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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 대화 기록문을 통해 본 고종과 이토의 역할과 정략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에서 1907년 고종 폐위와 순종 즉위로 이어지는 4년은 한국근현대사에서 가장 격렬하게 요동쳤던 시간이었고, 그 중심에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일본에는 일본의 한국 병탄사(倂呑史)를 추적할 수 있는 정부의 공문서, 건의문, 보고서, 일기, 전기, 신문 기사 등 많은 사료와 자료가 풍부하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사건들이 이어졌음에도 그 결정의 실상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가 대단히 한정돼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한 편의 대화록도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의 담판을 기록한 자료를 통해 어떻게 일본은 한국 병탄 정책을 추진했고, 한국은 망국으로 빠져들었나를 되짚은 책이 나왔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데이터베이스화한 26권의 『주한일본공사관기록』과 10권의 『통감부문서』, 그리고 『일본외교문서』에 수록된 1904~1907년 사이 이토 히로부미의 고종 알현 또는 내알현 기록 등을 바탕으로 격동하는 시대의 한일관계 변화 과정을 추적한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매우 귀중한 저서이다.
목차
프롤로그 8
1장 고종의 조선
고종 시대의 개막 16
임오군란과 그 후 18
외세개입과 파벌형성 23
개명과 부패 27
대한제국의 실패 33
시대정신과 인재의 상실 39
2장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
유신과 새 나라 건설 46
메이지 일본과 ‘조선 문제’ 50
청일전쟁과 그 후 53
이토 히로부미와 메이지 건설 58
이토와 ‘조선 문제’ 62
3장 망국의 서막
전쟁의 시작과 한국과 일본 67
한일의정서: “망국의 시발점” 70
‘밀지(密旨)’ 정치 72
‘밀약’ 협상과 ‘밀약’ 파기 76
‘공약’ 한일의정서 81
이토의 한국방문 84
고종과 이토의 내알현 88
하야시 곤스케 98
고종의 이토 재방한 요청 106
한일협약 112
4장 병탄의 전주곡
명암의 1905년 116
고종의 정략 120
일한동지조합과 이권 계약 127
일본의 정략 131
이토의 방한과 을사조약 133
귀국 인사 147
‘역적’의 상소 151
하야시 곤스케의 보고서 161
고종과 을사조약 163
5장 고종과 통감지배
1906년의 시작 175
이토 히로부미의 ‘열복론’ 178
고종과 이토의 통감 통치 184
이토의 시정개선 철학 190
갈등의 관리와 조정 195
갈등의 표출 198
궁금숙청(宮禁肅淸) 201
홍삼전매권 갈등 211
고종의 대응 218
고종의 폐위구상 225
6장 고종 폐위
국민적 주권회복 운동 232
어수선한 정국 239
폐위와 개각 사이에서 243
이토의 공격 246
개각 251
박영효 사면 259
헤이그 밀사 사건 261
고종의 폐위 270
황제와 통감의 마지막 내알현 275
태황제 고종과 이토 279
이토의 사임 286
에필로그 290
자료에 대한 이야기 295
후기 305
참고도서 및 문헌 307
1장 고종의 조선
고종 시대의 개막 16
임오군란과 그 후 18
외세개입과 파벌형성 23
개명과 부패 27
대한제국의 실패 33
시대정신과 인재의 상실 39
2장 이토 히로부미의 일본
유신과 새 나라 건설 46
메이지 일본과 ‘조선 문제’ 50
청일전쟁과 그 후 53
이토 히로부미와 메이지 건설 58
이토와 ‘조선 문제’ 62
3장 망국의 서막
전쟁의 시작과 한국과 일본 67
한일의정서: “망국의 시발점” 70
‘밀지(密旨)’ 정치 72
‘밀약’ 협상과 ‘밀약’ 파기 76
‘공약’ 한일의정서 81
이토의 한국방문 84
고종과 이토의 내알현 88
하야시 곤스케 98
고종의 이토 재방한 요청 106
한일협약 112
4장 병탄의 전주곡
명암의 1905년 116
고종의 정략 120
일한동지조합과 이권 계약 127
일본의 정략 131
이토의 방한과 을사조약 133
귀국 인사 147
‘역적’의 상소 151
하야시 곤스케의 보고서 161
고종과 을사조약 163
5장 고종과 통감지배
1906년의 시작 175
이토 히로부미의 ‘열복론’ 178
고종과 이토의 통감 통치 184
이토의 시정개선 철학 190
갈등의 관리와 조정 195
갈등의 표출 198
궁금숙청(宮禁肅淸) 201
홍삼전매권 갈등 211
고종의 대응 218
고종의 폐위구상 225
6장 고종 폐위
국민적 주권회복 운동 232
어수선한 정국 239
폐위와 개각 사이에서 243
이토의 공격 246
개각 251
박영효 사면 259
헤이그 밀사 사건 261
고종의 폐위 270
황제와 통감의 마지막 내알현 275
태황제 고종과 이토 279
이토의 사임 286
에필로그 290
자료에 대한 이야기 295
후기 305
참고도서 및 문헌 307
책 속으로
제1장과 제2장에서는 러일전쟁에 이르기까지의 한국과 일본의 모습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1904년 이토가 메이지 천황의 특파대사로 고종을 예방하여 한국 병탄의 서막이라 할 수 있는 한일의정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고종과 이토의 역할과 정략을 추적했다.
