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심리학 연구 (독서)/8.정신분석학

정신분석의 새로운 길 (2022)

동방박사님 2023. 12. 22.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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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간관계와 문화 다양성에 근거한 정신분석의 새로운 길을 열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지평을 넓힌 새로운 정신분석 이론서!


신프로이트학파의 걸출한 이론가로 꼽히는 카렌 호나이는 프로이트의 음경 선망 개념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특정 문화에 근거한 특수한 편견이며 보편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프로이트의 본능 이론을 거부하고 인간관계와 문화 환경에 근거한 정신분석 이론을 정립했다. 카렌 호나이에 따르면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바탕에 놓인 본능적 충동과 초자아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신경증 경향이다. 신경증은 유년기의 불리한 환경과 인간관계의 장애에서 생긴 근본 불안 때문에 발병하고, 신경증 환자가 근본 불안에 대처하려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 전략과 수단이 필요의 허울을 쓰게 된다. 신경증 환자는 이런 가짜 필요에 내몰려서 더욱 불안해지고 심리 문제와 내면 갈등으로 괴로워한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신경증 환자의 불안을 덜어줌으로써 심리 문제와 내면 갈등을 스스로 해결할 힘을 주는 것이다. 환자가 자발성을 회복하고 가치의 척도를 스스로 찾게 돕는 것, 요컨대 스스로 살아갈 용기를 환자에게 주는 것이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다.

목차

옮긴이의 말
서론

1장 | 정신분석의 기본 원리
2장 | 프로이트 사고의 일반적 전제
3장 | 리비도 이론
4장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5장 | 자기도취 개념
6장 | 여성 심리학
7장 | 죽음 본능
8장 | 유년기의 강조
9장 | 전이 개념
10장 | 문화와 신경증
11장 | ‘자아’와 ‘이드’
12장 | 불안
13장 | ‘초자아’ 개념
14장 | 신경증 환자의 죄책감
15장 | 피학증 현상
16장 | 정신분석 치료

저자 소개 

저 : 카렌 호나이 (Karen Herney)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최초의 여성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1885~1952년)는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서 태어났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배척당하던 1906년, 프라이부르크대학교University of Freiburg 의과대학은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했던 몇 안 되는 학교 중 하나였고, 그는 이곳에 합격했다. 그 후 1909년 베를린대학교Humboldt University of Berlin로 편입하여 191...

역 : 서상복

 
서강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W. Sellars의 통관 철학: 과학 세계와 도덕 세계의 융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에서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분석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역서로 『예일대 지성사 강의』, 『합리주의, 경험주의, 실용주의』, 『내가 나를 치유한다』, 『서양 철학사』(공역)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전이(transference)가 본질적으로 유아기 태도의 반복이냐를 둘러싼 이론적 논쟁에서 벗어날 경우, 전이 개념은 정신분석 상황에서 보이는 환자의 정서 반응에 대한 관찰, 이해와 논의가 환자의 성격 구조와 그에 따른 어려움에 대해 이해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구성한다. 전이 개념은 정신분석 치료의 매우 강력하고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될 도구가 되었다. 치료에서 전이 개념의 가치와 별개로, 정신분석의 앞날은 대부분 환자의 반응을 더 정확하고 심층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달렸다. 이런 확신은 모든 인간 정신의 본질이 인간관계에서 밟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놓여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정신분석 관계는 인간관계의 한 형태로, 인간관계에서 밟는 과정을 이해할 때 전례 없는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따라서 이런 관계에 대한 더욱 정확하고 심층적인 이해는 정신분석이 최종적으로 제의할 심리학에 아주 크게 공헌할 것이다.
--- p.39

프로이트는 사고 측면에서 진화론적이지만 기계론적 방식으로 기운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프로이트의 가정은 다섯 살 이후 우리의 발달 과정에 그다지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고, 나중에 보이는 반응과 경험은 과거에 일어난 일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받아들인 전제는 여러 방식으로 정신분석 문헌에 등장한다. 예컨대 불안의 문제를 지각하면서, 프로이트는 불안의 앞선 발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탐구했다. 출생이 불안의 최초 발현 지점이고, 나중에 나타난 불안의 형태는 출생할 때 형성된 원형 불안의 반복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방식의 사고는 또한 발달의 단계를 계통 발생적 사건의 반복(repetitions of philogenetic happenings)으로 생각할 때, 예컨대 ‘잠복’기를 빙하기의 잔재로 여길 때 프로이트가 가졌던 큰 관심도 설명한다.
--- p.51

