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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창경궁』은 창경궁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사실과 정보를 알아봄으로써 조선의 궁궐을 통해 조선의 시간으로 여행하는 책이다.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많은 전각들이 헐려 나가 남아 있는 전각들이 얼마 되지 않지만, 다른 궁들에 비해 왕실 가족들의 삶이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과 비극적 이별에 대한 이야기, 또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아버지 영조와 아비를 잃은 정조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들 부자의 참담한 비극을 몸으로 겪고 살아남아 한 맺힌 기록을 남긴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목차
추천의 말 : 마음의 삼각대를 세우고 ‘창경궁앓이’를 하다
저자의 말 : 또 하나의 작은 동궐, 창경궁을 그리다
1. 창경궁 가는 길
2. 작은 동궐에 들어서다
3. 옥천교를 건너다
4. 명정전, 기품 있는 정전
5. 명정전 뒤편으로 돌아가다
6. 함인정, 사계의 아름다움을 읊다
7. 문정전 남쪽 숲길을 걷다
8. 환경전과 경춘전에서 생활하다
9. 통명전과 양화당, 왕비의 공간
10. 영춘헌과 집복헌, 정조와 사도세자
11. 자경전 터 산책로를 걷다
12. 춘당지 물길을 따라 걷다
부록 : 창경궁 십경 / 창경궁 행사 일정 / 조선왕조 가계도 / 창경궁 연표
저자의 말 : 또 하나의 작은 동궐, 창경궁을 그리다
1. 창경궁 가는 길
2. 작은 동궐에 들어서다
3. 옥천교를 건너다
4. 명정전, 기품 있는 정전
5. 명정전 뒤편으로 돌아가다
6. 함인정, 사계의 아름다움을 읊다
7. 문정전 남쪽 숲길을 걷다
8. 환경전과 경춘전에서 생활하다
9. 통명전과 양화당, 왕비의 공간
10. 영춘헌과 집복헌, 정조와 사도세자
11. 자경전 터 산책로를 걷다
12. 춘당지 물길을 따라 걷다
부록 : 창경궁 십경 / 창경궁 행사 일정 / 조선왕조 가계도 / 창경궁 연표
저자 소개
책 속으로
1907년 일제가 고종 황제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에게 양위토록 했습니다. 양위를 받은 순종이 고종이 머무는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처소를 옮기면서 창경궁의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한 이듬해 1908년부터 일제는 임금의 마음을 달래준다는 명목으로 창경궁 안의 전각 60여 채를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는 한편, 1911년에는 이왕가 박물관 본관을 통명전 북쪽의 높은 언덕 위 자경전 터에 새로 세우고, 식물원 앞에는 춘당지 연못을 파서 일본식 정자를 세웠습니다. 이로써 창경궁의 전각은 대부분 헐리고 궁궐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궁이 당시 동양 최대의 동물원과 식물원이 되어 놀이공원, 창경원(昌慶苑)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입니다. (23~24p)
원래 궁궐의 정문에서 정전에 이르는 동선은 삼문삼조(三門三朝)의 기본적인 배치 구조로 문을 세 개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창경궁은 홍화문에서 옥천교를 거쳐 바로 명정문을 통해 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문 하나가 생략된 구조입니다. 정문 홍화문을 들어서서 중간 문이 없이 명정문에서 명정전에 이르는 동선은 다른 궁궐의 삼문 구조에 비해 짧아서 궁궐 외전(外殿)의 격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옥천교에 서서 명정전을 바라보면 명정문과의 축이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습니다. 명정전의 좌향을 지세의 흐름에 따라 앉혔기 때문에 정문인 명정문의 중심과 축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화문에서 옥천교를 거쳐 명정문에 이르는 길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동선입니다. (68~69p)
통명전 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른 봄 이곳에서 감상하는 환경전 뒤편 살구나무 꽃도 아름답고 봄이 무르익을 무렵 경춘전 뒤편 화계의 경치가 눈부시게 화려합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통명전 대청마루에 앉아 쉬어갈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통명전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모습보다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경관이 더 아름다운 전각입니다. 왕비의 거처답게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놓아 우리가 지금 즐기는 풍광을 그 옛날 왕비께서도 즐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192p)
현재의 춘당지 못은 논을 없애고 1907년부터 파기 시작하여 1909년에 완공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국왕이 친경하던 내농포(內農圃)의 원형을 훼손하고 논자리를 북쪽의 연못과 합쳐서 큰 못으로 만들고, 사쿠라 흐드러지는 눈부신 절경 속에서 놀잇배를 띄워 놀았습니다. 못 가장자리에는 일본식 정자를 세우고 해방 후 1962년에는 못 위로 창경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케이블카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정비된 창경궁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는데, 당시 일제가 조성해서 출발한 창경원의 시설은 해방 후에도 점점 더 확장되어 일반 시민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화려하게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이 이 춘당지 부근에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 날 서울대공원이나 용인에 있는 놀이동산의 출발점이 창경원이었던 셈입니다. (306~307p)
