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수많은 독자들에게 재출간 문의를 받은 책 『여신의 언어』가 복간되었다. 기원전 7000년경부터 기원전 3500년경까지의 유물을 통해 ‘올드 유럽’(인도-유럽 문명 형성 이전의 유럽)의 여신 전통 문명을 보여주고, 그 이후에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여러 여신 전통과 모계 사회의 흔적들을 설명하는 기념비적인 책이다. 2000여 가지 유물 도상이 각각의 의미에 따라 상징군으로 분류되어 소개된다.
‘생명의 부여’ ‘재생과 영원한 세계’ ‘죽음과 재탄생’ ‘에너지와 흐름’이라는 네 개의 큰 갈래 안에 V자 문양, 물결 문양부터 새, 뱀, 양, 곰 형상에 이르기까지 28개의 작은 갈래로 나누어 그 상징들을 설명하고 있다. 책의 뒷부분에는 상징 용어 해설, 여신과 남신 유형과 그 역할, 연대표, 유물 출토지 지도 등이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세상을 생생하고도 꼼꼼하게 복원한다.
목차
추천사 - 조지프 캠벨
저자 서문
한국어판 추천사 - 김종일(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옮긴이 서문
상징의 카테고리
I부 생명의 부여
1장 새 여신의 상징, V자 문양과 쐐기 문양
2장 지그재그 문양과 M자 문양
3장 미앤더 문양과 물새
4장 새 여신의 젖가슴
5장 물결 문양
6장 여신의 눈
7장 열린 입/여신의 부리
8장 물레, 길쌈, 야금, 악기와 관련된 공예 기능의 부여자
9장 숫양, 새 여신의 동물
10장 그물망 문양
11장 삼선과 숫자 3의 힘
12장 음문과 탄생
13장 태모로서의 사슴과 곰
14장 뱀
II부 재생과 영원한 세계
15장 대지모
16장 둘의 힘
17장 남신과 다이몬들
III부 죽음과 재탄생
18장 죽음의 상징들
19장 알
20장 생명의 기둥
21장 재생의 상징 음문: 삼각형, 모래시계, 새 발톱
22장 재탄생의 배
23장 개구리, 고슴도치, 물고기
24장 수소, 벌, 나비
IV부 에너지와 흐름
25장 나선, 달의 주기, 뱀 똬리, 갈고리와 도끼
26장 상반된 방향으로 도는 나선, 소용돌이, 빗, 붓, 동물 소용돌이
27장 여신의 손과 발
28장 선돌과 원
결론
여신의 자리와 역할
인도-유럽과 그리스도교 시대를 거치며 여신들에게 일어난 변화
여신 전통의 세계관
상징 용어 해설
여신과 남신의 유형
신석기시대 위대한 여신/남신의 이미지와 역할
연대표
지도
저자 소개
저 : 마리야 김부타스 (Marija Gimbutas)
UCLA 유럽고고학과 교수 및 UCLA 문화사박물관 고대 세계 고고학 학예사를 지냈다. 《올드 유럽의 여신과 남신》을 포함해 20권 이상의 저서가 있고 200편 이상의 논문이 있다. 유럽 선사시대부터 인도-유럽인의 기원에 관한 신화까지 방대한 영역을 다뤘다. 가장 주목할 만한 고고학자이자 선사학자인 그녀는 방대한 도상을 집대성한 『여신의 언어』 책을 통해서 가부장제 이전 인류의 문명화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로 ...
역 : 고혜경
신화학 박사이자 그룹 투사 꿈작업가. 현재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꿈과 융 심리학 그리고 개인의 신화와 집단의 꿈을 가르친다. 오클랜드 창조영성대학원에서 제레미 테일러 박사를 만나 꿈 세계를 접한 후 좀 더 깊이 꿈 말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퍼시피카대학원에서 신화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기간 꿈 일기를 작성해오면서 꿈이 가진 놀라운 힘을 느꼈다. 꿈 공부 후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그룹 ...