목표 억제 분투라는 개념은 리비도 충동의 승화 개념과 거의 같은 종류에 속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원래 ‘생식기 이전’ 충동에 있었던 리비도의 흥분과 만족이 유사한 성격을 띤 성과 무관한 분투로 넘어가서, 원형 리비도 기력(original libidinal energy)은 기술되지 않는 형태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사실상 승화와 목표 억제를 분명하게 구별할 기준은 없다. 두 개념의 공통분모는 리비도와 무관한 다양한 특징이 있는데도 성적 요소가 제거된 리비도의 표현으로 여기는 독단적 단언이다. 두 개념을 구별하는 기준이 분명치 않은 까닭은 승화라는 용어가 원래 본능의 충동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무언가로 변형한다는 생각(notion)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기 이상(self-ideals), 곧 이상적인 자기를 만들어내려고 자기도취의 자기애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런 변형이나 탈바꿈이 승화나 자기애의 목표 억제 형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 p.61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은 현대 교육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긍정적 측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은 부모가 자식을 성적으로(sexually) 흥분시키고, 또한 응석을 너무 받아주며 과보호하고, 성과 관련된 문제를 지나치게 금지함으로써 자식에게 입히는 지속적 피해를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부정적 측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은 자식을 성적으로 계몽하고, 수음 금지 행위와 매질을 삼가고, 부모의 성교 장면을 목격하게 두지 말고, 부모에게 너무 강한 애착이 형성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착각을 조장했다. 위험은 이런 제언의 일면성에 있다. 비록 방금 말한 것이 모두 종교적으로 충실히 지켜지더라도, 생애 후기에 발병할 신경증의 싹이 움틀 수도 있다. 왜 그런가? 답은 원리상 정신분석 치료가 충분히 성공적이지 않다는 비난에 따른 대답과 같다. 아이의 성장과 깊이 관련된 너무 많은 요인이 비교적 피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따라서 마땅한 가중치를 얻지 못한다. 나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아이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아이에게 참된 온정을 주는 것 같은 부모의 태도와 신뢰감, 성실성 같은 자질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 p.96

자기도취(narcissism)는 자기애(self-love)가 아니라 자기소외(alienation from the self)의 표현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사람이 자기를 상실했기 때문에, 자신에 관한 환상에 집착하는 경향이다. 결론적으로 자기에 대한 사랑과 타자에 대한 사랑 사이에 성립하는 상호관계는 프로이트가 의도한 뜻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프로이트가 둘째 본능 이론에서 가정한 이원성, 곧 자기도취와 사랑의 이원성은 이론적 함축을 벗겨내면 오래된 중요한 진리를 포함한다. 간략히 말해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자아 본위나 자기중심성은 어떤 종류든 타인에 대한 진실한 흥미를 떨어뜨리며, 타인을 사랑할 능력에 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이론적 주장으로 다른 것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자기 팽창 성향의 기원이 자기애라고 해석하고,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너무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자기도취는 개인이 타인을 사랑하는 (다시 말해 리비도를 타인에게 주는) 정도만큼 고갈되는 저수지라고 프로이트는 생각한다. 내 생각에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를 소외시키고, 따라서 자기도취에 빠지는 정도만큼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사랑할 힘이 없다.
--- p.113

