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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문학의 산맥을 반대 방향에서 오른 두 철학자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가?”
“과연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학과 인지 이론에서 시작하여 과학의 역사를 거쳐서 창조성, 자유,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뻗어나간다. 촘스키는 창조성의 씨앗과 정의를 추구하는 태도가 인간의 본성에 깔려 있다고 주장했고, 푸코는 인간 본성과 정의라는 관념 자체가 역사적 생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촘스키의 말대로 “저(촘스키)의 관심사는 (인간의) 정신에 내재하는 특성이고, 반면에 푸코 씨는 사회적, 경제적, 기타 조건들의 특정 배열에 더 관심을 둔”(56쪽) 것이다. 푸코는 두 사람의 접근 방법이 다른 까닭을 “과거의 언어학 분야에서는 ‘창조하는 주체’ 혹은 ‘창조적인, 말하는 주체’의 중요성을 배제했습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연구하기 시작한 과학의 역사는 개인의 창조성을 중시하면서 집단적 규칙들을 배제”(56~57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곧 촘스키는 언어학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주체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이고, 푸코는 역사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사회적 규칙과 제약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기존의 학문 체계를 혁신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긍정,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심. 이날의 토론에서 드러난 논지와 관점은 바로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 두 사람이 평생을 갈고 닦은 사상의 기본이자 정수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토론 후 1976년에 각자의 견해를 좀 더 자세하게 밝힌 자료(2~4장)가 실려 있다. 5장은 푸코가 1978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4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한 것이고, 6장은 푸코가 사망 직전(푸코는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게재한 성명서로 인간 사회에 대한 푸코의 진심을 전해준다.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가?”
“과연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학과 인지 이론에서 시작하여 과학의 역사를 거쳐서 창조성, 자유,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뻗어나간다. 촘스키는 창조성의 씨앗과 정의를 추구하는 태도가 인간의 본성에 깔려 있다고 주장했고, 푸코는 인간 본성과 정의라는 관념 자체가 역사적 생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촘스키의 말대로 “저(촘스키)의 관심사는 (인간의) 정신에 내재하는 특성이고, 반면에 푸코 씨는 사회적, 경제적, 기타 조건들의 특정 배열에 더 관심을 둔”(56쪽) 것이다. 푸코는 두 사람의 접근 방법이 다른 까닭을 “과거의 언어학 분야에서는 ‘창조하는 주체’ 혹은 ‘창조적인, 말하는 주체’의 중요성을 배제했습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연구하기 시작한 과학의 역사는 개인의 창조성을 중시하면서 집단적 규칙들을 배제”(56~57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곧 촘스키는 언어학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주체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이고, 푸코는 역사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사회적 규칙과 제약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기존의 학문 체계를 혁신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긍정,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심. 이날의 토론에서 드러난 논지와 관점은 바로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 두 사람이 평생을 갈고 닦은 사상의 기본이자 정수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토론 후 1976년에 각자의 견해를 좀 더 자세하게 밝힌 자료(2~4장)가 실려 있다. 5장은 푸코가 1978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4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한 것이고, 6장은 푸코가 사망 직전(푸코는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게재한 성명서로 인간 사회에 대한 푸코의 진심을 전해준다.
