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책소개
전작 『반역자와 배신자들』로 전쟁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작가 이준호의 신간, 『생존자들』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세기를 비명의 늪에 빠뜨렸던 2차 세계대전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중에서도 특히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주목한다.
지옥을 알리기 위해 아우슈비츠로 걸어 들어간 폴란드 군인, 미국 정보원과 대통령 보좌관까지 지낸 ‘리옹의 인간 백정’,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지성과 창조성을 빛낸 예술가들……. 생존자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이 책은 한 사건의 집단 생존자들,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 영웅적 행동으로 승리자가 된 군인들, 가해자를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이겨낸 사람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부지한 악인들 등 다채로운 사례를 조명한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모으면서 저자는 전쟁이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모습, 다시 말해 연대와 의지와 생명력이 전쟁 속에서 얼마나 뜨겁게 불타오르는지를 역설한다.
목차
들어가며
1부 매스 서바이버
1장.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900일의 악몽, 레닌그라드 시민들
2장. 제3제국의 타이타닉, 독일 유람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생존자들
3장. 마르세유를 거쳐 자유를 얻다, 빌라 에르벨의 방랑자들
2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사람들
4장. 강요된 패장에서 최후의 승리자로, 조너선 웨인라이트
5장. 지옥을 알리기 위해 지옥으로 들어가다, 비톨트 필레츠키
6장. 검은 튤립의 전설을 쓴 사나이, 에리히 하르트만
7장. 가해자에게 할 수 있었던 최대의 복수, 알렉산드르 페체르스키
3부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
8장. 죽을 때까지 밝힐 수 없었던 이름, 베를린의 무명 여인
9장. 살아남을 운명이었던 불굴의 여인, 비비안 불윙클
4부 예기치 못한 운명에 휩쓸리다
10장. 죄책감에 무너진 비운의 희생양, 찰스 맥베이
11장. 태평양 전쟁 제1호 포로, 사카마키 가즈오
5부 가해자를 용서하다
12장. 사선을 넘어 백악관까지 간 사나이, 조지 부시
13장. 극한의 고통을 용서로 승화시키다, 에릭 로맥스
6부 악인의 생존 방법
14장. 리옹의 인간 백정, 클라우스 바르비
15장. 일본 제국의 괴벨스, 오카와 슈메이
나가며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이준호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의 해외 거주 경험과 여행 등을 통해 많은 전적지와 박물관을 견학했으며 인문과 역사에 대한 견문을 끊임없이 넓혀왔다.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했고 학창 시절부터 한계 상황에 몰린 인간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스토리들의 배경이 주로 전쟁과 연관되었다는 점에서 전쟁사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수많은 관련 영화, 다큐멘터리, 서적 및 자료를 가리지 않고 탐독했...
책 속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힘없이 죽어가는 한편 극한의 상황에서도 놀라운 정신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기적처럼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기적같이 생존한 사람들’의 놀랍고도 전율할 만한 생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자 살아남은 배경이나 상황은 전부 다르지만 이들의 생존은 하나하나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다는 점이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전범이나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수단을 사용하여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
우리는 이들의 극한 생존기를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흉포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에 대한 도전과 핍박에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또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역시 알 수 있을 것이다.
--- pp.4-5
일가족이 모두 죽는 경우도 다반사였는데,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당시 불과 11살의 소녀였던 타티야나 사비체바의 사례였다.
레닌그라드 출생으로 불과 6살 때 아버지를 잃었던 타티야나는, 안네 프랑크가 암스테르담의 은신처에서 일기를 쓴 것처럼 레닌그라드 포위전 당시 상황을 노트에 남겼다.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공책 한쪽에 가족 6명의 죽음을 분 단위까지 나눠 순서대로 기록했다.
처음에는 언니가, 이후 할머니, 오빠, 삼촌들이 죽었고 마지막으로 1942년 5월 13일에 타티야나의 엄마가 죽었다.
이후 그녀는 다행히도 레닌그라드 밖으로 대피할 수 있었지만 오랜 영양실조에 따른 결핵으로 1944년 7월에 사망하게 된다. 타티야나의 일기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었다.