사실상 여성의 성격 특징 가운데 음경 선망에 본질적으로 뿌리가 있다고 가정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여성의 열등감은 음경이 없어서 여자 자신의 성에 대해 경멸감을 표현한 것으로 여긴다. 프로이트는 여자가 남자보다 허영심이 더 강하다고 믿고, 이를 음경이 없다는 것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 탓으로 돌린다. 여자가 신체에 보이는 조심성은 최종적으로 성기의 ‘결핍’을 숨기려는 소망에서 나온다. 여성의 성격에서 시샘과 질투의 역할이 더 큰 것은 음경 선망의 직접적 결과다. 여자의 시샘하거나 부러워하는 성향은 ‘남자의 영역에 속한 정신적이고 직업적인 이익에 대한 여자의 선호뿐 아니라 여자가 ‘정의감을 너무 적게’ 가진 점도 설명한다. 관행적으로 여자의 모든 야망 분투는 프로이트에게 최종 충동하는 힘(the ultimate driving force)으로서 음경을 갖고 싶어 하는 여자의 소망을 암시한다. 또한 평소에 여성에게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는 야망, 예를 들어 제일 아름다운 여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나 가장 유명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망은 카를 아브라함에 따르면 음경 선망의 표현이다.
--- p.118

여자가 사랑을 인생에서 중요하고 유일한 가치라고 여기게 된 문화적 상황은 현대 여성의 일정한 특징을 드러내는 함축이 있다. 하나는 늙음에 대한 태도, 바로 여자의 나이 공포증과 그 함축이다. 오랫동안 여자의 성취는 사랑이나 성과 관련이 있든 가정이나 자식과 관련이 있든 남자를 통해서만 가능했으므로, 남자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필연적으로 가장 중요했다. 이런 필요의 결과로 생겨난 아름다움과 매력 숭배는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대단히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듯 성애적 매력(erotic attractiveness)의 중요성에 집중하는 태도는 그 매력이 줄어들 때 불안을 암시한다. 남자들이 50대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두려움을 느끼거나 우울해지면 신경증의 징후로 여겨야 한다. 여자의 경우에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어떤 면에서 매력이 유일한 가치를 대표하는 만큼 자연스럽다. 나이는 모든 사람에게 문제라지만, 젊음이 주목받는 초점이라면 나이는 절망적인 문제가 된다.
--- p.130

분석 상황에서 환자가 자신의 현재와 과거의 고생(troubles)에 관해 말할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가에게 정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프로이트는 관찰했다. 이런 반응들은 특성이 비합리적인 경우가 자주 있다. 어떤 환자는 분석하러 올 때 목적을 까맣게 잊을 수도 있고, 정신분석가의 총애와 감사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환자는 정신분석가와 자신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릴까 봐 비례가 전혀 맞지 않는 두려움을 계발하기도 한다. 환자는 분석 상황을 바꾸어 놓기도 하는데, 실제로 정신분석가가 환자의 문제를 바로잡아 주려고 돕는 상황이 우위를 다투는 격정적 상황으로 바뀐다. 예컨대 환자는 자신의 문제를 명료하게 드러냄으로써 안도감을 느끼지 않고, 도리어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무언가를 정신분석가가 알아냈다는 한 가지 사실에만 주목해 난폭한 분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환자는 자신의 이익과 반대로 정신분석가의 노력을 무효로 만들려는 목적을 비밀스럽게 추구하기도 한다.
--- p.173

프로이트는 문화 요인이 신경증에 미치는 영향을 일면적으로 고려한다. 그의 관심은 문화 조건이 실존하는 ‘본능적’ 충동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문제로 제한된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을 촉발한 주요 외부 요인이 좌절감이나 욕구불만이라고 믿음에 따라, 문화 조건이 개인에게 좌절감이나 욕구불만을 강요함으로써 신경증이 발병한다고 가정한다. 문화는 리비도 충동과 특히 파괴 충동의 제한을 강요함으로써 퇴행과 죄책감, 자기를 처벌할 필요를 발생시키는 도구 역할을 한다고 프로이트는 믿는다. 따라서 프로이트의 다소 편향된 일반적 견해는 우리가 문화의 혜택을 위해 불만과 불행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출구는 승화에서 찾는다. 그러나 승화할 역량에는 한계가 있고, ‘본능적’ 충동의 억압이 신경증을 일으키는 본질적 요인 가운데 하나여서, 프로이트는 문화가 강요한 억압의 정도와 잇따라 일어나는 신경증의 빈도 및 심각성 사이에 양적 관계가 있다고 가정한다.
--- p.190

