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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은 이제 풍요함을 향유하거나, 세계의 첨단을 걷는 나라가 아니다. 실패와 일탈을 거듭하는, 불안과 과제로 가득찬 나라다. (본문중) 경제거품 붕괴, 대지진, 옴진리교 사건,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충격 속에 가전왕국의 쇠락, 정치개혁 좌절, 저출산과 빈곤으로 줄달음질친 일본. 쇼와 시대의 성공은 헤이세이의 실패와 좌절을 잉태하고 있었다. 일본의 저명 사회학자가 한 권의 책 속에 건축한 ‘헤이세이 실패 박물관’
목차
머리글 ‘헤이세이’라는 실패――‘잃어버린 30년’이란 무엇인가
실패의 박물관 / ‘헤이세이’라는 실패 / 정치의 좌절, 회복없는 소자화(小子化) / ‘쇼와’의 반전 / 네 가지 쇼크 /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제1장 몰락하는 기업국가――은행의 실패, 가전의 실패
벼랑 앞에서 우쭐거리던 일본 / 2년 반 지연된 금리인상 / 일본호, 모로 쓰러지다 / 야마이치증권 ‘자진폐업’의 충격 / 야마이치증권 파탄을 잉태한 쇼와사 / 반도체시장에서의 일본의 참패 / ‘가전’의 저주와 신화의 종말 / 도시바의 실패를 검증한다 / 카를로스 곤 신화에 취한 일본 사회
제2장 포스트 전후정치의 환멸――‘개혁’이라는 포퓰리즘
버블 속의 액상화――리쿠르트 사건 / 정치극장의 시스템을 바꾸다――소선거구제 도입 / 일본신당 붐이 남긴 것 / 선거제도 개혁의 전말――개혁파와 수구파 / 노조의 변절 사회당의 곤경 / 자멸로 치닫는 사회당의 혼란 / 자민당을 때려부순다――고이즈미 극장의 작동방식 /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정치주도’ / 국가전략국 구상의 오류와 전말 / 아베 정권――액상화하는 정 · 관계와 ‘관저(官邸)주도’
제3장 쇼크 속에서 변모하는 일본――사회의 연속과 불연속
‘실패’와 ‘쇼크’ 사이 / 두 차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 옴진리교 사건과 미디어의 허구 / 헤이세이 첫해에 상실한 자아 / 확대되는 격차――미래에 절망하는 청년들 / 격차의 제도화, 계급사회로 가는 헤이세이 일본 / 멈출 줄 모르는 초소자고령화 / 소멸하는 지방――일본의 지속불가능성
제4장 허구화하는 아이덴티티――‘아메리카닛폰’의 행방
‘종말’의 예감 / ‘부해(腐海)’와 ‘초능력’ / ‘미국’이라는 타자=자아 / 허구로서의 ‘일본’ / 아무로 나미에와 여성들, 그리고 오키나와 / 절정 속의 주역교체――두명의 여성 스타 / 10년 후의 절정과 붕괴――1989년과 1998년 / 코스프레하는 자아 퍼포먼스 / 1990년대 말의 전환――환경화하는 인터넷 세계 / 자폐하는 넷사회
마침글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시대’――잃어버린 반세기의 서곡
‘헤이세이’를 시대로서 생각한다 / 다시, 올림픽으로 향하다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가 / 후텐마기지 이전과 오키나와의 분노 / 오키나와에서 헤이세이 일본을 바라보다 / 발흥하는 아시아 홀로
뒤처진 일본 / ‘잃어버린 30년’의 인구학적 필연
실패의 박물관 / ‘헤이세이’라는 실패 / 정치의 좌절, 회복없는 소자화(小子化) / ‘쇼와’의 반전 / 네 가지 쇼크 /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제1장 몰락하는 기업국가――은행의 실패, 가전의 실패
벼랑 앞에서 우쭐거리던 일본 / 2년 반 지연된 금리인상 / 일본호, 모로 쓰러지다 / 야마이치증권 ‘자진폐업’의 충격 / 야마이치증권 파탄을 잉태한 쇼와사 / 반도체시장에서의 일본의 참패 / ‘가전’의 저주와 신화의 종말 / 도시바의 실패를 검증한다 / 카를로스 곤 신화에 취한 일본 사회
제2장 포스트 전후정치의 환멸――‘개혁’이라는 포퓰리즘
버블 속의 액상화――리쿠르트 사건 / 정치극장의 시스템을 바꾸다――소선거구제 도입 / 일본신당 붐이 남긴 것 / 선거제도 개혁의 전말――개혁파와 수구파 / 노조의 변절 사회당의 곤경 / 자멸로 치닫는 사회당의 혼란 / 자민당을 때려부순다――고이즈미 극장의 작동방식 /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정치주도’ / 국가전략국 구상의 오류와 전말 / 아베 정권――액상화하는 정 · 관계와 ‘관저(官邸)주도’
제3장 쇼크 속에서 변모하는 일본――사회의 연속과 불연속
‘실패’와 ‘쇼크’ 사이 / 두 차례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 옴진리교 사건과 미디어의 허구 / 헤이세이 첫해에 상실한 자아 / 확대되는 격차――미래에 절망하는 청년들 / 격차의 제도화, 계급사회로 가는 헤이세이 일본 / 멈출 줄 모르는 초소자고령화 / 소멸하는 지방――일본의 지속불가능성
제4장 허구화하는 아이덴티티――‘아메리카닛폰’의 행방
