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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2023) - 아버지와 아들의 세계정복기

동방박사님 2024. 6. 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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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필리포스의 왕정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도 없었다!
세상을 정복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최초의 이중 전기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와 그의 유명한 아들에 관한 책. 고대 그리스 변방의 작은 국가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최강의 패권국으로 만들고, 페르시아 점령과 동방 원정으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며, 헬레니즘 문명의 초석을 닦은 정복자 부자의 일대기를 담았다.

저명한 고대 전쟁사 연구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이 책에서 두 인물의 이야기를 깊고 자세하게 다룬다. 특히 그동안 연구나 저술에서 간과되었던 필리포스의 성취를 최대한 되살려내며, 그를 바라보지 않고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해도 온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를 바라보아야 그들을 각각 올바른 맥락 속에 둘 수 있으며, 그들의 업적 또한 뚜렷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 필리포스는 물론이고 알렉산드로스의 일대기나 평전도 전무한 상황에서 고대와 현대의 연구 성과를 총망라한 이 책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관심이 있거나 당대의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더없는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목차

머리말

1부 필리포스 2세 (기원전 359-336)

1 시초
2 위기
3 마케도니아인, 그리스인, 야만인
4 동맹과 아내들
5 전쟁과 그 대가
6 “나는 패주하지 않았노라”: 테살리아에서의 패배
7 복수
8 화평
9 왕자
10 오래된 적과 새로운 적
11 카이로네이아 전투
12 사랑과 페르시아
13 “황소의 목에 화환이 걸렸다”: 열정, 야망, 설욕

2부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 (기원전 336-329)

14 본보기
15 마케도니아 군대와 적군
16 강
17 고르디아스의 매듭
18 “그때 참으로 유혈이 낭자했다”: 이소스 전투
19 “명백히 큰 과업”: 티레 공성
20 오아시스와 신
21 가우가멜라 전투
22 “아시아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도시”
23 끝과 시작
24 곧게 선 왕관

3부 알렉산드로스, 아시아의 주군 (기원전 329-323)

25 검과 불
26 “한 번의 입맞춤이 모자라서”
27 인도
28 승리에서 퇴각으로
29 바다와 모래
30 왕의 귀환
31 “망연자실”

맺음말

지도와 참고 그림
연표
주요 문헌
베르기나/아이가이의 왕릉들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화보 도판 출처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Adrian Goldsworthy)
영국의 고대사 및 전쟁사 연구자이자 역사소설가. 옥스퍼드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서양 고대사와 근대사를 공부했고, 고대 전쟁사를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첫 번째 책인 《로마군의 전쟁, 기원전 100년~기원후 200년(The Roman Army at War 100 BC-AD 200)》의 토대가 되었다. 주로 그리스?로마 세계의 전쟁이 지닌 여러 측면들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

역 : 전경훈서울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을 수료했다. 가톨릭교회 수도자로 살면서 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펍헙 번역 그룹의 번역자로 활동하며, 글을 읽고 쓰고 옮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레비와 프티의 바이블 스토리』, 『20세기 이데올로기』, 『H.G. 웰스의 세계사 산책』(공역), 『공존을 위한 8가지 제언: 석학이 묻고 교황이 답하다』, 『하느님 자비의 일곱 가...

책 속으로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성취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그것이 더 넓은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거나 그들의 동기가 아주 조금이나마 이타적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의 일이란 과거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인데, 특히 고대 세계를 다루어야 할 때는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나 그들의 동시대인들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떻게 일어났으며,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가능한 범위에서 분명하게 규명하려는 책이다. 이 시대에 관해 알려진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을 말하고, 추정과 짐작은 그저 그러할 뿐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 p.15, 「머리말」중에서

마케도니아는 늘 다른 지역, 다른 문화였다. 남부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보면 마케도니아는 낙후되어 있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도시국가가 발전하지 못했고 마케도니아 왕국 내부나 주변에서 눈에 띄는 폴리스는 외지 출신의 정착민들이 세운 것뿐이었다. 마케도니아에도 도시 공동체가 있었지만, 이들은 독립되어 있거나 진정한 자치를 실행하지 못했으며 성벽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인들에게 왕정은 그 자체로 구식이고 이질적인 것이었다. 오직 소수의 철학자들만 계몽된 군주에 의한 통치 가능성을 열렬히 탐구했을 뿐이다. 테살리아의 도시국가도 귀족들이 지배했고 참주들이 출연하기가 쉬웠지만, 그럼에도 북부의 이웃 나라에 비하면 더욱 명백하게 그리스적으로 보였다. 언어보다는 정치제도가 관건이었고, 아테네의 관점에서 마케도니아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트라케와 일리리아에 더 가까운 벽지(僻地)였다.
--- p.95~96, 「3장 마케도니아인, 그리스인, 야만인」중에서