그녀의 일기의 마지막엔 “타냐(타티야나의 애칭) 혼자 남았다”라는 짧은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 p.20
독일인들에게 최상의 편의와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승객들과 함께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엄청난 비극이 벌어진 가운데에서도 신생아 한 명을 포함한 1,252명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생존자들 상당수가 동부 출신 피난민들(한국으로 치면 이북 출신 피난민)이었는데, 훗날 독일 사회에서 귀환 전쟁포로, 생존 여성들(원래 의미는 폐허를 치우는 여인들) 및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1950년대 경제 부흥을 이룬 한 축이 되었다.
--- p.41
해상 루트와 더불어 난민들이 이용했던 루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탈출하는 육상 루트였다.
사실 이 루트를 자신만의 노하우로 개척한 사람은 골드의 지원을 받아 탈출했던 독일계 유대인 알베르트 허슈만이었다.
독일 출신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던 허슈만은 스페인 국경 근처의 바이율쉬르메르까지 이동한 후 누이와 함께 험준한 피레네의 산길을 걸으며 밤새 이동한다.
언제 프랑스 경찰이나 국경수비대가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역의 포도밭 농사꾼이나 양치기 몰이꾼으로 위장해 여정을 이어갔고 결국 국경을 넘어 스페인에 도달했다.
이후 허슈만은 누이를 먼저 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다시 마르세유로 돌아와 골드 일행과 합류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이 ‘피레네 루트’를 지속적으로 왕복하며 다른 이들이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도왔다
.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었지만 허슈만 덕분에 많은 이들이 국경을 넘었고 나치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그는 훗날 뉘르베르크 전범 재판에 독일어 통역으로 참여하며 나치의 단죄에 힘을 보탠다).
--- p.49
이곳으로 난민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럽, 아니 세계 최고의 지성을 갖춘 사람들로, 작가이자 예술가였고 다수가 유대인이었다.
식당에서는 독일 출신의 유대계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글을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하고 있었고, 야외 수영장에서는 독일인 화가 막스 에른스트가 나체로 수영을 즐기곤 했다.
초현실주의의 창시자 격인 프랑스 시인 앙 드레 브르통은 2층 서재에서 사색과 독서를 즐겼다.
역시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을 주도했던 화가이자 조각가 마르셀 뒤샹이나 스페인 화가 오스카 도밍게스의 모습도 보였고, 쿠바 출신의 중국계 화가인 위프레도 람도 사람들과 정원을 거닐기를 좋아했다.
더불어 훗날 『슬픈 열대』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는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나 베스트셀러 작가 하인리히 만과 프란츠 베르펠이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강렬한 색채로 유명했던 러시아 출신 유대인 화가 마르크 샤갈은 인근 자택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부인과 함께 종종 이곳을 방문하곤 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예술가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이들은 비록 난민 신세였지만 자신들의 존엄을 잃지 않았고 신세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 p.52
1943년 4월에 웨인라이트와 다른 117명의 고위 포로들은 일본 남쪽 가고시마 인근의 수용소로 옮겨진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이곳에 도착한 후 얼마간은 구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식량 배급은 큰 변화가 없었고 포로들은 여전히 굶주렸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본국에 편지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는 점이다.
웨인라이트는 그의 부인 아델에게 자신의 체중 감소를 우회적으로 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여보! 나는 잘 지내고 있소. 내 몸무게는 우리가 결혼했을 때 수준으로 양호하오.” 하지만 답장은 도착하지 않았다. 일본군이 외부 소식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하여 의도적으로 숨겼던 것이다.
--- p.71
아우슈비츠는 문자 그대로 인간이 만든 ‘현세의 지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지옥 같은 곳을 자발적으로 들어갔다가 탈출한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용감하다 못해 무모했던 인물은 폴란드 출신의 군인으로, 그의 믿기지 않는 체험을 통해 베일에 쌓여 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상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었고 전후 나치 관련자들의 범죄를 처단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의 놀라운 이야기만큼 그 삶에도 굴곡이 많았는데, 마치 폴란드라는 나라의 뒤틀린 현대사를 압축해 놓은 것과 같았다. 지금부터 이 ‘굴곡진 운명을 가졌던 사나이’의 인생 행로를 함께 걸어보자.