책 속으로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올드 유럽의 위대한 여신 종교를 그림을 곁들여 설명하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책은 각종 문양과 신의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문양이나 이미지가 선사시대의 풍경을 재구성하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 이는 또 서구의 종교와 신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한 자료이다.
20여 년 전 처음으로 신석기시대 유럽의 토기 회화와 의례 용품에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문양들의 의미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문양들은 하나의 거대한 퍼즐 맞추기와 같았는데, 조각들 중 3분의 2는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 그러나 퍼즐 맞추기가 완성되어감에 따라, 올드 유럽 이데올로기의 중심 주제가 드러났다. 나는 주로 상징과 이미지를 분석하고 내재된 질서를 발견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를 통해 유물의 이미지들은 일종의 메타언어의 구문과 문법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점차 전체 의미군(群)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 메타언어는 올드 유럽 문명, 즉 인도-유럽 문명 이전의 기본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었다.
상징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상징은 언제나 자연과 연결되어 있기에 상징의 맥락 연구나 연상을 통해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유물에 표현된 예술적 형상의 존재 이유가 신화적 사고에 기반하기에 이 방식으로 당시 사람들의 신화를 해독해볼 수 있는 것이다.
--- p.xv
농경민들은 땅의 불모와 풍요, 생명의 취약함이나 거듭 닥치는 파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연의 재생이나 생식 과정을 주기적으로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신앙 체계라 할 수 있다.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이 믿음이 끊임없이 희석되고 파괴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믿음 체계는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이 신앙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선사시대 여신의 면면으로 드러나지만, 오늘날 유럽의 마을에서도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전승되고 있다. 고대의 믿음 체계는 인도-유럽 신화들로 교체되는 시기를 거쳤고, 그 후에 그리스도교 신화가 우세해지는 시기를 거쳤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지구상에 아주 긴 시간 동안 여신 중심의 종교가 존재했다. 이 종교는 인간 역사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짧은 시기인 인도-유럽 문명이나 그리스도교 문명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서구인들의 정신에서 결코 씻어낼 수 없다.
--- p.xvii
전통적인 여신 상징들의 핵심 주제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으로, 이는 생명의 신비를 역설한다. 여기서 생명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뭇 생명을 말한다. 실은 우주 전 생명을 아우른다. 상징과 이미지들이 남신의 개입 없이 혼자서 생명을 잉태하는(Parthenogenetic) 여신과 여신의 주요한 기능인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 죽음의 부여자, 이에 버금가게 중요한 재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를 표현하고, 대지모와 젊은 풍요의 여신과 성숙한 풍요의 여신, 식생의 탄생과 죽음을 초래하는 여신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상징체계는 일직선상의 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신화적인 시간을 나타낸다. 당시 예술에서 이런 의미는 소용돌이치는 나선이나, 똬리를 튼 뱀, 원, 초승달, 뿔, 발아하는 씨앗이나 새싹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 p.xix
