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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조선시대 능묘(陵墓) 비석(碑石)은 건립 과정, 석재(石材)의 산지(産地), 제작 비용과 장인, 양식 특징 등 여러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이다. 500여 년 간 끊임없이 건립된 조선의 능묘 석물(石物)은 수만 점 이상 남아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유교 미술을 대표하며, 미술 변화의 지표가 되는 문화재이다. 이 중 능묘 비석은 가장 정성 들여 제작해 예술성이 높고, 사료(史料)가 많아 명확한 검증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 책은 방대한 조선시대 능묘 비석 작품을 조사하고, 사료를 통해 여러 사실을 증명했으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목차
머리말 5
서 론
1.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의 목적 27
2.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연구사 검토 29
3.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의 범위와 방법 32
제1장 능묘 비석의 분류와 명칭 37
1. 능묘 비석의 분류 39
2. 능묘 비석의 세부 명칭 41
제2장 중국과 한국의 능묘 비석 69
1. 중국 능묘 비석의 출현 71
2. 수(隋)·당(唐)·송(宋)의 능묘 비석 77
3. 명(明)·청(淸)의 능묘 비석 82
4. 삼국과 통일신라의 능묘 비석 92
5. 고려의 불교 비석과 능묘 비석 99
제3장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건립 배경 107
1. 15세기 왕릉 신도비 건립과 추이 109
2. 16세기 사대부 묘비와 『주자가례』 113
3. 신도비를 건립하지 말라는 유언-‘물용비석(勿用碑石)’ 117
4. 대명의리론과 사대부 묘비의 숭정연호(崇禎年號) 사용 120
5. 효종대 이후 왕릉 표석의 건립 124
제4장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제작 과정 129
1. 비석용 석재의 산지(産地) 131
2. 비석용 석재의 구득(求得) 148
3. 비문의 찬술(撰述)과 서사(書寫) 153
4. 비문의 각자(刻字)와 각수(刻手) 175
5. 비석의 석장(石匠) 187
제5장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시기별 특징 195
1. 15세기-능묘 비석의 건립 보편화 199
2. 16세기-능묘 비석의 확산과 다양화 209
3. 17세기-능묘 비석의 지역 특성 발현 217
4. 18세기-이수귀부의 제작 감소와 개석방부의 제작 증가 226
5. 19세기-능묘 비석의 형식화 244
결 론 동아시아 비석 문화 속 조선 능묘 비석의 가치 247
1. 석장 집단과 석재상(石材商)의 등장 249
2. 18·19세기 집자비 제작의 증가 252
3. 조선시대 고유의 능묘 비석 양식 창안 256
4.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문화사적 의의 261
부 록 조선시대 능묘 비석 일람 267
1. 이수(?首) 269
2. 운수(雲首) 281
3. 하엽수(荷葉首) 286
4. 개석(蓋石) 288
5. 용뉴형개석(龍?形蓋石)과 반룡형개석(盤龍形蓋石) 297
6. 방부(方趺) 299
7. 귀부(龜趺) 306
주 313
참고문헌 343
찾아보기 355
서 론
1.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의 목적 27
2.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연구사 검토 29
3.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의 범위와 방법 32
제1장 능묘 비석의 분류와 명칭 37
1. 능묘 비석의 분류 39
2. 능묘 비석의 세부 명칭 41
제2장 중국과 한국의 능묘 비석 69
1. 중국 능묘 비석의 출현 71
2. 수(隋)·당(唐)·송(宋)의 능묘 비석 77
3. 명(明)·청(淸)의 능묘 비석 82
4. 삼국과 통일신라의 능묘 비석 92
5. 고려의 불교 비석과 능묘 비석 99
제3장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건립 배경 107
1. 15세기 왕릉 신도비 건립과 추이 109
2. 16세기 사대부 묘비와 『주자가례』 113
3. 신도비를 건립하지 말라는 유언-‘물용비석(勿用碑石)’ 117
4. 대명의리론과 사대부 묘비의 숭정연호(崇禎年號) 사용 120
5. 효종대 이후 왕릉 표석의 건립 124
제4장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제작 과정 129
1. 비석용 석재의 산지(産地) 131
2. 비석용 석재의 구득(求得) 148
3. 비문의 찬술(撰述)과 서사(書寫) 153
4. 비문의 각자(刻字)와 각수(刻手) 175
5. 비석의 석장(石匠) 187
제5장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시기별 특징 195
1. 15세기-능묘 비석의 건립 보편화 199
2. 16세기-능묘 비석의 확산과 다양화 209
3. 17세기-능묘 비석의 지역 특성 발현 217
