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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생생하게 들려 주는
복잡계 물리학과 과학의 의미!
-김범준(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언제나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도전을 찾아 헤매었던
한 물리학자의 명석한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류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생각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을 이루는 참된 이치인 진리(眞理)가 우주와 대자연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작위와 무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며, 진리도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평생의 연구를 통해 밝혀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원자에서 행성까지 물리계의 무질서와 변동 간 상호 작용, 무질서한 물질과 무작위 과정에 대한 기여와 공로”로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 이탈리아 사피엔차 대학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구 기후의 물리학적 모형 연구를 통해 복잡계에 기여한 마나베 슈쿠로(?鍋淑?),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n)과 공동 수상했다.)
복잡계는 무질서한 상호 작용을 통해 많은 수의 행위자(agent)가 연결된 계를 말한다. 이때 행위자는 원자에서부터 일종의 합금인 스핀 유리(spin glasss), 신경 세포, 유전자, 단백질, 사람이나 동물까지 실로 다양하다. 상대성 이론으로 뉴턴이 해결 못 한 우주의 시공간에 담긴 비밀을 풀고, 양자 역학으로 상상도 못 했던 불확실성의 세계도 정복한 물리학자들의 쾌진격도 1960년대 이후 과학계 곳곳에서 분출하는 복잡계라는 난제에 가로막혀 멈추고 말았다.
원래 입자 물리학자였던 조르조 파리시는 자신이 원래 풀고 있던 이론 물리학적 문제를 풀기 위해 복잡계를 다룬 통계 물리학적 방법론을 들여다보다가, 1980년경 스핀 유리처럼 무질서하고 복잡한 물질들의 상전이 같은 기묘한 거동을 다루는 복제 기법(replica method) 같은 방법론을 발견하고 개발함으로써 통계 물리학뿐만 아니라 수학, 생물학, 신경 과학 및 기계 학습과 같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갖가지 재료와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길을 열었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In Un Volo Di Storni: Le Meraviglie Dei Sistemi Complessi Copertina Flessibile)』는 이탈리아인 역사상 스무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이탈리아 물리학자로는 여섯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르조 파리시의 첫 번째 대중 과학서이자 그의 첫 한국어판 단행본이기도 하다. 동시에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관련된 책 가운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다.
파리시의 처음이자 최신의 에세이인 이 책은 그가 1966년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 후 68 혁명의 한복판에서 맛보았던 격변의 기억, 수수께끼 같은 상전이 현상에 쏟았던 관심, 스핀 유리를 분석하는 복제 기법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던 과정에 대한 고찰, 25세의 나이에 노벨상을 코앞에서 놓쳤던 경험, 그렇지만 결국 노벨상 수상자로 우뚝 서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담은 8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는 이 책은, 과학을 실험실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흥분 넘치는 발견의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복잡계 물리학과 과학의 의미!
-김범준(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언제나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도전을 찾아 헤매었던
한 물리학자의 명석한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류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생각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을 이루는 참된 이치인 진리(眞理)가 우주와 대자연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작위와 무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며, 진리도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평생의 연구를 통해 밝혀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원자에서 행성까지 물리계의 무질서와 변동 간 상호 작용, 무질서한 물질과 무작위 과정에 대한 기여와 공로”로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 이탈리아 사피엔차 대학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구 기후의 물리학적 모형 연구를 통해 복잡계에 기여한 마나베 슈쿠로(?鍋淑?),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n)과 공동 수상했다.)
복잡계는 무질서한 상호 작용을 통해 많은 수의 행위자(agent)가 연결된 계를 말한다. 이때 행위자는 원자에서부터 일종의 합금인 스핀 유리(spin glasss), 신경 세포, 유전자, 단백질, 사람이나 동물까지 실로 다양하다. 상대성 이론으로 뉴턴이 해결 못 한 우주의 시공간에 담긴 비밀을 풀고, 양자 역학으로 상상도 못 했던 불확실성의 세계도 정복한 물리학자들의 쾌진격도 1960년대 이후 과학계 곳곳에서 분출하는 복잡계라는 난제에 가로막혀 멈추고 말았다.