마리야 김부타스의 연구는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후반에 완성되었다. 마음과 정신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매우 힘든 일일 뿐만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도 확신할 수 없다는 회의론이 팽배해 그보다는 과거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파악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고고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김부타스가 이 분야의 연구를 거의 혼자서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9년에 초판이 출간된 『여신의 언어』는 1974년에 출간된 『올드 유럽의 여신들과 남신들The Goddesses and Gods of Old Europe』, 그리고 1991년에 출간된 『여신의 문명The Civilization of the Goddess』과 함께 김부타스가 오랜 연구를 통해 축적한 놀라운 성취를 정리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소개되는 『여신의 언어』는 다른 저서와는 달리 동유럽을 포함하여 중근동 지역 및 남부 유럽에서 출토된 수많은 물상과 이미지를 주요 형태별로 분류하여 정리하고 이를 여신과 생산 및 풍요, 그리고 죽음과 재생이라는 일관된 틀 안에서 해석한 저서이다. 따라서 이 책은 김부타스의 오랜 학문적 역정과 성취를 정리한 역저이자 그녀의 다른 저서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징과 기호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참조해야 할 도서 가운데 일종의 시작점으로 삼을 만한 중요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 p.xxi
고고신화학을 창안한 김부타스는 이 유물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감정이입을 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유추하고 분석한다. 문양들을 종합하는 능력이나 상징을 이해하는 탁월함으로, 유물을 만든 장인들이나 이를 사용했던 태초의 선조들에게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재구성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이를 위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유물과 이를 사용했던 선조들의 의례와 신앙을 연관 짓는 추론의 위험도 기꺼이 감수했다. “만일 비전이 없다면, 시인이나 아티스트가 아니라면, 보이는 게 별로 없을 것이다.” 대학자 김부타스의 표현이다. 김부타스는 이 메타언어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었다는 걸 이 책 전체를 통해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들로 하여금 여신의 언어 문법을 해독하고 읽고 볼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 p.xxvi
이 책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선사시대에는 죽음 이미지가 생명 이미지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 않았다. 죽음 이미지에는 재탄생의 상징들이 결합되어 있는데, 죽음의 메신저나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들이 언제나 재탄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 모티프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셀 수 없이 많은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 예로 맹금류의 두부가 사나운 멧돼지의 젖가슴과 턱 그리고 이빨 사이에 배치되어 있고, 이를 젖가슴으로 덥고 있는 유물을 들 수 있다(기원전 7천년기, 터키 중부 차탈휘윅 신전). 또 거석 무덤의 벽면이나 묘비에 장식된 서유럽 올빼미 여신의 이미지에는 젖가슴이 표현되어 있다. 젖가슴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여신의 몸 안에 생명을 창조하는 미궁이 묘사되었고, 미궁 한가운데에 음문이 묘사되어 있다.
--- p.xxviii
한 신이 생명의 부여자이자 동시에 죽음의 부여자이다. 이런 생명과 죽음의 상호작용이 바로 당시 우세했던 여신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생명과 출산을 관장하는 여신이 무서운 죽음의 부여자로 변할 수 있는데, 이 죽음의 여신은 뻣뻣한 누드상이 아니면 뼈에 초자연적인 자궁 부위의 삼각형이 새겨진 이미지로 등장한다. 이 자궁 부위의 삼각형이 바로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의 변형이 시작되는 자리이다. 때로는 새 가면과 맹금류의 발을 지닌 새 여신상들이 관찰되는데 이 유물은 여신과 맹금류의 관계를 보여준다. 또 긴 입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고, 눈이 둥글고 작은 뱀 여신은 독사와 관련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뻣뻣한 누드상에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도드라진 부분이 관찰되지는 않지만, 이 상들이 올드 유럽에서 등장하는 뻣뻣한 누드상들의 선조이다. 올드 유럽 누드상의 재질은 대리석이나 석고 아니면 밝은색 돌이나 뼈인데, 이는 죽음의 색이다.
