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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 승자도 패자도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사는 21세기 남성학 (2023)

동방박사님 2024. 1. 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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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사는 21세기 남성학
지젝·아감벤·샌델·마크 피셔·하루키·체호프의 사상과 문학을 통한 시대비평, 문화비평의 결정판!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 『쇳밥일지』 천현우 강력 추천!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김영하 작가의 지적처럼,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비정규 삶’을 사는 남성들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정규의 삶’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글로벌 자본주의의 폭주, 그것을 합리화하는 능력주의의 폭력 속에서 소외된 남성들에게 기존 정치세력이 응답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울분을 자양분으로 삼은 포퓰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잃어버린 세대를 대변하며 오타쿠로서의 관심사와 노동·정치·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합한 비평 활동을 펼쳐 온 스기타 슌스케는 자신도 여성을 혐오하는 인셀(비자발적 싱글)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어둠을 자각하고, 프리터 시절 경제적·사회적 불안정보다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소수자도 주류도 아닌 평범한 ‘약자 남성’을 키워드로 남성성을 분석했다.

‘약자 남성들’은 내면의 불행, 고뇌에서 비롯된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티’나 ‘인셀’의 어둠에 빠지기 쉽다. 저자는 ‘약자 남성들’이 처한 현실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그들이 안티를 넘어 스스로를 해방시킬 가능성을 탐색한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는 해제에서 “통계에서도 사회통념에서도 여성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는 남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괴로운가, 라는 물음을 정직하고도 과감하게 던진다”고 감상을 밝혔다. 지방 도시 용접공 출신으로 『쇳밥일지』를 출간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천현우 작가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무기력했던 초식남들은 어쩌다 과격한 인셀이 되었을까? 이 책은 남성다움을 강요받아왔던 약자 남성들 마음속 구멍을 파고든다. 내 또래 남성들도 정체성 정치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이 책을 강력 추천했다.

목차

들어가며

1장 보이지 않는 약자 남성

영화 〈조커〉가 보여주는 약자 남성의 인생 / 약자 남성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 지탄받는 ‘남성 특권’ / 다수자 남성 사이에 있는 ‘약자’들 / ‘약자 남성’은 누구인가 / 다수자도 소수자도 아닌 / ‘유리 지하실’의 외침 / ‘잔여물’로서의 약자 남성 / 격차와 박탈감 / 자본주의 사회의 ‘잔여=잔여물’ / '안티'를 넘어 약자 남성론을 다시 발명하기 위해 / 잃어버린 세대와 약자 남성 / 피해자 의식이라는 어둠에 빠지지 않으려면? / 능력주의의 폭력 / ‘부정의’보다 ‘굴욕’이 문제다 / 약자 남성들은 ‘우둔’한가 / 남자가 괴롭다 / 약자 남성에게 존엄이란?

2장 중장년 남성들에게 고독이란?

통계로 본 일본의 성별 격차 / 남성 특권이 있는데도 왜 남성이 더 불행할까? / 가정 내 성별 격차 / 고령 남성들의 성적 고독감│고령 남성들은 왜 행복을 느끼기 어려울까? / 남성들도 의존할 대상을 늘리자 / 별 볼 일 없는 남성들도 긴장을 풀고 편안히 즐겨도 된다 / 아저씨들도 스미코구라시처럼 살면 어떨까?

3장 약자 남성들의 분노와 외침

인셀은 무엇인가 / ‘다크 히어로’로 본 인셀 / 계급 탈락자 조커 / 테러리즘에서 해방적 폭력으로 / 약자 남성들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 남성들의 ‘허무’라는 검은 구멍 / 증오가 아닌 분노를! 인셀 레프트

4장 남성들은 제대로 상처받고 있을까?