제4장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이어가면서 한국 병탄의 청사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하여 을사조약을 이루어냈는지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종과 이토 그리고 대한제국과 일본 정부의 계획과 역할을 볼 수 있다.
제5장에서는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의 보호통치 과정에서 고종의 황권을 해체하려는 이토와 이에 저항하는 고종의 정략을 분석했고, 제6장에서는 고종의 폐위를 몰고 온 헤이그 밀사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된 고종과 이토의 대치와 갈등을 추적했다.
마지막은 이 책의 바탕으로 활용한 중심 자료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가 자료를 수집하면서 자료의 한계와 불균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으며 출간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긴다.
제4장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이어가면서 한국 병탄의 청사진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하여 을사조약을 이루어냈는지 따라가 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종과 이토 그리고 대한제국과 일본 정부의 계획과 역할을 볼 수 있다.
제5장에서는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의 보호통치 과정에서 고종의 황권을 해체하려는 이토와 이에 저항하는 고종의 정략을 분석했고, 제6장에서는 고종의 폐위를 몰고 온 헤이그 밀사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된 고종과 이토의 대치와 갈등을 추적했다.
마지막은 이 책의 바탕으로 활용한 중심 자료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가 자료를 수집하면서 자료의 한계와 불균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이야기를 함께 풀어놓으며 출간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 한반도, 일본의 야망을 위한 징검다리
일본의 한반도 지배 야망은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는 것이 당시 조선 침략의 구실이었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의 조선 지배론 또한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한반도는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대륙 진출을 위한 한반도 지배론은 새로 들어선 메이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77년 세이난전쟁(西南戰爭)으로 수면 아래로 잦아든 정한론의 실체는 1888년 ‘주권선-이익선’이라는 보다 정교한 논리로 발전돼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대륙정책의 기저로 자리 잡았다. 일본이 국가의 독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한다면 일본 본토로 한정된 주권선만 수호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반드시 이익선을 방어하여 항상 유리한 위치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그 이익선의 초점이 바로 한반도라는 이야기였다.
이를 이루기 위해 메이지 일본은 힘과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영일동맹, 러시아와 비밀협상 등의 과정을 거쳐 1910년 한반도를 일본 영토로 복속시키는 병탄을 이루어냈다. 한국 병탄 후 일본의 이익선은 만주로, 만주에서 다시 중국본토로 확대됐고, 이는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로서 명실상부하게 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올라서 열강의 대열에 끼어든 일본과 달리 국내외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조선은 점차 망국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시대적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야 할 정치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했고 무능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했던 국제사회에서 힘을 바탕으로 한 자주독립을 지향하기보다는 외세에만 의존하려는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그 끝은 주권 상실과 500년 이어 온 조선의 폐멸이었다. 모든 변화가 격정적이던 이 시기에 한반도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대치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 야망은 뿌리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臣秀吉)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는 것이 당시 조선 침략의 구실이었다. 도쿠가와 막부 말기의 조선 지배론 또한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한반도는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대륙 진출을 위한 한반도 지배론은 새로 들어선 메이지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77년 세이난전쟁(西南戰爭)으로 수면 아래로 잦아든 정한론의 실체는 1888년 ‘주권선-이익선’이라는 보다 정교한 논리로 발전돼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대륙정책의 기저로 자리 잡았다. 일본이 국가의 독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한다면 일본 본토로 한정된 주권선만 수호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반드시 이익선을 방어하여 항상 유리한 위치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그 이익선의 초점이 바로 한반도라는 이야기였다.
이를 이루기 위해 메이지 일본은 힘과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영일동맹, 러시아와 비밀협상 등의 과정을 거쳐 1910년 한반도를 일본 영토로 복속시키는 병탄을 이루어냈다. 한국 병탄 후 일본의 이익선은 만주로, 만주에서 다시 중국본토로 확대됐고, 이는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로서 명실상부하게 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올라서 열강의 대열에 끼어든 일본과 달리 국내외 상황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조선은 점차 망국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시대적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야 할 정치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했고 무능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했던 국제사회에서 힘을 바탕으로 한 자주독립을 지향하기보다는 외세에만 의존하려는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그 끝은 주권 상실과 500년 이어 온 조선의 폐멸이었다. 모든 변화가 격정적이던 이 시기에 한반도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고종과 이토 히로부미가 대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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