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사회학 연구 (독서>책소개)/1.사회학일반

약자의 결단 - 우리는 왜 모범국민 되기를 거부해야 하는가?

동방박사님 2023. 12. 1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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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결국 대중이 택한 언어가
돈이 되고 법이 되고 세상의 이치가 될 것이다”
각자도생이 만든 각자언어의 세계로
과학 뒤에 숨은 권력을 향한 디지털세대의 선언


커피 한잔의 가격을 ‘1수’라고 하자. 땅 1제곱미터의 가격은 ‘1땅’, 공기 1리터의 가격은 ‘1에어’다. 100미터를 걷는 가치는 ‘1산책’이라고 한다. 이것은 화폐다. 정부와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법정화폐와 동등한, 그러나 혼용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쓰이는 화폐다.

뜬구름 잡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이 책 『약자의 결단』에서 제안하는 방법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이 책은 과학 뒤에 숨은 권력을 향한 디지털세대의 선언문이다. 여기에서 정의하는 ‘약자’는 선택할 게 없는 사람, 선택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다. “정답이 정해진 사회에서 기준이 정해진 시험으로 높은 등수와 자격을 갖추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을 때, 그 사회 구성원은 모두 약자다(9쪽 ‘프롤로그’).”

권력과 강자를 끌어내리자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가진 자의 소유를 나누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정권교체와 같은 체계 전복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체계를 바꾸고자 한 시도는 ‘혁명’이나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성공도 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뎠고, 차별과 계급도 여전히 존재해왔다. 이제 사회 체계의 가장 아래에 있는 단위인 소통 기호, 즉 ‘언어’를 바꾸어야 할 때다(81쪽, ‘하나의 공간, 두 개의 세상’). 기존의 가치 기준을 뒤흔들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사회에서의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가진 자들의 소유 자체도 무색하게 만든다. 강자가 치는 판에서, 약자가 다시 짜는 판이다. 디지털시대여서 가능한 일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과학 뒤에 숨은 권력에 맞서

1. 과학이 허락한 진실
2. 진실이 허락되니 생긴 위기
3. 허락되지 않은 위기
4. 대안이 없다고? 과연 그럴까?
5. 변화는 꿈도 꾸지 마라
6. 하나의 공간, 두 개의 세상
7. 복잡한 사회에는 다양한 기호를
8. 있는 가치 지키기 vs. 없는 가치 찾기

2부. 새로운 기호를 쏟아내야 한다

9. 부작용도 과학의 몫이다
10. 대중과학의 잠재력
11. 돈 자본주의에서 언어 자본주의로
12. 빅데이터 몽타주
13. 운동화가 죽어야 나이키가 태어난다
14. 디지털시대 기호들의 만남

3부. 약자의 결단

15. 돈 앞에서 옳다고 외치면
16. 의심은 약자의 힘으로 생겨난다
17. 눈 밝은 시계공 뒤에 선 존재
18. 지켜야 하는 것이 기후인가, 기후정의인가?
19. 약자가 대중으로 격상되려면

4부. 우리의 돈이 권력의 돈을 이기려면

20. 법보단 돈, 돈보단 말
21. 기호가 바뀌어야 산다
22. 악마의 윤리학개론
23. 자본은 스스로 내려오지 않는다
24. 다시 없을 두 세대의 공존
25. 광장이 아닌 장소에서 외쳐야 한다

5부. 디지털 연금술사들이 지배하는 세상

26. 가치 기준 뒤흔들기
27. 돈에 숨겨진 증강과 감강 현실
28. 공동체는 호미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29. 더 이상 법정화폐가 필요 없을 때
30. 민주주의란 속임수를 깨부술 디지털 연금술사들

저자 소개

저 : 강하단 (조재원)
 
본명은 조재원. 과학예술작가이자 환경공학자다. 낙동강 하류에 자리한 부산 하단동에서 자라면서 낙동강과 연결된 바다를 탐구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생태와 과학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연구 주제는 과학예술, 과학기술, 도시환경연구소, 환경윤리, 의미공학, 감각실험실 등이다. 2016년과 이듬해에는 지식의 통섭을 추구하는 전 세계 석학 집단인 엣지(Edge)에 〈똥본위화폐〉와 〈중용의 비움〉이라는 에세...

