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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타 로마나 (2024) - 천년 제국의 그늘에 가려진 13인의 공주들

동방박사님 2024. 5. 2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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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남자로 태어나야 했는데!”

전쟁과 정쟁, 희생과 헌신, 불륜과 독살, 권력욕과 지적 열정
강해야 살아남는 로마에서 남자들의 빈자리를 지킨 여자들
남성 지배의 역사에서 길어 올린 여자들의 숨겨진 진실
로마의 황금기를 이끌고 제국의 몰락을 함께한 공주들 이야기


여성의 눈으로 본 역사 ― 남성 중심 로마사의 공백을 메꾸는 여성들의 로마사. “로마 이전의 모든 역사는 로마로 흘러 들어갔고, 로마 이후의 역사는 로마에서 흘러나왔다.” 역사가 레오폴트 폰 랑케가 한 이 말처럼 로마사는 지금도 생생하게 우리 곁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2000여 년 지속된 만큼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때문이다. 이런 로마사의 매력에 깊이 탐닉해 로마에 관련한 책이란 책은 다 읽은 한 여성은 로마를 알면 알수록 답답해졌다. 전쟁과 정복, 정치와 모략, 권력과 음모로 점철된 로마사는 남성 인물이 주연 자리를 차지한 지배자들의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공백으로 남은 채 단역처럼 스쳐 지나가는 공주를 비롯한 여성들 이야기는 그저 현모양처나 악녀라는 딱지 붙이기의 대상이 되거나 남성의 어머니나 아내 자리에 머물 뿐이었다. 아무도 안 알려주니 직접 찾아 나섰다. 평범한 여성들 이야기도 담고 싶었지만, 귀족이 아닌 여성을 기록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사료가 남아 있고 활약이 뚜렷한 공주 13명을 주인공으로 삼아 남아 있는 기록을 한 땀 한 땀 엮어 한 명 한 명의 삶을 오롯이 복원했다. 그렇게 남성 주연들을 조연으로 밀어낸 여성들의 로마사가 나왔다. 바로 역사 스토리텔러 김연수가 쓴 로마 공주들 이야기, 《아우구스타 로마나》다.

목차

머리말 왜 로마인가, 왜 로마 공주인가

1부 아우구스투스의 손녀들과 피비린내 나는 집안싸움

1. 강해야 살아남는 로마
2. 불륜과 독살로 얼룩진 막장 드라마
3. 가족애를 삼킨 권력욕

2부 폭군 네로와 비운의 자매

4. 정절은 목숨보다 소중하다
5. 사랑 없는 결혼, 비극 부른 추앙

3부 서로마의 황혼에 물든 파란만장한 삶

6. 황제의 딸, 황제의 아내, 황제의 어머니
7. 로마 공주, 야만인의 첩이 되다

4부 동과 서로 나뉜 제국의 공주들

8. 40년간 동로마 제국을 지배한 성녀
9. 쉰 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한 여제
10. 마지막 여제의 초연한 삶

5부 동로마의 중흥과 몰락을 지키다

11. 첫 여성 사학자가 된 황녀
12. 반란과 독살, 제국의 명맥을 끊다
13. 망국의 공주에서 제3의 로마로
 

저자 소개

저 : 김연수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출판사에서 근무한 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번역강좌를 수료했다. 현재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원서를 발굴하며, 브런치(필명: Rina Ka)에서 역사 인물의 일생을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알리고 있다. 유럽사를 유독 좋아하며, 역사에서 소외된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책 속으로

지배자 시선으로 쓴 로마 제국의 역사는 등장인물만 바뀌는 막장 드라마 같았습니다. 스쳐 지나가듯 나타나서 곧 사라지는 로마 공주를 발견할 때까지 이런 답답함은 이어졌습니다. 로마 공주들은 전쟁과 정복과 권력과 음모를 주도하거나 그 속에 속절없이 휘말리지만 여성성이 지닌 가치를 지키려 분투한 흔들리는 존재였습니다. 어릴 적 즐겨 본 만화 영화 주인공처럼 구원자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예쁜 공주님이 아니라 현실 속 공주들의 삶이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로마 공주에 빠져들었습니다.
--- p.6