원래 궁궐의 정문에서 정전에 이르는 동선은 삼문삼조(三門三朝)의 기본적인 배치 구조로 문을 세 개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창경궁은 홍화문에서 옥천교를 거쳐 바로 명정문을 통해 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문 하나가 생략된 구조입니다. 정문 홍화문을 들어서서 중간 문이 없이 명정문에서 명정전에 이르는 동선은 다른 궁궐의 삼문 구조에 비해 짧아서 궁궐 외전(外殿)의 격이 떨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옥천교에 서서 명정전을 바라보면 명정문과의 축이 남쪽으로 약 1.2미터 벗어나 있습니다. 명정전의 좌향을 지세의 흐름에 따라 앉혔기 때문에 정문인 명정문의 중심과 축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홍화문에서 옥천교를 거쳐 명정문에 이르는 길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동선입니다. (68~69p)
통명전 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른 봄 이곳에서 감상하는 환경전 뒤편 살구나무 꽃도 아름답고 봄이 무르익을 무렵 경춘전 뒤편 화계의 경치가 눈부시게 화려합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통명전 대청마루에 앉아 쉬어갈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통명전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모습보다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경관이 더 아름다운 전각입니다. 왕비의 거처답게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놓아 우리가 지금 즐기는 풍광을 그 옛날 왕비께서도 즐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192p)
현재의 춘당지 못은 논을 없애고 1907년부터 파기 시작하여 1909년에 완공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국왕이 친경하던 내농포(內農圃)의 원형을 훼손하고 논자리를 북쪽의 연못과 합쳐서 큰 못으로 만들고, 사쿠라 흐드러지는 눈부신 절경 속에서 놀잇배를 띄워 놀았습니다. 못 가장자리에는 일본식 정자를 세우고 해방 후 1962년에는 못 위로 창경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케이블카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정비된 창경궁의 모습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었는데, 당시 일제가 조성해서 출발한 창경원의 시설은 해방 후에도 점점 더 확장되어 일반 시민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화려하게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이 이 춘당지 부근에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 날 서울대공원이나 용인에 있는 놀이동산의 출발점이 창경원이었던 셈입니다. (306~307p)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우리의 궁궐은 파괴와 상처의 시간을 견디어냈다.
이제 메마른 감성을 치유해주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궁궐은 힐링이다.
동시에 궁궐도 자신의 상처와 역사를 들려줌으로써 힐링이 필요하다.
이 책은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조선의 세 번째 궁궐 ‘창경궁’ 이야기다. 창덕궁과 담으로 이웃해 있어 동궐(東闕)로 불리는 창경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동물원으로 전락하고 궁궐의 존엄을 유린당했던 아픈 역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일제에 의해 많은 전각들이 헐려 나가 남아 있는 전각들이 얼마 되지 않지만, 다른 궁들에 비해 왕실 가족들의 삶이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과 비극적 이별에 대한 이야기, 또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아버지 영조와 아비를 잃은 정조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들 부자의 참담한 비극을 몸으로 겪고 살아남아 한 맺힌 기록을 남긴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 등이 사라진 전각들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 심은 나무숲 사이로 전해진다.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저자는 남아 있는 전각들의 가치와 의의를 되짚어가며 실록과 기록 등을 찾아 작은 동궐의 많은 이야기들을, 보이지 않지만 속삭이는 이야기들을 환기시면서 창경궁의 새로운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묻어나는 창경궁의 아름다움은 독자들에게 ‘창경궁앓이’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1.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이름을 찾기까지