목차
서문_존 라이츠먼
1장 인간의 본성―정의와 권력......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2장 정치......노엄 촘스키
3장 언어철학......노엄 촘스키
4장 진리와 권력......미셸 푸코
5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미셸 푸코
첫 번째 강연
두 번째 강연
6장 정부에 맞서―인권......미셸 푸코
1장 인간의 본성―정의와 권력......노엄 촘스키?미셸 푸코
2장 정치......노엄 촘스키
3장 언어철학......노엄 촘스키
4장 진리와 권력......미셸 푸코
5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미셸 푸코
첫 번째 강연
두 번째 강연
6장 정부에 맞서―인권......미셸 푸코
출판사 리뷰
인문학의 산맥을 반대 방향에서 오른 두 철학자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정치?사회?지성의 격동이 세계를 휩쓸던 때, 서양의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던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는 네덜란드 TV 토론 프로그램의 초청을 받았다. 사회자인 네덜란드의 철학자 폰스 엘더르스는 두 사람을 이렇게 소개했다.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분을 산의 양쪽에서 터널을 뚫어 오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도구를 가지고 같은 산에서 터널 작업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반대쪽 방향에서 작업하고 있음을 모릅니다.”(본문 24쪽)
촘스키도 그의 비유에 동의했는지, 나중에 프랑스의 언어학자 미추 로나와 대담하면서 이날의 토론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방송 전에, 그리고 방송 중에 아주 멋진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에서 여러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프랑스어로 저는 영어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합의를 보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합의를 보지 못했어요. (중략) 엘더르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과, 그것과 과학적 진보의 관계라는 주제에 대해 우리는 ‘동일한 산을 정반대 방향에서 오르고 있었습니다.’”(170쪽)
토론의 주제는 인간의 본성. 두 사람은 이 오래된 화두를 놓고 철학과 정치,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가?”
“과연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학과 인지 이론에서 시작하여 과학의 역사를 거쳐서 창조성, 자유,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뻗어나간다. 촘스키는 창조성의 씨앗과 정의를 추구하는 태도가 인간의 본성에 깔려 있다고 주장했고, 푸코는 인간 본성과 정의라는 관념 자체가 역사적 생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촘스키의 말대로 “저(촘스키)의 관심사는 (인간의) 정신에 내재하는 특성이고, 반면에 푸코 씨는 사회적, 경제적, 기타 조건들의 특정 배열에 더 관심을 둔”(56쪽) 것이다. 푸코는 두 사람의 접근 방법이 다른 까닭을 “과거의 언어학 분야에서는 ‘창조하는 주체’ 혹은 ‘창조적인, 말하는 주체’의 중요성을 배제했습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연구하기 시작한 과학의 역사는 개인의 창조성을 중시하면서 집단적 규칙들을 배제”(56~57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곧 촘스키는 언어학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주체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이고, 푸코는 역사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사회적 규칙과 제약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기존의 학문 체계를 혁신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긍정,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심. 이날의 토론에서 드러난 논지와 관점은 바로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 두 사람이 평생을 갈고 닦은 사상의 기본이자 정수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토론 후 1976년에 각자의 견해를 좀 더 자세하게 밝힌 자료(2~4장)가 실려 있다. 5장은 푸코가 1978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4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한 것이고, 6장은 푸코가 사망 직전(푸코는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게재한 성명서로 인간 사회에 대한 푸코의 진심을 전해준다.
정치를 비판하는 데는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
촘스키의 정치관과 언어철학을 밝힌 2장(정치)과 3장(언어철학)은 1976년 프랑스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미추 로나가 인터뷰한 것이다. 로나는 프랑스어로 질문했고 촘스키는 영어로 답변했으며, 두 사람의 대담은 《미추 로나와 나눈 대화(Dialogues avec Mitsou Ronat)》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1979년 이 책의 영어판이 《언어와 책임(Language and Responsibility)》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1998년에 다시 촘스키의 예전 논문들과 함께 《언어에 관하여(On Languag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촘스키는 재출간한 책의 서문에서 “프랑스어 원본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내 말의 프랑스어 번역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어판을 거듭 가다듬었으며 때로는 수정했다”고 밝혔다. 영어판 번역자는 이 책에서 “언어학과 관련 문제에 관한 촘스키의 기본 개념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촘스키가 일관되게 비판해온 정치 문제는 자본의 언론 장악, 다국적 기업의 세계 지배를 위해 봉사하는 미국정부의 불법 행위, 지식인의 여론 왜곡이다. 그는 닉슨 대통령을 침몰케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민주주의의 승리라 주장하면서 당시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걸쳐 자행되던 정부의 불법 행위에는 침묵했던 미국언론의 위선을 파헤쳤고(120~129쪽), 미국의 자유주의 세력조차 세계의 다른 국가,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미국정부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140~149쪽). 그리하여 자본과 권력과 지식인들이 합작해낸 이데올로기의 틀은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장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전 체계는 그 이념을 강요하기보다 암시할 때 더 효과적입니다. 사람들에게 앵무새처럼 뻔한 얘기를 달달 주입하는 것보다 허용되는 생각의 한계를 미리 설정했을 때 선전의 힘이 더 커집니다.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수록, 도처에서 암묵적으로 수용된 선전 체계의 기본 이념이 더 효과적으로 스며듭니다.”(145~146쪽)
촘스키는 언어 연구와 정치 활동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언어에 관한 저의 특정 지식은 사회·정치적 문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그저 조금 열린 마음과 평범한 지성, 건전한 의구심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96~97쪽).