왜 어떤 사람은 신경증 환자가 되지만, 유사한 조건의 다른 사람은 기존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남는다. 이 문제는 같은 가족의 형제자매에 관해 자주 제기되는 것과 닮은 점이 있다. 왜 형제자매 가운데 한 사람은 신경증을 심하게 앓는데, 다른 사람은 가볍게 앓는가? 이 질문은 개인에 따라 다른 심리 조건이 본질적으로 비슷하다는 암묵적 전제를 포함하고, 이 전제는 형제자매의 다양한 체질적 차이를 설명하도록 이끈다. 체질적 차이는 확실히 일반적인 발달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을 끌어낸 추리 유형은 오류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결론을 지지하는 전제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단지 일반적인 심리 분위기가 모든 형제자매에게 같고, 형제자매는 저마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일반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가족 안에서도 한 아이의 경험은 다른 아이의 경험과 전혀 다르다. 사실상 중요한 차이는 끝없이 다양할 수도 있고, 차이의 본성과 영향은 주의 깊은 정신분석으로만 이따금 드러난다. 부모와 맺는 관계, 부모가 아이를 원하는 정도, 한 아이나 다른 아이에 대한 부모의 편애, 형제자매의 서로에 대한 행동을 비롯해 다른 많은 점에서 차이가 생길 수도 있다. 상처를 덜 받은 아이는 기존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지만, 상처를 더 많이 받은 아이는 무력하게 휘말린 갈등으로 신경증 환자가 되기도 한다.
--- p.197

사실 불안은 흔히 가슴 두근거림, 땀 흘림, 설사, 빠른 호흡 같은 생리 증상과 동시에 나타난다. 이런 신체적 부수 현상은 불안을 알아채든 못하든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시험을 치르기 전에, 환자는 설사가 나고 불안을 충분히 알아챌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소변을 자주 보고 싶은 충동이 있어도 불안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중에 비로소 불안이 분명히 있었다고 인정할지도 모른다. 정서나 감정의 신체 표현은 특히 불안에 뚜렷하더라도, 불안의 특징만은 아니다. 우울증에는 신체와 정신의 과정이 느려지는 증상이 있다. 짜릿한 기쁨은 세포 조직의 긴장도를 바꾸는 효과를 내거나 걸음걸이를 더 가볍게 만든다. 격렬한 분노는 우리를 전율하게 만들고 피가 머리로 솟구치게 하기도 한다. 불안과 생리적 요인의 관계를 보여주려 자주 지적되는 다른 사실은 불안이 화학 물질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역시 불안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화학 물질은 의기양양의 상태나 잠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화학 물질의 효과는 심리학과 관련된 어떤 문제도 구성하지 않는다. 심리학의 문제는 이렇게 물을 뿐이다. 불안, 잠, 의기양양 같은 상태들의 심리 조건은 무엇인가?
--- p.214

완벽해 보여야 할 필요의 발생에 관해, 프로이트는 그런 성향이 유년기에 시작되며 부모의 금지와 부모에 대해 억압한 원망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일반적 실마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초자아’의 금지를 부모가 강요한 금기(tabus)의 거의 직접적 잔여물로 여기는 것은 단순화로 보인다. 다른 모든 신경증 성향에서 그렇듯, 신경증 경향의 계발은 유년기의 이런저런 개별 특징이 아니라 전체 상황의 총체로 설명한다. 완벽주의 경향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자기도취 경향과 같은 바탕에서 자라난다. 그런 바탕에 대해서는 자기도취와 관련해 논의했으므로, 여기서는 요약만 해도 충분하다. 여러 불리한 영향의 결과로 아이는 괴로운 상황에 놓인다. 아이의 개별적 자기는 부모의 기대에 강제로 부응해야 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이로써 아이는 자기 삶의 주도권, 자신의 소망과 목표, 판단력을 잃는다. 다른 한편 아이는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런 근본 재앙(fundamental calamity)에서 벗어날 몇 가지 탈출구로 자기도취, 피학증, 완벽주의 경향이 발달한다.
--- p.239