원래 입자 물리학자였던 조르조 파리시는 자신이 원래 풀고 있던 이론 물리학적 문제를 풀기 위해 복잡계를 다룬 통계 물리학적 방법론을 들여다보다가, 1980년경 스핀 유리처럼 무질서하고 복잡한 물질들의 상전이 같은 기묘한 거동을 다루는 복제 기법(replica method) 같은 방법론을 발견하고 개발함으로써 통계 물리학뿐만 아니라 수학, 생물학, 신경 과학 및 기계 학습과 같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갖가지 재료와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길을 열었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In Un Volo Di Storni: Le Meraviglie Dei Sistemi Complessi Copertina Flessibile)』는 이탈리아인 역사상 스무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이탈리아 물리학자로는 여섯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르조 파리시의 첫 번째 대중 과학서이자 그의 첫 한국어판 단행본이기도 하다. 동시에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관련된 책 가운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다.
파리시의 처음이자 최신의 에세이인 이 책은 그가 1966년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 후 68 혁명의 한복판에서 맛보았던 격변의 기억, 수수께끼 같은 상전이 현상에 쏟았던 관심, 스핀 유리를 분석하는 복제 기법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던 과정에 대한 고찰, 25세의 나이에 노벨상을 코앞에서 놓쳤던 경험, 그렇지만 결국 노벨상 수상자로 우뚝 서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담은 8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는 이 책은, 과학을 실험실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흥분 넘치는 발견의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목차
1장 찌르레기의 비행 9
2장 50여 년 전 로마의 물리학 33
3장 상전이, 혹은 집단 현상 57
4장 스핀 유리, 무질서의 도입 77
5장 과학과 은유 107
6장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129
7장 과학의 의미 149
8장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163
참고 문헌 177
인명 찾아보기 182
용어 및 문헌 찾아보기 205
2장 50여 년 전 로마의 물리학 33
3장 상전이, 혹은 집단 현상 57
4장 스핀 유리, 무질서의 도입 77
5장 과학과 은유 107
6장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129
7장 과학의 의미 149
8장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163
참고 문헌 177
인명 찾아보기 182
용어 및 문헌 찾아보기 205
저자 소개
출판사 리뷰
찌르레기 떼에서 스핀 유리까지
파리시가 회고하는 물리학자로서의 자신
우리 연구는 지금까지 동물의 무리나 떼, 군중(群衆) 연구에 사용되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상호 작용이 거리에 의존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연구 이후로 상호 작용은 언제나 이웃한 존재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아마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수천 마리 새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동시에 그 자료에서 동물의 행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리라. ―30쪽에서
1장 「찌르레기의 비행」에서는 파리시가 2000년대 초 로마에서 진행한 찌르레기 떼의 행동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 “In Un Volo Di Storni”가 직역하면 “찌르레기의 비행에서”인 것처럼 파리시의 대표 연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대중 과학 콘텐츠에서 복잡계 하면 항상 나오는 새 떼의 비행 모습이 그의 연구에서 유래했다. 물리학자와 조류학자, 경제학자의 연합 팀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통계 물리학의 개념, 사고의 틀과 최근 급격히 발전한 영상과 데이터 처리 기술의 놀라운 결합을 이루어 냈다. 과학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단순한 규칙으로 이루어졌던 기존 모형에 비해 실제로 새 떼가 따르는 규칙을 밝힌 파리시 연구진의 연구는, 복잡계 물리학이 다른 과학 분야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멋진 사례이다.