필리포스는 자신이 아테네의 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왕국과 가까운 지역들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여겼을 뿐이다. 그리고 적어도 당분간은 그가 경쟁에서 이길 것이었다. 데모스테네스가 처음부터 자신의 메시지를 진정으로 믿었는지, 아니면 적어도 어느 시점에 믿게 되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필리포스에 대적함으로써 이 웅변가는 투사가 될 대의를 얻고, 민회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집착했고 자기 인생을 걸었다. (…) 데모스테네스는 적어도 마케도니아 왕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의혹을 증폭시키고 아테네가 다시 강력해져야 한다는 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기여했다. 물론 데모스테네스가 이런 주장을 했던 유일한 존재는 아니었다. 이 웅변가는 본질적으로 실천적이거나 건설적인 사람은 아니었기에 필리포스를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 p.168, 「7장 복수」중에서

결국 연합군 대열은 뚫렸고 무너졌다. 아테네 병사 1000명이 죽었고 2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테바이의 손실도 비슷한 규모였다. 케라타 고개로 달아난 병사들 중에는 데모스테네스도 있었다. 마케도니아 쪽의 사상자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탈주 초기 단계에 병사들이 살해당해 수가 크게 줄어드는 탓에 패배한 쪽이 승리한 쪽보다 훨씬 더 심각한 손실을 입는 경향이 있었다. 필리포스는 부족 적군들과 싸울 때와 달리 탈주하는 적군을 추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성부대의 병사들은 서 있던 자리에서 죽었다. 퇴각하기를 원치 않았거나, 포위되어서 퇴각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병사들의 탈주를 엄호했을지 모른다. 사자상 아래에 묻힌 255구의 시신은 흔히 이 신성부대 병사들로 여겨진다. 시신의 수가 신성 부대 병사들의 수와 비슷하므로, 문자 그대로의 사실은 아닐지라도 적군을 전멸시켰다는 이야기를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재앙적인 사상자 수를 대변한다.
--- p.258, 「11장 카이로네이아 전투」중에서

열아홉 살의 왕자는 참을성이 없었고, 성질이 급했으며, 단호하고, 강박적일 만큼 경쟁적이었다. 그의 장래 이력 전부가 이러한 성격적 특징을 증언할 뿐 아니라, 의심과 질투도 많았음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성공을 거둘 때마다 자신이 거둘 승리가 하나씩 줄어든다며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알렉산드로스와 필리포스 모두 영광을 갈망하는 이들이라 둘의 관계는 훨씬 더 복잡하고 팽팽했다. 그들 나이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두 사람은 지독하게 경쟁적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고도 더 많이 이루기를 원했고,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업적으로 인해 최고가 되기 위한 기준이 더욱 높아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재능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조연 역할을 해내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어린 왕자에게 예외적일 만큼 성숙한 감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274, 「12장 사랑과 페르시아」중에서

첫 번째 군사작전을 논하기 전에, 알렉산드로스가 이 페르시아 대전에서 이끌게 되는 군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 군대는 아버지 필리포스가 창조한 군대였다. 이 군대의 진화 과정은 추적이 불가능하고, 또한 얼마나 구체적으로 아시아 출정을 염두에 두고 조직되었는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 이 군대는 이제까지 보아왔던 군대들과는 달랐다. 그 규모가 훨씬 더 컸고 기병의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현전하는 고대 문헌마다 다르게 말하기 때문에 페르시아 원정대의 실제 규모는 알 수가 없다.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이 참고한 기록에 따르면 보병 3만 명에 기병 4000명에서 보병 4만3000명에 기병 5000명까지 수치가 제각기 다르다고 말했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는 수치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문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은 전위 부대의 포함 여부 때문인 듯하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마케도니아 군대의 구성과 규모에 관해 오늘날의 학자들이 개괄적으로 합의한 것들을 반영한 것이다.
--- p.328, 「15장 마케도니아 군대와 적군」중에서

이소스 전투는 미미한 싸움이 아니라, 거대한 규모의 양쪽 군대가 좁은 전장에서 정면으로 맞붙은 격렬한 전면전이었다. 마케도니아 군대가 승리한 것은 병사들의 기량이 좋고 자신감이 더 높았으며, 더 나은 지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적군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공격을 위한 준비 작업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고, 돌파구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 그는 다시 한 번 필리포스의 아들에게 기대되는 용기와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라니코스 전투에 비해 이번 전투는 훨씬 더 중요한 싸움이었고, 훨씬 더 큰 성공이었다. 다리우스의 군대가 완패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이번 승리는 필리포스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큰 발걸음이 되었다
--- p.414, 「18장 “그때 참으로 유혈이 낭자했다”」중에서

