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역 (개괄)
관할 기관 한국철도공사. 수도권광역본부 인천관리역
소재지 1호선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69
수인선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26번길 12-17
개업일 경인선 : 1899년 9월 18일
축항선 : 1959년 2월 24일
1호선 : 1974년 8월 15일
수인선 : 2016년 2월 27일
역 번호 1호선 : 161 / 수인·분당선 : K272 / 종별 관리역 / 등급 2급 / 승강장수 1호선 : 2면 3선 /수인·분당선 : 1면 2선
비고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수도권 전철 40주년 기념 스탬프 비치역
거리표
● 수도권 전철 1호선 (경인선) 구로 기점 27.0km
●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수인선) 수원 기점 51.6km
인천역(Incheon station, 仁川驛)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중구 개항동에 있는 경인선과 수인선의 전철역이자 환승역이며, 종착역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이 역부터 남영역까지 지상 구간이고 한국철도공사 구간이다.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은 이 역부터 인하대역까지 지하 구간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심야에 8편성이 주박한다.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은 심야에 2편성이 주박한다.
역사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인천~노량진 간 개통과 함께 영업 개시
1900년 5월: 구 역사 준공
일자 불명: 하인천역(下仁川驛)으로 역명 변경
1948년 6월 1일: 인천역으로 역명 환원
1950년 6월 30일: 한국 전쟁으로 인해 역사 소실
1960년 9월 17일: 현 역사 준공
1974년 8월 15일: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1976년 1월 1일: 민수용 무연탄 화물취급역 지정
2006년 5월 1일: 소화물 취급 중지
2009년 12월 1일: 철도승차권 단말기 철거
2014년 12월 16일: 수인선 환승 통로 공사 준비를 위한 우회통로 개설을 위해 2번 승강장 사용 중지
2015년 1월 30일: 수인선 환승 통로 공사 시작, 1번 승강장 동인천역쪽으로 90미터 이전
2015년 4월 1일: 물류 책임사업부제 출범으로 인해 물류본부 수도권물류사업단에 소속, 3급 역으로 격하
2016년 2월 27일: 수인선 송도 ~ 인천 구간 재개통과 함께 환승역이 됨. 2번 승강장 사용 재개.
2020년 5월 29일: 철도거리표 개정에 따른 기점 및 거리 수정.
2020년 12월 31일: 화물 취급 중지
역명
역 앞에 인천항이 있어 경인선 개통 당시에 ‘제물포역’이었다고 전해지지만 잘못된 것이다. 2011년 10월부터 몇 년간 부기역명으로 '차이나타운'을 사용하였다.
개요
경인선의 부설권이 미국에 있었을 때 이 역은 경인선을 우각동역 부근에서 서남쪽으로 이어 현재의 축항구내 인근에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축항구내 일대의 토지 소유자와 부지 협상이 결렬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건설하게 되었다.[12] 심야에 수도권 전철 1호선 8편성,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2편성이 주박한다.
역 구조
경인선(1호선)의 경우 1면 2선의 섬식 승강장으로 되어 있는 1·2번(연천 방향) 승강장을 이용하며, 3번 승강장은 주로 입·출고 열차 및 임시 열차용으로 사용된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이 30cm 전후로 매우 넓다. 현재의 역사는 1960년에 준공된 건물로 2015년에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다. 승강장에 지붕이 추가되었고, 대합실 등을 대리석으로 마감하였으나 역사 건물은 그대로 유지하였다. 출입구에는 2015년까지 인삿말("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이 적힌 표지판이 있었으나 리모델링 이후 사라졌다. 수인선 복선 전철화 사업 착공 이전에는 출퇴근시간에만 운영하는 급행용 승강장을 지하에 건설하여 선로를 동인천역에서부터 연결하여 수인선과 이을 계획도 있었으나 현재 계획 중인 인천공항1터미널역과 이 역을 잇는 제2인천국제공항철도 문제로 인해 백지화되었다. 수인·분당선의 경우 왕십리역과는 달리 쌍굴방식 단선 터널로 건설되어 있어 이 역 진입 전에 설치되어 있는 건넘선이 없기 때문에 왕십리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차선으로 가야 하는 구조다. 출입구는 3개다.