“(지식인들은) 보통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활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허세를 부립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사회과학도 그렇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건에 대한 분석에, 이런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이 복잡하고, 심오하고, 모호하다는 얘기는 이데올로기적 통제 체제가 선전하는 환상일 뿐입니다.”(98쪽)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데카르트적 이성과 보편적인 언어 능력은 우리에게 ‘평범한 창조성’을 주었고, 우리는 그 창조성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의 정치학
4장(진리와 권력)은 1976년 이탈리아에서 알레산드로 폰타나(유럽의회 부의장을 맡은 바 있는 이탈리아의 정치가)와 파스콸레 파스퀴노(이탈리아인 정치학자로 뉴욕대학교 국제공훈교수Global Distinguished Professor이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권리이론센터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Centre de Theorie du Droit, CNRS의 수석연구위원Senior Research Fellow)가 푸코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푸코는 인간 사회가 구성해온 권력의 정체를 드러내고, 권력이 인간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장악하는 방법과 양상을 밝히는 데 주력해왔다.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명제가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서, 그는 ‘진리의 정치’를 감지해낸다. 정의도, 진리도 정치적으로 규정된다는 말은 단순히 외부의 권력이 진리를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이 진리를 좌지우지하고, 따라서 권력으로부터 진리를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왜 ‘특정한’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며, 왜, 어떻게 권력에 순종하는가 하는 문제를 도외시하는 태도다.
“만약 권력이 순전히 억압적인 것, ‘안 돼’라고 말하는 것뿐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에 순순히 복종하리라고 보십니까? 권력이 효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안 돼’라고 말하는 힘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생산적인 네트워크 또한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196쪽)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식―혹은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생산하는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체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체계로부터 진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진리가 이미 권력이므로 해방 운운은 환상입니다), 진리의 권력을 각종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 형태―현재 이 안에서 진리가 작동합니다―로부터 떼어내는 것입니다.”(216쪽)
4장에서 푸코는 지식인의 위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볼테르, 에밀 졸라, 사르트르 같은 전통적 지식인은 “보편적 의식意識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국가나 자본에 복무하는 유능한 인재, 곧 기술자?행정가?교사 등과는 대비되는 개념”이었다(207쪽).
“(과거에)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양심이 되는 일 같은 것이었습니다.”(206쪽)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인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 개발을 지도했으나, 전후에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 뒤 반역 혐의로 기소당하고 군 기밀에 대한 접근을 금지당했다)처럼 사회의 양심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전문 분야에 골몰하게 되었다. 푸코는 이들을 가리켜 전통적인 ‘보편적 지식인’과 대비해 ‘국지적 지식인’이라 불렀고, 이들 국지적 지식인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일에만 몰두하여 그 투쟁을 아주 사소한 수준에 머무르도록 하는 위험, 그런 국지적 투쟁을 통제하는 정당이나 조합기구로부터 조종을 받을 위험”과 “무엇보다도 국제적 전략이나 외부 지원을 갖추지 못해 이런 국지적 투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211쪽).
