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3.일본근대사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2005)

동방박사님 2024. 9. 1. 10:29
728x90

책소개

“불령 조선인이 방화를 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넣었다.”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는 조선인에 대한 증오로 모아졌고, 증오는 6,000여 명이 희생된 대학살로 이어졌다.

이 책은 재일 사학자 강덕상 선생이 2003년에 출간한 『관동대지진.학살의 기억』을 번역한 것으로 무고한 동포들이 어째서 죽임을 당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구체적인 방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대학살의 재앙이 일반 민중의 불안 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재앙에 흥분한 민중의 분노가 왕실이나 치안 당국으로 흐를 것을 우려한 관헌 수뇌부의 술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구체적 증거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관동대지진 때 많은 조선인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그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려는 노력은 부족했었다.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재일 조선인의 억울함 죽음과 일제의 민족 차별과 만행의 실상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목차

한국어 판을 내면서
신판 출간에 부쳐서
들어가기에 앞서
옮긴이의 글

학살의 서막
1. 9월 1일 정오 직전
2. 화재가 일어나다
3. 유언비어, 계엄령, 학살

제1장 비상 계엄령의 발포
1. 대신들의 대응 : 궁중은 무사한가
2. 경시총감의 불안감
3. 치안 트리오의 움직임
4. 계엄령 결정의 순간
5. 군의 신속한 움직임
6. 출병 요구에서 계엄령 시행까지
7. 계엄령의 명분을 찾아서
8. 출병하는 계엄령

2장 악성 유언비어의 발생
1. 누가 어떤 목적으로 퍼뜨린 것인가
2. 도쿄의 유언비어
3. 요코하마의 유언비어
4. 조선인 폭동에 대한 각지의 유언비어
5. 일본인들의 조선인 차별관
6. 관헌의 조선인 적대정책
7. 감시의 눈을 번득이던 특고내선계
8. 관헌의 편견에서 유언비어의 싹이 트다
9. 청년단을 부추기다

제3장 유언비어의 전파 공작
1. 치안 유지를 책임질 수 없다
2. 시민들의 불온한 움직임
3. 권력의 지휘 아래
4. 관헌과 유언비어
5. 통신을 이용한 조직적인 전파
6. 유언비어, 전국으로 퍼지다

무장군대의 출동
1. 조선인 학살의 주범은 누구인가
2. 살인귀로 변한 야중포 제1연대의 병사들
3. 기병 제15연대가 벌인 ‘피의 잔치’
4. 조선인 박해가 가장 심했던 가메이도 주변
5. 계엄군의 조선인 색출활동
6. 군경이 함께 계엄을 수행하다

제5장 살인집단으로 변한 자경단
1. 자경단이 설립되기까지
2. 재향군인의 민중선동
3. 관헌의 지령이 있었다
4. 민병의 조선인 사냥
5. 자경단의 살인방식

제6장 관헌의 조선인 총검속
1. 유언비어에 의문을 품다
2. ‘불령’인가 ‘양민’인가
3. 공포의 검속
4. 검속된 조선인의 운명
5. 선량한 조선인만 보호하겠다
6. 동포의 사체처리에 강제동원되다

제7장 죽음의 수용소, 나리시노
1. 연행
2. 입소자 수 차이의 의문점
3. 민간에게 떠넘긴 학살
4. 학살은 왜 일어났는가

제8장 희생자 조사
1. 관청 통계에 대하여
2. 다섯가지 조사 통계

제9장 자경단의 만행
1. 자경단의 활약상
2. 재향군인회에 대한 주의사항
3. 자경단의 만행
4. 하층 영세민이 범인이다
5. 기묘한 재판

제10장 조선인과 사회주의자
1. 사회주의자의 등장
2. 조선인의 배후에 사회주의자가 있다
3. 사회주의자에 대한 몇 가지 인식
4. 자경단에 참가한 사회주의자들
5. 진상규명에 태만한 사회주의자

글을 마치며
출전을 밝혀주는 원주목록
본문 이해에 도움을 주는 별표
관동대지진 관련 참고 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강덕상
1932년 경상남도 출생.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학과 졸업. 메이지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히토츠바시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시가현립대학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광동대진재』『조선 독립운동의 군상』『조선인 학도출진』『여운형 평전 2- 상해임시정부』등이 있다.

책 속으로

관헌이나 자경단원들이 조선인 수색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하숙생이나 고용인을 감싸준 미담도 많았다. 아침저녁으로 주고받았던 인사가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유언비어가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발생했던 상황을 부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원인 미상의 화재가 조선인의 방화 때문이라고 함부로 말한 자가 있었다는 것을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 유언비어가 당시 일반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 p.93 '제2장 악성 유언비어의 발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