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3.일본근대사

돈까스의 탄생

동방박사님 2022. 4. 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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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음식은 한 나라 사람들의 정서나 가치관, 생활습관 등이 응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문화적 코드로, 그 나라의 문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어떤 나라를 알고 그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식에 대한 파악이 불가피하다. 일본을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일본음식을 모르고는 말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아는 일본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선회, 초밥, 우동, 메밀국수, 튀김 등을 떠올릴 것이다. 한번쯤은 그 음식들을 먹어보고 일본음식은 대체로 담백하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것이라는 인상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음식들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돈가스의 탄생-튀김옷을 입은 일본 근대문화사』는 이미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해진 돈가스라는 음식이 탄생하기까지 질풍노도의 드라마와도 같았던 60여 년의 문화사를 살펴봄으로써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를 제공하는 책이다.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을 근대화시켜가는 정치적인 혁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1,200년의 금기를 깨뜨리는 '요리유신(음식혁명)'이기도 했다. 이러한 130년 전의 요리유신이야말로 오늘날의 일본 음식문화를 풍부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매우 실증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또 세부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다룬 일본 근대문명 또는 일본 음식문화에 관한 독특한 이론서이다.

목차

머리말-5

제1장 메이지 5년 정월, 메이지 천황 육고기를 먹다
1. 메이지 유신, 요리유신-25 | 2. 육식의 일본사-32 | 3. 막부 말기의 육식은 ‘보약’-38

제2장 쇠고기를 먹지 않는 자는 문명인이 아니다
1. 쇠고기, 냄비에 들다-47 | 2. 지식인들의 쇠고기 찬가-64 | 3. 증가하는 육류 수요-74
4. 모리 오가이 대 후쿠자와 유키치-80 | 5. 서양요리의 정통-86

제3장 진기한 음식, 기묘한 매너
1. 고기 알레르기-109 | 2. 쉽지 않은 식사예법-114 | 3. 해괴한 양식-119

제4장 단팥빵이 태어나던 날
1. 빵의 장대한 역사-127 | 2. 신기한 음식, 빵-133 |
3. 군사식량으로 빵을 만들고-137 | 4. 단팥빵의 탄생-149

제5장 양식의 왕자 돈가스
1. 돈가스의 수수께끼-169 | 2. 튀김방법의 비밀-178 | 3. 돼지고기와 일본인-187 |
4. 돈가스의 탄생-193 | 5. 돈가스를 탄생시킨 지혜-212

제6장 양식과 일본인
1. 서양요리에 대한 숭배―메이지 시대 초기-233
2. 서양요리의 흡수 및 동화―메이지 시대 중기-236
3. 일양절충요리의 대두―메이지 시대 후기-238
4. 양식의 보급―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255

에필로그-262 | 옮기고 나서-273 | 일본 양식 연표-279 | 참고문헌-284
 

저자 소개

저자 : 오카다 데쓰
1931년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농학부 농예화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부터 90년까지 닛신제분에서 근무하며 밀가루의 제조 및 연구에 종사했고, 94년부터 97년까지는 일본 NHK방송대학에서 식문화사 강좌를 담당했다. 지은 책으로 『밀가루의 식문화사』, 『세계의 맛 탐구사전』, 『일본의 맛 탐구사전』, 『음식문화사전』,『밀가루요리 탐구사전』 등이 있다.
역자 : 정순분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 『마쿠라노소시』 연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헤이안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일본고전문학비평』, 『마쿠라노소시와 헤이안 문학』(제이앤씨)과 『마쿠라노소시 표현의 방법』(일본, 벤세이출판), 『마쿠라노소시 대사전』(공저, 일본, 벤세이 출판) 등의 책을 썼고, 옮긴...
 