경인선
경인선은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구로역과 인천광역시 중구의 인천역을 잇는 대한민국의 철도 노선이다.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인 기록상 최초의 철도로 1897년 3월 22일에 일본의 지원을 받아 기공하여 1899년 9월 18일에 일부 구간이 개통되었다. 1974년 8월 15일부터 전 구간을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운행하고 있다. 통행방향은 모든 구간이 좌측통행이다.
인구 약 290만 명이 상주하는 인천광역시와 약 80만 명의 부천시, 그리고 약 950만 명이 거주하는 서울특별시를 통근형 전동차를 투입하여 운행하며, 경인선 철도 연선 교통량의 절반 이상을 통근전철로 분담하고 있다. 경원선 용산역 ~ 성북역 구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경부선 용산역 ~ 경인선 주안역 구간을 별개의 운행 계통으로 독립 운용된 노선이기도 하다.
역사
착공 이전
조선은 늦게나마 철도 건설의 필요성을 깨달았지만, 당시 재정이 빈궁하여 독자적으로 철도를 부설할 만한 능력이 부족하였다. 수도 서울은 수백년 간 한강을 통한 수운으로 물자를 수송하였으나, 개화와 산업발전을 위하여는 서울을 항구와 직접 연결해주는 새로운 대량수송 수단이 필요하였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제물포가 1883년에 개항되면서 서울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철도가 구상되었다. 한편 경인선 철도 부설에 관심이 있던 미국 정부는 1883년 6월 23일 독변교섭통상사무 민영목을 통해서 제물포와 한강의 수심 측량을 허가받고, 1887년 2월 9일에는 뉴욕 조선영사 프레이저(E. Frazar)를 통해 김윤식에게 '전등 및 철도 신설계획의 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후 1891년 3월 고종은 이완용과 이하영을 시켜 주한미국전권공사인 기업가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와 '철도창설조약'을 협상하였고, 모스는 미국공사 알렌(Horace N. Allen)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인선 부설권을 획득하려 하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철도 부설권을 얻고자 1894년 8월 무단으로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하였고, 이는 조선 정부가 재정적 여유가 없으므로 일본 정부에서 경인선과 경부선 철도를 부설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청일 전쟁 직후의 삼국간섭으로 한국에서 철도의 주요 이권을 독점하려는 일본의 영향력은 약화되었고, 1896년 아관파천 50일 만인 3월 29일 철도부설권은 모스에게 넘어갔다. 이는 철도에 대한 최초의 특허권 부여이자, 미국이 조선정부로부터 최초로 이권을 양도받은 사건이기도 하다.
착공 이후
한국정부가 모스와 체결한 '경인철도특허조관'에는 특허일로부터 12개월 내에 기공, 그 후 3년 안에 준공하며, 이를 위반할 시 특허의 효력이 상실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모스는 1897년 3월 22일 오전 9시 경인가도상의 우각현(牛角峴, 지금의 도원역 부근)에서 기공식과 함께 공사를 시작하였다. 일본은 부설권을 재취득하기 위하여 조선이 정치적으로 어지럽다는 거짓 소문을 미국에 흘렸고, 이로 인해 미국 투자가들이 자금을 회수하며 모스는 자금난을 겪게 되었다. 여기에 기술적인 난제까지 겹쳐 공사는 중단되었고, 1898년 5월 10일 공사 중인 경인철도가 170만 2452원 75전 (당시 1백만 달러)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에 양도되기에 이르렀다. 경인철도 부설권 인수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중심인물로 참여하였다.
1899년 9월 18일 인천역 ~ 노량진역 간 33킬로미터 구간이 개통되었고, 인천역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당시 개통된 역은 인천 - 축현 - 우각동 - 부평 - 소사 - 오류동 - 노량진의 7개 역이었다. 1900년 7월 8일에는 노선이 노량진역에서 경성역까지 연장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12일 경성역에서 경인철도 완전개통식이 진행되었다. 1906년 2월 10일에는 우각동역이 폐지되었다.