4. 18세기-이수귀부의 제작 감소와 개석방부의 제작 증가 226
5. 19세기-능묘 비석의 형식화 244
결 론 동아시아 비석 문화 속 조선 능묘 비석의 가치 247
1. 석장 집단과 석재상(石材商)의 등장 249
2. 18·19세기 집자비 제작의 증가 252
3. 조선시대 고유의 능묘 비석 양식 창안 256
4.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문화사적 의의 261
부 록 조선시대 능묘 비석 일람 267
1. 이수(?首) 269
2. 운수(雲首) 281
3. 하엽수(荷葉首) 286
4. 개석(蓋石) 288
5. 용뉴형개석(龍?形蓋石)과 반룡형개석(盤龍形蓋石) 297
6. 방부(方趺) 299
7. 귀부(龜趺) 306
주 313
참고문헌 343
찾아보기 355
책 속으로
조선시대 능묘(陵墓) 비석(碑石)은 건립 과정, 석재(石材)의 산지(産地), 제작 비용과 장인, 양식 특징 등 여러 측면에서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이다. 500여 년 간 끊임없이 건립된 조선의 능묘 석물(石物)은 수만 점 이상 남아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유교 미술을 대표하며, 미술 변화의 지표가 되는 문화재이다. 이 중 능묘 비석은 가장 정성 들여 제작해 예술성이 높고, 사료(史料)가 많아 명확한 검증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아쉽게도 조선시대 능묘 미술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아 필자는 양식사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조선 왕릉 장명등(長明燈)을 주제로 석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제작 과정 및 석장(石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양식사에 더해 인물, 재료, 비용 등 연구를 총망라할 수 있는 주제가 능묘 비석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을 통해 조선 사대부들의 다양한 입비관(立碑觀), 석재의 생산과 유통, 건립 비용 등 능묘 비석 연구의 다양한 접근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박사 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이 책은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형태를 분류하고 세부 명칭 정립을 기초로 하고, 중국과 한국의 능묘 비석을 비교해 공통점과 특징을 분석했다. 뒤이어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입비관 즉 건립배경에서 왕릉의 대형 신도비 폐지와 소형 표석 건립,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준행, 여러 사대부들이 유언으로 신도비 건립을 막았으며, 17세기 이후 숭정연호(崇禎年號) 사용이 보편화되는 등 다양한 사례를 파악했다.
전국적으로 3,000기(基)를 상회하는 능묘 비석에 사용된 다양한 석재의 산지를 찾았으며, 서울 한강변에서 비석용 석재의 매매 및 제작 유통 사례를 찾아내 비석 제작과 건립의 종합적인 과정을 제시했다. 또 수백 기의 이수(?首)를 분석해 시기별 특징과 함께 17세기에는 서울·경기 및 충청도 등 지역 양식이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비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형태, 구조 등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독자성을 이룩했으며, 조선의 능묘 비석에서 우리의 고유성이 특히 더 발현되었다는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박사 학위 논문으로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던 차에 유봉학 교수님께서 신구문화사의 역사문화연구총서로 발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셨다. 필자의 부족한 실력을 늘 격려해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유봉학 교수님과 역사문화연구소, 신구문화사 관계자께 감사 인사 올린다.
필자는 대학 신입생이던 2000년에 간송미술관 가헌 최완수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최완수 선생님을 위시한 연구진이 1977년에 이미 전국 능묘 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의궤, 족보 등 사료를 수집해 놓은 상태였다. 필자는 이 자료 덕분에 능묘 연구에 천착할 수 있었고, 간송미술관의 선생님들께 가르침을 받는 큰 복을 누릴 수 있었다. 최완수 선생님과 간송미술관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석·박사 과정을 동국대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지도해주신 최응천 교수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해주시며 필자에게 다양한 연구의 기회를 마련해 주시고 활동 분야의 폭을 넓혀 주셨다.