‘종말’의 예감 / ‘부해(腐海)’와 ‘초능력’ / ‘미국’이라는 타자=자아 / 허구로서의 ‘일본’ / 아무로 나미에와 여성들, 그리고 오키나와 / 절정 속의 주역교체――두명의 여성 스타 / 10년 후의 절정과 붕괴――1989년과 1998년 / 코스프레하는 자아 퍼포먼스 / 1990년대 말의 전환――환경화하는 인터넷 세계 / 자폐하는 넷사회
마침글 세계사 속의 ‘헤이세이 시대’――잃어버린 반세기의 서곡
‘헤이세이’를 시대로서 생각한다 / 다시, 올림픽으로 향하다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가 / 후텐마기지 이전과 오키나와의 분노 / 오키나와에서 헤이세이 일본을 바라보다 / 발흥하는 아시아 홀로
뒤처진 일본 / ‘잃어버린 30년’의 인구학적 필연
책 속으로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헤이세이’라는 실패에 관한 일종의 박물관을, 한 권의 책 속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의 ‘헤이세이’ 30년간은 한마디로 ‘실패의 시대’였다.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실패’가 되풀이됐다. 하지만, ‘실패’들을 열거하기는 쉬워도 그들 전체가 어떻게 연결돼 있었고, 우리들은 왜 30년씩이나 ‘실패’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가를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헤이세이의 ‘실패’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필연이었던가.
--- p.10
이미 1980년대 말, 아시아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미일을 축으로 발전해온 일본의 전후 산업체제를, 아시아와의 관계를 축으로 하는 쪽으로 재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얼마 안 가 일본기업은 아시아에 대거 공장을 짓게 되지만, 수요면에서도 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상대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유도돼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구조전환은 뒤로 미뤄지고, 금리인하에 의한 대응이 우선시되면서 효과는 약하면서 부작용이 터무니없이 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은 아닌가.
--- p.51
실패의 제1요인은, 일본의 주요 전기산업이 TV시대의 종언과 모바일형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점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1990년대부터 글로벌한 규모로 전개된 수평 분업구조에 일본기업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체제는 ‘계열’ ‘하청’이라는 종래의 일본적 발상을 무의미하게 했다. 즉 일본 기업들은 오랜 기간 익숙해진 조직원리의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받게 됐다. 이것이 전통적인 일본 대기업에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 p.67
헤이세이 전기의 정치사는, 선거제도 개혁, 특히 소선거구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됐다. 이 점에서 자민당도 사회당도 ‘수구파’와 ‘개혁파’로 두동강 났다. ‘수구파’로 불린 것은 중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보수’ ‘혁신’ 간대립구도라는 55년 체제 속에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한 정치가들이었다. ‘개혁파’란 그런 자민당 내 파벌정치와 자민·사회 양당의 보완관계를 뒷받침해온 선거제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권력기반이 구축될 것을 기대한 정치인들이었다. (중략)
총평을 중심으로 한 관공노 계열 노동조합이 내부붕괴로 치달은 것은 사회당의 조직적 기반을 두드러지게 약화시켰다. 확고한 조직적 기반을 상실한 사회당은, 1990년대 들어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그 얼마 전 사회당에는 총평계 노동조합에 의존하는 좌파정당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처럼 풀뿌리적인 저변을 가진 리버럴 정당으로 전환할 최후의 찬스가 있었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전환할 무렵 일었던 도이 붐이 기회였다. (중략)
도이가 이 무렵 시도한 것은 사회당의 중심을 ‘계급’에서 ‘젠더’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 전환 이후에는 ‘지역’과 ‘세대’ 즉, 지방과 고령화 문제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당의 전략이 부상할 참이었다.
