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4.조선왕릉

영원 (의민황태자 : 영친왕 & 의민황태자비 : 영친왕비). 회인원 (이구)

동방박사님 2023. 1. 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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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英園) 회인원 (懷仁園)

영원 (英園)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 (1987~1970, 영친왕) 의민황태자비 (1901~1989, 영친왕비) 를 합장한 원(園)이고 회인원 (懷仁園)은 의민 황태자의 둘째 아들인 황세손 이구 (李玖: 1931~2005)의 원(園)이다. 1970년에 의민 황태자가 세상을 떠나자 고종의 홍릉(洪陵) 근처에 *원소를 조성하고 이름을 영원이라 하였다. 이 후 1989년에 의민황태자비가 세상을 떠나자 영원에 합장하였고, 2005년에 황세손이 세상을 떠나자 영원 동쪽에 원소를 조성하고 이름을 화인원이라 하였다. 영원은 조선왕릉의 형태로 조성하여 재실,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배치하였고, 원침 (園寢)에는 남간석을 두르고 석양과 석호,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 문.무인석, 석마를 배치하였다.

*원소 (園所): 왕세자나 왕세자빈 및 왕의 사친 등의 무덤

조기 은퇴후 국내답사를 다니고 있는데  나는 역사탐방을 좋아한다. 역사중에 한국근대사에 관심이 많다. 1863~1919 시기는 고종황제의 집권기이다. 이 시대의 시간여행은 흥미롭고 근대 격동기속에  우리의 아픈역사가 있다. 그 중심 에있는 고종황제 의 묘가 있는 홍유릉에 왔다. 지난번에 고종.순종의 묘는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영친왕의 묘를 보고자 한다.  답사의 좋은점은 잠시 내가 그 주인공으로 돌아가 사색을 할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 英園 (의민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

영원은 의민황태자 (懿愍皇太子1987~1970. 영친왕) 와 의민황태자비 (懿愍皇太子妃1901~1989, 영친왕비) 의 원*이다. 의민황태자는 고종과 순원황귀비의 아들로 1900년(광무4년)영친왕에 책봉되고, 1907년(융희1년)에 황태자가 되었다.1910년(융희4년) 국권을 잃은 뒤에는 왕세자로 불리다가,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명목상 이왕(李王)으로 불렀다. 1920년 일제에 의해 일본의 왕족 마사코(方子)와 결혼하고 일본에 거주하다가 1963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1970년에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의민황태자비는 일본 왕족 모리마사 친왕의 딸로 의민황태자와 결혼하여 진(晉) 과 구(玖) 두 아들을 낳았다 1963년 의민황태자와 함께 귀국하여 여생을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였으며, 1989년 세상을 떠나자 영원히 합장되었다.

*원(園): 왕의 사친,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

영원 英園 (의민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

영원은 의민황태자 (懿愍皇太子1987~1970. 영친왕) 와 의민황태자비 (懿愍皇太子妃1901~1989, 영친왕비) 의 원*이다. 의민황태자는 고종과 순원황귀비의 아들로 1900년(광무4년)영친왕에 책봉되고, 1907년(융희1년)에 황태자가 되었다.1910년(융희4년) 국권을 잃은 뒤에는 왕세자로 불리다가, 순종황제가 세상을 떠난 후 명목상 이왕(李王)으로 불렀다. 1920년 일제에 의해 일본의 왕족 마사코(方子)와 결혼하고 일본에 거주하다가 1963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1970년에 창덕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의민황태자비는 일본 왕족 모리마사 친왕의 딸로 의민황태자와 결혼하여 진(晉) 과 구(玖) 두 아들을 낳았다 1963년 의민황태자와 함께 귀국하여 여생을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였으며, 1989년 세상을 떠나자 영원히 합장되었다.

영친왕의 묘

왕의 아들은 대군(大君) 또는 군(君)의 호칭이 주어지는데 황제의 아들은 왕(王)의 호칭이 주어진다. 의민황태자는 대한제국시절 황태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원(園)으로 조성하였다. 의민황태자 (영친왕, 1897~1970)는 고종황제 (1852~1919)와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의 아들로 덕수궁 숙옹재에서 태어났다. 1900 영친왕으로,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었지만 그해 12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에서 철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1920년 일본 왕족인 나시모토 노미야 마사코와 정략혼인을 한 후 두 아들 (이진, 이구)을 낳았으나 첫 아들 이진은 1922년 덕수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1926년 순종황제의 승하 후 명목상 이왕(李王)이 되었으며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교수부장, 육군 중장으로 근무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귀국을 원했으나 무산되었다.

1963년 대한민국 국적을 얻어 귀국하게 되었지만 이미 병세가 악화되어 병상생활을 하다가 1970년 5월1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회인원 懷仁園 : 이구 황세손

회인원은 황세손 이구 (李玖 : 1931~2005) 의 원(園)* 이다. 의민황태자비 (마사코 /方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생활하였다. 195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건축가로 활동하였으며, 1963년 귀국한 후 창덕궁과 일본을 오가며 지냈다. 2005년 세상을 떠나자 영원 경내에 모셔졌다.

*원(園): 왕의 사친, (후궁이나 왕족)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

이구 (李玖 : 1931~2005) 황세손은 의민황태자와 의민황태자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후 국내 귀국이 무산되어 일본에 체류하다가 1953년 미국메사추세추 공과대학에 입학하여 건축학을 전공하였다. 1963년 귀국 후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며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 출강하기도 하였고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의 명예총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2005년 7월16일 일본에서 75세로 세상을 떠나 영원 경내에 원(園)을 조성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