--- p.78
하르트만은 전쟁 중 총 16번 비상 착륙했다.
다시 임무에 복귀한 하르트만은 9월 20일 마침내 100번째 적기를 격추하며 같은 기록을 달성한 54번째 독일군 조종사가 되었다.
10월 29일에 그간의 공적으로 기사 철십자훈장을 받았고, 1943년 말까지 그의 킬마크는 159대에 달했다. 이즈음부터 그의 기수에는 검은색의 튤립 문양 마크가 그려진다.
‘검은 튤립’의 전설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소련군은 그를 ‘검은 악마’로 부르며 두려워했고 만 루블의 현상금까지 걸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전성기는 아직 오기도 전이었다.
--- p.103
페체르스키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고 오히려 나치 감독관을 압도했다.
자리를 떠난 프란첼이 잠시 후 다시 돌아오며 빵과 버터를 가져다주었다.
이때 페체르스키는 목숨이 두 개가 아니라면 감히 할 수 없는 발언을 했으니, 자신은 “배가 고프지 않다”며 당당하게 그 제안도 거절했던 것이다.
잠시 후 프란첼은 말없이 사라졌다.
이 소설 같은 영웅담은 수용소에 빠르게 전파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면서도 쉽게 믿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목격자가 많았기에 페체르스키는 순식간에 ‘수용자들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그날 밤 군인 출신의 유능한 리더를 애타게 찾고 있던 폴란드계 유대인들이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난 것이다.
--- p.122
결국 두 사람은 탈출, 아니 봉기의 방식에 합의를 보았고 날짜까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점호 전에 친위대 감독관들을 유인하여 대거 살해한다.
이후 오후 5시 점호 때 야외 작업이 있다는 거짓 명령을 내려 가스실 작업 인원은 빼고(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었다) 모든 인원들이 다같이 수용소 밖으로 걸어서 나간다.
페체르스키는 친위대 감독관들만 없다면 경비병들이 지휘관 없이 우왕좌왕하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일견 말도 안 되는 미친 계획처럼 보였지만 앉아서 가만히 죽는 것보다는 나았고, 사실 더 좋은 대안도 없었다.
거사의 시기는 대략 10월 중순으로 잡았고 얼마 후 10월 14일로 결정되었다.
--- p.124
1940년 7월 베를린은 프랑스와 서유럽에서 승리한 자국군의 승전 퍼레이드로 온 도시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시의 중심가인 운터 덴 린덴에는 환희에 넘친 군중들로 가득했고 인생의 정점을 맞은 히틀러가 보무도 당당한 그의 군대를 사열했다.
하지만 불과 5년 후인 1945년 4월 베를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과 활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시내는 포연이 가득한 회색빛의 폐허였다.
사방을 둘러싼 붉은 군대의 포위망에 갇힌 채 도시는 서서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 p.135
전후 베를린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로 상처를 받거나 성병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했던 시민들의 숫자만 10만 명이었다.
영국 역사가 엔터니 비버에 따르면 독일 전체로는 200만 명이 전쟁 전후에 벌어진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전후 1946년에서 1947년 사이 독일 신생아의 3~4% 정도가 소련군의 성폭행으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 p.142
여성 포로들은 여러 형태의 모욕을 강요받았는데, 수용소에서 일본군과 마주칠 때는 무조건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해야 했다.
또한 맨손으로 화장실 배설물 처리 등에 동원되었고 매일 벌어지는 ‘텡코’(일본어로 점호라는 뜻)에서 천황이 있는 도쿄 쪽을 향해 인사했고 “일본은 일등이며 영국과 미국은 꼴등”이라는 식의 유치한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쳐야 했다.
포로들은 자조 섞인 농담으로 “일본군은 죄수와 여자를 가장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자신들이야말로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최악의 존재였던 것이다.
