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독교 문화유산 (2016~) <답사지>/10.목포.전남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동방박사님 2018. 8. 15. 13:02
728x90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2007년 전남동지방회에서 총회에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 건립을 청원하여, 2013년 5월21일 2,550평 대지위에 750평의 건물이 건축 되기까지 전국 성결인의 기도와 땀과 눈물이 있었고, 이제 초교파적으로 매년 7만명의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전라남도와 신안군에서는 증도와 3만평 부지위에 "신안 홀리랜드'를 계획하고 있다.


한국의 성결교회

한국성결교회는 찰스 카우만과 어니스트 길보른, 그리고 나카다 주지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동양선교회를 모체로한다. 감리교 신앙 배경의 찰스 카우만은 마틴 냅이 설립한 신시 네티의 하나님의 성서학원에서 훈련받고 만국성결교회 이후로부터 파송된 선교사였다. 김상준과 정빈이 도쿄성서학원에서 훈련 받고 돌아와, 경성(현 서울) 종로에 복음 전도관 (1907)과 성서학원 (1911, 서울 신학대학교)을 열고 복음 전도한 것이 교회의 시작이다.  

1921년 감독제 정치를 기초로 한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가 조직되었다.

첫 번째 감독은어니스트 길보른 이었다. 19334월 교회는 선교사들로 부터독립을 결의하고, 자치연회를 결의 개최했다. 3년 뒤, 내부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몇몇 목사들이 교단을 떠나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했다.이교단은 이후에 19484월 정남수 목사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와 통합했다.

태평양전쟁동안 일본제국에 의해 일본과 조선의 성결교회는 그들의 급진적 재림로으로 인해 일본과 조선의 성결교회는 그들의 급진적 재림론으로 읺고 박해를 받고 교단해산을 당했다. 1942년에는 일본홀리니스교회 화협분리이후 성결파 계열 교회들이 1943년 조선 성결교회가 해산됐다. 해방이후 19459, 총회가 재건되었다. 19484, 대의 민주제도로서의 장로제를 정치제도로 채택했다. 1949년 기독교 대한성결교회로 교단명을 변경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로 여러교회와 교인들이 공산군에게 박해와 순교를 당했다.

전후(戰後)사회 내에 팽배하던 좌우 이념 갈등은 교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1년 복음주의 운동과 에큐메니컬운동 간의 연합운동 참여문제로 인한 정치적 신학적 갈등을 겪던 한국성결교회는 두 그룹으로 분열 되었다. 이듬해 보수파들은 에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를 조직하고 신학교 (, 성결대학교)를 만들어 독립했다.

1996년 유아세례가 허용되었다. 20046월 여성안수가 허용되었다. 2007년 창립100을 기념했다. 당시 발간된 100주년 기념 성결교회신학은 성결교회의 신학을 온전한 구원의 신학 즉 개신교복음주의 웨슬리안 사중복음 신학이라 규정했다. 2015년 기독교대한 성결교회는 웨슬리안교회 국제총회의 준회원이 되었다.

신학교육기관으로 경기도 부천시에 소재하는 서울신학대학교가 있으며, 성결교회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가 있다. 언론기관으로는 신학잡지인 활천교회신문인 한국성결신문이 있다.  
















































'13.기독교 문화유산 (2016~) <답사지> > 10.목포.전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포 정명여중 구선교사터  (0) 2018.08.15
목포 구청년회관  (0) 2018.08.15
목포 양동교회  (0) 2018.08.15
신안 중동리 교회  (0) 2018.08.15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  (0) 2018.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