예전에는 국제 전화 요금이 엄청났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전화하는 데 분당 1,200리라였는데, 내가 연구원으로 입사해 받은 첫 월급이 12만 5000리라였다. 그러니까 1시간 30분 정도 통화하면 한 달 월급이 다 날아가는 셈이었다. 팩스는 존재도 하지 않았고, 대신 물리학부에는 굉장히 무겁고 불편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신 타자기(사실상 전신 단말기)가 있었다. ―42쪽에서
2장 「50여 년 전 로마의 물리학」에서 그는 자신이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1966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요즘 세대라면 상상하기도 힘들 연구 환경과 그 속에서도 이뤄낸 이탈리아 물리학의 ‘영광의 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빠르게 언급되었다 사라지는 많은 과학자의 이름에 어질어질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는 책말미에 추가된 한국어판만의 「인명 찾아보기」가 독자를 도와줄 것이다.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물을 관찰한다고 생각해 보자. 약간 구부러진 아령 형태의 분자들이 서로를 움직이고 끌어당기고 돌리고 멀어지며 빠른 속도로 진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물에 대한 분자 차원의 설명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물은 특정한 온도에서는 냉각되어 응고되고, 또 어떤 온도에서는 증발해 기체가 된다. 각 원자의 행동이 계 전체의 거동으로 전환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다. ―61쪽에서
3장 「상전이, 혹은 집단 현상」은 청년 시절 파리시가 천착했던 상전이 연구를 소개하고 4장에 등장할 스핀 유리 이론의 이해를 도울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문단이다. 여기서 나온 이징 모형(Ising model)은 통계 물리학에서 상전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모형이다. 제목과 초록에 ‘이징 모형’이 들어간 논문이 한 해에 1만 편을 훌쩍 넘게 여전히 출판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연구자 인생 최고의 성과는 가끔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길로 가려던 참에 마주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내가 물리학에 한 공헌 중 가장 크다고 여겨지는 것이 스핀 유리 이론인데, 바로 입자 문제 연구 중에 개발한 것이다. ―79쪽에서
4장 「스핀 유리, 무질서의 도입」은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사유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스핀 유리 모형에서 이뤄낸 파리시의 업적을 당사자에게 직접 들을 놀라운 기회이다. 스핀 유리는 비자성 물질에 자성(磁性)을 띤 불순물을 섞은, 그 자체로는 사실상 산업적 용도가 거의 없는 금속 합금의 일종을 말한다.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스핀 유리의 자성 원리를 풀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구조 내의 미세한 철 원자들은 완전히 무작위적인 형태로 정렬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리시는 그 패턴을 알아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계의 여러 복제를 동시에 처리하는 수학적 기술인 복제 기법을 정립했다. 이후 복제 기법은 신경 과학이나 기계 학습과 같은 분야에서도 그 유용성을 증명했다.
과학이, 과학인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과학인으로서의 파리시
물리학자에게는 완전히 다른 계가 수학으로 동일하게 설명된다는 점을 발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간혹 방정식이 동일하다 해도 관찰할 수 있는 양에 해당하는 수학적 표현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 경우(사실 가장 흥미로운 경우다.) 두 계에서 관찰되는 움직임이 매우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분야(예컨대 고체 물리학과 입자 물리학)에 속할 수 있어서 두 계를 동일한 수학적 표현으로 병합하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줄 수 있다. ―124쪽에서
책의 후반부 에세이 4편에서 파리시는 과학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한다. 5장 「과학과 은유」의 주제는 과학의 기초가 되는 직관이 은유를 통해 다른 분야로 전달되며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알아보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윈 이론과 양자 역학에 도입된 확률 개념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물리학과 수학, 생물학에서 은유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며 어떤 발전을 이루어 냈는지 5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나 같은 이론 물리학자의 머릿속에서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어떤 유형의 논리적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지금 나는 인류사와 사상사를 바꿔 놓을 정도로 대단한 아이디어만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시적 창의력(microcreativity)’이라 불리는 것, 즉 과학에서 진보가 일어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일의 일상 속 작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131쪽에서