--- p.xxix
유럽, 특히 서부와 북부 전역에는 의도적으로 변형시킨 거대한 바윗덩어리와 인체 형상의 돌들이 관찰된다. 이 바윗덩어리들의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성혈이라고 부르는 조그맣고 둥근 구멍이 있다는 점이다. 구멍의 수는 하나에서 수백 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구멍들은 눈이나 뱀 문양과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종종 사람 형상의 돌, 즉 여신상에 이런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다(그림 98). 하나나 둘 혹은 여러 개의 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도 드물지 않다. 분명 눈을 표현한 구멍들인데, 자연히 신의 물의 원천, 즉 생명의 물 자체를 의미한다. 이는 또한 흐르는 물을 담아두는 용기이기도 하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가 오늘날 유럽의 농민들 사이에도 일부 남아 있다. 농민들은 빗물의 치유력을 믿어 지금도 성혈에 고인 빗물을 채취한다. 신체가 마비된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신성한 물을 마시거나 그 물로 몸을 씻고 문제가 있는 부위에 바르기도 한다. 한 예로 그리스인들은 7월 26일 성 금요일을 뜻하는 파라스케비 의례를 한다. 선사시대 여신 전통을 계승한 의례인데, 파라스케비는 특별히 눈병을 치유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믿는 날이다. 이 의례 동안에는 인간의 눈을 상징하는 수백 개의 봉헌물을 은으로 만들어서 여신의 아이콘을 장식한다(Megas 1963: 144쪽) 나는 1986년 여름, 에게 해 복판에 있는 파로스 섬의 한 사원에서 성인의 초상에 이런 봉헌물들이 장식되어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 p.61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올빼미는 죽음의 전조라 여겨졌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오늘날에도 올빼미가 지붕 위에 내려앉거나 집 근처 나무에 앉으면 식구가 죽는다고 믿는다. 이집트 상형문자에서도 올빼미는 죽음을 뜻한다. 1세기경 플리니우스의 시대에도 올빼미가 도시에 출현하면 이는 곧 파괴를 의미한다고 믿었다. 후대에 여러 작가들도 올빼미는 불길하고 불쾌하고 비극적이라 묘사하며, 다른 새들이 싫어했다는 진술들을 찾아볼 수 있다. 초서도 올빼미는 강렬한 죽음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스펜서는 올빼미를 인간이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잔혹한 죽음의 메신저라 한 바 있다(Rowland 1978: 119쪽). 올빼미를 둘러싼 이런 침울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올빼미에 깊은 지혜와 신탁의 힘 그리고 악을 막아주는 힘이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특별히 어떤 신성한 힘이 올빼미의 눈에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올빼미의 예리한 시각이 다른 피조물보다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중 이미지는 올빼미가 잔인한 죽음의 여신을 체현한다는 개념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진 결과 남겨진 잔영이다. 올빼미는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아마도 전체 생명의 주기에서 볼 때 잔인하지만 필요불가결한 일부로 간주했기에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 p.190
이 책에 소개한 이미지와 상징들은 남신의 개입 없이 홀로 후손을 생산하던 여신의 시대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던 특질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고대 세계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이다. 유럽에서 여신은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지배했고 지중해에서는 청동기시대 대부분에 이르기까지 이 전통이 이어졌다. 이 다음에 사제와 가부장적 전사 신들의 시기가 도래한다. 이들은 여신이나 남신의 어머니 신들을 대체하거나 동화했다. 이는 그리스도교와 고대 여신 전통에 대한 철학적 거부가 확대되기 전의 중간 단계이다. 서서히 땅에 속한 것에 반하는 편견이 발달한다. 이와 함께 여신과 여신을 상징하는 것은 모두 거부된다.
여신들은 점차 깊은 숲이나 산정으로 퇴각했다. 이 자리에서 살아남아 오늘날 민간신앙이나 옛이야기의 형태로 이들의 존재가 전해진다. 땅 중심의 삶에 대한 생생한 뿌리에서 점차 인간들이 소외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는 우리가 사는 작금의 사회가 명백히 증언한다. 그렇지만 자연의 리듬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이제 여신들이 숲이나 산에서 재등장하고 있어서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오래된 뿌리로 돌아가게 한다.
--- p.321
출판사 리뷰
“태초의 신들은 여신이었다. 당신은 기억하는가?”