책 속으로

서양음식의 대부분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도입되었다. 그 후 불과 백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다양한 음식문화를 즐기고 있고, 국내에서 전 세계 모든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00년 남짓한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걸까. 외래의 서양음식은 어떤 식으로 수용되었을까. 메이지 유신은 현대 일본의 다채로운 음식문화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는 가장 흥미로운 시대의 개막이었고, 근대화를 향한 탈피였던 메이지 유신은 그런 의미에서 동시에 ‘요리유신’이기도 했다. --- pp.10~11

서양요리가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사회의 상층부에서부터였다. 1872년 메이지 천황이 솔선해서 육식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와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육식을 장려하고 나섰다. 궁중의 정찬에도 프랑스요리가 도입되었으며, 밤마다 열리던 로쿠메이칸(鹿鳴館: 1883년에 도쿄 히비야에 지어진 국제사교장―옮긴이) 무도회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일본요리와 서양요리를 절충해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 ‘양식洋食’을 만들어낸 것은 역시 쌓이고 쌓인 서민들의 창의와 궁리였다. 그 과정은 이렇다. ① 서민들은 처음 마주하는 양식 조리법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서 ② 이윽고 쇠고기를 그때까지 먹어왔던 일본식 조미료(된장, 간장)로 맛을 내어 쇠고기전골과 스키야키를 만들어냈고 ③ 나아가 양식 조리법에 일식 조리법을 절충한 독특한 양식을 가정요리에 받아들였다.
(중략) 서민들이 자유자재로 양식을 만들어 먹게 된 것은 육식이 해금된 지 60여 년이 흐른, 다이쇼大正 시대(1912~1926)에서 쇼와昭和 시대(1926~1989)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그 60년 세월은 곧 ‘돈가스’의 탄생에 이르는 과정이기도 했다. --- pp.12~13

이 책은 문명개화를 배경으로 한 양식 이야기다. ‘돈가스’나 ‘단팥빵’이 주인공인 양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돈가스나 단팥빵이라는 물건의 세계에만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해서 단팥빵이 만들어지고 돈가스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요리유신에 정열을 쏟으며 관여해왔는지를 얘기하고 싶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물건보다 사람이 중심이었던 이 시대 사람들을 되돌아보면서 현대의 진정한 풍요로운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 p.16

밀가루, 계란, 빵가루로 입힌 세 겹의 튀김옷이 뜨거운 기름과 고기를 격리시켜 육즙이 유출되는 것을 막고 육질을 부드럽게 유지한다. 그리고 빵가루에 적당히 스며든 기름이 풍미를 더해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양식의 왕자 돈가스의 탄생, 그리고 돈가스가 그 발상지 우에노上野와 아사쿠사淺草에서 전국으로 급속하게 퍼진 일이야말로 일본 서민이 서양요리를 소화하고 흡수했음을 나타내는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 p.17

그러나 가축을 먹는 것은 기마민족의 습관으로, 고대 일본에는 없던 것을 ‘도래인’이 가져온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인에게 육식 금지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은 금지령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불교의 융성과 함께 대두되기 시작한 도래인 세력을 음식 측면에서 억압하려고 한 정책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 p.36

같은 불교국가지만, 중국에서는 일본과 같은 육식금지령이 발포되지 않았다. 살생계가 사원을 중심으로 한 일부 신도들에 의해 지켜지긴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소, 돼지, 말, 양, 닭, 물고기 등 뭐든지 먹었다. 다만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는 고기와 술을 삼갔다. 한반도에도 살생금지령이 있긴 했지만, 일본만큼 엄격하진 않았다. 쇠고기는 몽골의 침략 무렵에 부활해 조선시대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 중국, 한반도는 각기 전혀 다른 육식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양의 요리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독자적인 절충으로 ‘양식’을 만들어낸 것은 일본뿐이었다. --- pp.36~37

일본에서는 스키야키나 샤브샤브용으로 얇게 썬 고기가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외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육고기가 공기에 노출되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에서만 얇게 썬 고기가 생겨난 것일까. 일설에 따르면, 육식을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 먹는 식으로 변형한 것인데, 거기에는 얇게 썬 고기만이 갖는 독특한 맛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p.60

두 사상의 차이에는 서구화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육식장려론과 전통적인 쌀밥에 집착하는 쌀밥 우위론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도회파’와 ‘농촌파’의 차이였다. 도회파는 서양의 근대화를 뒤쫓아 따라잡기 위해서는 모든 점에서 서양을 따라 배워야 한다, 그러려면 논농사를 폐지해서라도 목축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촌파는 논농사가 목축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서구화와 일본 전통에 대한 재평가 사이의 대립이었다. 실제로는 이것들을 절충한 화혼양재 사상이 일본의 근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서민들은 본격적인 서양요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일양절충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돈가스’가 양식의 스타로 등장하고, 빵은 밥을 대체하는 대신 밥과 역할이 겹치지 않는 독특한 ‘단팥빵’의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먹을거리의 탄생은 일본 음식문화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p.85