제대로 상처받는다는 것 / 남성들도 자신을 돌봐야 한다 / 남자들의 겉마음, 속마음, 진심 / 상처와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 / 돌봄에서의 자기 소외 /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소지니 / 동성 친구가 없는 남자들 / 하루키 소설과 인셀 / 체호프, ‘징그럽고 돈 없는 아저씨’의 문학 / 바냐 아저씨는 무엇을 견디고 있는가 / 여성들의 자매애, 불가능한 남성들의 연대 / 누구도 죽이지 않고, 여성을 증오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는 논리 / 구원도 해탈도 없는 인내야말로 약자 남성의 존엄

5장 이 시시한 인생을 위해

나오며
해제 / 조경희 - 취약함을 사상화하기 위한 몸짓
 

저자 소개

저 : 스기타 슌스케 (杉田俊介)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 빙하기 ‘잃어버린 세대’를 대변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오타쿠로서의 관심사와 노동·정치·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합한 비평을 전개해 왔다. 저서로 『프리터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무능력 비평: 노동과 생존의 에티카』 『미야자키 하야오론: 신들과 아이들의 이야기』 『도라에몽론: 급진적인 약함의 사상』 『재패니메이션의 성숙...
 
역 : 명다인
 
중앙대학교에서 무역학과 일본어문학을 전공했다. 무역회사에서 수출입과 통번역 업무를 담당하며, 번역의 꿈을 키웠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자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어린 시절의 부모를 이해하는가』 『인상의 심리학』 『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가 있다.

책 속으로

인셀(incel)은 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직역하면 원치 않은 금욕주의자, 비자발적 싱글이라는 뜻이다. 최근 인셀이 일으키는 논란과 폭력이 국제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런 사건들을 뉴스에서 접했을 때 심란했다. 만약 사소한 불운이 더해졌다면 나 역시 인셀이 됐을지 모르는 일이고 나중에라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들의 폭력이 사회적 약자들을 향했다는 것이다. ‘무차별’ 공격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차별적’이었다.
--- 「1장 약자 남성은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중에서

최근 남성학에서는 남성 특권과 남성 내 불평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B.1 남성의 제도적 특권 … 집단 내 여성의 희생으로 집단 내 남성은 제도적 이익을 누린다.
B.2 남성다움의 비용 … 남성들은 제도적 특권을 확보하기 위해 ‘남성다움’이라는 억압적인 규범에 따르는 데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B.3 남성 내 차이와 불평등 …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 남성이 있는가 하면, 비용을 많이 지불하고도 이익을 거의 얻지 못하는 남성도 있다.
--- 「1장 다수자 남성 사이에 있는 ‘약자’들」 중에서

워킹푸어 당사자였던 자유기고가 아카기는 『젊은이를 죽게 내버려 두는 국가: 나를 전쟁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 등의 남성 약자는 여성 약자보다 사회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다고 했다. 여성은 전업주부가 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게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희망은 전쟁’이라는 일부러 도발하는 글을 썼다. 불안정한 생활의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면 ‘모든 국민이 고통받는 평등’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1장 잃어버린 세대와 약자 남성」 중에서

능력주의에서 실현된 정의는 성공한 자들에게 도덕적 오만을, 실패한 이들에게는 늘 굴욕을 심어준다. 다수자 남성이 ‘우둔한(stupid)’ 것은 본인 책임이며 다른 차별 문제와는 달리 ‘공정한 정의’의 문제로 대두되지 않는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자기 탓이라는 시선을 받는다.
--- 「1장 ‘부정의’보다 ‘굴욕’이 문제다」 중에서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남녀를 취업 형태별로 분석해 보니 ‘정규직 고용’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여성의 행복도가 남성보다 높았다. 남녀 모두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온 집단은 ‘학생’이었고, 가장 낮게 나온 집단은 ‘실업자’였다. ‘학생’ 다음으로 행복도가 높은 순서는, 남성은 자영업자·가족의 자영업을 돕는 가족 구성원, 정규직 고용자, 퇴직자 순이었다. 한편 여성은 퇴직자, 주부, 자영업자·가족의 자영업을 돕는 가족 구성원 순이었다.
‘비정규직 고용자’의 행복도는 남녀 모두 평균을 밑돌았다. 다만 중요한 건, 여성은 ‘정규직 고용자’도 ‘비정규직 고용자’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행복도가 낮았다. 퇴직하거나 정규직 고용에서 밀려나면 남성들은 불행해질 리스크가 커진다. 이 소소하고 당연한 사실을 왜 ‘소소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2장 남성 특권이 있는데도 왜 남성이 더 불행할까?」 중에서