급하게 부설한 선로였기 때문에 곡선반경이 작고 교량 등 구조물이 부실하여, 1907년부터 2년 간 52.5만 엔(당시)을 들여 개량 공사를 진행하였다.1909년 3월에 이 공사가 완료되면서 경인선의 연장이 1.6 km 감소하였고, 철도용지와 교각 등이 복선 규격으로 마련되었다. 또한 이 공사에 따라 당시 축현역이 이설된 시기는 1908년 12월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1937년에는 경인선 복선화에 착수하였으나, 복선 운전이 시작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노량진역에서 한강철교 쪽으로 가다 보면 '한국철도 시발지비'가 있는데, 이 비는 1999년에 제작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 중 노량진역 스탬프에 새겨져 있다. 도원역 부근에도 경인선 기공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광복 이후
1928년부터 복선화의 계획은 있었으나, 자금난과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 후 복선화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다시 추진되었고, 1963년 11월에 착공해서 1965년 9월 18일에 완공되었다. 이로써 경인선은 대한민국의 철도 중 경부선에 이어 두 번째로 복선화가 완료된 노선이자, 대한민국 정부가 최초로 복선화시킨 노선이 되었다.
1974년 8월 15일에 경인선 전 구간이 전철화되어 경원선 성북역과 인천역 간을 통근형 전동차가 운행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해 일반 열차의 운행은 중지되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통해 서울의 도심으로 바로 진입하기 때문에 서울 - 인천 간 교통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94년에는 구로역 이후에서 빚어지는 경부선 서울 ~ 수원 구간과의 병목현상 해소를 위한 용산 ~ 구로간 2복선화 공사가 완료되었다. 이후 복선만으로는 많은 교통량을 모두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선로용량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 복복선화 사업이 착수되었다. 구로역 - 부평 구간은 1991년 11월에, 부평 - 인천 구간은 1996년 9월에 각각 착공되었다. 구로 - 부평 구간은 1999년 1월에, 부평 - 주안 구간은 2002년 3월에, 주안 - 동인천 구간은 2005년 12월에 각각 개통되었다.
경인선을 지하화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엄청난 사업비가 소요되고 공사 기간 중 열차 운행을 중단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낮다
운영
1899년부터
1899년 9월 18일 경인선이 개통되었다. 모가형 증기 기관차가 운행되어 1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개통 직후, 인천역과 노량진역을 오가는 열차 시각표는 다음과 같았다.
역명로마자 역명한자 역명마일총 마일열차 시각비고
인천 Incheon 仁川 0 0 7:00 10:40 13:00 16:40
축현 Chukyeon 杻峴 2 2 7:06 10:35 13:06 16:35 現 동인천역
부평 Pupyeong 富平 6 8 7:36 10:05 13:36 16:05
소사 Sosa 素砂 3 11 7:50 9:51 13:50 15:51 現 부천역
노량진 Noryangjin 鷺梁津 7 18 8:40 9:00 14:40 15:00
또한 개통과 함께 한국 최초의 철도운송약관인 '경인간철도규칙'이, 농상공부령으로 발령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았다.
* 제1조 철도에 운전하는 화륜거를 타는 자는 어떤 사람이든지 먼저 표값을 내고 차표를 사서 차를 타고 차에서 내린 후에는 차표를 차주에게 내어라.
* 제2조 어떤 사람이든지 표값을 내지 않고 차를 타거나 자기가 가진 등급보다 고등급 차에 타고 가는 자는 그 차표에 정한 외에 찻값을 리수 원근과 등급의 어떠한 것을 물론하고 한사람에 5전씩 받는다.
* 제3조 돌림병을 앓은 사람은 승차를 거절한다.
* 제4조 미치거나 난잡한 자는 승차를 거절한다.
* 제5조 어떤 사람이든지 정거장과 철도소 안에 있는 각종 표지와 기계, 짐, 목침목, 담을 파손하는 자는 회사에게 적당한 배상을 해야한다.
* 제6조 차타는 사람의 손에 든 물건은 따로 운임을 받지 아니하며 차안에서 물건이 상하거나 차표를 잃어버리더라도 회사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제7조 귀중품이나 금, 은, 그릇, 각종 표문건, 어음, 지전, 구슬, 금덩이, 모피, 상등의복, 단필, 서화 등 귀한 물건은 운송하는 비용이나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그 손해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
* 제8조 소와 말과 산짐승을 수송하는데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그 손해에 대해서 회사는 책임이 없고 만일 보험료를 낸 자라도 배상하는 돈은 말은 한 마리에 10원 안이요. 소는 한 마리에 20원 안이요. 다른 동물은 한 마리에 3원 안으로 정한다.
* 제9조 위험한 물건이라는 것은 화약, 폭발물, 동물과 생석회이며 석유, 초, 성냥 등 불이 나면 다른 물건을 해치는 물건은 위험물로 취급한다.