--- p.103
아베 정권은 민주당이 내건 래디컬한 정치주도를 부정하고, 이를 교활한 관저주도로 대체했다. 관저가 성청의 관료들을 뜻대로 움직이고, 예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각인사국과 경제재정자문회의로 충분했다. 관방장관은 성청의 국장급 인사를 관리함으로써 성청 전체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고이즈미 정권처럼 포퓰리즘과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인 활용을 솜씨있게 조합하면 여론에 ‘정치주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 p.147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1995년 한신·아와지대지진은 고도성장기 일본식 개발주의의 위험성을 근저에서 지적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진은 원전이나 고속도로, 인공섬 같은 기술의 한계를 드러내 보였을 뿐 아니라 전후 흔들림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의 기반이 의외로 무르고, 불안정함을 일깨웠다.
--- p.167
결국, 헤이세이 일본 사회가 향한 것은 비정규고용의 청년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 전체가 착취하는 체제의 고착화였다. 이를 정당화한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고, 여기에 동원된 것이 ‘구조개혁’이라는 캐치플레이즈였다. 이런 체제가 침투하면서 등장한 것은 ‘전후’의 총중류화를 뒤엎은 ‘포스트 헤이세이’의 계급사회이다.
--- p.195
돌이켜보면 찬스는 있었다. ‘소자화’라는 말이 정부백서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92년이지만 이 무렵이라면 아직 단카이 주니어는 출산적령기 이전이었던 만큼 꽤 효과적인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사회는 버블붕괴의 뒤처리에 필사적이었고, 동시에 정치는 ‘정치주도’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회복지 정책이 의제화되더라도 고령화 대책이 많았고, 소자화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고령자는 표가 되지만, 청년도 유아도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 p.208
아무로 나미에는 1990년대 음악 신에서 ‘아이돌’로서 도약한 것이 아니다. 그의 도약을 가능케 한 것은 동시대 남성들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멋짐’에 대한 선호, 그것도 남자들이 아니라 여성들이 바라는 멋짐에 대한 욕망의 실현이었다. 아무로의 돌연한 결혼과 출산, 1년간의 육아휴직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그를 수용하는 중심층이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 p.241
헤이세이의 일본이 불운했던 것은, 이 글로벌화와 넷사회화에 의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용이, 때마침 경제와 인구구조의 쇠퇴기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중국 등 신흥국처럼 경제, 인구 확장기와 이런 변화가 일치할 경우에는 변화를 발전의 기초로 삼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 정치경제의 골격이 확립됐고, 버블로 정점을 찍었던 일본사회는, 버블붕괴와 인구감소, 글로벌화, 넷사회화가 한꺼번에 덮친 헤이세이 시대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p.271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헤이세이 일본의 미국에 대한 종속은 갈수록 깊어졌다. 자신을 잃어가니 강한 미국에 갈수록 의지함으로써 중심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격차를 확대하고 분열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에 미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는 이미 그 패권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미국에 계속 의존하면서 아시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려 하지 않는 일본에도 미래는 없다.
--- p.10
이미 1980년대 말, 아시아 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미일을 축으로 발전해온 일본의 전후 산업체제를, 아시아와의 관계를 축으로 하는 쪽으로 재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얼마 안 가 일본기업은 아시아에 대거 공장을 짓게 되지만, 수요면에서도 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상대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유도돼야 했던 것 아닌가. 그러나 그런 구조전환은 뒤로 미뤄지고, 금리인하에 의한 대응이 우선시되면서 효과는 약하면서 부작용이 터무니없이 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은 아닌가.