오쓰키 반장과 부하들은 악덕 기업 제애그룹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지하 노역장에서 일한다. 지하에서는 ‘페리카’라는 독자적인 통화가 유통되고 있고, 일정 페리카를 모으면 하루 동안 지상으로 외출할 수 있다. 반장과 그 부하들은 착한 사람도 모범생도 아니다. 다들 흠도 있고 비열하고 한심한 구석도 있다.
양지의 인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취미가 있어 즐겁게 지내거나, 마음이 통하는 동년배가 있어 심심하지 않고, 타인의 인정이 없이도 소박한 즐거움을 맛보며 살아가면 충분하다는 생활 방식. 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남성들의 소소한 우정. 반장은 이러한 일상의 기쁨을 착실하게, 정성스럽게 쌓아 발효시킨다.
--- 「2장 별 볼 일 없는 남성들도 긴장을 풀고 편안히 즐겨도 된다」 중에서

극장판 애니메이션 〈스미코구라시 푸른 달밤의 마법의 아이〉에서 스미코들은 고유의 ‘구멍(결핍, 열등감, 소수성)’을 언젠간 극복할 날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마음의 ‘구멍’을 메우고 나면 제일 중요한 캐릭터의 개성도 같이 사라진다.
작중에서 마법사는 진심을 담아 스미코들의 결핍인 ‘구멍’을 없애는 마법을 건다. 그러자 정체성 혼란을 겪던 펭귄?이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몸매에 자신감이 없던 네코는 긍정적으로 바뀐다. 이런 변화는 행복도가 올라간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법에 걸려 인격이 달라지고 존재의 근거는 사라진다.
작품의 결론은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단순한 차원의 인정을 뛰어넘어 급진적으로 존재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
--- 「2장 아저씨들도 스미코구라시처럼 살면 어떨까?」 중에서

이름마저 없는 박탈감이 있고, 불행이 있고, 고뇌가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모순 속에서 약자 남성들이 경련 상태에 빠진다. 이 문제를 자기책임만으로 돌릴 수 없다. 구조적 문제다. 구조적 문제라고 말한 이유는 복잡한 형태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때문이다. 즉 남성과 여성·성소수자로 분열되어 서로 다른 형태로 억압받고 있다.
--- 「3장 증오가 아닌 분노를! 인셀 레프트」 중에서

사회적 격식으로 위장한 ‘남자다운 갑옷’ 안에는 상처 입은 마음이 숨어 있다.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남성들은 주변의 ‘여자’(아내 또는 어머니)에게 ‘남자의 상처’를 치료받기 기대하거나 무의식중에 강요한다. 일상에서 적절하게 자신을 돌보는 훈련과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방치하거나, 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해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폭력적인 공격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남성의 ‘폭발’ 문제다. 평소에 꾹 참고 담아두다가 한 번에 폭력을 폭발시킨다.
그렇다면 터지기 일보 직전인 풍선의 바람을 조금씩 빼듯이, 일상의 관계에서부터 조금씩 감정과 불안을 꺼내고 얕지도 깊지도 않은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꺼번에 모든 상처를 고백하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꺼내어 공유한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기. 약함을 받아들이기. ‘남자답게’ 참지 않고 싫으면 싫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분명하게 말하기. 나보다 약한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하기 전에 내 상처받은 목소리와 감정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기.
--- 「4장 남성들도 자신을 돌봐야 한다」 중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텍스트, 체호프의 텍스트, 영화 속 연극, 연기자의 신체, 영화 등 복잡한 구조가 중첩되어 전개된다. 언어 면에서도 일본어, 한국어,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 수화까지 섞여 있다. 이 작품은 복잡하게 뒤얽힌 구조를 통해 다층적으로, 천천히, 복잡한 것을 복잡한 그대로, 겉마음도 속마음도 아닌 진심으로, 가후쿠 내면의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계속해서 표현한다.
남성들의 바람직한 규범이 불안정해지고 유동화되고, 진위와 선악의 기준도 결정할 수 없는 소위 포스트모던(post modern)하고 포스트트루스(post truth)적인 현실에서 남성들은 어떻게 성숙해져야 하는가, 어떻게 정직한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중첩된 상호텍스트성은 이러한 과제와도 깊게 관련된다. 남자들의 속마음으로 돌아가 권위적인 ‘아저씨’가 되거나, 상처가 깊어져 피해자 의식에 빠진 인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적인, 포스트트루스적인 시대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남성 주체로 성숙해지는 것.
--- 「4장 상처와 고통을 공유하기 위해」 중에서

