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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최재형 - 시베리아의 난로 최페치카

동방박사님 2023. 1. 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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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낯선 땅에서 역경을 딛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최재형.

올해는 연해주 한인이주 150주년이 되는 해이며 1920년 신한촌 학살 때 최재형이 일본군의 총탄에 숨진지 94주년이 됩니다. 이 책은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가 시작된 1860년대부터 최재형이 순국한 1920년까지 1세대 고려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초기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최재형의 주요 행적과 역사적 사건을 모아 부록으로 연표를 마련했으며, 사진도 함께 실려 있어 소설 속 사건들이 실제 역사의 한 순간들이었음을 생생하게 파악하고 정리할 수 있는 학습효과를 더했습니다.

 

목차

작가의 말

1. 포시에트 항구
2. 흙비가 내리다
3. 끝없이 너른 벌판
4. 가출
5. 기나긴 항해
6.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
7. 그리운 아버지
8. 얀치혜의 새 출발
9. 도헌이 되어
10.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가다
11. 조선의 부름과 재혼
12. 조선의 독립운동에 뛰어들다
13. 박영효를 만나다
14. 을사늑약
15. 밀지를 받은 사람들
16. 동의회와 의병부대
17. 안중근의 단지동맹
18. 코레아 우라!
19. 권업회 총재로
20. 러시아 한인이주 50주년 기념사업
21. 사라예보의 총소리
22. 파리강화회의
23. 시베리아의 별이 되다

우리 할아버지 최재형을 소개합니다
발간에 부쳐
연표
 

출판사 리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게
일본 법정은 배후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안중근이 끝내 밝히지 않은 그 이름은 과연 누구였을까?

최재형 선생은 노비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 사는 한인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난로처럼 따뜻한 삶을 산 거인이었다. 선생은 연해주에 모인 의병들을 먹이고 입히고 무기를 제공했고, 한인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해 무려 32개나 되는 학교를 세우고 봉급을 털어 유학을 보냈다. …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최재형 선생처럼 든든한 발판이 있어 가능했다. 나는 최재형 선생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제라도 선생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낯선 땅 시베리아에서 조국과 동포를 위해 난로처럼 따뜻한 삶을 살았던 최재형을 사람들은 ‘최 페치카’라고 불렀다.

1860년 함경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은
계속되는 가난에 시달리다 열한 살에 집을 나온다.
러시아 선장 부부의 눈에 띄어 친아들처럼 키워진 그는
러시아어뿐 아니라 문학, 역사, 과학 등 서양 학문을 두루 배우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세계일주를 하며 견문을 넓혔다.

헐벗고 굶주린 조선 노비의 아들에서
6년 동안 배를 타고 세계를 두번이나 돌아보며
외국어 실력과 사업수완을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 최재형은
농사밖에 모르던 한인들을 이끌어 가며
제정 러시아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등 여러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최재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 조국 대한제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연해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의병들을 규합하여
두만강 일대를 누비며 일본군과 싸웠다.
이때 함께 했던 의병 중 하나이며, 최재형이 발행한 항일민족신문 [대동공보]의 통신원이 바로 안중근이었는데….

출신, 국경, 언어의 벽을 넘어 큰 꿈을 펼친 러시아의 한국인 최재형.
힘과 재력을 갖춘 사업가이자,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가였고,
마침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그가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건네는 도전과 용기,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메시지
빅토르 최, 빅토르 안이 있기 전에 ‘표트르 최’가 있었다

1980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영웅이었던 전설적인 록가수 빅토르 최와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에 금메달을 안겨준
쇼트트랙 국가대표 빅토르 안(안현수),
두 사람은 조국인 한국보다 러시아에서 더 빛나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100년도 훨씬 앞서 러시아에서 이름을 알린 한국인이 있었다.
바로 표트르 세메노비츠 최, 한국 이름 최재형이다.
어린 시절 가난을 피해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이주한 그는,
항일의병부대에 숙식과 무기를 제공할 만한 힘과 재력을 가진 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였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훈장을 받고
니꼴라이 2세 황제의 대관식에 초대받을 정도로 러시아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리더였다.

러시아의 고려인이주 150주년,
최재형 서거 94년이 되는 올해,
낯선 땅에서 역경을 딛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최재형의 삶을 어린이/청소년 소설로 그려낸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출간되었다.

노비의 아들에서 러시아 사업가로, 항일 독립운동가로
최재형이 있기에 가능했던 안중근의 하얼빈의거

1860년 함경도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에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최재형은 계속되는 가난에 시달리다 열한 살에 집을 나온다. 러시아 선장 부부의 눈에 띄어 친아들처럼 키워진 그는 러시아어뿐 아니라 문학, 역사, 과학 등 서양 학문을 두루 배우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세계일주를 하며 견문을 넓혔다.

헐벗고 굶주린 조선 노비의 아들에서
외국어 실력과 사업수완을 갖춘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 최재형은
농사밖에 모르던 한인들을 이끌어 가며 제정 러시아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등
여러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사업에서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학교를 세워
배움의 기회를 주는 등 러시아 한인들의 삶에 희망의 횃불을 밝혔다.
그리고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한인 최초로
러시아 도헌(우리나라의 군수에 해당)에 선출되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최재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 조국 대한제국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연해주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의병들을 규합하여 두만강 일대를 누비며 일본군과 싸웠다.
이때 함께 했던 의병 중 하나이며,
최재형이 발행한 항일민족신문 [대동공보]의 통신원이 바로 안중근이었다.
국외 항일운동은 최재형이라는 든든한 후원자의 뒷받침 덕분에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와 같은 결실을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최재형을 재무총장으로 추대했으나,
그는 이듬 해 1920년 일본군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최재형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고자 러시아로 떠났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라며
아들 재형을 러시아 학교의 첫 조선인 학생으로 입학시켰다.
아버지의 바램대로 최재형은
출신, 국경, 언어의 벽을 넘어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거인이 되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한인사회의 리더로, 독립운동가로,
그는 자신의 꿈과 신념을 좇아 쉬지 않고 달렸으며,
주변 한인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국과 동포를 위해 난로처럼 따뜻한 삶을 산
그를 ‘최 페치카(러시아식 벽난로)’라고 불렀다.
이 책을 읽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최재형의 큰 꿈을 향한 도전과 용기,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실천이 전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