아그리피나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손녀라는 혈통에 한껏 자부심을 느꼈지만,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는 자부심을 내세우는 대신 헌신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시어머니처럼 남편과 자식을 조용히 돌보는 내조의 여인이던 아그리피나는 남편이 죽은 뒤에는 좀더 적극적이고 강인한 모습으로 바뀌었죠. 그렇지만 오랫동안 정치판에서 동떨어져 지낸 탓에 권모술수나 이간질, 표정 관리에 능하지 않아서 쉽게 간악한 세야누스의 표적이 됐죠. 그런 탓에 자기뿐 아니라 아들들까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 p.36

살벌한 정치에 뛰어들어 ‘악녀’라는 오명을 쓴 여성들이 재평가되는 오늘날에도 소 아그리피나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습니다. 고모인 리빌라에 비견되는, 아니 리빌라를 뛰어넘는 세기의 악녀로 손꼽히죠. 후계자 세 명을 죽인 리빌라에 견줘 숙청 규모가 크고, 리빌라가 세야 누스에게 의존한 반면 아그리피나는 자기가 앞장선 탓이죠. 뒤집어 보면 아그리피나가 어머니나 고모보다 더 큰 능력을 발휘한 셈입니다. 황후가 되지 못한 어머니 대 아그리피나와 리빌라에 견줘 소 아그리피나는 황후뿐 아니라 태후까지 됐고, 단순히 내조에 머무르지 않은 채 정치에 직접 관여했죠. 사절 접대하기, 회의 몰래 듣기, 도시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기 등 황제만 할 수 있는 행동까지 하면서요.
--- p.99~100

클라우디아는 숙청의 피바람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았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네로가 건넨 유혹을 거부했고요. 이렇게 정절을 지키는 모습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전통적 여성상으로 비칠 수 있겠죠. 그렇지만 로마는 여성이 자유롭게 재혼하는 나라였습니다. 클라우디아는 왜 그랬을까요? 죽은 아버지와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을까요? 아우구스투스의 마지막 후손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을까요? 진실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혈통에 기반한 자부심을 더욱 튼튼하게 다질 도덕적 정당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교육을 거쳐서,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은 여성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제왕학’에 비견할 ‘공주학’이라 할 만합니다.
--- p.126~127

유대교인을 학살하거나 음모를 꾸며 에우도키아를 몰아내는 등 비도덕적 행동을 저지른 당사자이지만, 이런 과오도 기독교에 지나치게 신실한 탓에 관용을 베풀지 못한 탓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에서 시성되면서 풀케리아가 저지른 잘못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혔습니다. 오로지 로마 제국 최초로 시성된 공주라는 타이틀만 각인됐죠. 풀케리아는 종교적 업적 말고도 정치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바로 후계자 선정이죠. 혈통보다 능력을 중시한 로마의 제위 계승법에 따르면 새 황제는 즉위할 때 원로원과 근위대한테서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전 황제가 후계자를 지목하고 원로원과 근위대의 의견이 일치하면 순조롭게 즉위식을 거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죠. 네 황제의 해, 다섯 황제의 해, 군인 황 제 시대가 대표적이에요.
--- p.226

그래도 조이의 삶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풀케리아가 뿌리내린 택군 제도를 발전시켜 여제 자리까지 오른 덕분입니다. 사실 로마 최초의 여제는 조이가 아니에요. 8세기 무렵에 이레네 여제가 있었죠. 이레네가 어린 아들을 섭정하다가 계속 권력을 유지하려고 아들 눈을 뽑아 비판 받은 데 견주면 조이는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받으면 받지 비판받은 적이 없어요.
--- p.256

여성이 학문에 접근하지 못하던 중세 시대, 안나 콤니니는 《알렉시아드》를 써서 서구 최초 여성 사학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 책에 나온 모든 공주들은 혈통을 바탕으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정치에 개입했지만, 학자로 이름을 남긴 공주는 안나뿐이었습니다. 《알렉시아드》는 안나가 아버지의 업적과 남편의 뜻을 후대도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쓴 책이죠. 11세기와 12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흥망성쇠뿐 아니라 중세 유럽의 판도를 뒤흔든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 과정을 비서유럽권 시각에서 서술해서 당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주목을 받았 습니다. 안나하고 동시대를 산 성직자이자 사학자 게오르기오스 토르 니케스는 안나를 수백 년 전 알렉산드리아에서 명성을 떨친 여성 과학자이자 철학자 히파티아에 맞먹는 지혜의 정상에 오른 그리스계 여인이라 극찬했죠.
--- p.298

