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4.조선왕릉

남양주시 금곡 (홍릉.유릉) 대한제국 황실 후궁들의 묘

동방박사님 2023. 1. 2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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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남양주 홍릉과 유릉 

홍릉은 대한제국 1대황제 고종 高宗: 1852~1919과 명성황후 明成皇后閔氏 1851~1895의 능이고, 유릉은 대한제국 2대황제 순종純宗:1874~1926과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 1872~1904, 두 번째황후 순정황후 윤씨 1894~1966의능이다.

홍릉과 유릉은 기존의 조선왕릉 형식과 다르게 대한제국 황제릉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황제릉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명나라 황제의 예를 참조하고, 기존 조선왕릉의 예를계승하여 조성한 능이다. 기존 조선왕릉과  다른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제향공간에 있던 정자각 대신 침전(寢殿)을 두었고, 침전 앞부터 홍살문까지 향로를따라 문석인. 무석인, 기린,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모양의 석물을 배치하였다. 홍릉과 유릉 경내에는 의민황태자 영친왕과 의민황태자비 영원 (英園), 황세손 이구의 회인원, 의친왕묘, 덕혜옹주묘, 고종의 후궁과 의친왕 후실묘 등  대한제국 황실 가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대한제국 황실 후궁들의 묘역이다. 이곳에 모셔진 후궁들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겪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구황실의 일원으로 생활하였다.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의 묘가 1970년에 조성되었다. 그리고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후실 수인당 김씨의 묘가 조성된 이후, 도양 서삼릉(西三陵) 경내에 있던 고종의 후궁 귀인 장씨와 의친왕의 후실 수관당 정씨의 묘가 2009년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인당 김씨묘 修仁堂 金氏 墓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아들 의친왕 (義親王)의 두번째 후실(後室) 인수당 김씨?~?의 묘이다. 본명은 김흥인(金興仁)으로,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의친왕 사이에서 3난 (이우李鍝 이주李鑄 이곤李錕)을 낳았다. 그중 첫째 아들 이우는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수관당 정씨 묘 修觀堂 鄭氏 墓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아들 의친왕(義親王)의 첫 번째 후실 (後室) 인 수관당 정씨? ~?의 묘이다. 수관당은 의친왕의 장남 이건(李鍵)을 낳았으나, 행적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처음 묘소는 서삼릉 경내에 있었으나 2009년에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묘의 석물은 이장하면서 새로 설치한 것이다. 

귀인 장씨 묘 貴人 張氏 墓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후궁인 귀인 장씨? ~? 으 묘이다. 본관은 덕수(德水)로. 1977년에 궁인의 신분일 때 고종의 아들 의친왕(義親王)을 낳았다. 1900년 숙원(淑媛)을 거쳐 1906년에 귀인으로 추증* 되었다.  처음 묘소는 확실치 않으며, 1911년 화양정 (華陽亭)으로 옮겼고 1965년 의친왕묘와 함께 서삼릉 경내로 옮겼다가 2009년에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추증 (追贈) : 세상을 떠난후 관직을 높여줌.

 

광화당 이씨 묘  光華堂 李氏 墓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의 후궁인 광화당 귀인 이씨 (1855~1967)의 묘이다. 본명은 이완덕(李完德)으로, 1898년 궁녀가 되었고 1906년에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1914년 고종의 아들 이육(李堉)을 낳아 광화당에 봉해졌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은 후 종로구 사간도에서 살다가 83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