무의식 깊은 곳, 잃어버린 여신성을 깨울 신화학의 고전
“이 책에서 강조하는 메시지는 제임스 조이스가 ‘악몽’이라 진단했던 지난 5000년의 짧은 인류 역사 이전에, 지금과 전혀 다른 4000년의 역사가 실존했다는 점이다. 이 기간은 자연의 창조적 에너지와 부합하는 조화와 평화의 시기였다. 이제, 전 지구가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조지프 캠벨의 추천사에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재출간 문의를 받은 책 『여신의 언어』가 복간되었다. 이 책은 가부장제가 확립되기 이전 선사시대의 종교, 사회, 이데올로기, 문화를 밝혀낸 독보적이고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1989년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뒤 다양한 사상과 연구, 문화 콘텐츠에 영향을 미쳤다. 고대 그리스를 원류로 삼아온 서구 문명에서 여신 중심의 모계 사회가 먼저 실재했다는 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방대한 유물들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버드대학에서 고고학 연구자로 첫발을 내디딘 저자 마리야 김부타스는 당시 학내 유일한 여성 고고학자였다. 학계의 전통과 조류를 따라 10여년 이상 각종 무기 유물을 분류하며 전쟁 문화를 연구하던 그는 ‘전쟁’과 ‘지배’의 논리로 인류를 설명하는 관점에 회의를 느끼며 다른 질문을 품게 된다. “인류 역사에 전쟁은 정말 불가피했을까? 또 그 역사 속에 여성들은 어디에 있는가? 인류 문명 내내 남자가 여자를 지배했을까?” 그가 역사시대 이전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이유다.
이후 수십 년간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유물 발굴 작업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고, 비교 신화, 초기 역사 자료, 언어학, 민족지학, 민속학을 아우르는 학제 간 연구로 유물에 새겨진 문양의 상징과 의미를 분석하고 내재된 질서를 발견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가부장제 이전 인류 공동체의 삶에 여신 숭배와 대지 중심 문화가 실재했음을 밝혀냈다. 수천 가지 유물 도상으로 해석한 고대 모계 사회는 “위계가 아니라 평등, 초월이 아니라 임재, 단일이 아니라 다양함, 멈춤과 고착이 아니라 리듬과 변화, 우세와 지배가 아니라 조화”(xxvi쪽)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였다.
김부타스 이전에 역사학자 바흐오펜(1815~1887)도 인류 초창기 모권 중심 사회에 대해 주장한 바 있었다. 그러나 김부타스의 관점은 그와 달랐다. 바흐오펜이 모권제 사회에서 가부장제 사회로의 전이를 인류의 진화로 보았던 반면, 김부타스는 남성 중심 문명이 인류의 기나긴 시간 속에서 오히려 일시적인 것이며 거기서 파생한 전쟁과 지배의 문화는 병리적 현상일 뿐이라고 말했다.(xxv쪽) 인류는 역사시대 이전 더 오랜 기간을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았으며, 여신 전통의 흔적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남성 중심, 문자 기록 중심의 기존 학계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내용이었음에도 1970년대에 들어 학계에서는 본격적으로 여신 연구가 활기를 띤다. 특히 역사시대 여신 이미지들 역시 가부장제 영향 아래 있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연구의 초점을 선사시대로 옮기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모두 1950년대부터 시작된 김부타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었다. 조지프 캠벨이나 레너드 쉴레인과 같은 학자들도 원시 인류의 여신 관련 연구는 전적으로 김부타스의 연구를 참고했다고 밝혔고, 페미니즘 제2물결을 주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정신분석가 진 시노다 볼린 또한 김부타스의 연구를 중요하게 평가했다. 오늘날 널리 시도되는, 신화 속 여신을 남신의 어머니, 아내, 딸로 호명하는 대신 더욱 주체적인 서사를 부여해 재해석하는 시도들 역시 김부타스의 업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000여 가지 유물 도상이 복원하는
1만 년 전 여신 문명 사회
선사시대(특히 신석기 시대까지) 신상의 90퍼센트는 여신상이다. 가장 오래된 인간 형상 조각상으로 널리 알려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도 이 시기의 유물이다. 여신의 의미를 풍요와 다산으로만 한정해온 그간의 논의와 달리 김부타스가 밝혀낸, 땅과 달을 비롯한 자연 만물에 친연성을 갖는 이 시기 상징들의 주요 주제는 탄생과 죽음(파괴), 재탄생이다. 생명과 탄생 역시 여신 문화의 중요한 테마지만, 모성으로만 여신의 힘을 설명하는 것은 당대의 여신성(여성성)을 축소 해석하는 관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세계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위계가 없고, 여신들은 남신의 개입 없이 혼자서 생명을 잉태하고 죽음을 초래한다. 토양과 자궁의 색인 검은색이 생명력과 연결되고 뼈의 색인 흰색이 죽음과 파괴의 의미를 내포한다. 여신들은 행운을 가져오고 예언을 내리고 맹금류처럼 울부짖고 맹독성 뱀이 되어 기어오른다. 이는 천상과 지하세계를 명백한 위계로 구분하고, 여신의 의미를 줄곧 모성과 이타성으로만 해석하는 인도-유럽 문명의 세계관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특징이다. 생명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을 맺는 오늘날의 선형적 시간 개념과도 상이한 시간성이다.