‘이제는 바뀔 방법이 없다’는 자본주의의 현실은 우울증 환자들이 느끼는 ‘이미 배는 떠났다. 이미 때는 늦었다’는 현실과 중첩된다. 마크 피셔는 현대인을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감정을 ‘우울증적 쾌락주의’라고 했다. 쾌락을 얻고서 울적해지는 상태를 반복하는 길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의존증적, 양극적 무력을 가리킨다. 현대 자본주의가 학생과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갈등과 모순을, 이런 병증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상징하는 것이다. 정신 건강은 현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열쇠다.
언제부턴가 나는 근본적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인생은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 항상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살아온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산다는 것은 원래 시시하다. 뭔가 결핍해서, 소외당해서 즐겁지 않거나 재미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태어난 의미도 이유도 없이 그저 시시한 이 인생.
--- 「5장 이 시시한 인생을 위해」 중에서

이 책에서 남성들의 폭력, 우울, 분노를 둘러싼 불온한 일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나는 실제 인생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별 볼 일 없고, 부유하지도 않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 어떻게 하면 빈둥빈둥 한가롭게, 크게 무리하지 않고 그럭저럭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죽을 수 있을까? 흔한 생활인 중 한 명으로 멍하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뤄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왔다.
--- 「나오며」 중에서

부정의를 호소하는 여성이나 소수자의 목소리에 침묵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침해로 여기고 반격을 가하는 남성들이 있다. 페미니즘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되고, 젠더의 속박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친 채 기존의 남성성 규범에 매달리거나 괴로움을 혐오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기타의 작업은 이들을 ‘약자 남성’으로 보고 피해자화하는 것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는 이들에게 어둠에 빠지지 않는 다른 삶의 가능성과 기술을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당사자의 몸짓이다. 남자들 스스로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언어화하고, 그것을 하나의 사상적 자원으로 만들어갈 가능성이다.
--- 「해제(조경희) : 취약함을 사상화하기 위한 몸짓」 중에서

출판사 리뷰

승자도 패자도 아닌 존엄한 인간으로 사는 21세기 남성학
지젝·아감벤·샌델·마크 피셔·하루키·체호프의 사상과 문학을 통한 시대비평, 문화비평의 결정판!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 『쇳밥일지』 천현우 강력 추천!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김영하 작가의 지적처럼,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비정규 삶’을 사는 남성들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정규의 삶’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중산층 회사원이나 부유한 전문직 남성들조차 전통적인 가정을 이루거나 유지하지 못하고, 친구와 불륜을 저지른 아내, 갑자기 떠나버린 애인에게 상처 입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 ‘섬뜩한 미소지니(misogyny, 여성 공포, 여성혐오)’를 내면에 품는다. 여자 없는 남자들, 가장이 될 수 없는 남성들, 주류 남성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남성들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어떻게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구할 수 있을까?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내세운 소수자의 정체성 정치에서 노동자계급 이성애자 남성들은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정의를 요구하는 소수자의 대척점에 놓이게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남성들에게 기존 정치세력이 응답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울분을 자양분으로 삼은 포퓰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PC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을 나이와 성별만으로 뭉뚱그린 ‘이대남’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정체성 정치가 나타났다. 고립된 남성들의 폭력과 테러도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저자 스기타 슌스케는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 빙하기 ‘잃어버린 세대’를 대변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오타쿠로서의 관심사와 노동·정치·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결합한 비평을 전개해 왔다. 최근에는 자신도 여성을 혐오하는 인셀(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 비자발적 싱글)이 될 수 있다는 내면의 어둠을 자각하고, 프리터 시절 경제적·사회적 불안정보다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소수자도 주류도 아닌 평범한 ‘약자 남성’을 키워드로 남성성을 분석하고 관련 저서를 연달아 펴냈다.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지만, 차별받는 소수자로서 연대할 수도 없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는 스마트한 리버럴이 될 만한 특별한 계기가 없는, 각자 고립되어 고통받는 ‘약자 남성들’은 내면의 불행, 고뇌 그리고 약함에서 비롯된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티’나 ‘인셀’의 어둠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지적한다. “‘안티’와 ‘인셀’이 주는 강렬하고 일시적인 감정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인터넷 전장에서 ‘적’과 싸우면 고양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티를 넘어 약자 남성론을 다시 발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어쩌면 지위와 권력이 있고 특권에 대한 자각이 없는 남성들보다 약자 남성들이 아직은 더 ‘해방’에 가깝지 않을까?” 그는 ‘남성다움’을 위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사회에서 비용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는, 현 체제에서 소외된 ‘약자 남성들’이 오히려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피력한다. 약자 남성들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남성해방운동을 제안한다.