창경궁은 성종 때 세 분의 대비, 즉 할머니 정희왕후(세조의 비), 어머니 소혜왕후(인수대비), 작은어머니 안순왕후(예종의 비)를 모시기 위해 지어진 궁궐이었다. 창덕궁의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여 여성의 공간인 내전 영역을 강화한 궁궐로서, 창덕궁과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어 동궐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일부를 수리하여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지만, 일제강점기인 1909년 창경궁은 일제의 치밀한 계획하에 파괴되기 시작하여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건물이 지어지면서 ‘창경원’으로 일반에 공개되었고, 또한 1912년 율곡로를 개설하여 창경원과 종묘를 단절시킨 후 궁 안에 사쿠라 나무를 수천 그루 심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또다시 황폐화되면서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기에 이른다. 동물원과 식물원에 더하여 밤 벚꽃놀이, 춘당지에서의 뱃놀이로 유명해지면서 최고의 유원지가 되었다. 1983년에야 복원공사에 들어가 일반 공개를 중단하고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으며, 1986년 비로소 문정전과 명정전 행각 등 일부 전각을 복원하여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2. 한 그루 나무는 알고 있다!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이다. 홍화문 남쪽으로 선인문이 있다. 홍화문은 왕이 거둥할 때 사용하던 문이라고 한다면, 관원들이 궐내각사에 출입할 때 주로 이용하던 문이 선인문이다. 늘 열려 있어서 가장 분주하게 사용하던 문이라고 한다. 이 선인문 안쪽에 오래된 한 그루 회화나무가 있고, 그 앞에 금천이 흐른다. 바로 이곳에서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고 전해진다. 영조 38년(1762) 윤5월 13일, 영조는 문정전에 거둥하여 세자를 폐하고 자결할 것을 명하고, 윤5월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좁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그로부터 9일 만에 28세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비정한 아버지는 아들이 들어가 갇힌 뒤주에 손수 망치질을 하고 물 한 모금도 줄 수 없게 지키도록 했다. 아들이 죽자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사도세자 묘지문’을 직접 지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거슬러 올라가면 장희빈이라는 여인의 비극적 운명과 얽혀 있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참변에 대한 기박한 운명을 회상하며 써내려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보면, 사도세자가 천성을 잃고 어긋나게 된 것은 모두 경종의 궁첩과 환관에게 맡겨 키우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조는 즉위 과정에서 경종의 독살설에 대한 의혹에 시달렸는데, 결국 이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빌미가 되어 임오화변을 일으켰다. 경종의 생모가 바로 희빈 장씨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밀고로 장희빈이 죽음에 이르렀으니 경종과 영조,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악연은 사도세자에게, 또 그의 아들 정조에게까지 그 상처를 남겼다.
숙종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던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역사 드라마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다루어지는 소재이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를 폐출한 후 숙종은 장희빈을 왕비로 삼았는데, 이는 궁녀 출신 후궁이 국모의 자리에 오른 조선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숙종 16년(1690) 장희빈은 정식으로 왕비가 되었고, 그녀의 아들은 왕세자로 책봉되어 후에 경종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최후의 신데렐라는 바로 숙빈 최씨에게 돌아갔다. 조선 최장수 집권 왕이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가 아닌가. 숙빈 최씨는 장희빈이 저주굿을 하여 인현왕후를 죽게 했다고 발고하였고, 숙종은 총애하던 희빈 장씨에게 자진을 명하여 장희빈은 자결로 삶을 끝냈다. 화려했지만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 장희빈의 상(喪)이 선인문으로 나갔고, 한참의 세월이 흘러 그 길 어딘가에 사도세자의 뒤주가 놓였는데, 오래된 회화나무만이 남아 그들의 명멸하는 삶은 지켜보았으리라. 지금은 나무만 우거져서 경관 좋은 숲을 이루고 있는 문정전 남쪽 숲길 어딘가에 장희빈의 처소였던 취선당이 있었다고 한다. 전각은 사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가 이곳 창경궁에서 애잔하게 전해진다.
3. ‘창경궁앓이’를 하며 창경궁을 그리다
창경궁을 산책하며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창경궁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과 만나게 된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작은 돌다리 아래로 명당수가 흐르는데, 바로 창경궁의 금천인 옥천교이다. 옥천교는 창경궁이 건립될 무렵인 성종 14년(1483)으로 500여 년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경복궁의 영제교와 창덕궁의 금천교에 물길이 끊어져 있다면, 옥천교는 남쪽의 청계천으로 물길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매화와 살구나무 꽃이 피는 봄이면 화려한 장관을 펼치며 감동을 자아낸다. 홍화문에서 옥천교를 거쳐 명정문에 이르는 길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동선으로 알려져 있다.