서양요리를 먹기 위해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려면 그야말로 결사적인 용기가 필요했다. 요코하마에 있는 ‘가이요테이’의 주인 오노 다니조大野谷藏는 개점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양요리를 먹으러 온 손님들은 나이프와 포크로 입 안을 찔러 피투성이가 되는 악전고투를 벌이곤 했다. 고기조각을 나이프로 찍어서 함께 입 안에 넣고 씹다가 빼는 바람에 입술을 베어 피를 보는 일도 있었다. 또 수프를 마시는 법도 몰라서 접시를 손에 들고 된장국 마시듯 들이켰다가 가슴에서 무릎까지 온통 뜨거운 수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핫토리 세이이치가 쓴 『도쿄 신번창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적혀 있다. “고기를 먹을 때는 왼손에 젓가락, 오른손에 나이프를 각각 쥐고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 젓가락으로 찍어서 먹는 진풍경도 있었다.”--- p.114

한편 빵은 16세기에 일본에 전해졌지만, 오랜 쇄국정책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막부 말이 되면서 각 지방의 번은 앞을 다투어 군용 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코앞에 닥친 국방상의 필요 때문에 빵을 긴급식량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육해군이 정백미 과잉섭취로 생긴 각기병에 대한 대책으로 빵을 군사식량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 또한 상층부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빵은 서민들이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외국음식이었다. 서민들은 오랫동안 밥을 주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음식문화가 너무 다른 빵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1874년 ‘단팥빵’이라는 전혀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지자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을 제패하고 천황의 식탁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아래에서 위로 진행된 커다란 변화였다. --- p.150

에도 시대에 완성된 일본요리에서는, 밀가루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재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단팥빵’과 ‘돈가스’의 탄생과 함께 밀가루는 요리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거듭났다. ‘고로케’도, ‘카레라이스’도 밀가루 없이는 만들 수 없다. 일양절충요리, 즉 ‘양식’은 한마디로 일본음식에 밀가루를 들여와 만든 요리인 셈이다. --- p.170

‘돈가스’의 이름에는 여러 설이 있다. 커틀릿에 사용하는 고기는 본래는 쇠고기, 닭고기였다. 그것이 돼지고기로 바뀌면서 ‘포크가쓰레쓰’, ‘돼지고기가쓰레쓰’라고 불렸다. 이 무렵 ‘돈豚가쓰레쓰’라는 이름이 요리책과 메뉴판에 곧잘 등장하는데, 아마도 ‘포크커틀릿→포크가쓰레쓰→돼지고기가쓰레쓰→돈가쓰레쓰→돈가쓰(돈가스)’로 변한 듯하다. --- p.202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책이지만, 매우 실증적이고도 논리적이다. 돈가스에 관한 많은 자료를 근거로 하여 세부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돈가스가 탄생한 배경과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객관적이며 치밀한 논증방법으로 학문적인 체계를 갖춘 일본 근대문명 또는 일본 음식문화의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작고 사소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점점 깊고 넓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일본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서술법으로 일본 근대문명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가장 친밀한 소재인 음식으로 풀어간 것이다. (중략) ‘돈가스의 탄생’이라는 제목에서 혹여 시시한 내용일지 모른다는 인상을 갖는다면, 그것은 큰 오산일 수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고 유익하며 지적 호기심이 한껏 채워져 뿌듯해지는 책이다. 이 책이 2000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래 2006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로 계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별 뜻 없이 가볍게 먹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돈가스가 일본 근대문명사를 상징?함축하고 있는 ‘비범한’ 음식임을 알게 될 것이다. --- p. 279,‘옮기고 나서’ 중에서