--- p.51
실패의 제1요인은, 일본의 주요 전기산업이 TV시대의 종언과 모바일형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점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1990년대부터 글로벌한 규모로 전개된 수평 분업구조에 일본기업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체제는 ‘계열’ ‘하청’이라는 종래의 일본적 발상을 무의미하게 했다. 즉 일본 기업들은 오랜 기간 익숙해진 조직원리의 근본적인 변경을 요구받게 됐다. 이것이 전통적인 일본 대기업에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 p.67
헤이세이 전기의 정치사는, 선거제도 개혁, 특히 소선거구제 도입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점철됐다. 이 점에서 자민당도 사회당도 ‘수구파’와 ‘개혁파’로 두동강 났다. ‘수구파’로 불린 것은 중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한 ‘보수’ ‘혁신’ 간대립구도라는 55년 체제 속에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한 정치가들이었다. ‘개혁파’란 그런 자민당 내 파벌정치와 자민·사회 양당의 보완관계를 뒷받침해온 선거제도를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새로운 권력기반이 구축될 것을 기대한 정치인들이었다. (중략)
총평을 중심으로 한 관공노 계열 노동조합이 내부붕괴로 치달은 것은 사회당의 조직적 기반을 두드러지게 약화시켰다. 확고한 조직적 기반을 상실한 사회당은, 1990년대 들어 내리막길로 치달았다. 그 얼마 전 사회당에는 총평계 노동조합에 의존하는 좌파정당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처럼 풀뿌리적인 저변을 가진 리버럴 정당으로 전환할 최후의 찬스가 있었다.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전환할 무렵 일었던 도이 붐이 기회였다. (중략)
도이가 이 무렵 시도한 것은 사회당의 중심을 ‘계급’에서 ‘젠더’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이 전환 이후에는 ‘지역’과 ‘세대’ 즉, 지방과 고령화 문제를 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당의 전략이 부상할 참이었다.
--- p.103
아베 정권은 민주당이 내건 래디컬한 정치주도를 부정하고, 이를 교활한 관저주도로 대체했다. 관저가 성청의 관료들을 뜻대로 움직이고, 예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내각인사국과 경제재정자문회의로 충분했다. 관방장관은 성청의 국장급 인사를 관리함으로써 성청 전체에 대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고이즈미 정권처럼 포퓰리즘과 경제재정자문회의의 민간인 활용을 솜씨있게 조합하면 여론에 ‘정치주도’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 p.147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1995년 한신·아와지대지진은 고도성장기 일본식 개발주의의 위험성을 근저에서 지적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진은 원전이나 고속도로, 인공섬 같은 기술의 한계를 드러내 보였을 뿐 아니라 전후 흔들림 없을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의 기반이 의외로 무르고, 불안정함을 일깨웠다.
--- p.167
결국, 헤이세이 일본 사회가 향한 것은 비정규고용의 청년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를 사회 전체가 착취하는 체제의 고착화였다. 이를 정당화한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고, 여기에 동원된 것이 ‘구조개혁’이라는 캐치플레이즈였다. 이런 체제가 침투하면서 등장한 것은 ‘전후’의 총중류화를 뒤엎은 ‘포스트 헤이세이’의 계급사회이다.
