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정치의 이해 (독서)/7.탈식민주의

저항과 포섭 사이 (2016) -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한 논쟁적인 이해

동방박사님 2023. 8. 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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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 학계에 깊은 뿌리를 내린 탈식민주의 비평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간된 1978년을 탈식민주의 연구의 원년으로 보면 이 연구는 약 40년의 역사를 가진 것이다. 그간 이 분야에 관하여 출간된 국내 역서만 해도, 사이드의『오리엔탈리즘』(2000)과 『문화와 제국주의』(1995),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2002),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2001), 가야트리 스피박의 『다른 세상에서』(2003)와 『교육 기계의 바깥에서』(2006) 등을 헤아린다. 이처럼 탈식민주의 비평은 이제 우리의 학계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이 분야에서 정평 있는 해외 연구로는, 북미 흑인해방운동에 관해서는 모지즈(W. J. Moses)의 저술이, 네그리튀드 운동에 관해서는 케스틀룻(L. Kesteloot)의 저술이, 최근의 탈식민주의 이론에 대해서는 무어-길버트(Bart Moore-Gilbert)의 저술이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항과 포섭 사이』는 이들의 연구와는 차별되는 시각에서 이들과 논쟁적인 대화를 이어나간다. 특히 저자는 이 비평가들이 사용한 원전의 연구에 천착함으로써 모지즈나 케스틀룻이 일차 문헌을 어떻게 왜곡하였는지를 지적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등의 이론가들도 그들이 화두로 삼는 ‘식민 재현의 공정성’이나 ‘오독’의 문제에서 그들 자신이 자유롭지 못함을 지적하였다. ‘탈식민주의 이론에 관한 논쟁적인 이해’라는 부제를 단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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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탈식민주의 이론가들

1장 억압의 역사와 저항 담론
유럽 계몽주의의 편견
해방 담론과 대서양 삼각관계
진영 논리의 위험
네그리튀드에 대한 통념
다시 읽는 파농
탈식민 담론의 헤테로글로시아
탈식민주의의 이중성

2장 북미 흑인운동의 재평가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백인들의 해외이주론
흑인들의 해외이주론
1850년의 타협과 그 여파
마틴 들레이니, 사이비 아프리카주의자?
프레드릭 더글러스의 흑백통합주의
통합론자의 급진주의와 인종주의
부커 T. 워싱턴의 화해주의

3장 “검은 양키”와 아프리카 민족주의
알렉산더 크러멜의 에티오피아론
“검은 양키”의 아프리카 문명화론
영어 지상주의(至上主義)
에드워드 블라이든과 문화 민족주의
블라이든의 순혈주의와 친제국주의
마커스 가비의 아프리카 민족주의

4장 W. E. B. 두보이스의 모순
두보이스, 후천적 인종론?
인종주의적 인종론을 넘어
“미제(美製) 흑인”의 범아프리카주의
범아프리카회의의 전개 양상

5장 네그리튀드의 성적 타자
다시 쓰는 네그리튀드 계보
아프리카계 라틴인
프로베니우스의 영향
동화(同化)에서 식인화(食人化)로
??정당방어??, 마르크스와 브르통
메닐과 레로의 반식민 문화비평
저항과 모방 사이

6장 네그리튀드와 인종주의
서구 가치와의 결별?
흑인감성론자의 양면성
생고르, 프랑스의 연인
세제르, 거부와 정죄의 시학
다마스, 핏빛 문명의 비판
사르트르의 ?흑인 오르페우스? 논쟁
문화적 기억과 역사성

7장 네그리튀드의 혼종성
초현실주의의 수용과 한계
프랑스어 예찬과 표절 시비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만남
아프리카식 사회주의
동지들의 비판과 이국주의 논란

8장 파농의 지적 채무
성 심리학 vs. 유물론적 심리학
마노니의 비판, 혹은 오독?
파농, 마랑 그리고 라캉
네그리튀드 비판
헤겔의 “절대성의 밤”과 보편성 논쟁
세제르론
내가 하면 로맨스?

9장 파농과 페미니즘
파농의 탈역사성
남성중심주의와 보편적 성(性)
파농의 남성 욕망론
파농의 여성 욕망론
하이크와 남성적 시선
초대 (못)받은 여성전사

10장 오리엔탈리즘, 푸코, 니체
푸코와 지식의 세속성
이데올로기론과 가다머의 해석학
그람시, 마쇼레이, 만하임의 패러독스
오리엔탈리즘, 역사성, 예단의 독법
현존, 재현 그리고 마그리트의 파이프
“언어의 감옥”과 아마드의 오류

11장 사이드의 문화론과 정서 구조
알튀세르와 문화 결정론
상대적 자율성과 아포리아
후기 사이드 문화론의 계보
참조 구조 vs. 윌리엄즈의 정서 구조
대위법적 해석학의 계보
콘래드론 vs. 웨일즈 산업소설론
역사적 독법의 비역사성

12장 바바의 식민주체론
정형 담론과 주체 구성
푸코의 권력 개념과 식민관계
정형화와 식민적 물신주의
주객의 중첩성과 라캉의 동일시
식민 모방과 차이의 재현
아류(亞流), 현존의 환유
저항, 주체 없는 과정

13장 민족(서사)의 해체
보충대리성과 식민적 의미화
혼종론과 역사성
민족의 산종(散種)과 시간성
교육성 vs. 수행성, 불확정성
소수민 담론과 다문화주의 비판
혼종성과 보편화의 권력

14장 스피박의 하위주체론
푸코와 들뢰즈의 마오주의 재현
주권적 주체 vs. 욕망하는 주체
재현, 대표, 대체의 대체
마르크스의 프랑스 소농, 분열된 주체?
하위계층연구와 미망인 분신
제휴 정치론과 희생자 윤리주의
스피박에 대한 평가