사회 전체, 그리고 개인의 일상으로 내려온 권력의 눈
5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전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는 1976년 푸코가 스탠퍼드대학에서 두 차례 강연한 내용이다. 앞서 4장에서 푸코는, 권력은 단순한 억압 기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네트워크라고 규정하고, 유럽에서 국가권력이 작동되는 방식이 17~18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실을 지적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사회적 생산과 사회적 서비스를 통해 힘을 행사하는 권력 형태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들의 구체적 생활 속에서 생산적 서비스를 얻어내는 것이 곧 권력이었습니다. 따라서 권력의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구체화’가 절실히 필요해졌습니다. 권력은 개인들의 신체, 행위, 태도, 일상적인 행동 방식 등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학교 훈육(discipline)이라는 방법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린아이의 신체를 고도로 복잡한 조종과 조건 형성 제도 속으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시에 권력의 이 새로운 기술은 인구라는 현상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모여든 사람들의 덩어리에 대한 단속, 통제, 지도 등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구 이동, 공중 보건, 위생, 주거 조건, 기대수명, 출생률 같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섹스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섹스가 신체에 대한 감시와 인구 통제, 이 두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4장, 205쪽)
5장에서는 바로 17~18세기에 국가가 발전시켜온 ‘권력의 구체화’를 ‘정치적 합리성’이 정립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분석했다. 첫 번째 강연에서는 고대 히브리에서 신과 왕을 ‘양떼를 이끄는 목자’에 비유했던 점에서 출발해,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돌보고 보살핀다는 ‘목자권력’의 성격을 규정하고,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목자권력이 개인의 삶과 심지어 양심까지 장악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17~18세기에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국가의 합리적인 통치술로 등장한 ‘경찰’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당대 저술가들의 문헌을 통해 밝혔다.
국제 시민의 신성한 분노
6장 ‘정부에 맞서―인권’은 푸코가 《리베라시옹(Liberation)》 1984년 6월호에 발표한 성명서다. 그는 제네바에서 해적 행위에 반대하는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against Piracy)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쓴 이 성명서에서, 인간은 국제 시민(international citizen)으로서 어떤 국가의 피통치민이든 상관없이 상호 연대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권력의 남용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정치?사회?지성의 격동이 세계를 휩쓸던 때, 서양의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양심을 대표하던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는 네덜란드 TV 토론 프로그램의 초청을 받았다. 사회자인 네덜란드의 철학자 폰스 엘더르스는 두 사람을 이렇게 소개했다.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분을 산의 양쪽에서 터널을 뚫어 오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도구를 가지고 같은 산에서 터널 작업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반대쪽 방향에서 작업하고 있음을 모릅니다.”(본문 24쪽)
촘스키도 그의 비유에 동의했는지, 나중에 프랑스의 언어학자 미추 로나와 대담하면서 이날의 토론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방송 전에, 그리고 방송 중에 아주 멋진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프로그램에서 여러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프랑스어로 저는 영어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합의를 보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합의를 보지 못했어요. (중략) 엘더르스의 비유를 빌리자면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과, 그것과 과학적 진보의 관계라는 주제에 대해 우리는 ‘동일한 산을 정반대 방향에서 오르고 있었습니다.’”(170쪽)
토론의 주제는 인간의 본성. 두 사람은 이 오래된 화두를 놓고 철학과 정치,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는가?”
“과연 ‘정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정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학과 인지 이론에서 시작하여 과학의 역사를 거쳐서 창조성, 자유,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뻗어나간다. 촘스키는 창조성의 씨앗과 정의를 추구하는 태도가 인간의 본성에 깔려 있다고 주장했고, 푸코는 인간 본성과 정의라는 관념 자체가 역사적 생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촘스키의 말대로 “저(촘스키)의 관심사는 (인간의) 정신에 내재하는 특성이고, 반면에 푸코 씨는 사회적, 경제적, 기타 조건들의 특정 배열에 더 관심을 둔”(56쪽) 것이다. 푸코는 두 사람의 접근 방법이 다른 까닭을 “과거의 언어학 분야에서는 ‘창조하는 주체’ 혹은 ‘창조적인, 말하는 주체’의 중요성을 배제했습니다. 반면에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연구하기 시작한 과학의 역사는 개인의 창조성을 중시하면서 집단적 규칙들을 배제”(56~57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곧 촘스키는 언어학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주체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이고, 푸코는 역사 분야에서 홀대해왔던 사회적 규칙과 제약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기존의 학문 체계를 혁신한 것이다.