--- p.161
고통을 참지 못한 병사들은 소금기 강한 바닷물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으로, 이들은 곧 입에 거품을 물고 부풀어 오른 입술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2~3미터 정도 크기의 작은 구명정에 여러 명이 타다 보니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일부는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허기에 지친 병사들은 탈수와 태양열 탓에 이미 반쯤 정신착란 상태가 되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바다에서는 부상자들의 피 냄새를 맡은 살인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상어였다.
--- p.179
일본군의 기준에서 본다면 사카마키는 살아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황국의 군인’으로서 목숨을 바쳐 임무를 수행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자결로라도 끝까지 충성을 다해야 했다. 포로가 된다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가문과 국가에 대한 배반이자 지독한 수치로 여겨졌다.
그를 감시하는 미군 관계자들이나 경비병들은 딱히 구타나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지만 사카마키에게는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고, 결국 견디다 못한 그는 정식으로 자살하게 해달라고 미군에 요청한다.
미군 담당자는 사카마키가 정신이 나갔다 생각하며 그저 웃을 뿐이었고 당연히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p.193
세상에는 선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인보다 더 많은 악인들이 전쟁에 참여했고 그들은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아남았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잘 읽었고 자신들의 악마적 장점을 승자에게 최대한 어필했다.
어떤 이들은 육체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척하며 심판 을 피하려 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조합으로 이들은 당시 상황에서 최적의 생존 방정식을 완성한다.
--- p.237
출판사 리뷰
★ 문화체육관광부 성장·도약 제작지원 사업 선정작
지옥을 알리기 위해 아우슈비츠로 걸어 들어간 폴란드 군인,
나치의 고문 기술자에서 중남미의 대통령 보좌관으로 변신한 ‘리옹의 인간 백정’,
체포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지성과 창조성을 빛낸 예술가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불구덩이에서 살아남은 인간들,
역사적 맥락과 인간 존재의 본성으로 뒤얽힌 그들의 생존 기록
전작 『반역자와 배신자들』로 전쟁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흥미로운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작가 이준호의 신간, 『생존자들』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20세기를 비명의 늪에 빠뜨렸던 2차 세계대전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중에서도 특히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주목한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특정 집단과 국가의 적’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체포되거나 살해당했던 이 극한의 상황에서 기적같이 살아 돌아온 이들. 이들이 각자 살아남은 상황이나 위치는 전부 다르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배경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읽는 것은, 굵직한 세계 역사의 연대표에서 누락된 개인들의 입장과 성취를 발굴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환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생존자들의 면면은 매우 다양하다.
『생존자들』은 한 사건의 집단 생존자들,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 영웅적 행동으로 승리자가 된 군인들, 가해자를 용서하고 트라우마를 이겨낸 사람들,
그리고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부지한 악인들 등 다채로운 사례를 조명한다.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모으면서 저자는 전쟁이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모습, 다시 말해 연대와 의지와 생명력이 전쟁 속에서 얼마나 뜨겁게 불타오르는지를 역설한다.
“우리는 이들의 극한 생존기를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흉포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에 대한 도전과 핍박에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또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역시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무엇보다도 위대하다.” (본문)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인간은 왜 멀리 보지 못하는가
인간은 역사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가
……인간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
이들의 생존 역사는 곧 인류의 생존 역사다
생존자들은 저마다의 지옥을 견뎌내 결국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1940년 반나치 예술가들의 탈출을 기획하고 지원한 미국인 배리언 프라이는, 마르세유 외곽의 한 비밀스러운 저택에 자신이 돕는 유럽 지식인 및 예술가들을 위한 안식처를 마련했다.
이 저택 ‘빌라 에르벨’에 모인 이들은 한나 아렌트,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브르통, 마르셀 뒤샹, 위프레도 람, 클로드 레베스트로스, 하인리히 만, 마르크 샤갈 등 다양했다.
이들은 비록 난민 신세였지만 자신들의 존엄을 잃지 않았고 신세를 비관하지도 않았다.
대개 매주 일요일이면 앙드레 브르통과 그의 부인 재클린이 주도하는 모임이 열리곤 했다.
단순한 티타임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 지성인들의 ‘지적 유희장’이자 ‘토론장’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현장에서 시와 대사가 탄생했고 노래가 즉흥적으로 흘러나왔다.