6장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파리시는 과학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디어가 탄생하기 전, 비언어적 형태로 잠들어 있는 잠복기의 무의식적 사고 과정을 고찰한다. 양자 역학의 선구자들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파리시가 실제로 경험한 문제 해결의 순간이 생생히 묘사된 6장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있을 많은 사람에게 실천적 조언이 되어 줄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연구 개발 분야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내 총생산의 1퍼센트를 조금 넘는 정도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4퍼센트가 넘는다.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탈락시켰고, 연구 개발 분야에서도 이탈리아의 3배 이상 투자하고 있다.) ―154쪽에서
7장 「과학의 의미」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꼭 필요하지만, 현대의 거대 과학에서는 점차 무시되어 왔던 과학자들의 주체적인 열정이다. 특히 그는 이탈리아 문화 활동이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과학을 문화의 하나로서 수호하기 위해 모든 이탈리아 과학인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때 연구 개발(R&D)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언급하면서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이탈리아 인으로서 그의 내면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엇호프트는 아주 심오한 이론 물리학자로 극도로 정제된 이론적 측면도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문헌에 제시된 다양한 모형, 즉 실험 작업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올바른 모형을 식별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1973년 그날 오후, 우리는 노벨상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다행히 우리 둘 다 그때가 유일한 기회는 아니었다. ―175쪽에서
마지막 8장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의 제목은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유명한 샹송에서 따온 것이다. “난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아요.”라는 가사처럼 그가 덤덤하게 풀어내는 ‘25세 때 노벨상을 바로 코앞에서 놓친 이야기’ 속에는 같이 ‘한 끗 차이로 미끄러졌던’ 동료이자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헤라스뒤스 엇호프트(Gerardus 't Hooft)와의 추억이 녹아 있다. 굽이굽이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니 그것은 곧은 길이었음을 말하는 이 장은, 복잡계의 물리적, 수학적 원리를 평생 쫓아 온 과학자이자 탐구자로서 그가 후학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국내 최고 물리학 전문가의 감수로
더욱 생생하게 즐기는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
“한 개인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지만, 여럿이 모이면 전체는 수학적 확실성이 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셜록 홈즈가 한 얘기다. 예측 불가능한 개체의 거동에서 전체가 보여 주는 거시적인 패턴으로 관심을 옮기면 과학적 이해가 가능한 현상들이 있다. 단순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구성 요소가 여럿 모인 전체가 다채로운 질서를 보여 주는 예가 많다. 책에서 파리시가 자세히 소개한 새 떼의 군무, 통계 물리학의 상전이, 그리고 스핀 유리가 바로 그렇다.
―‘감수의 글’에서
저자의 목소리를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이탈리아 어판을 번역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에는 자기 상전이와 스핀 유리라는 비교적 생소한 주제와 일세를 풍미한 노 과학자의 과학관이 함께 들어 있다.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저술이 올바르고 친숙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통계 물리학자이자 탁월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성균관 대학교 김범준 교수가 직접 감수를 맡아 주었다. 또한 김범준 교수가 직접 쓴, 책 내용과 파리시의 노벨상 업적을 해설한 글이 (주)사이언스북스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미래를 예측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는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조르조 파리시
파리시가 회고하는 물리학자로서의 자신
우리 연구는 지금까지 동물의 무리나 떼, 군중(群衆) 연구에 사용되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상호 작용이 거리에 의존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연구 이후로 상호 작용은 언제나 이웃한 존재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아마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수천 마리 새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동시에 그 자료에서 동물의 행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리라. ―30쪽에서
1장 「찌르레기의 비행」에서는 파리시가 2000년대 초 로마에서 진행한 찌르레기 떼의 행동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 “In Un Volo Di Storni”가 직역하면 “찌르레기의 비행에서”인 것처럼 파리시의 대표 연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대중 과학 콘텐츠에서 복잡계 하면 항상 나오는 새 떼의 비행 모습이 그의 연구에서 유래했다. 물리학자와 조류학자, 경제학자의 연합 팀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통계 물리학의 개념, 사고의 틀과 최근 급격히 발전한 영상과 데이터 처리 기술의 놀라운 결합을 이루어 냈다. 과학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단순한 규칙으로 이루어졌던 기존 모형에 비해 실제로 새 떼가 따르는 규칙을 밝힌 파리시 연구진의 연구는, 복잡계 물리학이 다른 과학 분야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멋진 사례이다.