더불어 이민식, 김은선, 전나나 선생은 능묘 미술을 함께 공부하는 전공자로서 늘 필자를 이끌어 주고 있다. 김세영, 김동욱, 김단일, 원승현, 조은주, 김지혜 등 후배들은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의 답사 때마다 필자를 도와주고, 이번 책의 교정 등 궂은일을 함께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연구는 가족들의 지지, 선학과 동문의 격려와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2023년 3월
오헌(吾軒) 김민규(金玟圭)
아쉽게도 조선시대 능묘 미술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아 필자는 양식사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조선 왕릉 장명등(長明燈)을 주제로 석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제작 과정 및 석장(石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양식사에 더해 인물, 재료, 비용 등 연구를 총망라할 수 있는 주제가 능묘 비석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선시대 능묘 비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을 통해 조선 사대부들의 다양한 입비관(立碑觀), 석재의 생산과 유통, 건립 비용 등 능묘 비석 연구의 다양한 접근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박사 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이 책은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형태를 분류하고 세부 명칭 정립을 기초로 하고, 중국과 한국의 능묘 비석을 비교해 공통점과 특징을 분석했다. 뒤이어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입비관 즉 건립배경에서 왕릉의 대형 신도비 폐지와 소형 표석 건립,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준행, 여러 사대부들이 유언으로 신도비 건립을 막았으며, 17세기 이후 숭정연호(崇禎年號) 사용이 보편화되는 등 다양한 사례를 파악했다.
전국적으로 3,000기(基)를 상회하는 능묘 비석에 사용된 다양한 석재의 산지를 찾았으며, 서울 한강변에서 비석용 석재의 매매 및 제작 유통 사례를 찾아내 비석 제작과 건립의 종합적인 과정을 제시했다. 또 수백 기의 이수(?首)를 분석해 시기별 특징과 함께 17세기에는 서울·경기 및 충청도 등 지역 양식이 정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한국 비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형태, 구조 등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독자성을 이룩했으며, 조선의 능묘 비석에서 우리의 고유성이 특히 더 발현되었다는 내용을 이 책에 담았다.
박사 학위 논문으로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던 차에 유봉학 교수님께서 신구문화사의 역사문화연구총서로 발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셨다. 필자의 부족한 실력을 늘 격려해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유봉학 교수님과 역사문화연구소, 신구문화사 관계자께 감사 인사 올린다.
필자는 대학 신입생이던 2000년에 간송미술관 가헌 최완수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최완수 선생님을 위시한 연구진이 1977년에 이미 전국 능묘 조사를 진행하고 관련 의궤, 족보 등 사료를 수집해 놓은 상태였다. 필자는 이 자료 덕분에 능묘 연구에 천착할 수 있었고, 간송미술관의 선생님들께 가르침을 받는 큰 복을 누릴 수 있었다. 최완수 선생님과 간송미술관의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석·박사 과정을 동국대학교에서 수학하는 동안 지도해주신 최응천 교수님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해주시며 필자에게 다양한 연구의 기회를 마련해 주시고 활동 분야의 폭을 넓혀 주셨다.
더불어 이민식, 김은선, 전나나 선생은 능묘 미술을 함께 공부하는 전공자로서 늘 필자를 이끌어 주고 있다. 김세영, 김동욱, 김단일, 원승현, 조은주, 김지혜 등 후배들은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중국과 일본, 베트남 등의 답사 때마다 필자를 도와주고, 이번 책의 교정 등 궂은일을 함께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연구는 가족들의 지지, 선학과 동문의 격려와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2023년 3월
오헌(吾軒) 김민규(金玟圭)
---「머리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본서에서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전체 묘비 중 서울과 경기에 건립된 주요 묘비들을 현장조사하고, 그 외 지역들은 지역 특색이 강한 작품, 서울·경기와 양식적으로 연결된 작품을 중심으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했다.