책에 등장하는 2000여 가지 유물은 모두 고대 장례용품과 사원, 신전, 무덤에서 발굴된 조각, 인형, 프레스코화, 제사 용기, 토기 등이다.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유럽과 중근동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의 물상과 이미지는 물결, 쐐기, 삼각형, 지그재그, V자, M자 문양과, 새, 뱀, 양, 곰 형상 등 총 28가지 형태로 분류되어 생명, 재생, 죽음과 재탄생, 에너지와 흐름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다시 대별되었다. 부록으로는 상징 용어 해설, 여신과 남신의 유형과 그 역할, 연대표, 유물 출토지 지도, 색인 등이 수록되어 있어 여신 언어의 문법을 다각도에서 풍부하게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의 성격을 ‘여신 종교 사전’으로 정의한 저자의 뜻에 걸맞게 일목요연하고 친절한 구성이 특징이다. 특히 개정판에서는 250*300mm의 커다란 초판 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이 시기의 대표적 유물인 테라코타 토기의 질감과 색을 살린 장정과 표지 디자인으로 읽는 이가 책과 보다 공감각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읽는 팁으로 ‘직관’과 ‘영성’을 강조한 저자의 안내에 따라 『여신의 언어』가 지식의 습득을 넘어 내면에 잠재된 여신성과 만나는 체험을 이끌 것이다.
“이 책은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여신의 언어, 권력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포용과 치유를 꿈꾸는 여신의 언어를 찬란하게 복원함으로써 우리에게 ‘잃어버린 여신들의 파라다이스’가 이미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위대한 여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 안의 잃어버린 아니마(무의식의 여성성)의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정여울 작가 추천사에서
전쟁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서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
‘올드 유럽’엔 전쟁이 없었다는 김부타스의 주장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인류사를 통틀어 지구상에 전쟁이 없던 날이 단 3일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김부타스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금도 일상적으로 전쟁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그의 이야기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기 사람들이 야금술을 익히고 난 후에도 치명적인 살상 무기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 큰 규모의 마을에서조차 방어용 구조물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 등은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이다. 가축과 식량을 기르고 돌보는 행위가 중요했던 농경 사회에서는 평화와 평등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이라고 김부타스는 설명한다. 이러한 여신 중심의 평등 사회가 유목민족인 쿠르간족의 침략으로 무너진 뒤 ‘아버지 신’을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가 이식되고, 그 과정에서 여신들은 호전적인 남신들의 아내나 딸로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그나마도 그리스도교의 출현 이후에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쟁 없는 시기’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신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수정하려는 시도라고 본 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관점에 따라 우리는 여신 운동을 현재적 맥락에서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만들려는 실천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과 기후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이 책을 통해 평화와 평등의 언어와 연결되기를 바란다.
