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한일관계사 연구 (독서)/6.한일관계신간

왜구, 그림자로 살다 (2021)

동방박사님 2023. 4. 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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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아시아의 그림자, 왜구

‘일반화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일부분이나 특별한 경우를 전체로 착각하여 범하는 잘못된 생각 등을 말한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은 왜구가 ‘나쁜 놈’이었는지 ‘좋은 놈’이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왜구는 무엇이었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가능한 한 과거의 기록을 통해서 그들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왜구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동아시아 역사 속의 왜구는 그림자로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목차

프롤로그
왜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전근대의 ‘해적’
‘왜’와 ‘구’-‘왜구’라는 말의 의미

1장 그림자의 서막, 왜구
1. 왜가 고려로 도적질을 하러 오다!
2. 충렬왕과 쿠빌라이가 말한 ‘왜구’
3. ‘왜구’의 시작
4. 왜구시대의 개막
5. 중국 대륙과 일본의 상황
6. 왜구는 왜 바다를 건넜을까?

2장 고려에 드리우는 그림자
1. 등경광의 복수
2. 더 격렬하고 더 잔인해진 왜구
3. 고려의 반격
4. 슈퍼히어로 ‘신궁 이성계’
5. 슈퍼빌런 ‘아지발도’의 정체

3장 그림자가 된 사람들
1. 미스터리 가득한 고려 말의 대규모 왜구
2. 대규모 왜구는 ‘고려인’이 주체?
3. 고려 말의 왜구에는 고려인·중국인도 섞여 있었을까?

4장 옅어진 그림자와 조선
1. 조선의 건국과 왜구 진압을 위한 노력
2. 왜구의 변신
3. 왜구의 ‘최대’ 소굴-쓰시마섬
4. 리멤버! 1419!
5. 태종이 쓰시마섬을 정벌한 속내는 무엇이었나?

5장 잠잠해진 왜구의 여러 가지 사정들
1. 조선인이 바라본 왜구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의 왜구
2. 왜구가 서쪽(중국)으로 간 까닭은?-전기왜구의 종막
3. ‘배고프다던 왜구’는 정말 먹을 게 없었을까?
4. 왜구가 아니었던 ‘왜구’-왜구로 몰린 표류자와 항해자

6장 16세기의 후기왜구
1. ‘왜구’가 된 사람들-16세기에 주력이 된 중국인 왜구
2. 왕직, 왜구의 왕이 되다
3. ‘왜구(일본인 해적)’ 없는 ‘왜구(일본의 해적)’에 의한 ‘을묘왜변’
4. 무조건 싹 잡아서 죽여라!

에필로그
왜구의 최대 특징은 ‘다양성’
왜구는 무엇이었나?
 

저자 소개

저 : 윤성익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동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내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 및 연구 활동을 하다가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외국인 연구원으로 잠시 머물렀고, 현재는 경희대학교에서 강의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왜구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관계 사이며, 최근에는 근대 동아시아의 번역 문제나 역사 인식과 관련한 주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논저로 「21세기 동아시아 국민국가 속에서의 왜구상(倭寇...

책 속으로

‘역사적 존재’에 대한 이미지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그때그때의 여러 사정에 의해 변형되고 가공되어 온 결과이다. ‘왜구’는 지금으로부터 수백 년 전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왜구의 이미지는 과연 어떨까? 과거 역사에서의 실제 왜구에 어느 정도나 가까운 것일까? 혹은 동떨어진 것일까?
--- 「프롤로그」 중에서

왜의 도적질에 대해 고려의 조정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지는 않다. 2년 뒤인 1225년 4월에 왜선 2척이 다시 경상도 연해 지역을 도적질했는데, 『고려사』에 의하면 군대를 동원해 그들을 모두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던 며칠 뒤 고려의 왕(고종)은 유유낙낙하게 무사들이 벌이는 격구를 관람했다.
--- 「1장 그림자의 서막, 왜구」 중에서

우왕 때에는 왜구 금지를 요구하는 사절이 모두 5번 일본으로 향해 일본의 바쿠후나 지역의 유력자들과 교섭을 가졌다. 잡혀갔던 고려인들이 송환되어 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외교적 교섭을 통해 왜구를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왜구를 이루던 사람들은 대부분 고려가 교섭했던 세력들의 통제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2장 고려에 드리우는 그림자」 중에서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왜구는 그야말로 왜구일 뿐, 그 안의 구성원이 어떻게 되어 있건 큰 상관이 없었다. 왜구는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적 집단이며 침략자였을 뿐이다. 그런 국가권력의 입장에 서서 기록된 사료만 가지고 왜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3장 그림자가 된 사람들」 중에서

왜구를 억제하기 위한 조선의 여러 정책은 효과가 있었다. 조선에서 왜구 문제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왜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1409년(태종 9)부터 1419년(세종 1)까지 조선에서 왜구에 의한 직접 피해는 매우 제한된 것이었고 고려 말처럼 국가 운영에 타격을 줄 정도의 큰 고충은 더 이상 아니었다. 물론 불만이 있던 ‘전직 왜구’들도 있었다.
--- 「4장 옅어진 그림자와 조선」 중에서

1419년의 망해과 대첩과 쓰시마섬 정벌 이후의 왜구에 대해 ‘왜구의 소멸’이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조선에서는 쓰시마섬 및 그 외 일본의 여러 세력과 평화적인 통교 관계가 지속·강화되면서 실제로 왜구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왜구들은 이른바 ‘평화적 통교자’로 전환한 것이다.
--- 「5장 잠잠해진 왜구의 여러 가지 사정들」 중에서