예전에는 국제 전화 요금이 엄청났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전화하는 데 분당 1,200리라였는데, 내가 연구원으로 입사해 받은 첫 월급이 12만 5000리라였다. 그러니까 1시간 30분 정도 통화하면 한 달 월급이 다 날아가는 셈이었다. 팩스는 존재도 하지 않았고, 대신 물리학부에는 굉장히 무겁고 불편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신 타자기(사실상 전신 단말기)가 있었다. ―42쪽에서
2장 「50여 년 전 로마의 물리학」에서 그는 자신이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1966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요즘 세대라면 상상하기도 힘들 연구 환경과 그 속에서도 이뤄낸 이탈리아 물리학의 ‘영광의 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빠르게 언급되었다 사라지는 많은 과학자의 이름에 어질어질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는 책말미에 추가된 한국어판만의 「인명 찾아보기」가 독자를 도와줄 것이다.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물을 관찰한다고 생각해 보자. 약간 구부러진 아령 형태의 분자들이 서로를 움직이고 끌어당기고 돌리고 멀어지며 빠른 속도로 진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물에 대한 분자 차원의 설명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물은 특정한 온도에서는 냉각되어 응고되고, 또 어떤 온도에서는 증발해 기체가 된다. 각 원자의 행동이 계 전체의 거동으로 전환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다. ―61쪽에서
3장 「상전이, 혹은 집단 현상」은 청년 시절 파리시가 천착했던 상전이 연구를 소개하고 4장에 등장할 스핀 유리 이론의 이해를 도울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문단이다. 여기서 나온 이징 모형(Ising model)은 통계 물리학에서 상전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모형이다. 제목과 초록에 ‘이징 모형’이 들어간 논문이 한 해에 1만 편을 훌쩍 넘게 여전히 출판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연구자 인생 최고의 성과는 가끔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길로 가려던 참에 마주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내가 물리학에 한 공헌 중 가장 크다고 여겨지는 것이 스핀 유리 이론인데, 바로 입자 문제 연구 중에 개발한 것이다. ―79쪽에서
4장 「스핀 유리, 무질서의 도입」은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사유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스핀 유리 모형에서 이뤄낸 파리시의 업적을 당사자에게 직접 들을 놀라운 기회이다. 스핀 유리는 비자성 물질에 자성(磁性)을 띤 불순물을 섞은, 그 자체로는 사실상 산업적 용도가 거의 없는 금속 합금의 일종을 말한다.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스핀 유리의 자성 원리를 풀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구조 내의 미세한 철 원자들은 완전히 무작위적인 형태로 정렬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리시는 그 패턴을 알아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계의 여러 복제를 동시에 처리하는 수학적 기술인 복제 기법을 정립했다. 이후 복제 기법은 신경 과학이나 기계 학습과 같은 분야에서도 그 유용성을 증명했다.