추천평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늘 떠오르던 ‘불온한 질문’이 있었다. 과연 제우스는 진짜 올림푸스의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일까. 여신들은 정말 제우스의 명령에 고분고분 복종했을까. 여신들의 권력은 진정으로 남신들보다 약하기만 했던 것일까. 그 후 나는 여신들의 권위가 서양의 역사에서 체계적으로 비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말고도 수많은 여신들이 그리스 신화의 명실상부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여신의 언어, 권력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포용과 치유를 꿈꾸는 여신의 언어를 찬란하게 복원함으로써 우리에게 ‘잃어버린 여신들의 파라다이스’가 이미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일깨워준다. 이 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 당신은 위대한 여신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기 안의 잃어버린 아니마(무의식의 여성성)의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정여울 (《문학이 필요한 시간》, 《감수성 수업》 저자)
고고신화학의 개척자 마리아 김부타스는 세계 6대 사이트 발굴을 이끌면서 고고학 비교종교학 민담연구 언어학의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유물의 메타언어를 해석하였다. ‘인류 초창기의 신들은 여신이었다’는 사실은 깊이 묻혀 있던 진실이다. 직접 땅에서 발굴한 유물에서 당시의 신화 문법과 체계를 판독해낸 결실이 이 책 『여신의 언어』다. 김부타스는 역사 이전 기나긴 인류사를 여신시대라 통칭한다. 땅과 달에 친연성을 갖는 이 시기 핵심 상징들을 분석하며 당시의 사회, 경제, 종교 이데올로기가 지금과는 전혀 달랐으며, 이 시기 예술의 모티브와 주요 이념은 ‘생명에 대한 찬미’였다고 결론 내린다. 여신시대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평등과 평화를 실현하고 예술이 찬란하게 꽃핀 시기였음을 밝혀낸다. 인류 초창기의 신들은 여신이었다는, 가장 특별한 ‘처음’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착했다. 이 발견은 단군신화가 비교적 최근의 역사임을 드러내주었을 만큼 우리의 기원을 훨씬 멀리 퇴각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지평을 열어주었다. 뭇 생명들이 위협받는 현 시점, 무엇보다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새롭게 상상하게 해주는 책이다.
- 고혜경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기원전 7000~3500년경 유럽 신석기 초기 유물 2000여 점을 분류하고 해석한 김부타스는 회화적 모티프의 근간이 되는 용어사전을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이 시기 종교의 주요한 맥락과 중심 주제를 확립했다. 이 시기의 믿음은 우주가 위대한 어머니 창조 여신의 몸이고, 우주에 내재된 만물은 여신의 신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제임스 조이스가 ‘악몽’이라 진단했던 지난 5000년의 짧은 지구 역사 이전에, 지금과는 전혀 다른 4000년의 역사가, 자연의 창조적 에너지와 부합하는 조화와 평화의 시기가 실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전 지구가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
- 조셉 캠벨 (신화학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의 힘》 저자)
수십 년 연구의 결실인 이 책은 인류사를 지탱해왔던 힘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완전히 당혹스럽게 만드는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심오하게 영향을 미치는 학자, 김부타스는 분명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 에바 C. 쾰스 (미네소타대학교 교수, 《남근의 지배The reign of the Phallus》 저자)
김부타스는 여신의 언어가 서양 문화 전반을 떠받친다는 자신의 논증을 입증하기 위해 비교신화학, 인류 초기사 자료, 언어학, 민속학, 민담을 잘 엮어냈다. 그림 자료로 가득한 이 아름다운 책에 전 세계 고고학, 종교학, 고전학 독자들은 흥분할 것이다.
- 리타 매 브라운 (《루비프루트 정글》 저자)
인류 초창기 여신 이미지에 대한 놀라운 개관.
- 바바라 G. 워커 (《흑설공주 이야기》 저자)
여신을 숭배한 과거에 대한 지식이 비폭력, 성 평등, 대지가 중심인 미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해주는 확실한 고리가 될 것이다.
- 《뉴욕 타임스》
여성주의 학문의 새로운 파도 중에서 가장 가슴 뛰는 사례.
- 《워싱턴 포스트》
고대 여신 전통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저작.
- 《보스턴 글로브 매거진》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872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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