책 속으로

돈을 왜 꼭 은행에서 가져와야 하는가? 지금의 돈을 놓아버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냥 끼리끼리 만들어 쓰면 될 일이다. 미래를 선언하면 가능한 일상이다. 경제소통의 맨 밑바닥 기호인 돈은 원래 그렇게 출발하지 않았던가. 디지털시대는 정부와 중앙은행 없이도 가능한 블록체인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블록체인을 넘어서는 그 이상도 당연히 허락될 것이다.
--- p.10, 「프롤로그」 중에서

첨단 과학으로 수많은 사실들이 선택될 수 있음에도 위기상황에 닥쳤을 때 믿음이 만들어내는 진실은 왜 늘 국가 단위로만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번 기회에 대중 차원의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진실을 모두에게 허락했는데 위기 상황에서의 리스크 대응 판단에 그 진실이 사용될 수 없다면 과학과 세상의 간극은 무엇으로 메울 수 있을지 걱정이다.
--- p.41, 「진실이 허락되니 생긴 위기」 중에서

인류 역사상 기호 변화를 통해 세상 변화를 시도한 적은 여태껏 없었다. 가장 위에 있는 체계의 변화는 혁명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시도되어 때론 성공했지만, 세상의 변화는 더디고 늘 유사한 차별과 계급을 유지해왔다. 이제 사회체계의 가장 아래 단위로 내려와 기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다.
--- p.81, 「하나의 공간, 두 개의 세상」 중에서

디지털 기호가 만나 형성하는 무한대의 빅데이터에 인류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 무한대로 발산하는 기호가 만드는 빅데이터는 그 어떤 전문가, 과학,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해석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76~177, 「디지털시대 기호들의 만남」 중에서

자산과 욕구를 혼동하면, 지키고 조절해야 하는 바람직한 대상에 혼란이 생긴다.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던 돈과 집이라는 자산이 투자 욕구로 잘못 연결되면 자산은 더 이상 가족을 위한 소중한 가치가 아니다. 그냥 돈과 부동산만 남는다. 가치의 보고이자 옹달샘인 소중한 자산을 욕망이 소유권으로 변질시켜버렸다. 예쁜 포장지 속에 고여 썩은 물건을 보관하는 꼴이 된다.
--- p.217~218, 「지켜야 하는 것이 기후인가 기후위기인가?」 중에서

이런 새로운 가치 기준을 갖는 디지털화폐는 기존 법정화폐와 함께 사용될 수 있다. 환전이 되지 않기에 오히려 법적 제약이 훨씬 덜하다. 화폐의 여러 요소를 잘 디자인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고이지 않고 순환되도록 할 수 있다. (…) 대중에게는 돈주머니 하나가 더 생긴다. 이런 화폐를 한 달, 두 달 그리고 1년 정도 사용한다면 사회의 가치질서 자체가 조금씩 변할 것이다. 내가 새로운 화폐를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도 이어서 받아들일 것이고, 사회는 그렇게 새로운 화폐경제를 추가로 갖게 될 것이다.
--- p.302, 「가치 기준 뒤흔들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모범국민을 벗어나 ‘대중’이 되면
강자를 끌어내리지 않고도 강자가 된다


여기 약자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두 약자가 있다. 첫 번째로 가진 자들의 소유를 정의롭게 나눠야 한다고 외치면서 싸우는 약자다. 이 방법은 권력을 인정하고 그 권력이 만든 질서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약자는 ‘국민’이 된다. 두 번째 약자도 있다.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를 만들어 권력과 가진 자의 소유를 무색하게 만드는 약자다. 디지털시대에 가능한 방법이다. 이때 두 번째 약자는 국민이 아니라 대중이다. _본문에서

이 책에서는 ‘국민’과 ‘대중’을 구분한다. 국민은 국가와 정부의 정책 대상이지만, 대중은 이 관점에서 벗어난 존재다. 국민으로 살아가는 길 앞엔 ‘모범’이 있을 뿐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 시키는 일 잘하는 직장인, 정부 정책을 잘 따르는 노년층… 이는 바꿔 말하면 특별히 순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학생, 주는 임금 이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직장인, 별다른 복지 정책을 펴지 않아도 괜찮은 노인세대다.