스기타 슌스케의 작품을 수업 교재로 쓰고 한국을 방문한 그를 인터뷰하는 등, 그의 작품세계를 국내에 소개해 온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조경희 부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통계에서도 사회통념에서도 여성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는 남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괴로운가, 라는 물음을 정직하고도 과감하게 던진다. 이 질문에 반발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이 책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고 감상을 밝혔다.

고학력 수도권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던 청년 담론들 사이에서 지방 도시 용접공 출신으로 『쇳밥일지: 청년공, 펜을 들다』를 출간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천현우 작가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무기력했던 초식남들은 어쩌다 과격한 인셀이 되었을까? 이 책은 남성다움을 강요받아왔던 약자 남성들 마음속 구멍을 파고든다. 내 또래 남성들도 정체성 정치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이 책을 강력 추천했다.

남자가 괴롭다! 약자 남성은 어떤 사람들인가?

약자 남성은 주로 독신·빈곤·장애 등 약자의 요소를 지닌 남성들을 가리킨다. 과거 ‘징그럽고 돈 없는 아저씨(キモくて金のないオッサン)’의 줄임말인 ‘KKO’를 자칭하는 남성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약자 남성’이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약자 남성이나 인셀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겠지만, 능력주의 무한경쟁 속에서 뒤처진 다수가 느끼는 ‘굴욕’, 이 세상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확산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짐승’이 되어버린 글로벌 자본주의의 폭주와 관련이 깊다.

저자는 ‘약자 남성’을 설명하기 위해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과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잔여’, ‘잔여물’ 개념을 주로 인용한다. “우리는 지금 이민, 난민, 성소수자뿐 아니라 80퍼센트의 뒤처진 사람들, 즉 신과 시장이 방치한 ‘남겨진’ 사람들 속에서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어떤 보편성을 보아야 한다(지젝).” 그는 “정체성 정치는 종종 저마다의 속성이 가진 특수성에 갇히고 마는데 이때 중요한 건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이라는 지젝의 말을 강조한다.

오늘날의 ‘잔여물’, 뒤처진 자들, 남겨진 자들은 서로 연대해 그들의 분노를 정치적인 에너지로 결집하지 못한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를 능력주의 사회의 ‘굴욕의 정치’로 해석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부정의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능력, 학력을 둘러싼 격차는 어디까지나 사적 영역, 자기책임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결국 개개인의 내면에 감정적 왜곡(굴욕)이 쌓이게 된다. 트럼프는 굴욕의 정치에서 학력이 어떻게 쓰이는지 직관적으로 잘 이해했다고 샌델은 분석한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오언 존스는 『차브 Chavs』에서 부유한 중도좌파 엘리트가 ‘차브’라 불리는 하층 노동자계급을 아무렇지 않게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을 목격한다. 성소수자나 유색인종을 조롱했다면 당장 쫓겨났을 텐데, 게으름과 천박함의 상징이 되어 버린 ‘차브’에 대한 조롱은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자계급은 사회변혁의 주체에서 존재감 없는 ‘잔여물’, ‘찌꺼기’의 처지로 전락했고, 그들의 반발은 브렉시트와 트럼프 열풍으로 나타났다.

