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기독교 문화유산 (2016~) <답사지>/13.천주교성지

횡성 풍수원성당

동방박사님 2016. 10. 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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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풍수원성당  (橫城 豊水院聖堂)

풍수원마을이 형성된 연유는 1891년 신유박해이후 1893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 (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명의 신자들이 8일동안 치난처를 찿아 헤메다가 정착하게 된 것이 그 유래로써 80여 년 동안

신자들은 성직자 없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1888년 프랑스 성직자 르베르 신부가 풍수원에 파견되어 본당을 창설, 초대신부로 임명되었고, 본당의 관할구역은 강원도 전역과 경기도 일부를 포함하는 12개군 29개 공소로서 신자수 2,000영명에 이르렀다.

르메르 신부가 본당의 터전을 딱은 후 예수 성심학교 출신으로 첫 사제로 서품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부임하여 1943년 81세의 일기로 선종하기까지 평생을 풍수원 본당 신부로 사목하였고, 정규하 신부는 1906년 자신의 돈과 교유들의 헌금으로 중국인 인부들을 고용, 당시 초가성당을 대신해 높이 5m 건평 120평의 연와조성당 건립을 착수하여 1년만인  1907년 준공 봉헌 하였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네번재로 지어진 성당으로 최고성과 역사적 의미가 있는 성당 건축물인 풍수원성당은 1982년 강원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본 풍수원성당은 국내 성지순례지로서 정신적 신앙지로 자리를 잡았으며 매년 성체헌양대회 및 피정이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에서 실학(實學)의 학풍을 일으킨 남인(南人)계 선비들이 18세기 말엽에 이른바 강학회(講學會)를 연 것이 교리 탐구와 신앙수련의 모태가 되면서 천주교 신앙이 이 땅에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 이승훈 베드로가 1784년에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선배와 동지들에게 세례를 주면서부터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태동하였으나 곧 거센 박해를 받게 되었다.  신해박해(1791), 을묘박해(1795)에 이은 신유대교난91800~1801)에 이르러서는 서울과 경기도에 밀집하여 살던 교우들이 충청도 강원도 등의 산간 벽지로 숨어 들어갔는데 식솔을 이끌고 혹은 혈혈단신으로 관헌의 눈을 피해 산과 계곡으로 피난처를 찾던 이들 중에서 신태보(베드로)는 40여명의 교우들을 이끌고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으로 들어섰다.  이들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을 이룬 이들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강원도 최초의 본당 설립을 위한 기반을 닦는다. 바람소리, 새소리가 유난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감히 다가들지 못하는 첩첩산중에서 이들 신앙공동체는 소박하지만 평화롭게 기도와 신앙생활을 영위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는 또 다시 많은 천주교도들이 고향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이 때 교우들은 사방으로 연락을 취해 피난처를 찾던 신자들을 불러모아 큰 촌락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천주교 신앙으로 하나된 공동체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교우들은 처음 풍수원으로 찾아든 이래 무려 80여년 동안 사제없이 오로지 평신도들로만 구성된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믿음을 지켜왔던 것이다.

 

  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그 이듬해 교우들은 사제의 부임을 열망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1888년 당시 뭬텔주교는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신부로 파리외방전교회의 르 메르(Le Merr) 이(李) 신부를 임명했다.  르 메르 신부는 이로써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당시 신자수는 약2,000명에 이르렀다.  아직 서양식 성당 건물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1896년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하(아우구스티노, 1896-1943년, 48년간 2대 풍수원 주임)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 착공해 1907년 준공했고, 2년 뒤인 1909년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 성당은 신자들이 직접 별돌을 굽고 아름드리 나무를 조달했다.

 

  풍수원성당의 교세는 크게 확장되어 원주, 춘천, 양평, 횡성, 평창, 홍천 등 주위의 본당들은 모두 풍수원으로부터 분당되어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강원지역 전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풍수원성당에는 오랜 세월 성숙된 신앙의 유산을 배우고 묵상하고자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찾고 있다.

(출처:주평국,『하늘에서 땅끝까지』, 카톨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