이 ‘모범인생’이야말로 권력이 지향하는 정체성이다. 모범학생 뒤에는 일류학교와 스타강사가, 모범직장인 뒤에는 초일류기업이, 모범국민 뒤에는 정부와 정치영웅이 있다. 모범적으로 사는 사회는 소수의 스타, 일류, 영웅, 셀럽을 만든다(334쪽, ‘에필로그’). 저자는 우리가 왜 모범국민이 되지 않아야 하는지, 모범국민은 권력에게 어떻게 이용당하는지, 모범국민이 되지 않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말한다.

지켜야 하는 것이 기후인가, 기후정의인가?
권력과 얽힌 전문가 집단을 경계하라


저자 강하단(본명 조재원)은 환경공학자이자 과학예술작가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과학인문학’과 ‘환경정의와 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교육, 정치, 경제체계 등 전 분야에서 다중 기호, 즉 다중 언어를 만들어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언어는 꼭 글이나 말이 아니라도 좋다. 소통에 쓸 수 있는 모든 도구가 언어이고 기호이다. 기호는 체계 맨 아래에 있다. 경제체계의 기호는 ‘돈’이고, 정치체계의 기호는 ‘법’이다. 교육체계에서는 ‘학점’과 ‘학위’다.

이 책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위기, 불평등 등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저자는 우리 앞에 놓인 숱한 재난을 극복하려는 권력과 전문가 집단의 행보를 달리 바라본다. 권력은 과학과 얽혀 있고, 전문가 집단은 권력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팬데믹 시기 모든 리스크 판단과 결정이 국가와 정부 단위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 즉 국민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결정을 내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생존 문제로 다가온 기후변화 위기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 ‘기후’인지 ‘기후정의’인지 다시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기후위기를 강조하면서 탄소세 상품과 이익만 챙기는 세계기구와 일부 강대국을 경계하고, 권력을 잡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기후위기 과제의 중요도가 달라지는 현실을 냉정히 살펴보라고 말한다. 정부 중심의 정책에 목을 매는 형국에서, ‘대중 중심’의 움직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리 높여 기후변화 위기를 외치는 궁극적 목표는 ‘생명’이지, 기후정의가 아니다.

세상이 이토록 복잡한데 언어가 하나일 수 없다
‘기호’가 변하면, 모든 것이 바뀐다!


제도, 정책, 정부를 바꾼다고 쉽게 바뀔 사회가 아니다. 경제 정책, 부동산 정책을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가? 교육부가 강도 높은 대학 개혁을 발표한다고 대학이 바뀌는가? 정부와 대통령이 바뀐다고 사회가 바뀌는가? 윗부분이 아니라 아랫부분이 변화해야 한다. 새로운 기호가 기존 질서와 병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현재 사회에서 사용되는 기호와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 _본문에서

약자가 강자의 소유와 관계 없이 강해지기 위해, 대중이 국민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중으로 살기 위해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초월한다는 의미의 ‘메타(Meta)’ 개념이다. 다중 정부, 다중 권력, 다중 화폐, 다중 기호가 있는 메타도시, 메타국가다.

가령 경제체계를 이루는 ‘돈’을 살펴볼 때, 이 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돈이 유일한 소통 기호라는 것을 인정한 다음, 그 돈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돈이 바뀌면 경제의 모든 것이 바뀐다. 경제 정책뿐 아니라 경제 법칙도 바뀔 것이다. 또 법이 바뀌면 정치적 시각 자체가 바뀐다. 대안이 없다고,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고 발목을 잡는 것은 기득권의 몸부림일 뿐이다.

이 책은 좀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권력을 찾아내 “여기 숨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모범국민 되기를 능동적으로 포기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상을 용기 있게 ‘선언’만 하면, 새로운 해법이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