인간에 대한 긍정,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의심. 이날의 토론에서 드러난 논지와 관점은 바로 노엄 촘스키와 미셸 푸코, 두 사람이 평생을 갈고 닦은 사상의 기본이자 정수다. 이 책에는 두 사람이 토론 후 1976년에 각자의 견해를 좀 더 자세하게 밝힌 자료(2~4장)가 실려 있다. 5장은 푸코가 1978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으로 4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한 것이고, 6장은 푸코가 사망 직전(푸코는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게재한 성명서로 인간 사회에 대한 푸코의 진심을 전해준다.
정치를 비판하는 데는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다
촘스키의 정치관과 언어철학을 밝힌 2장(정치)과 3장(언어철학)은 1976년 프랑스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미추 로나가 인터뷰한 것이다. 로나는 프랑스어로 질문했고 촘스키는 영어로 답변했으며, 두 사람의 대담은 《미추 로나와 나눈 대화(Dialogues avec Mitsou Ronat)》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1979년 이 책의 영어판이 《언어와 책임(Language and Responsibility)》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1998년에 다시 촘스키의 예전 논문들과 함께 《언어에 관하여(On Language)》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촘스키는 재출간한 책의 서문에서 “프랑스어 원본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내 말의 프랑스어 번역을 다시 영어로 번역한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어판을 거듭 가다듬었으며 때로는 수정했다”고 밝혔다. 영어판 번역자는 이 책에서 “언어학과 관련 문제에 관한 촘스키의 기본 개념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촘스키가 일관되게 비판해온 정치 문제는 자본의 언론 장악, 다국적 기업의 세계 지배를 위해 봉사하는 미국정부의 불법 행위, 지식인의 여론 왜곡이다. 그는 닉슨 대통령을 침몰케 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민주주의의 승리라 주장하면서 당시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 걸쳐 자행되던 정부의 불법 행위에는 침묵했던 미국언론의 위선을 파헤쳤고(120~129쪽), 미국의 자유주의 세력조차 세계의 다른 국가,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미국정부가 무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140~149쪽). 그리하여 자본과 권력과 지식인들이 합작해낸 이데올로기의 틀은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장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전 체계는 그 이념을 강요하기보다 암시할 때 더 효과적입니다. 사람들에게 앵무새처럼 뻔한 얘기를 달달 주입하는 것보다 허용되는 생각의 한계를 미리 설정했을 때 선전의 힘이 더 커집니다.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질수록, 도처에서 암묵적으로 수용된 선전 체계의 기본 이념이 더 효과적으로 스며듭니다.”(145~146쪽)
촘스키는 언어 연구와 정치 활동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에 “언어에 관한 저의 특정 지식은 사회·정치적 문제와는 직접 관련이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그저 조금 열린 마음과 평범한 지성, 건전한 의구심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96~97쪽).
“(지식인들은) 보통 사람이 다가갈 수 없는 난해한 활동에 종사하는 것처럼 허세를 부립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사회과학도 그렇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건에 대한 분석에, 이런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문제들이 복잡하고, 심오하고, 모호하다는 얘기는 이데올로기적 통제 체제가 선전하는 환상일 뿐입니다.”(98쪽)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닌 데카르트적 이성과 보편적인 언어 능력은 우리에게 ‘평범한 창조성’을 주었고, 우리는 그 창조성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의 정치학
4장(진리와 권력)은 1976년 이탈리아에서 알레산드로 폰타나(유럽의회 부의장을 맡은 바 있는 이탈리아의 정치가)와 파스콸레 파스퀴노(이탈리아인 정치학자로 뉴욕대학교 국제공훈교수Global Distinguished Professor이자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권리이론센터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Centre de Theorie du Droit, CNRS의 수석연구위원Senior Research Fellow)가 푸코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푸코는 인간 사회가 구성해온 권력의 정체를 드러내고, 권력이 인간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장악하는 방법과 양상을 밝히는 데 주력해왔다.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명제가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서, 그는 ‘진리의 정치’를 감지해낸다. 정의도, 진리도 정치적으로 규정된다는 말은 단순히 외부의 권력이 진리를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이 진리를 좌지우지하고, 따라서 권력으로부터 진리를 해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왜 ‘특정한’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며, 왜, 어떻게 권력에 순종하는가 하는 문제를 도외시하는 태도다.