* 정치유신인 동시에 ‘요리유신’이기도 했던 메이지 시대에 대한 실증적인 이론서

1868년의 메이지明治 유신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을 근대화시켜가는 정치적인 혁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1,200년의 금기를 깨뜨리는 ‘요리유신(음식혁명)’이기도 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일본의 개국을 강요하던 막부 말기, 그 무렵 일본인의 식탁은 그야말로 보잘것없었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을 맞이해 빠르게 근대국가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서구를 따라잡아 서구를 뛰어넘자’는 구호가 식사의 내용을 변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서양 여러 나라와 대등해지려면 무엇보다도 영양가가 풍부한 서양음식을 도입하는 일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1,200년간 유지되어온 육식금기 사상은 메이지 천황이 육식을 해금하면서 깨졌다. 정부와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육식을 장려하며 본격적인 서양요리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민들의 저항은 매우 강해서, 쇠고기를 받아들이기는 하되 일본음식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나온 음식이 쇠고기전골과 스키야키 같은 음식이다.
밥에 대단한 집착을 보이는 일본인은 빵을 주식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단팥빵’을 만들어 간식으로 먹었다. 이처럼 조금 우회해서 빵을 먹기 시작한 일본인이지만, 일본은 지금 세계 제일의 빵 왕국이 되어 있다. 한편 서민들은 고급스러운 서양요리와는 쉽게 친숙해지지 못했지만, 대신 밥에 잘 어울리는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 일본의 3대 양식으로 불리는 ‘카레라이스, 고로케, 돈가스’ 같은 음식 덕분에 일본인의 식탁은 더욱 풍부해졌다. 지금 일본은 밥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다채로운 요리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이렇듯 130년 전의 요리유신이야말로 오늘날의 일본 음식문화를 풍부하게 만든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음식혁명이 아래(서민들)로부터 일어났다는 점이며,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매우 실증적이고도 논리적으로, 또 세부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다룬 일본 근대문명 또는 일본 음식문화에 관한 독특한 이론서이다.


* 양식의 왕자王者 돈가스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음식

돈가스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서양의 커틀릿을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바꾼 절충식으로, 정식 ‘서양요리’와는 다른 ‘양식’에 해당한다.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그것을 일본에 맞게 바꾸는 것,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성격이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을 ‘모방의 귀재’라고 일컫는데, 그 저변에도 외래문화의 일본식 수용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돈가스는 그러한 일본의 문화적인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외국에서 서양음식에 물렸을 때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양식’은 그와 같은 일본문화의 정화였다. 그런데 일본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음식을 처음 접했을 한국과 중국에서는 왜 ‘양식’ 만들어지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의 저자 오카다 데쓰는 그 주된 이유로, 일본인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잡식성이 강한 민족이라서 동남아시아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처럼 고유의 에스닉(ethic, 민족) 요리가 형성될 여지가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음식에 대한 주체성이 없기 때문에, 전 세계의 음식을 흡수하고 동화해서 향유하는 기술이 생겼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같은 젓가락문화권인 한국이나 중국의 음식문화와 비교해볼 때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차이라는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 돈가스의 탄생, 60년의 드라마!

돈가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1872년(메이지 5년)경에 메이지 천황이 육식을 해금한 이후 돈가스가 출현한 것은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인 1929년(쇼와 4년)이었다. 쇠고기전골이 스키야키로 바뀌던 무렵부터 육식에 대해 서민들이 느끼던 저항감이 차차 옅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6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돈가스가 탄생한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드라마’가 있었다.
① 쇠고기에서 닭고기로, 그리고 돼지고기로
② 얇은 고기에서 두꺼운 고기로
③ 유럽식의 고운 빵가루에서 일본식의 알갱이가 큰 빵가루로
④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것에서 기름 속에 넣고 튀기는 딥프라이로
⑤ 접시에 돈가스만 담던 데서 돈가스에 서양채소인 양배추채를 곁들이는 형태로
⑥ 튀긴 고기를 미리 썰어서 접시에 담아 손님에게 내는 것으로
⑦ 일본식 우스터소스를 듬뿍 끼얹는 것으로
⑧ 나이프나 포크가 아니라 젓가락을 써서 먹는 것으로
⑨ 밥과 같이 먹을 수 있는 일식으로.

이렇게 바뀌는 데 60년이 흐른 것이다. 외국음식을 흡수하고 동화하기 위해 이런 집념을 보인 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일본의 음식문화는 대단히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