프로이트는 본능적 충동이 반사회적 특성 때문에 ‘초자아’의 억압에 굴복한다고 믿는다. 명료화를 위해 이를 소박한 도덕 용어로 표현해보자. 프로이트의 의견에 따라 억압되는 것은 인간의 나쁜 면, 바로 인간에게 내재하는 악이다. 이 학설이 프로이트의 놀라운 발견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더 유연한 공식을 제언해야 하겠다. 억압되는 것은 개인이 나타내도록 강요받는다고 느낀 겉모습의 종류에 의존한다. 그런 겉모습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모든 것이 억압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음탕한 생각과 음란 행위에 탐닉하거나 많은 사람이 죽기를 소망할 때 자유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개인적 이득을 위한 어떤 소망이든 억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공식으로 제언한 차이는 실천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겉모습은 대략 ‘좋다’고 여긴 것과 일치할 테고, 따라서 좋다고 여긴 무엇을 위해 억압되는 것은 대체로 ‘나쁜’ 또는 ‘열등한’ 것과 일치할 터다.
--- p.252

비난의 대상을 타인에서 자신으로 바꾸는 실천은 해로운 일이 벌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비난받아야 한다는 지침에 자주 근거한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흔히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려고 거대한 장치를 마련한 사람들은 곧 닥칠 재앙을 대단히 염려한다. 그들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마치 언제 떨어질지 모를 매달린 칼 아래서 사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은 인생의 기복을 사실 그대로 겪어낼 기본 능력이 없다. 인생이 수학 과제처럼 계산할 수 없고, 어느 정도 모험이나 도박과 비슷하며, 행운과 불운에 좌우되고, 예측할 수 없는 어려운 일과 위험, 미리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는 당혹스러운 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은 안심시키는 수단으로서 인생이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집착한다. 따라서 그들은 뭔가 잘못 돌아간다면 누군가의 탓이라고 믿는다. 인생이 계산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불쾌하고 무서운 현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타인을 비난하기를 멈출 때, 불운한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고 할 것이다.
--- p.269

피학증 유형의 다른 주요 성향은 인격적 의존성이다. 타인에 대한 피학증 유형의 의존성은 자기도취 유형이나 완벽주의 유형이 보이는 의존성과는 다르다. 자기도취 유형의 사람은 주목과 찬미가 필요해서 타인에게 의존한다. 완벽주의 유형의 사람은 독립성 유지를 지나치게 염려하지만, 실제로 안전은 타인이 자신에게 기대한다고 믿는 바와 자동으로 일치함에 달려 있어서 역시 타인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완벽주의 유형의 사람은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사실과 의존의 정도를 숨기려고 염려하고, 정신분석에서 그렇듯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든 자부심과 안전에 타격을 입는다고 느낀다. 두 유형에서 의존성은 특정 성격 구조의 원치 않는 결과다. 다른 한편 피학증 유형의 사람에게 의존성은 실제로 삶의 조건이다. 이런 사람은 산소 없이 살 수 없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현존, 자선, 사랑, 우정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낀다.
--- p.277

삶에 대해 취약하고 무력한 태도가 실제로 있음을 함축하는 이런 모든 경향은 낯익은 현상이지만, 으레 다른 원천에서 생겨난 결과로 여겨진다. 이 경향들은 정신분석 관련 문헌에서 수동 동성애 경향, 죄책감이나 아이가 되고 싶은 소망의 결과로 기술한다. 내 의견을 말하자면 이런 해석은 모두 쟁점을 흐린다. 아이가 되고 싶은 소망에 대해, 피학증 경향은 정말 다음과 같이 표현되기도 한다.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거나 어머니의 팔에 안기는 꿈이나 환상 속에 그런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발현을 아이가 되고 싶은 소망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 신경증 환자는 무력해지기를 ‘소망하는’ 것만큼 아이가 되기를 거의 ‘소망하지 않는’ 까닭이다. 신경증 환자에게 현재 전략을 택하도록 강요한 것은 불안의 압박감(the stress of anxiety)이다. 유아로 돌아간 꿈은 유아가 되려는 소망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보호받고 싶고 스스로 서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소망, 다시 말해 무력감이 생겨났기 때문에 호소력을 갖는 소망의 표현이다.
--- p.283