제1장에서는 능묘 비석의 의미, 형태 분류를 시도했다. 기존 연구들을 바탕으로 신도비, 묘갈, 묘표 등 분류를 정리하고, 개석과 비좌의 형태를 구분했다. 이 비석 형태들의 기원과 의미를 분석해 의미를 재고하고 일부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제2장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기원과 문헌 규범에 대해 분석했다. 먼저 중국 능묘 비석의 출현과 송(宋)까지의 변화 및 조선에 영향을 준 명(明)·청(淸) 능묘 비석의 흐름을 정리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능묘 비석이 중국에서 받은 영향 및 독자성을 밝히고자 했다.
뒤이어 제3장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에 대한 문헌 규범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 왕릉 신도비의 건립과 폐지 및 조선 후기 왕릉 표석의 건립 배경은 당시 정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대부들의 다양한 입비관은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중요한 사상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장에서는 능묘 비석의 건립 과정과 이를 담당했던 인물들에 대한 고찰을 했다. 비석은 비문의 찬술, 서사가 매우 중요해 이들의 선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뒤이어 재력 등 상황에 맞는 석재를 마련하고 이를 석장, 각수들이 제작하는 과정을 여러 문헌을 통해 면밀하게 고찰했다.
제5장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시기별 양식 변천을 서술했다. 제1기(15세기) 능묘 비석의 건립 보편화, 제2기(16세기) 능묘 비석의 확산과 다양화, 제3기(17세기) 능묘 비석의 지역 특성 발현, 제4기(18세기) 이수 귀부의 제작 감소와 개석방부의 제작 증가, 제5기(19세기) 능묘 비석의 형식화로 구분해 변화와 원인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특성과 의의를 석장(石匠) 집단과 석재상(石材商)의 등장, 18·19세기 집자비(集字碑)의 제작 증가, 조선시대 고유의 능묘 비석 양식 창안, 불교 석조물의 연관성, 조선시대 능묘 비석으로 반추한 통일신라와 고려 비석의 제작 방법 등으로 정리했다.
제1장에서는 능묘 비석의 의미, 형태 분류를 시도했다. 기존 연구들을 바탕으로 신도비, 묘갈, 묘표 등 분류를 정리하고, 개석과 비좌의 형태를 구분했다. 이 비석 형태들의 기원과 의미를 분석해 의미를 재고하고 일부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제2장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기원과 문헌 규범에 대해 분석했다. 먼저 중국 능묘 비석의 출현과 송(宋)까지의 변화 및 조선에 영향을 준 명(明)·청(淸) 능묘 비석의 흐름을 정리했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능묘 비석이 중국에서 받은 영향 및 독자성을 밝히고자 했다.
뒤이어 제3장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에 대한 문헌 규범을 살펴보았다. 조선 초기 왕릉 신도비의 건립과 폐지 및 조선 후기 왕릉 표석의 건립 배경은 당시 정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대부들의 다양한 입비관은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중요한 사상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장에서는 능묘 비석의 건립 과정과 이를 담당했던 인물들에 대한 고찰을 했다. 비석은 비문의 찬술, 서사가 매우 중요해 이들의 선정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뒤이어 재력 등 상황에 맞는 석재를 마련하고 이를 석장, 각수들이 제작하는 과정을 여러 문헌을 통해 면밀하게 고찰했다.
제5장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시기별 양식 변천을 서술했다. 제1기(15세기) 능묘 비석의 건립 보편화, 제2기(16세기) 능묘 비석의 확산과 다양화, 제3기(17세기) 능묘 비석의 지역 특성 발현, 제4기(18세기) 이수 귀부의 제작 감소와 개석방부의 제작 증가, 제5기(19세기) 능묘 비석의 형식화로 구분해 변화와 원인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조선시대 능묘 비석의 특성과 의의를 석장(石匠) 집단과 석재상(石材商)의 등장, 18·19세기 집자비(集字碑)의 제작 증가, 조선시대 고유의 능묘 비석 양식 창안, 불교 석조물의 연관성, 조선시대 능묘 비석으로 반추한 통일신라와 고려 비석의 제작 방법 등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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