15장 해체주의와 전략적 연대
라캉의 여성, 니체의 여성, 데리다의 여성
“여성의 이름”과 기생(寄生)의 기생
전략적 본질주의
가변성과 임시성의 이름으로
우리 안의 인종주의
소수민 논의, 다시 역사 속으로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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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이석구 (李奭具, Suk Koo RHEE)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비교문학문화학과의 교수로 있으면서 영소설, 제3세계 문학, 비평이론, 문화연구를 강의하고 있다. 역서로는『어둠의 심연』이 있다. 영어권 문학 비평『제국과 민족국가 사이에서』(2011)로 영어영문학 학술상과 연세 학술상을 받았다. 현재 영식민주의 소설에 대한 저서를 집필 중이다.

출판사 리뷰

저항과 포섭 사이

이 저서의 출발점은, 선진국과의 경쟁에 나선 후발 국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서구의 문화적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피지배국의 지성인들이 들었던 무기가 바로 서양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후기구조주의의 세례를 받은 최근의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에게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니다. 네그리튀드와 북미 흑인운동에 대한 논의에서 본 연구가 밝히듯, 아프리카의 정신적 가치를 주장하기 위해서조차 흑인들은 서양의 지식에 의존해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북미의 흑인 해방론자들은 아프리카 침략의 전초병의 역할을 하였던 당대 기독교의 영향권 내에서 교육받았으며, 그래서 이들이 흑인주권국을 꿈꾸었을 때조차 그 꿈은 기독교인으로서, 앵글로색슨 문명의 충실한 사도로서 꾼 것이었다. 프랑스어권의 ‘순수’ 흑인운동으로 평가받는 네그리튀드도 그간의 평가와는 달리, 실은 ‘프랑스 문화와의 이상적인 결합’을 꿈꾸었다. 그러한 점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지배자가 남긴 유산을 모방하는 데서 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일정 부분 포섭됨을 피할 수 없었다. 본 연구의 주제로 ‘저항과 포섭 사이’를 선택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한국의 비평계에 탈식민주의가 소개된 지가 25년 정도 되었다. 이 분야에서 그간 있었던 굵직한 국내 연구로는, 『초민족 시대의 민족 정체성』(2002), 『탈식민주의-이론과 쟁점』(2003), 그리고 『검은 역사 하얀 이론』(2011)을 꼽을 수 있다. 그간 한국의 학자들은 탈식민주의가 서구의 제국주의에 봉사할 가능성을 경계하였다. 탈식민주의가 제1세계의 지식인들에 의해 이론화 작업을 거치게 될 때 저항성을 잃게 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서구의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평가의 잣대로 작용한다. 이러한 잣대에 의해 일찍이 무어-길버트가 탈식민주의를 탈식민주의 비평과 이론으로 나눈 바 있다. 같은 관점을 취하는 이경원의 표현을 빌면, “‘탈식민주의 비평’이 제3세계의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독립운동이었다면, ‘탈식민주의 이론’은 서구 이론과 자본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문화적 신탁통치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탈식민주의 비평이 제도권 밖의 급진적인 지식의 지위를 갖는다면, 탈식민주의 이론은 저항의 예각을 상실하고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장에 의해 순치된 게임에 비견된다.

어디에도 자생적인 이론은 없다

이 책은 탈식민주의 운동을 ‘자생성’이나 ‘주체성’ 혹은 “출신성분”의 관점에서 구분 짓기가 매우 힘들다는 주장을 제기함으로써 무어-길버트의 연구 및 이를 따르는 후속 연구들과 시각을 달리한다. 흑인 제국론을 주창한 마틴 들레이니, 흑인 감성론을 주창한 네그리튀드 운동, 심지어는 백인과의 동일시에서 깨어날 것을 동료들에게 촉구한 파농 같은 소위 급진적인 운동가들의 주장도 엄밀한 시각에서 보면, ‘자생적’인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일례로, 흑인의 가치를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던 것으로 기억되는 네그리튀드 운동도 실은 혼종적인 정체성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심지어는 오늘날 반식민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파농의 흑인론도 자생적인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민망한 부분이 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담론이나 헤겔의 『정신의 현상학』이 없는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어느 주의(主義)도, 어느 운동도 홀로 탄생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본 연구의 대전제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주인의 언어를 배워 주인에게 되사용하는 현대의 “캘리번”에 흔히 비유하지만, 사실 캘리번이 주인으로부터 욕만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탈식민 비평이 되었든, 탈식민 이론이 되었든, 탈식민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조망해보면, 캘리번은 주인으로부터 욕뿐만 아니라 심오한 지식도 배웠다. 그래서 현대의 캘리번이 배운 말은 주인을 고발하는 무기로도 사용되지만, 캘리번의 의식의 풍경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양식도 된다. 관건은 빌려온 담론들과 훔쳐온 지식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반박하며 변형시키는가의 문제, 즉 다양하고 이질적인 언어들과의 ‘협상’의 문제이지, 애초부터 순수하게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담론도, 운동도 없다는 사실이다. 독립과 자율은 운동의 자생성이나 순수성이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과 다양성에 대한 치열한 개입에서만, ‘적과의 동침’을 통해서 하나의 전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결론에서 우리 사회에 깃들은 인종주의적 편견을 조선조 말 개화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을,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방인들, 흑인들, 화교, 심지어는 조선족 동포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비교한다. 그리고 소수민족에 대한 논의가 ‘재현의 왜곡’이라는 잘못을 피하기 위해서는 항상, 역사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결말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