내가 실제 성격 구조의 분석을 강조한다고 해서 유년기에 관한 자료를 소홀히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내가 기술했던 절차, 다시 말해 인위적 재구성을 그만둔 절차는 심지어 유년기의 어려움에 대해 더 명료한 이해로 이어진다. 나의 경험상 오래된 기법으로 작업하든 수정된 기법으로 작업하든 완전히 잊힌 기억이 슬며시 떠오르는 일은 비교적 드물다. 위조된 가짜 기억을 고치는 일이 더 잦고, 무관하다고 여기던 작은 사건이 의의를 부여받는다. 환자는 자신의 특정 발달 과정을 서서히 이해한 결과로 자신을 회복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부모님이나 부모님에 대한 기억과 화해하게 된다. 환자는 부모님도 갈등에 휘말려 자신을 해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한다. 환자가 자신이 입은 피해로 더는 괴로워하지 않을 때나 적어도 상처를 극복할 방법을 알아보게 될 때, 오래된 원망이 줄어들고 가벼워진다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 p.313

정신분석가는 환자의 자유 연상 방향뿐만 아니라 환자가 마침내 자신의 신경증을 극복하도록 도울 마음의 힘에도 더욱 신중하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환자가 달성해야 할 과제는 힘이 많이 들고 아주 고통스럽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세했던 안전과 만족에 대한 분투를 모두 그만두거나 크게 수정함을 의미한다. 환자의 눈에 자신을 중요한 뭔가로 만들었던 환상을 버린다는 뜻이다. 타자 및 자신과 맺는 전반적 관계를 다른 바탕에 놓는다는 의미기도 한다. 무엇이 환자가 이 힘든 일을 하도록 충동하는가? 환자는 저마다 다른 동기로 다른 기대를 걸고 정신분석을 받으러 온다. 가장 빈번한 경우로 환자들은 발현한 신경증 장애(manifest neurotic disturbances)가 제거되기를 원한다. 때때로 환자들은 상황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따금 환자들은 발달이 정지되었다고 느끼고 막다른 지점을 넘어서고 싶어 한다. 아주 드물게 환자들은 더 큰 행복에 대한 솔직한 희망을 품고 정신분석을 받으러 온다. 이런 동기가 갖는 힘의 크기와 건설적 가치는 환자에 따라 다양하지만, 모든 동기는 치료할 때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 p.317
 

출판사 리뷰

카렌 호나이의 『정신분석의 새로운 길』은 신경증을 비롯한 심리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신경증은 개인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특이한 종류의 분투고, 신경증의 핵심은 자기와 타자의 관계에서 생기는 장애와 거기서 비롯한 갈등이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신경증 경향’을 없애도록 환자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환자가 자발성을 회복하고 가치의 척도를 스스로 찾아서 살아갈 용기를 얻도록 돕는 것이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신경증 발병의 결정적 원인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장애다. 그러면 사회학이 해부 생리학을 대신한다. 성욕 이론에 암시된 쾌락 원리에 대한 일면적 고찰이 철회될 때, 안전을 위한 분투가 더 중요해지고 안전한 삶을 위해 분투하며 발생하는 불안의 역할이 새롭게 드러난다. 여기서 신경증 발병과 관련된 요인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어떤 종류든 유아기의 쾌락 추구가 아니다. 아이가 무력하고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으며, 세상을 위협이 잠재하는 곳으로 여기게 되는 모든 불리한 영향이 신경증 발병의 요인이다. 아이는 잠재적 위험에 두려움을 느껴 세상에 어느 정도 안전하게 대처하도록 허용하는 몇 가지 ‘신경증 경향’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기도취, 피학증, 완벽주의 경향은 본능적 힘의 파생물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개인이 미지의 위험이 가득한 광야에서 길을 찾으려는 시도다. 신경증에 발현한 불안은 본능적 충동의 습격에 압도되는 것이나 가설로 세운 ‘초자아’의 처벌에 대해 ‘자아’가 느끼는 두려움의 표현이 아니라, 특수 안전장치의 작동 실패로 생긴 결과다. -「서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