--- p.195
돌이켜보면 찬스는 있었다. ‘소자화’라는 말이 정부백서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92년이지만 이 무렵이라면 아직 단카이 주니어는 출산적령기 이전이었던 만큼 꽤 효과적인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사회는 버블붕괴의 뒤처리에 필사적이었고, 동시에 정치는 ‘정치주도’에 매진하고 있었다. 사회복지 정책이 의제화되더라도 고령화 대책이 많았고, 소자화 대책은 뒷전으로 밀렸다. 고령자는 표가 되지만, 청년도 유아도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 p.208
아무로 나미에는 1990년대 음악 신에서 ‘아이돌’로서 도약한 것이 아니다. 그의 도약을 가능케 한 것은 동시대 남성들이 아니라, 젊은 여성들의 ‘멋짐’에 대한 선호, 그것도 남자들이 아니라 여성들이 바라는 멋짐에 대한 욕망의 실현이었다. 아무로의 돌연한 결혼과 출산, 1년간의 육아휴직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그를 수용하는 중심층이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 p.241
헤이세이의 일본이 불운했던 것은, 이 글로벌화와 넷사회화에 의한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용이, 때마침 경제와 인구구조의 쇠퇴기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중국 등 신흥국처럼 경제, 인구 확장기와 이런 변화가 일치할 경우에는 변화를 발전의 기초로 삼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 정치경제의 골격이 확립됐고, 버블로 정점을 찍었던 일본사회는, 버블붕괴와 인구감소, 글로벌화, 넷사회화가 한꺼번에 덮친 헤이세이 시대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p.271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헤이세이 일본의 미국에 대한 종속은 갈수록 깊어졌다. 자신을 잃어가니 강한 미국에 갈수록 의지함으로써 중심성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격차를 확대하고 분열을 강화하고 있는 일본에 미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으로는 이미 그 패권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미국에 계속 의존하면서 아시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려 하지 않는 일본에도 미래는 없다.
--- p.307
출판사 리뷰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원인을 파고든 ‘일본 최신사정 설명서’
일본의 헤이세이(1989~2019) 시대는 두 차례의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 외에도 정치개혁 실험이 좌절하고 샤프, 도시바 등 기업들도 글로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속속 무너지던 ‘잃어버린 30년’이었다. 1989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개사 중 32개사를 차지했던 일본 기업은 2018년에는 도요타(35위) 외엔 전멸했다.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 증가, 인구감소, 지방 소멸위기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고,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같은 엽기적인 사건들도 충격을 가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전후(戰後)에 구축돼 쇼와 시대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작동되던 일본형 시스템의 한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연약한 지반이 수분을 머금어 액체 같은 상태로 변하는 ‘액상화’가 일본 사회의 각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 헤이세이 말기다.
저자는 헤이세이의 액상화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쇼와 시대에 진행된 지반약화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사적 대전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지만, 일본은 오일쇼크를 무난히 극복한 데 따른 안도감에 사로잡혀 변화를 직시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런 안도감이 1980년대 경제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가져왔고, 1990년대 이후 전개된 글로벌화의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를 초래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 결과 헤이세이 일본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쇼크(버블경제의 붕괴,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2001년 미국 동시다발테러와 이후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와 동시병행적으로 전개된 글로벌화와 넷사회화, 저출산고령화 등 충격 속에서 일본은 좌절해갔고,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들이 실패했다. 쇼와의 빛나는 성공신화가 헤이세이 일본의 태세전환을 어렵게 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전기·전자산업의 어이없는 몰락은 그 단적인 예다.
동아시아 중심에서 밀려난 일본의 앞날은?
헤이세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종막을 고한 시대이기도 하다. 150여 년 전 메이지유신을 달성한 일본은, 서양의 기술, 제도, 지식을 전력으로 도입해 불과 30년에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중심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냉전 후의 헤이세이 시대, 동아시아의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은 점점 늙어가는 사회가 되고, 성장은 환상으로 끝났지만 정부는 리스크를 각오한 채 어떻게든 경제를 부양하려고 필사적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그러므로, 제2, 제3의 버블 붕괴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 타개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한층 더 취해지고, 감세조치와 규제완화로 공공영역은 점점 축소돼 경제가 일시 부양하더라도 격차는 확대되는 만큼, 사회전체의 열화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잃어버린 30년’이 ‘잃어버린 반세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는다. 저자는 위기의 실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모두가 위기를 위기로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헤이세이 시대의 사회 분야에서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초저출산과 격차확대다. 제도와 시스템 미비가 저출산을 가속화시켰지만 가장 큰 원인은 ‘빈곤화’이다. 버블붕괴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대거 늘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을 붕괴시켰고, 그들이 인생설계를 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더 심각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2018년 0.98명, 2019년에는 0.92명까지 떨어지며 2년째 ‘0명대 출산율’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0명대인 유일한 나라다. 합계출산율 1.4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저출산 현상의 구조적 배경은 일견 흡사하지만, 한국은 교육비·주거비의 과중한 부담이 출산은 물론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추가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체제인 일본의 가장 최신 경향을 담은 현대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일본이 겪는 위기를 한국은 피해갈 수 있을까.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일본을 만들어간 다양한 인물들
이 책은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 교주,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대중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고무로 데쓰야,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오토모 가쓰히로 등 각 방면의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헤이세이 일본을 어떻게 직조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말’ 서사가 헤이세이 시대와 어떻게 조응했는지도 흥미를 더해준다.