* 제10조 잃어버리거나 상한 물건에 대한 손해배상은 회사가 재물을 거둔 후에 혹 관리하는 동안에 회사에서 게을리 하였을 때는 배상하나 재물주인이 소홀히 하였을 때는 회사에서 책임이 없다.
* 제11조 물건을 철도에 부칠 때 운임을 내며 특별히 후에 내기로 약조한 정거장에 당도하여 운임을 받고 물건과 교환한다.
* 제12조 철도소 안에 두는 물건과 차에 실은 물건의 잃은 것과 상한 것은 물건주인의 책임이요, 철도는 화물을 차에 실은 후 내리기까지만 보호한다.
* 제13조 차안에 틈이 없고 차가 부족한 때에는 차객과 화물을 거절한다.
* 제14조 회사에서 정하는 근은 영국 근이니 곧 파운드라 하고 자는 영국 척이니 12촌이요, 리는 영국 리이니 백 링크(영어판)(百輪)를 일 체인(一鎖)이라 하고 80체인을 리라 하며 톤은 영국근수로 2천2백40근이요, 용적은 백 입방 영척으로 한다.
* 제15조 차객과 화물의 임자는 이상의 조목을 굳게 지키되 만일 이 규칙을 준행치 않는 자는 차타며 화물운송 허가를 얻지 못한다.
이후 몇 차례의 시각표 개정이 있다가, 1903년 7월 1일에는 경인선 최초의 급행열차가 신설되었다.[20] 당시 하루에 인천발 7회, 경성발 7회가 운행되었는데, 그 중 인천발 막차인 오후 9시발 열차가 축현역, 소사역, 영등포역, 남대문역, 경성역에만 정차하게 된 것이다.
1974년부터
광복 이후 비둘기호가 운행하다가, 1974년 8월 15일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건설된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연계되어 통근형 전동차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수도권 전철 1호선 개통 이후 일부 특별 열차를 제외하고는 KTX, ITX-새마을, 무궁화호 등의 일반 열차는 운행하지 않는다. 현재 수도권 전철 체계 안에서 서울 서남부와 부천시, 인천광역시를 서울 중심부와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 조사 결과 하루에 약 38만 명이 탑승하며 37만 명이 하차한다. 승하차 인원중 약 30만 명이 부천시 소재 역에, 약 33만 명이 인천시 소재 역에 집중되어 있다
1999년부터
서울-인천 간 교통량이 급증하자, 복선만으로는 수요를 모두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1999년에 구로-부평 구간이, 2002년에 부평-주안 구간이, 2005년에 주안-동인천 구간이 복복선화되었다. 2002년 OD 조사에서 인천광역시 · 부천시 · 서울특별시 사이의 철도통행량은 511451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복복선화 작업을 하지 않았을 경우 처리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복복선 개통으로 가운데 내선에는 급행열차를 운행시키고 있는데, 이 급행열차는 동인천역과 용산역에서 발착하며, 경인선에서는 제물포 · 주안 · 동암 · 부평 · 송내 · 부천 · 역곡 · 개봉역에 정차하고, 경부선과 합류하는 구로역부터 용산역까지는 모든 역에서 정차한다.
현재 용산역 3번 승강장과 동인천역 2번 승강장에서 출발한다. 열차 외부 행선안내기에는 동인천 급행, 용산 급행, 동인천 특급, 용산 특급으로 표시된다. 원래는 동인천역 대신에 주안역까지였으나, 동인천역까지 급행을 연장해 현재는 용산~동인천 구간을 왕복하고 있다. 정차역은 다음과 같다.
용산 - 동인천 급행
한편, 2006년부터는 경원선 직통 급행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이 급행은 경원선 동두천역을 출발하여 광운대역까지 급행 운행을 하고, 광운대역부터 인천역까지는 모든 역에 정차하는 완행으로 운행한다. 상시 운행하는 용산 - 동인천 급행과 별개로 출근 시간대에만 제한적으로 운행된다. 2008년까지는 가능역까지만 일부 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가능역(구 의정부북부역)에서 인천역까지 전역정차했으나, 2008년부터 성북역까지 일부 역을 무정차 통과하게 되어 성북역(현 광운대역)에서 인천역까지 각역정차한다. 당시 소요산역에서 출발하는 급행이 있었으나 1일 1회 인천행 편도만 존재했다.
Sources Wikipedia
'04.근현대한국사 (2024~) [해설서] > 6.근대유산 (서울 인천 부산 군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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