약자 남성이 급증한 현상의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각자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약자 남성들 스스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누가 누가 더 불행한지, 사회의 소수자들과 ‘약자 올림픽’을 하자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각자의 고통을 비교하지 말고, 나를 괴롭게 만든 ‘적’을 찾아 나서지 말고, 괴로움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내면에서부터 풀어나가자고 제안한다.

여성이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적 지위에 오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유리 천장’이라고 한다. 이 표현을 응용해서 남성은 약자가 되면 유리 바닥이 깨져 지하실로 추락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유리 지하실’ 개념이 있다. 지하실로 굴러떨어졌지만, 유리 바닥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 구분되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다. 저자는 워런 패럴이 『남성 권력의 신화 The Myth of Male Power』에서 미국 남성의 상황을 표현한 ‘유리 지하실’ 개념을 인용하며 “지금 우리는 약자 남성들이 있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빛을 비추는 말과 다양한 실천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질문한다.

’남성 특권‘이 있는데도 왜 남성들이 더 불행할까?

이 책은 2장에서 각종 통계자료를 인용해서 일본의 성별 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제시한다. 젠더 격차 지수를 경제, 정치, 교육, 건강, 네 부문으로 평가한 세계경제포럼의 ‘2021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156개국 중 120위였다. 일본 내각부 남녀공동참가국의 보고서들도 이와 일치한다. 그런데 남녀공동참가국, NHK 방송,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 노인공학연구소 등의 행복도 조사에서는 한결같이 남성의 행복도가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낮았다. 다만 정규직 고용자에 한해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높다.

정규직 여부 외에 남성의 행복도를 좌우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세계 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30대~50대 남성 중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 기혼자는 단 6.5퍼센트인 반면, 미혼 독신 남성은 무려 43.5퍼센트였다. 미혼 중장년 남성은 건강 문제도 매우 심각했다. 배우자를 잃은 남성의 행복도가 크게 낮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류노인 행복노인』이라는 책에 따르면, 혼자 사는 1인 가구 고령 남성조차도 친밀하게 지내는 이성의 존재 여부가 행복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인 가구 고령 여성은 친구가 많을수록 행복도가 높아졌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여성은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자녀와 손주가 있으면 행복도가 높아졌지만, 남성은 별 상관이 없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은 왜 이토록 여성에게 의존하게 되었을까?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을 담당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 분업은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전후 일본에서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남성은 오직 일에만 헌신하는 ‘회사인간’이 되고, 여성은 주부가 기본값이지만 가정과 회사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저렴한 시간제 노동으로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지위를 지켜주는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다른 나라보다 강도 높은 ‘남성 외벌이 중심형’ 생활 보장 시스템을 완성했다. 그런데 세계화가 진전되며 일본에서 ‘남성적인’ 제조업 비중이 작아지고 ‘여성적인’ 속성이 요구되는 서비스산업 비중이 커지는 한편, 남성의 고용 형태에서도 비정규직이 일반화되면서 미혼화, 만혼화, 비혼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제 ‘남성은 일, 여성은 가정’이라는 분업은 현실에 맞지 않게 되었으나, 일본 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집안일 등의 무보수 노동을 5.5배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자립이란 의존할 대상을 늘리는 것이다.” 행복도 조사 결과는 일관되게 남성이 일만 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볼 능력을 키우고 의존할 대상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머니나 배우자에게 전적으로 생활을 의존하지 말고,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하고, 취미생활과 지역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고, 느슨하게 다양한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저자는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온 남자들이 사실 ‘동성 친구 없는 남자들’임을 지적한다. 소설에 나오는 남성들은 서로 친구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친구가 되지 못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이 작품들의 모티브가 된 체호프의 작품에서도 남성들의 연대는 불가능하다.

