계 유대인들 역시 무정하게 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팔레스타인으로 온 생존자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또한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이나 이류 국민인 북아프리카 출신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떠들썩했던 아이히만 재판 당시 벤구리온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에게 “양떼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던” 유대인 공동체와, 학살당한 이들의 이름으로 이제 복수를 하는 유대 국가 사이의 차이를 가르쳤으며, 모로코계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전혀 알지 못하며 만약 이런 과거를 알게 된다면 지금의 곤경을 더 쉽게 감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까지도 국제적으로든 국내적으로든 국가가 도덕적 근거에서 비판받을 때마다 이스라엘은 자국이야말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유일하게 정당한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재빨리 이런 비판을 잠재우곤 한다.

3. 1950년대 젊은 이스라엘의 신화
기존의 이스라엘 시온주의적 역사에 따르면 1950년대 초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한데 모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용광로 같은 젊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집단적 기억에 맞게 재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북아프리카 유대인들이 사회의 지리적?사회적 주변으로 밀려나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에게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부과된 것은 안보와 국가 방위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적인 고려가 작동하고 있었으며,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이스라엘의 수정주의 역사가들이 이러한 이스라엘 정권을 오리엔탈리즘적인 것으로 해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4. 시온주의=성스러운 땅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립하는 민족운동?
시온주의는 원래 유럽의 민족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지도자들이 민족 부흥의 전망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실현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식민주의 운동으로 바뀌었다. 일찍이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등장했다. 처음에는 유럽 대륙의 중심부에서 유럽 유대인이 처한 곤경에 대한 지적 개념화로 나타났고, 두 번째는 동유럽에서 이런 곤경에 대한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외국인들 가운데는 폭리를 노리는 모리배와 금융 투기꾼도 적지 않았다.

지금 와서 보자면 시온주의자들은 비록 수는 적었지만 식민화를 목표로 삼은 이민이었다. 유럽 강대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것은 엄격한 의미의 식민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곳의 식민주의와 마찬가지로, 그것 역시 현지의 이해가 아니라 유럽의 이해를 위해 팔레스타인에 사람들이 진입하는 유럽의 운동이었다. 현지인들은 새로운 이주자들을 위해 착취해야 할 하나의 상품이나 자산, 또는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현지인들은 기독교도 공동체를 확대하는 기반이 되는 영적 상품이었다. 초기 시온주의자들에게 원주민들은 값싼 막노동자나 환금작물 생산자였다.

5. 영국인과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을 근대화했다?
파페에 따르면 영국의 식민 통치와 유대인의 정착에 의한 간접적인 식민 통치기의 근대화는 질병과 죽음에 맞서 싸우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유럽의 통제와 착취를 초래하는, 선악이 뒤섞인 축복이었다. 영국의 식민정책은 팔레스타인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어 외부인들이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착취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인구의 60퍼센트가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농촌이 폐허로 변한 것은 농업의 상업화와 시온주의의 토지 매입 운동, 명사(팔레스타인의 엘리트 가문)들의 탐욕이 파국적으로 뒤섞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