조이, 곧 소피아는 생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간 적도 없었고, 황제의 딸도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에는 그저 찬밥 신세 방계 황족의 딸에 지나지 않았죠. 로마가 멸망하고 이탈리아에 정착한 뒤에야 로마의 공주로 대우받았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러시아로 건너가 황후가 돼서 대가 끊긴 로마 황실의 핏줄이 타국에서 다시 이어질 수 있게 했습니다. 조이는 후계 분쟁과 의문스러운 죽음 탓에 이반 3세의 치세 말기를 혼란스럽게 한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 비잔티움식 예절과 관습을 전파했고, 딸이라서 자손에게 팔레올로고스라는 성을 물려주지는 못하더라도 러시아가 차르라 칭하고 제3의 로마를 내세우는 근거가 됐죠. 수백 년간 러시아를 짓누른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남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했고요.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돼 2206년에 걸친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중세는 끝났지만, 소피아가 결혼하고 이반 3세가 제3의 로마를 자칭하면서 근대, 곧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 p.343~344

출판사 리뷰

“나는 로마의 공주다” ─ 만화영화를 뛰쳐나온 현실 속 진짜 공주들의 삶

‘공주와 왕자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읽을 때마다 많은 어린이들은 그 뒷이야기를 궁금해한다. 그럴 때 로마 시대를 살아낸 공주들의 치열한 삶을 들려주면 어떨까. 《아우구스타 로마나》를 펼치면 아우구스투스나 네로, 키케로, 테오도시우스 같은 유명한 로마 시대 남성들이 조연이나 단역으로 등장하는 서사가 로마사를 보는 새로운 틀이 된다. 로마는 적어도 왕위 계승에서는 혈통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 사회였다. 그런데 아무리 능력을 중시한다고 해도 공주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았다. 공주들은 남편을 내조하거나 아들을 황제로 만들려 하면서 여성이라는 운명과 시대가 주는 굴레에 갇혀 있었지만, 어떤 공주들은 왜 자기는 황제가 될 수 없느냐며 정치에 뛰어들거나 좌절한 끝에 여성 최초의 역사가가 되기도 했다. 2000년 전 로마 시대나 지금이나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랑케가 한 말처럼 로마 이후의 역사가 로마에서 흘러나왔다면, 로마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런 로마사를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시도도 마찬가지로 새롭고 중요한 시도일 수밖에 없다.

아우구스타 로마나 ─ 소설처럼 읽는 로마 공주들 이야기

《아우구스타 로마나》는 시대별로 5부로 나뉘어 각각 공주 두세 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부와 2부는 로마 제정이 시작된 뒤 피 튀기는 집안싸움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한 공주들이 나온다. 핏줄보다 능력을 중시한 덕분에 황제 자리에 오를 기회를 잡은 남편을 정쟁으로 잃고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치에 참여한 대 아그리피나부터 네로라는 가혹한 남편을 만나 비참하게 살아간 옥타비아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엄청난 숙청을 일으켜 희대의 악녀로 알려진 소 아그리피나가 저지른 악행이 진짜인지, 오명인지, 아니면 능력인지 묻기도 한다. 3부는 서로마가 저물면서 무능한 오빠들을 대신해 로마를 지키다가 이민족하고 결혼하게 된 갈라와 무모하게 제국을 걸고 이민족에게 청혼한 호노리아 이야기가 나온다. 4부와 5부는 서로마가 멸망한 뒤 동로마 시대의 공주들을 다룬다. 황제권이 강해지고 능력주의 사회에서 세습 왕정으로 변모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여자 황제를 용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여제가 된 조이와 테오도라가 바로 그런 사례다. 권력 다툼의 최전방에 서다가 물러난 뒤 《알렉시아드》를 쓴 최초의 여성 역사가가 된 안나 콤니니, 러시아 황실의 이반 3세하고 결혼하며 로마의 명맥을 잇고 근대의 포문을 연 조이 등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로마 제국만큼 장구한 공주들 이야기는 각 장 첫머리에 실린 관련 도판으로 시작된다. 딱딱한 역사서하고 다르게 대화체를 살린 만큼 엄혹한 로마 시대를 살아낸 공주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사료에 나오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상상을 더해 인물들이 생생해진다. 전세계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로마 시대 인물 조각상과 로마 공주에 관련된 명화와 로마 인물들을 다룬 고문서를 보는 재미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