“만약 권력이 순전히 억압적인 것, ‘안 돼’라고 말하는 것뿐이라면 사람들이 그것에 순순히 복종하리라고 보십니까? 권력이 효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안 돼’라고 말하는 힘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생산적인 네트워크 또한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196쪽)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식―혹은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생산하는 정치적, 경제적, 제도적 체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체계로부터 진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진리가 이미 권력이므로 해방 운운은 환상입니다), 진리의 권력을 각종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헤게모니 형태―현재 이 안에서 진리가 작동합니다―로부터 떼어내는 것입니다.”(216쪽)
4장에서 푸코는 지식인의 위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볼테르, 에밀 졸라, 사르트르 같은 전통적 지식인은 “보편적 의식意識이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국가나 자본에 복무하는 유능한 인재, 곧 기술자?행정가?교사 등과는 대비되는 개념”이었다(207쪽).
“(과거에)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양심이 되는 일 같은 것이었습니다.”(206쪽)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인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 개발을 지도했으나, 전후에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 뒤 반역 혐의로 기소당하고 군 기밀에 대한 접근을 금지당했다)처럼 사회의 양심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전문 분야에 골몰하게 되었다. 푸코는 이들을 가리켜 전통적인 ‘보편적 지식인’과 대비해 ‘국지적 지식인’이라 불렀고, 이들 국지적 지식인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일에만 몰두하여 그 투쟁을 아주 사소한 수준에 머무르도록 하는 위험, 그런 국지적 투쟁을 통제하는 정당이나 조합기구로부터 조종을 받을 위험”과 “무엇보다도 국제적 전략이나 외부 지원을 갖추지 못해 이런 국지적 투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211쪽).
사회 전체, 그리고 개인의 일상으로 내려온 권력의 눈
5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전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는 1976년 푸코가 스탠퍼드대학에서 두 차례 강연한 내용이다. 앞서 4장에서 푸코는, 권력은 단순한 억압 기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네트워크라고 규정하고, 유럽에서 국가권력이 작동되는 방식이 17~18세기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실을 지적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사회적 생산과 사회적 서비스를 통해 힘을 행사하는 권력 형태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니까 개인들의 구체적 생활 속에서 생산적 서비스를 얻어내는 것이 곧 권력이었습니다. 따라서 권력의 실제적이고 효율적인 ‘구체화’가 절실히 필요해졌습니다. 권력은 개인들의 신체, 행위, 태도, 일상적인 행동 방식 등에 접근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학교 훈육(discipline)이라는 방법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어린아이의 신체를 고도로 복잡한 조종과 조건 형성 제도 속으로 편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시에 권력의 이 새로운 기술은 인구라는 현상과 씨름해야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모여든 사람들의 덩어리에 대한 단속, 통제, 지도 등을 관리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구 이동, 공중 보건, 위생, 주거 조건, 기대수명, 출생률 같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섹스 문제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섹스가 신체에 대한 감시와 인구 통제, 이 두 가지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4장, 205쪽)
5장에서는 바로 17~18세기에 국가가 발전시켜온 ‘권력의 구체화’를 ‘정치적 합리성’이 정립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분석했다. 첫 번째 강연에서는 고대 히브리에서 신과 왕을 ‘양떼를 이끄는 목자’에 비유했던 점에서 출발해,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돌보고 보살핀다는 ‘목자권력’의 성격을 규정하고,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목자권력이 개인의 삶과 심지어 양심까지 장악했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17~18세기에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국가의 합리적인 통치술로 등장한 ‘경찰’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었는지, 당대 저술가들의 문헌을 통해 밝혔다.
국제 시민의 신성한 분노
6장 ‘정부에 맞서―인권’은 푸코가 《리베라시옹(Liberation)》 1984년 6월호에 발표한 성명서다. 그는 제네바에서 해적 행위에 반대하는 국제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against Piracy)가 창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쓴 이 성명서에서, 인간은 국제 시민(international citizen)으로서 어떤 국가의 피통치민이든 상관없이 상호 연대할 의무가 있으며, 모든 권력의 남용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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