흔히 을묘왜변은 고려 말부터 시작되어 계속 반복되어 일어났던 왜구 사건의 하나이며 그 이전의 삼포왜란, 사량진왜변과 연장선상의 사건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을묘왜변은 조선에서 발생했던 기존의 왜구와는 사뭇 다른 성격의 왜구였다. 실행 주체의 핵심에는 본래는 밀무역 상인이었던 중국인들이 있었다.
--- 「6장 16세기의 후기왜구」 중에서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처럼 13세기와 14세기의 왜구에 차이가 있고, 14~15세기의 전기왜구와 16세기의 후기왜구는 상당히 다른 면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의 왜구라도 상세히 살펴보면 실로 여러 형태가 있었다. … 이런 다양성을 무시하고 어느 한쪽의 특성만을 들어 그것을 강조할 경우 ‘같은 왜구’라도 전혀 다르게 설명될 수 있다.
--- 「에필로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왜 그들은 그림자가 되었을까?

많은 사람이 바다를 건너와 행동하기 위해서는 항해 비용 외에도 그들이 부재한 동안에 그들의 노동생산력 등을 보완하기 위한 비용 등 많은 뒷받침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실제로 바다를 건너온 많은 사람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고향 땅에서는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생산을 담당해야 할 일꾼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도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바다를 건넜고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그랬다고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

그림자에서 다시 사람으로

왜구는 고려의 말기적 상황, 일본의 남북조시대, 중국의 원명교체기라는 동아시아 세계의 혼란과 변화의 시기에 나타나 극성을 이루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웠던 동아시아 삼국의 내부질서가 회복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립되면서 왜구도 점차 그 질서 안으로 편입되어 갔다. 통치 권력의 강화와 안정하에서 왜구는 더 이상 존립하기가 어려워졌던 것이다. 권력이라는 태양 빛이 강해질수록 그림자는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구는 그렇게 그림자에서 다시 사람이 되었다.

[편집자의 말]

지난 3월,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에서 좌초되면서 세계의 해상 운송은 혼란을 겪었다. 이어서 다시 희망봉 루트로 향하는 배들도 생겨났고, 이에 대해적시대가 열린다는 농담도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가 하면, 청해부대가 “해적에 쫓기고 있다”라는 구조신호를 포착하고 출동해 북한 상선을 안전히 호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왜 수에즈운하에는 없는 해적이 소말리아 근처 해역에는 등장하는가? 왜 청해부대는 그 당시 북한 상선의 구조신호를 포착할 수 있는 위치에 파견되어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이다. 소말리아는 이집트에 비해 국내 상황이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내전이 빈번해 국가의 통제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안정적인 벌이를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이 바다로 나가 해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청해부대는 이러한 해상의 예기치 않은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먼바다에 파견 나가 있는 것이다. 즉, 소말리아의 해적도 청해부대도 결국 국가의 통제력이 어디까지 닿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 해역에서의 왜구 역시 이와 유사한 배경에서 활동하였다. 왜구가 들끓던 시기는 주로 중국이나 고려(혹은 조선), 그리고 일본의 국가권력이 통제력을 일정 부분 상실한 혼란기였다. 당시 삼국의 바다는 국가권력의 통제 밖에 있었다. 그리고 통제 밖의 바다는 밀무역과 약탈의 현장으로 변하기가 십상이었다. 밀무역이든 약탈이든 간에 이들은 결국 국가권력에 반하는 존재들이었다. 국가권력으로서는 이러한 존재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과 고려는 직접 진압에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적 해법을 강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늘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엉뚱한 이들을 왜구로 몰아 죽이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왜구에게 패배하는 굴욕을 겪기도 하고, 일본에서도 이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혼란기에는 영웅들도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중국에서는 유룡척호라 불리는 유대유와 척계광이, 고려에서는 최영과 이성계가 등장해 왜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왜구가 잠잠해진 것 역시 국가권력의 통제력과 관련 있었다. 한반도에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고, 조선이 통제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왜구는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조선은 왜구를 방지하기 위해 이들에게 먹을 것과 살 곳을 제공하였고, 왜구로서는 조선이 건네는 여러 가지 혜택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아가 왜구의 본거지였던 쓰시마섬에서는 왜구로 인해 이러한 관계가 끊어질까 우려하면서 조선 측에 자신들의 왜구 방지 노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조선 정부라는 햇볕 앞에 선 왜구라는 그림자는 사라져 간 것이다. 물론 그 그림자가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서 평화적 통교자로서 햇볕 앞에 섰던 그림자는 그 방향을 돌려 중국에 갔다. 중국으로 향한 왜구는 중국인 밀무역 상인들과 결합하면서 그 집단 내에 중국인을 포함한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서 중국인 출신의 왜구 지도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중국인이 다수인 왜구 역시도 등장하였다. 왜구 없는 왜구의 등장이었다. 물론 그들은 국가권력 입장에서는 이전과 동일한 왜구였을 따름이었다.

동아시아 역사 속의 왜구는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인 왜구가 특징인 16세기 후기왜구와 마찬가지로 전기왜구와 13세기의 왜구 역시도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왜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기마다 그 모습이 다양하고, 장소마다도 모습이 다양했던 만큼 이들을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충렬왕이 쿠빌라이에게 말한 ‘왜구’는 해적 집단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정권 차원에서의 위협에 가까웠다. 조선과 중국의 관리들이 보고한 왜구 중에는 왜구가 아닌 단순 표류자일 뿐이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평화로운 통교자였던 이들이 중국으로 가서는 위협적인 왜구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들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들을 정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들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알아보면서, 이들의 모습들을 그려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왜구를 정의하기보다는 보여 주려 힘썼다. 이 책에서 전해 주는 여러 왜구 이야기들은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차근히 그려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