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교회
1928년 간행된 [조선예수교장로교회사기] 상편에 보면 동래의 첫 교회인 수안교회(동래읍교회)의 설립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905년 동래읍교회가 설립되었다. 이보다 앞서 10여 명의 믿는 사람들이 나왔으므로 남문 안에 개인의 집을 빌려 예배를 드리더니, 그후에 정덕생 조사가 시무하던 중에 박문길, 옥치옥 등이 주님께 돌아와 교회가 부흥 하였고, 윤상구, 박문길, 옥치욱 등이 열심히 연보하여 수안동에 에배당을 건축하였다.
다른 자료에도 수안교회 동래읍교회는 1905년 4월 15일 호주 선교사 왕길지(엥겔)와 조사 정덕생이 이미 얻어진 10여명의 신자들과 합심하여 남문 안에서 개인집을 얻어 정식으로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자료들로 보면 수안교회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전 부터 신도들의 모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록에 적혀있는 이 10여 명의 신도가 누구인지는 다른 기록이 없어 대부분 이름조차도 알 수 없다고한다. 다만 그들이 대부분 여성 이었다는 것과 그들 가운데는 김원봉이라는 양반집 부인과 동래부 관기출신인 한설향(한동년)이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동래 지역의 기독교 선교는 1903년 호주의 여선교사인 멘지스에서 시작된다. 1889년 10월에 내한한 호주선교사 데이비스는 서울에서 언어를 습득한 후 1890년 부산선교를 위해 내려오다가 천연두와 결핵에 감렴돼 부산 도착 즉시 순직하게 된다. 이에 호주 선교부에서는 데이비스의 순교를 기려 더 많은 선교사들을 부산에 파송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파송된 2진 선교사들은 1892년 부산에 도착하였는데, 멕카이 선교사부부와 멘지스, 페리, 파셋의 세 여교사로 5명이었다. 이들은 부산진에 선교본부를 설치하고 주변을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중 멘지스 선교사는 1903년부터 20리 북쪽의 동래까지 와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특히 동래의 유지인 윤병연의 집에 방 한 칸을 얻어두고 상주하지 않고 때때로 와서 유숙하면서 2년간 읍내를 두루 돌아다니며 여인들과 접촉을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처음에는 전도의 열매가 없다가 차츰 한 두명씩 동조자를 얻기 시작 하였다. 그 중의 한 명은 동래인 김원봉이요, 또 한 명은 동래부 관청 소속의 기생출신인 한설향이었다. 이 둘은 1910년 9월11일, 왕길지 선교사로 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김원봉은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교회 출입을 못하다가 1920년대부터는 교회일에 앞장서 성실히 봉사하였다고 한다.
한동년(1874. 10.6~1942.5.21)은 부친 청주 한시 한치흔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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