페르시아의 대열에 아마도 가늘고 긴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는 헤타이로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보병대를 이끌고 곧장 그 틈을 파고들었다. 아리아노스는 큰 쐐기형 대형에 대해서 말할 뿐, 그것이 그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마케도니아의 주력 공격 부대가 중앙에 있는 다리우스를 향해 비스듬히 전진했다. “잠시 동안 백병전이 벌어졌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기병대와 함께 힘차게 돌격해 들어와서 페르시아 병사들을 밀어내고 창으로 그들의 얼굴을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팔랑크스가 쇄도하자 “이미 오래전부터 공황에 빠져 있던 다리우스는 (…) 가장 먼저 등을 돌려 달아났다.” 거의 같은 시간에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왕이 달아났다는 소식 때문이었는지, 페르시아 군대의 중앙과 좌익이 해체되었다. 역경을 무릅쓰고 버티고 있던 프로드로모이와 다른 경무장 부대가 한 번 더 돌격하여 그들 앞의 적군을 궤멸시켰다.
--- p.476, 「21장 가우가멜라 전투」중에서

출판사 리뷰

필리포스의 왕정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정복도 없었다!
세상을 정복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최초의 이중 전기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와 그의 유명한 아들에 관한 책. 고대 그리스 변방의 작은 국가에 불과했던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최강의 패권국으로 만들고, 페르시아 점령과 동방 원정으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며, 헬레니즘 문명의 초석을 닦은 정복자 부자의 일대기를 담았다.

불가피하게도 고대 또는 현대에 거의 모든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를 개조하고 통합하여 더욱 크고 강한 국가로 만든 것은 필리포스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군대를 조성하고 심지어 페르시아 공격 계획을 세운 것도 그였다. 필리포스가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도 없었을 것이다.

저명한 고대 전쟁사 연구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이 책에서 두 인물의 이야기를 깊고 자세하게 다룬다. 특히 그동안 연구나 저술에서 간과되었던 필리포스의 성취를 최대한 되살려내며, 그를 바라보지 않고는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해도 온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를 바라보아야 그들을 각각 올바른 맥락 속에 둘 수 있으며, 그들의 업적 또한 뚜렷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는 필리포스는 물론이거니와 알렉산드로스의 일대기나 평전도 전무하며, 알렉산드로스 원정기 역시 고대 역사가들의 책이 출간된 것이 전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관심이 있거나, 당시의 역사적 맥락이나 원정의 양상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는 고대와 현대의 연구 성과를 총망라하여, 국내 독자들의 아쉬움을 충족시키는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전기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필리포스의 왕권만큼 성공적이며, 알렉산드로스의 정복만큼 스릴 넘친다.” ─ 톰 홀랜드, 《루비콘》 저자
“최고의 역사서. 골즈워디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복자 부자의 이야기를, 그들의 격렬한 업적의 드라마틱한 면모와 역사에 미친 막대한 영향력을 유려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 ─ 배리 스트라우스, 《악티움 해전》 저자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의 생생한 전기를 함께 엮은 것은 그 자체로 가장 큰 혁신이다.” ─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군사, 정치, 사회,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의 서가에 꽂아 두어야 할 책.” ─ 《미네르바 매거진》

용맹한 장군, 유능한 외교관, 위대한 통치자였던
필리포스 2세의 성취를 복원하다


필리포스가 즉위했을 때 마케도니아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전임 통치자였던 그의 형 페르디카스 3세가 일리리아 군대의 손에 완패해 목숨을 잃었고, 마케도니아는 주변 지역의 포식관계에 노출되어 언제든 침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23세의 젊은 왕이 약소국 마케도니아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즉위 후 필리포스는 사리사(6미터 길이의 장창)라는 새로운 무기를 고안했고, 창병 팔랑크스(고대 그리스의 중보병 대형)를 정비해 전쟁에 적합한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다. 장차 필리포스 치세는 물론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서도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어 세계를 제패할 군대였다. 필리포스는 즉위하자마자 주변국의 위협을 물리쳤고, 아테네와 테바이를 비롯한 대형 그리스 도시국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그리스 패권을 장악했으며, 페르시아에 맞선 범(凡)그리스 연합군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명실상부 그리스의 패자(?者)는 필리포스였다.