일본의 헤이세이(1989~2019) 시대는 두 차례의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대참사 외에도 정치개혁 실험이 좌절하고 샤프, 도시바 등 기업들도 글로벌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속속 무너지던 ‘잃어버린 30년’이었다. 1989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50개사 중 32개사를 차지했던 일본 기업은 2018년에는 도요타(35위) 외엔 전멸했다. 사회적으로도 비정규직 증가, 인구감소, 지방 소멸위기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고, 옴진리교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같은 엽기적인 사건들도 충격을 가했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는 전후(戰後)에 구축돼 쇼와 시대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작동되던 일본형 시스템의 한계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연약한 지반이 수분을 머금어 액체 같은 상태로 변하는 ‘액상화’가 일본 사회의 각 분야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이 헤이세이 말기다.
저자는 헤이세이의 액상화는 갑자기 벌어진 것이 아니라 쇼와 시대에 진행된 지반약화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1970년대 말부터 세계사적 대전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지만, 일본은 오일쇼크를 무난히 극복한 데 따른 안도감에 사로잡혀 변화를 직시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런 안도감이 1980년대 경제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가져왔고, 1990년대 이후 전개된 글로벌화의 다양한 위험과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를 초래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 결과 헤이세이 일본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쇼크(버블경제의 붕괴, 한신·아와지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2001년 미국 동시다발테러와 이후 국제정세의 불안정화,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와 동시병행적으로 전개된 글로벌화와 넷사회화, 저출산고령화 등 충격 속에서 일본은 좌절해갔고, 이를 타개하려는 시도들이 실패했다. 쇼와의 빛나는 성공신화가 헤이세이 일본의 태세전환을 어렵게 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한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 전기·전자산업의 어이없는 몰락은 그 단적인 예다.
동아시아 중심에서 밀려난 일본의 앞날은?
헤이세이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종막을 고한 시대이기도 하다. 150여 년 전 메이지유신을 달성한 일본은, 서양의 기술, 제도, 지식을 전력으로 도입해 불과 30년에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은 미국과의 일체화를 통해 중심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냉전 후의 헤이세이 시대, 동아시아의 중심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옮겨갔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일본은 점점 늙어가는 사회가 되고, 성장은 환상으로 끝났지만 정부는 리스크를 각오한 채 어떻게든 경제를 부양하려고 필사적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그러므로, 제2, 제3의 버블 붕괴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 침체 타개를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한층 더 취해지고, 감세조치와 규제완화로 공공영역은 점점 축소돼 경제가 일시 부양하더라도 격차는 확대되는 만큼, 사회전체의 열화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잃어버린 30년’이 ‘잃어버린 반세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는다. 저자는 위기의 실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모두가 위기를 위기로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헤이세이 시대의 사회 분야에서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초저출산과 격차확대다. 제도와 시스템 미비가 저출산을 가속화시켰지만 가장 큰 원인은 ‘빈곤화’이다. 버블붕괴 이후 기업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대거 늘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기반을 붕괴시켰고, 그들이 인생설계를 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국이 더 심각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2018년 0.98명, 2019년에는 0.92명까지 떨어지며 2년째 ‘0명대 출산율’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0명대인 유일한 나라다. 합계출산율 1.4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저출산 현상의 구조적 배경은 일견 흡사하지만, 한국은 교육비·주거비의 과중한 부담이 출산은 물론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추가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체제인 일본의 가장 최신 경향을 담은 현대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일본이 겪는 위기를 한국은 피해갈 수 있을까. 헤이세이 일본의 ‘실패 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일본을 만들어간 다양한 인물들
이 책은 아사하라 쇼코 옴진리교 교주,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대중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고무로 데쓰야,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안노 히데아키, 오토모 가쓰히로 등 각 방면의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이들이 헤이세이 일본을 어떻게 직조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자주 등장하는 ‘종말’ 서사가 헤이세이 시대와 어떻게 조응했는지도 흥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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