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역사기억여행 (2010~) <여행지>/4.역사공원묘지

심산 김창숙 선생 묘역

동방박사님 2017. 9. 3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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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선생 묘역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였던 이 시대 마지막선비

수유동 백련사 입구에서 순례길을 걷다보면 심산 김창숫 선생 묘가 나온다.

조선 시대말 뛰어난 유학자였던 선생은 1905년 11월 을사 늑약 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목을 베라고 상소 하였으며, 1906년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 활약하였다.1909년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통감 이등방문의 사주를 받아 한일 합병론늘 제기하자, "이 역적을 성토하지 않ㄴ느자 또한 역적이다'라고 토로하면서 일진회와 매국노를 규탄하는 성토문을 작성하여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3.1운동 이후에는 한민족의 자주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청원서인 "파리장서"를 만들어 중국상하이로 가서 파리강화회읭에 제출하는 한편, 각국 대사와 공사 등에게 보내 우리 민족의 염우너을 세계에 알렸다. 그 뒤 당시 활발히 논의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의정원 구성에 참여 하였다.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국냉에서 혹독한 고문과 감금 생활을 겪었으며 8.15이후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등을 역임 하면서 반탁 민주 운동에 헌신하였다. 1946년에는 전국유림을 결속시켜 유도회 총본부를 조직하였으며, 성균관대학을 재건하여 후진양성을 하다 1962년 영면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2012년 문화재청으로 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