필리포스는 최선두에서 병사를 이끌며 전장을 누비는 용맹한 장군이었고, 외교와 협상으로 지배권을 확장한 유능한 외교관이었으며, 마케도니아 제국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진 위대한 통치자였다. 비교적 풍부하게 기록이 남은 알렉산드로스에 비해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건에서도 지은이는 그의 성취를 무리 없이 복원해낸다. 파이오니아와 일리리아 군대의 격퇴부터 무수한 공성 전투, 아테네·테바이 연합군을 물리친 카이로네이아 전투와 전체 그리스의 코린토스 동맹을 이끌어내기까지 숨 가쁜 그의 일대기가 상세하고 유려하게 펼쳐진다.

필리포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페르시아 원정에 몰두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20여 년간 성공의 경험을 쌓은 크고 자신감 넘치는 군대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던 강력한 제국을 물려받았다. 통치 초기 나라의 해체 위기에 직면한 필리포스와 달리, 알렉산드로스는 왕국의 존속을 염려하거나 계속되는 성공이 좌절될 것이라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었다. 미래의 성공을 꿈꾸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그렇게 큰 꿈은 알렉산드로스 같은 자만이 꿀 수 있는 것이었다.

신화가 된 무패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다


카이사르는 38세에 알렉산드로스의 역사서를 읽다가 별안간 눈물을 터뜨리며, 알렉산드로스는 그 젊은 나이에 그토록 광대한 제국의 왕이 되었는데 자신은 그만한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로마 제국의 심장부를 위협했던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으로 알렉산드로스를 꼽았다고 한다. 금발에 작은 체구,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성격, 정복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무패 행진을 이어간 불세출의 영웅. 알렉산드로스는 서양의 청년 영웅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여러 시대에 걸쳐 성인(聖人)에서 괴물까지, 군사적 천재에서 유능한 악한까지 수많은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동성애나 양성애의 아이콘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맹렬하면서도 영리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지도자였다. 짧고 장렬한 생애 말미에 그는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오늘날의 파키스탄으로 진군해 아드리아해에서 인도까지 뻗은 제국을 세우며 고대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다. 어느 허구의 영웅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패배를 겪지 않은 정복자였다. 그가 더는 정복할 땅이 없어 눈물을 흘렸다거나, 나설 싸움이 없어 칼을 집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룬 일들이 작아지지는 않는다.

지은이는 알렉산드로스와 관련된 자료를 총동원해 그의 생애와 원정의 과정을 생생하게 펼쳐낸다. 각 전투 장면의 세세한 묘사는 마치 눈앞에 격렬한 싸움의 현장이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재현해냈다. 또한 신화로 남은 영웅에게 덧씌워진 무늬를 지우고 인간의 맨얼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지은이는 전체 서술에서 이것이 인간의 역사임을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이는 알렉산드로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알렉산드로스 역시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한 인간이기도 했다. 그는 술에 취해 평생을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래에서 헌신해온 장군을 홧김에 살해한 후 후회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하고, 도저히 변호할 수 없는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페르시아 복식과 의전의 무리한 도입으로 부하들의 원성을 사거나, 세계 정복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성취와 허물을 모두 다룸으로써 지은이는 알렉산드로스의 실체적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고대 문헌은 물론이고 현대에 제작된 영화까지 관련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고 비교하며, 학계의 다양한 의견도 함께 제시해 보다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시선으로 알렉산드로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대와 현대의 연구 성과를 면밀하게 비교, 검토하여
날것의 진실을 건져 올리다


책의 말미에 수록된 부록에는 초기 마케도니아와 필리포스 치세의 확장된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의 원정 경로를 담은 지도들과, 마케도니아군의 팔랑크스 대형, 그라니코스·이소스·가우가멜라 전투의 대형을 재현한 참고 그림이 나온다. 전투 대형은 추측에 의존했기에 그 형태가 완전히 정확한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당시 페르시아와 그리스 군대의 규모를 가늠하고 전투의 전개 양상을 상상해보는 데 도움을 주는 시각 자료들이다. 이 외에도 지은이가 참고한 주요 고대 문헌에 관한 소개, 필리포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베르기나(고대 마케도니아 수도인 아이가이가 있던 곳)의 왕릉 발굴과 무덤의 주인공을 추적해가는 과정 등이 실려 있어 고대와 현대의 연구 성과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은이는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진정한 전기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들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자료가 남아 있는 한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다루었다. 지은이가 경계하는 것은 자신만의 필리포스나 알렉산드로스를 만들어, 그들이 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일들을 상정해 역사의 빈틈을 메우려 드는 것이다. 독자에게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을 분명히 전달하는 것도 역사가의 임무이기에 더욱더 방대한 자료를 치열하게 검토한 이 책은 당대의 역사적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에게 더없는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