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한양도성
한양도성은 조선왕조가 한양에 새 도읍지를 정한 1394년부터 쌓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600여 년간 지속적으로 보수 관리되어 온 성이다. 전체 길이는 18,627km, 성벽높이는 5~8m이다. 성벽은 백악,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 네 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하여 자연의 형상과 일체화하였으며, 각각 독특한 건축미를 지닌 8개의 성문과 2개의 수문水門을 내었다. 성벽의 일부 구간에는 치성雉城을 쌓았고, 곳곳에 군사용 성랑城廊을 지었다. 19세기 말부터 전타, 자동차 등 근대적 교통수단이 도입되고 도시의 영역이 성벽 바깥으로 확장됨에 따라 평지 구간의 성벽은 대부분 철거 되었지만, 산지의 성벽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현재 13,370km의 성벽이 남아있는데, 현존하는 세계의 수도 성곽중 가장 길다.
서울, 한양도성
인구 1천만명, 면적 605 제곱km의 거대 도시 서울은 매일매일 변화하는 새로움의 연속체이다. 해가뜨고 서울의 하루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도시는 빠르게 변화한다. 그러나 이것이 서울의 전부는 아니다. 서울은 600년 두터운 과거가 오늘의 일상과 함께 공존하는 역사문화도시로서, 오래도록 도시와 역사의궤를 같이 해온 한양도성이 이를 증명한다. 1396년 조선의 수도 서울(한양)에 건설된 한양도성은 도시의 경게이자 도성민의 삶을 지키던 울타리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도성의 기능은 없어지고 망각 속에서 제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체 우리 곁에서 멀어졌지만 한양도성은 여전히 서울의 중신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과 복원을 통해 현대에 되살아나고 있는 한양도성은 사계절과 밤낮의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도 도성 안 사람들을 품고 있다.
도성이 서울이다
자본주의 산업화 이전의 도시들은 대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인류가 수천 년 무터 지표상의 특정 공간을 성벽으로 둘러싼 것은 성벽 안쪽이 특별한 기능과 상징성을 가진 영역임을 표시하고, 그 영역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맥락에서 한양도성을 처음 축조할 때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에서도 "성곽은 안팎의 경계를 엄격히 하고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한것 이라고 했다. 도성都城이란 왕이 거처하는 성으로서 여러 성 중에서 으뜸가는 성, 곧 모든 국가 기능이 집중된 수도를 의미한다. 순 우리말 '서울' 은 수도라는 뜻이니, 도성이 곧 서울이었다. 서울은 도성 안의 국가 충추 기능을 보존한 채 성벽을 넘어 현대도시로 팽창했다. 현재의 한양도성은 국제도시 서울의 역사를 증언하는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의 가치
한국인들은 고대부터 산의 능선에 성을 쌓는 축성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한양도성은 이를 계승하여 자연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위엄과 효율을 극대화했다. 도시의 외곽선이 자연의 선형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에, 내부의 가로 체계와 도시 구조도 자연의 형상과 조화를 이루었다. 이는 대로를 중심으로 인위적이며 기하학적인 도로망을 형성한 동시대 아시아 도시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한양도성은 다양한 지형과 지질에 따라 서로 다른 축성기법을 사용했으며 무너진 구간을 보수할 때마다 진전된 기술을 도입했으니, 한국 축성기술의 발전 과정을 아로새긴 문화유산이다. 또 출입, 보수, 관리, 순찰 등과 관련한 노동, 놀이, 에술의 배경이자 무대이기도 했다. 서울이 팽창하기 시작한 뒤 성벽 주변에 생긴 마을들은 오래된 문화유산과 공존하는 현대적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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