명정문을 지나면 명정전으로 이어지는데, 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명정전 뒤편의 익랑과 천랑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띄고, 한쪽에 조촐하지만 단아한 분위기의 숭문당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왕이 성균관 유생들을 접견하며 경연을 펼친 학문의 장소다. 빈양문을 들어서면 텅 빈 공간에 함인정이 우뚝 서 있고, 함인정 마루에 앉아서 시 한 수 읊고 가는 여유를 가져도 좋겠다.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양화당으로 이어지는 내전 영역은 궁궐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진달래, 생강나무, 매화, 철쭉, 개나리, 앵두나무 등으로 화계를 조성해 사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효심으로 지었다는 자경전은 그 터만 전해지지만 언덕 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창경궁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춘당지 산책로로 이어진다.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던 창경궁이 이렇게 아름다운 궁궐이었는지 새롭게 느끼게 한다.
이제 메마른 감성을 치유해주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궁궐은 힐링이다.
동시에 궁궐도 자신의 상처와 역사를 들려줌으로써 힐링이 필요하다.
이 책은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조선의 세 번째 궁궐 ‘창경궁’ 이야기다. 창덕궁과 담으로 이웃해 있어 동궐(東闕)로 불리는 창경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동물원으로 전락하고 궁궐의 존엄을 유린당했던 아픈 역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일제에 의해 많은 전각들이 헐려 나가 남아 있는 전각들이 얼마 되지 않지만, 다른 궁들에 비해 왕실 가족들의 삶이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과 비극적 이별에 대한 이야기, 또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두어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아버지 영조와 아비를 잃은 정조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들 부자의 참담한 비극을 몸으로 겪고 살아남아 한 맺힌 기록을 남긴 혜경궁 홍씨의 이야기 등이 사라진 전각들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 심은 나무숲 사이로 전해진다.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저자는 남아 있는 전각들의 가치와 의의를 되짚어가며 실록과 기록 등을 찾아 작은 동궐의 많은 이야기들을, 보이지 않지만 속삭이는 이야기들을 환기시면서 창경궁의 새로운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묻어나는 창경궁의 아름다움은 독자들에게 ‘창경궁앓이’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1.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이름을 찾기까지
창경궁은 성종 때 세 분의 대비, 즉 할머니 정희왕후(세조의 비), 어머니 소혜왕후(인수대비), 작은어머니 안순왕후(예종의 비)를 모시기 위해 지어진 궁궐이었다. 창덕궁의 부족한 기능을 보완하여 여성의 공간인 내전 영역을 강화한 궁궐로서, 창덕궁과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창덕궁과 연결되어 있어 동궐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일부를 수리하여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하였지만, 일제강점기인 1909년 창경궁은 일제의 치밀한 계획하에 파괴되기 시작하여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건물이 지어지면서 ‘창경원’으로 일반에 공개되었고, 또한 1912년 율곡로를 개설하여 창경원과 종묘를 단절시킨 후 궁 안에 사쿠라 나무를 수천 그루 심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으나 1950년 6?25전쟁으로 또다시 황폐화되면서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되기에 이른다. 동물원과 식물원에 더하여 밤 벚꽃놀이, 춘당지에서의 뱃놀이로 유명해지면서 최고의 유원지가 되었다. 1983년에야 복원공사에 들어가 일반 공개를 중단하고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으며, 1986년 비로소 문정전과 명정전 행각 등 일부 전각을 복원하여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2. 한 그루 나무는 알고 있다!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이다. 홍화문 남쪽으로 선인문이 있다. 홍화문은 왕이 거둥할 때 사용하던 문이라고 한다면, 관원들이 궐내각사에 출입할 때 주로 이용하던 문이 선인문이다. 늘 열려 있어서 가장 분주하게 사용하던 문이라고 한다. 이 선인문 안쪽에 오래된 한 그루 회화나무가 있고, 그 앞에 금천이 흐른다. 바로 이곳에서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다고 전해진다. 영조 38년(1762) 윤5월 13일, 영조는 문정전에 거둥하여 세자를 폐하고 자결할 것을 명하고, 윤5월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좁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그로부터 9일 만에 28세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비정한 아버지는 아들이 들어가 갇힌 뒤주에 손수 망치질을 하고 물 한 모금도 줄 수 없게 지키도록 했다. 아들이 죽자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고, ‘사도세자 묘지문’을 직접 지었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은 거슬러 올라가면 장희빈이라는 여인의 비극적 운명과 얽혀 있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참변에 대한 기박한 운명을 회상하며 써내려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보면, 사도세자가 천성을 잃고 어긋나게 된 것은 모두 경종의 궁첩과 환관에게 맡겨 키우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조는 즉위 과정에서 경종의 독살설에 대한 의혹에 시달렸는데, 결국 이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빌미가 되어 임오화변을 일으켰다. 경종의 생모가 바로 희빈 장씨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밀고로 장희빈이 죽음에 이르렀으니 경종과 영조,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의 악연은 사도세자에게, 또 그의 아들 정조에게까지 그 상처를 남겼다.