이들은 서로의 컨디션과 사기를 올리기 위해 때때로 파티를 열기도 했는데 저마다의 개성이 가득한 즉흥 복장을 만들어 참여하곤 했다.
특히 화가들이 초현실주의적인 복장으로 등장했고 다른 사람들이 의상을 만드는 데 함께했다.
술과 담배 연기가 이들의 지적 대화와 웃음소리에 어우러지면서 ‘초현실주의 파티’의 긴 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렇게 이들은 유럽을 떠날 수 있는 비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절망의 시대에 진정한 유머와 사랑을 꽃피웠다.
한편 베를린이 소련군에 함락된 후 끔찍한 범죄에 노출된 이도 있다.
당시 베를린 여성들은 복수에 눈이 먼 소련군들로부터 무차별적인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당시 얼마나 많은 독일 여인들이 자살했는지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한다.
전후 베를린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폭행 피해로 상처를 받거나 성병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했던 시민들의 숫자만 10만 명이었다.
영국 역사가 엔터니 비버에 따르면 독일 전체로는 200만 명이 전쟁 전후에 벌어진 집단 성폭행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전후 1946년에서 1947년 사이 독일 신생아의 3~4% 정도가 소련군의 성폭행으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8장에서 다루는 ‘무명 여인’ 역시 이들 중 하나로,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세세히 기록하여 종전 후 출간하면서 당시 승자인 소련군이 독일 여성들에 자행했던 수많은 폭력을 고발했다.
책이 나오자마자 독일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비평가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주된 비난은 이 책이 ‘독일 여성들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저자가 소련군의 만행을 강조하여 반공 분위기에 편승하려 한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러한 반응 때문인지 독일에서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고 만다.
‘무명 여인’은 평생 다시는 이 책을 출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 결심을 지켰다. 이 책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저자의 사후인 2003년의 일이었다.
생존자들 중 피해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6부 ‘악인의 생존 방법’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을 떨쳤던 두 사람의 생존기 또한 다룬다.
그중 클라우스 바르비는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나치 친위대로, 유대인과 레지스탕스 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하여 ‘리옹의 도살자’라는 수식어를 얻은 인물이다.
그는 고아원을 습격하여 어린 아이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기까지 했다.
독일이 패망하면서 그의 운명도 막다른 길에 다다를 것 같았지만, 그의 대공 첩보 및 정보 수집 능력을 높이 평가한 미국이 그를 정보요원으로 활용하면서 보호하게 된다.
이후 바르비는 여러 나라를 거치며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고위 권력층에까지 손을 뻗치면서 당당히 양지에 나와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바르비를 끝까지 추적한 나치 사냥꾼들에 의해 결국 그의 정체가 탄로 났지만, 그를 보호해 주었던 국가 권력의 도움으로 죗값을 별로 치르지 않았다.
이처럼 생존자들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똑같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각기 다른 전쟁을 치른 셈이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떠나 이들은 생존의 의지를 벼리며 전후 세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세계를 다시 휘감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등,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폭력과 화염이 들끓고 있다.
전쟁 기술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과거보다 더 잔혹한 살상 무기와 더 교묘한 정보 및 언론 통제가 전쟁 지역과 비전쟁 지역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다.
오늘도 겨우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들과, 숨 쉬는 게 너무도 당연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생존’의 의미는 아주 다를 것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극악의 고통이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과거 생존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이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거대 역사와 권력 앞에서도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생존자들.
지금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있게 한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이자 지금과 미래의 폭력 앞에서 우리 역시 살아남기를 포기하지 않게 할 힘이 되어 준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1700150>
'24.폭력연구 (박사전공>책소개) > 5.폭력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발트 레드 (2025) 콩고의 피는 어떻게 우리 일상을 충전하는가 (1) | 2025.01.29 |
---|---|
야만 대륙 (2025) -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 잔혹사 (0) | 2025.01.27 |
기억 서사 (2004) (0) | 2025.01.13 |
인간 이하(2022) - 타인을 인간 이하로 보는 비인간화에 대한 거의 모든 역사 (1) | 2024.02.08 |
폭력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2023) (0) | 202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