과학이, 과학인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과학인으로서의 파리시
물리학자에게는 완전히 다른 계가 수학으로 동일하게 설명된다는 점을 발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간혹 방정식이 동일하다 해도 관찰할 수 있는 양에 해당하는 수학적 표현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 경우(사실 가장 흥미로운 경우다.) 두 계에서 관찰되는 움직임이 매우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분야(예컨대 고체 물리학과 입자 물리학)에 속할 수 있어서 두 계를 동일한 수학적 표현으로 병합하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줄 수 있다. ―124쪽에서
책의 후반부 에세이 4편에서 파리시는 과학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한다. 5장 「과학과 은유」의 주제는 과학의 기초가 되는 직관이 은유를 통해 다른 분야로 전달되며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알아보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다윈 이론과 양자 역학에 도입된 확률 개념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물리학과 수학, 생물학에서 은유가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며 어떤 발전을 이루어 냈는지 5장을 통해 알 수 있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나 같은 이론 물리학자의 머릿속에서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어떤 유형의 논리적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지금 나는 인류사와 사상사를 바꿔 놓을 정도로 대단한 아이디어만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시적 창의력(microcreativity)’이라 불리는 것, 즉 과학에서 진보가 일어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매일의 일상 속 작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131쪽에서
6장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에서 파리시는 과학 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디어가 탄생하기 전, 비언어적 형태로 잠들어 있는 잠복기의 무의식적 사고 과정을 고찰한다. 양자 역학의 선구자들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파리시가 실제로 경험한 문제 해결의 순간이 생생히 묘사된 6장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오늘도 머리를 싸매고 있을 많은 사람에게 실천적 조언이 되어 줄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연구 개발 분야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내 총생산의 1퍼센트를 조금 넘는 정도이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4퍼센트가 넘는다.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탈락시켰고, 연구 개발 분야에서도 이탈리아의 3배 이상 투자하고 있다.) ―154쪽에서
7장 「과학의 의미」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꼭 필요하지만, 현대의 거대 과학에서는 점차 무시되어 왔던 과학자들의 주체적인 열정이다. 특히 그는 이탈리아 문화 활동이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과학을 문화의 하나로서 수호하기 위해 모든 이탈리아 과학인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때 연구 개발(R&D)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언급하면서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이탈리아 인으로서 그의 내면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엇호프트는 아주 심오한 이론 물리학자로 극도로 정제된 이론적 측면도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문헌에 제시된 다양한 모형, 즉 실험 작업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올바른 모형을 식별해야 하는 것은 나였다. 1973년 그날 오후, 우리는 노벨상을 받을 기회를 잃고 말았다. 다행히 우리 둘 다 그때가 유일한 기회는 아니었다. ―175쪽에서
마지막 8장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의 제목은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의 유명한 샹송에서 따온 것이다. “난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아요.”라는 가사처럼 그가 덤덤하게 풀어내는 ‘25세 때 노벨상을 바로 코앞에서 놓친 이야기’ 속에는 같이 ‘한 끗 차이로 미끄러졌던’ 동료이자 199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헤라스뒤스 엇호프트(Gerardus 't Hooft)와의 추억이 녹아 있다. 굽이굽이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니 그것은 곧은 길이었음을 말하는 이 장은, 복잡계의 물리적, 수학적 원리를 평생 쫓아 온 과학자이자 탐구자로서 그가 후학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국내 최고 물리학 전문가의 감수로
더욱 생생하게 즐기는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
“한 개인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지만, 여럿이 모이면 전체는 수학적 확실성이 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셜록 홈즈가 한 얘기다. 예측 불가능한 개체의 거동에서 전체가 보여 주는 거시적인 패턴으로 관심을 옮기면 과학적 이해가 가능한 현상들이 있다. 단순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구성 요소가 여럿 모인 전체가 다채로운 질서를 보여 주는 예가 많다. 책에서 파리시가 자세히 소개한 새 떼의 군무, 통계 물리학의 상전이, 그리고 스핀 유리가 바로 그렇다.
―‘감수의 글’에서
저자의 목소리를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이탈리아 어판을 번역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에는 자기 상전이와 스핀 유리라는 비교적 생소한 주제와 일세를 풍미한 노 과학자의 과학관이 함께 들어 있다. 한국에 최초로 소개되는 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저술이 올바르고 친숙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통계 물리학자이자 탁월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성균관 대학교 김범준 교수가 직접 감수를 맡아 주었다. 또한 김범준 교수가 직접 쓴, 책 내용과 파리시의 노벨상 업적을 해설한 글이 (주)사이언스북스 홈페이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미래를 예측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는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조르조 파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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