반면, 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스핀오프 『일일외출록 반장』에 나오는 남성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애인도 없지만, 별 볼 일 없는 아저씨들끼리 맛집도 가고 여행도 다니고 방안에서 유유자적하며 그럭저럭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구석에 숨기를 좋아하는 캐릭터 스미코구라시는 각각의 캐릭터가 능력·생산성·효율 중심 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든 약자성을 지니고 있고, 심지어 ‘먹다 남긴 비계’ 캐릭터 돈카츠나 ‘먼지’ 캐릭터 호코리는 극단적인 무용함까지 보여준다. 저자는 스미코구라시에게서 일본 고전 문화의 미적 감정인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를 떠올린다. “생산성도 능력도 없고 무용하고 허무하고 불쌍한 작은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미적 감정인 ‘모노노아와레’. 과거 이 나라의 문화는 이 감정을 인간의 도덕적 원천이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스미코들이 구석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듯, 평범한 아저씨들도 이 세상의 빈틈과 느슨함에 기대어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꿈꾼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제대로 상처받기’까지

저자는 남자의 약함이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고, 결국 그렇게 쌓인 내면의 압력을 엉뚱한 곳에 분출하고 마는 것이 ‘남성다움’의 값비싼 대가다. 이 책에서는 『여자 없는 남자들』에 드러난 섬뜩한 미소지니의 욕망을 분석하고, 수록 단편 중 「드라이브 마이 카」를 원작으로 「셰에라자드」와 「기노」의 설정을 섞어 각색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제대로 상처받는다는 것’, 남성이 상처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타인과 공유하며 스스로 해방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자 없는 남자들』과 〈드라이브 마이 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체호프의 ‘징그럽고 돈 없는 아저씨’의 문학이 인셀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본다. “체호프의 4대 희곡에는 가진 것이라고는 애매한 재능밖에 없어 사랑하는 여성에게는 사랑받지 못하고,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노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유형의 남성들의 계보가 있다.” 의사 아스트로프는 과로에 시달리며 허탈감에 빠져 있지만, 농민들을 치료해주고 환경을 지키려는 이상주의를 품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이 세상의 잘못된 시스템에 맞서는 인셀 레프트의 길이라고 칭한다. 한편, 바냐는 신앙도 이상주의도 없이 무의미한 노동에 혹사당하다 자신을 착취하는 세레브랴코프에게 총을 겨눈다. 그러나 바냐는 결국 세레브랴코프도, 자신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엘레나도 죽이지 않는다. 체호프의 다른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는다.

“바냐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원 없는 일상의 노력’이자 ‘해탈 없는 인내’다. 가짜 ‘적’과 싸우거나 살인을 욕망하면 계속해서 인생에 ‘의미’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거부하고, 남자다움을 자존심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갈 곳 없는 고통, 쓸모없는 절망을 지켜내는 것이 바냐라는 약자 남성의 희미한 존엄이자 유일무이한 존재 증명이다.” 한쪽에는 사회에 분노하고 변혁을 추구하는 인셀 레프트의 길이, 다른 한쪽에는 무의미한 노동, 허무를 견디며 생을 지속하는 바냐의 길이 있다. 저자는 이 두 가지 길을 왔다 갔다 하며 “모순에 찢겨 나가면서 이 시시한 인생을 살아가자.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기 직전,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가 약자 남성론에 관한 자신의 글을 읽고 트위터에 감상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글은 ‘약자성을 지닌 남자들도 어둠에 빠지지 말고 비폭력적인 주체가 되자’는 내용이었지만, 결국 야마가미는 폭력을 택했다. 아직은 어둠에 빠지지 않은 남성들이 ‘누구도 죽이지 않고, 여성을 증오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는’ 약자 남성의 존엄을 택하길 희망하는 저자의 바람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추천평

노동운동, 정치사상, 장애, 페미니즘, 대중음악, 애니메이션 등 그의 광범위한 저술을 관통하는 것은 일본 사회의 능력주의와 자기책임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이다. 그는 최근 ‘약자 남성’을 말한다. 통계에서도 사회통념에서도 여성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는 남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괴로운가, 라는 물음을 정직하고도 과감하게 던진다. 이 질문에 반발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이 책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
-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부교수)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무기력했던 초식남들은 어쩌다 과격한 인셀이 되었을까? 이 책은 남성다움을 강요받아왔던 약자 남성들 마음속 구멍을 파고든다. 남녀가 상대성별에 맞서 확증편향의 성벽을 쌓고 그 위에서 거친 말로 화살만 날려대는 시대, 집단에 파묻힌 개개인에게 현미경을 들이밀어 볼 시간이다. 내 또래 남성들도 정체성 정치 담론에서 소외되지 않길 바란다.
- 천현우 (『쇳밥일지: 청년공, 펜을 들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