숙종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던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이야기는 역사 드라마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다루어지는 소재이다.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를 폐출한 후 숙종은 장희빈을 왕비로 삼았는데, 이는 궁녀 출신 후궁이 국모의 자리에 오른 조선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숙종 16년(1690) 장희빈은 정식으로 왕비가 되었고, 그녀의 아들은 왕세자로 책봉되어 후에 경종으로 즉위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최후의 신데렐라는 바로 숙빈 최씨에게 돌아갔다. 조선 최장수 집권 왕이 숙빈 최씨의 아들 영조가 아닌가. 숙빈 최씨는 장희빈이 저주굿을 하여 인현왕후를 죽게 했다고 발고하였고, 숙종은 총애하던 희빈 장씨에게 자진을 명하여 장희빈은 자결로 삶을 끝냈다. 화려했지만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 장희빈의 상(喪)이 선인문으로 나갔고, 한참의 세월이 흘러 그 길 어딘가에 사도세자의 뒤주가 놓였는데, 오래된 회화나무만이 남아 그들의 명멸하는 삶은 지켜보았으리라. 지금은 나무만 우거져서 경관 좋은 숲을 이루고 있는 문정전 남쪽 숲길 어딘가에 장희빈의 처소였던 취선당이 있었다고 한다. 전각은 사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슬픈 이야기가 이곳 창경궁에서 애잔하게 전해진다.
3. ‘창경궁앓이’를 하며 창경궁을 그리다
창경궁을 산책하며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창경궁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과 만나게 된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작은 돌다리 아래로 명당수가 흐르는데, 바로 창경궁의 금천인 옥천교이다. 옥천교는 창경궁이 건립될 무렵인 성종 14년(1483)으로 500여 년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경복궁의 영제교와 창덕궁의 금천교에 물길이 끊어져 있다면, 옥천교는 남쪽의 청계천으로 물길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매화와 살구나무 꽃이 피는 봄이면 화려한 장관을 펼치며 감동을 자아낸다. 홍화문에서 옥천교를 거쳐 명정문에 이르는 길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아름다운 동선으로 알려져 있다.
명정문을 지나면 명정전으로 이어지는데, 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명정전 뒤편의 익랑과 천랑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띄고, 한쪽에 조촐하지만 단아한 분위기의 숭문당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은 왕이 성균관 유생들을 접견하며 경연을 펼친 학문의 장소다. 빈양문을 들어서면 텅 빈 공간에 함인정이 우뚝 서 있고, 함인정 마루에 앉아서 시 한 수 읊고 가는 여유를 가져도 좋겠다.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양화당으로 이어지는 내전 영역은 궁궐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여성들을 위해 진달래, 생강나무, 매화, 철쭉, 개나리, 앵두나무 등으로 화계를 조성해 사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효심으로 지었다는 자경전은 그 터만 전해지지만 언덕 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창경궁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춘당지 산책로로 이어진다.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던 창경궁이 이렇게 아름다운 궁궐이었는지 새롭게 느끼게 한다.
추천평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조선왕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지금은 비록 주인 잃은 빈집이 되어버린 궁궐이지만, 이 책과 함께라면 조선의 궁궐 속에서 조선의 시간이 다시 흐를 것만 같습니다. 책 속에 담긴 창경궁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사실과 정보 및 그 가치는 그동안 독자들이 접했던 궁궐에 대한 수많은 서적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창경궁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관심이 가슴 가득히 느껴졌으며, 저자가 직접 창경궁 여기저기에 머물면서 손수 한 폭 한 폭 도화지 위에 그렸을 멋진 그림들은 다른 그 어떤 책들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일 것입니다. 또한 마치 마음속 삼각대를 세우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은 것 같은 책 속의 풍경들을, 흐르는 세월은 그리고 반복되는 계절은 어김없이 독자 여러분께 데리고 올 것입니다. 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 창경궁’ 편을 통하여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공간을 보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고,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느끼면서 한동안 ‘창경궁앓이’를 한 것 같습니다.
조송래 (현 창경궁관리소장)
조송래 (현 창경궁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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