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세계사 이해 (독서>책소개)/2.세계문화

씻는다는 것의 역사 (2025) - 우리는 왜 목욕을 하게 되었을까?

동방박사님 2025. 3. 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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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어떤 목욕 방식을 좋아하세요?”
목욕에는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목욕탕 풍경을 떠올려보자. 가운데 있는 온탕과 열탕에서 어른들이 몸을 풀고, 건너편에 있는 냉탕에서 아이들이 첨벙거린다. 

수도꼭지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이태리타월로 때를 밀고, 샤워기 물을 맞으며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목욕관리사에게 등을 맡기고, 탈의실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있다. 무척이나 익숙한 목욕탕 풍경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친숙한 이런 공중목욕탕의 모습은 다른 나라,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목욕은 동물의 본능적인 습성인 동시에 인류의 문화이기도 하다. 

인간이 목욕하는 방식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져 왔다. 증기를 쬘지, 탕에 전신을 담글지, 때를 밀지, 씻는 대신 옷을 갈아입을지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 시대에는 타인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해서 전신욕을 잘 하지 않았지만, 고대 로마인들에게 공중목욕탕은 매일 들러야 하는 필수적인 사교 활동의 장이었다.

이인혜 저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동안 전국 각지의 목욕탕을 돌아다니며 목욕탕 문화를 연구했다. 『

씻는다는 것의 역사』는 하루에도 두 번씩 목욕하며 동네 목욕탕을 찾아다닌 저자의 경험과 연구를 고스란히 담았다. 위생 관리 방법, 공공복지, 속죄 행위, 종교 의식, 사교 활동, 계몽 운동…. 오늘날 일상이 된 목욕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인더스 문명의 목욕탕 유적부터 오늘날 한국의 동네 목욕탕까지, 목욕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역사적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목차
들어가는 글 : 당신의 첫 목욕은 언제였나요?

1부. 세계 목욕의 역

1 문명의 시작점에서 함께하다 : 모헨조다로와 고대 그리스의 목욕 문화
2 테르마이, 뜨거운 곳 :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
3 더러운 것이 성스러운 것이다 : 초기 기독교의 목욕관
4 탕이 없어도 목욕을 할 수 있을까? : 이슬람의 공중목욕탕, 하맘
5 생겼다가 또 다시 사라진 목욕탕 : 십자군 전쟁 이후의 유럽
6 목욕, 명예를 회복하다 : 유럽 신흥 계층의 등장
7 셜록 홈스는 목욕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 산업 혁명과 도시화
8 깨끗함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삼다 : 북미의 목욕 문화
9 영혼을 담은 증기를 쐬다 : 핀란드의 사우나
10 영혼을 정화하는 축제 : 인도의 쿰브 멜라
11 비슷하지만 다른 : 일본의 센토

2부. 한국의 목욕 문화

1 목욕으로 죄를 대신 갚다 : 삼국 시대의 목욕
2 개울에서 몸을 씻다 : 고려의 목욕
3 알몸을 보이는 것은 예가 아니다 : 조선의 목욕
4 온천을 찾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다 : 조선의 온천
5 가장 가까이 있는 치료소 : 조선의 한증
6 약물로 몸을 씻어 건강을 기원하다 : 민간의 세시 풍속
7 씻지 않음은 곧 미개함이다 : 구한말의 위생 관념
8 기차 타고 온천 나들이 : 일제 강점기 목욕탕과 관광
9 차별과 감시의 공간 :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목욕탕

3부. 공중목욕탕과 현대 한국 사회

1 우리에게 필요한 건 테레비보다는 목욕탕: 공중목욕탕의 보급
2 너희 집에는 욕조 있어? : 주거 형태와 욕실의 변화
3 오르기만 하고 내려오진 않아 : 목욕탕 이용 요금 변천사
4 이 수건은 훔친 수건입니다 : 공중목욕탕 이용 예절
5 유흥과 사치의 공간이 되다 : 강남 개발과 고급 사우나
6 집 같지만 집 아닌 장소 : 한국인과 찜질방
7 누구나 때가 있다 : 때밀이와 이태리타월
8 서울은 네모, 경상도는 둥글 : 환경오염과 목욕탕 굴뚝
9 목욕탕은 추억으로 남아 : 동네 목욕탕과 느슨한 공동체

나가는 글 : 목욕은 지속될 수 있을까


저자 소개 
저 : 이인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며 한국의 목욕 문화를 조사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서해안 어촌의 여성 금기와 서해 5도 민속 의료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책 속으로
이 글을 열었던 최초의 질문 ‘당신의 첫 번째 목욕은 언제였습니까?’로 돌아가 보자. 

인터뷰어와 나의 대답이 ‘태어난 병원에서 의료진의 손으로 목욕이 진행되었다’에서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확신한 까닭은 아마도, 그와 내가 국가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료 체계와 기반 시설을 갖춘 장소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내가 속한 대한민국의 문화와 상당히 다른 지역이나 종교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면, 아니면 내가 조선 시대에 산파의 손에서 태어나 복숭아나무 가지 끓인 물로 목욕을 했던 사람이라면 나는 그가 원하는 답을 해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나 역시도 호기심에 차서 그의 답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들어가는 글 당신의 첫 목욕은 언제였나요」중에서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들에게 공중목욕탕은 어떻게 보였을까? 

공중목욕탕은 단순히 씻는 곳이 아니었다. 여가와 쾌락의 공간이고, 때로는 남녀 혼욕이나 매춘까지 발생하는 장소였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공중목욕탕은 죄악의 구렁텅이, 악마의 소굴로 여겨졌을 것이다. 목욕도 마찬가지였다.

초기 기독교에서 금욕주의는 보편적이지 않았지만, 3세기와 4세기를 거쳐 점차 확산되었고, 수도승, 성인들은 씻지 않음으로써 육체적 고행을 자처했다.

 목욕으로 획득하는 신체적 쾌락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더러움은 성스러움의 증표였는데, 이러한 고행은 ‘씻지 않은 상태’라는 뜻의 알로우시아라고 한다.
---「1부 3.더러운 것이 성스러운 것이다」중에서

이 특별한 증기를 ‘뢰윌뤼’라고 부른다. 핀란드어로 ‘회위뤼’는 증기나 수증기를 의미하지만, 사우나에서 발생하는 증기를 가리킬 때는 ‘뢰윌뤼’를 사용한다. 

뢰윌뤼라는 단어에는 ‘정신, 숨, 영혼’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사우나의 핵심인 뢰윌뤼는 사우나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뢰윌뤼를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사우나를 방문하고, 그 경험과 지식을 타인과 공유한다.
---「1부 9.영혼을 담은 증기를 쐬다」중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세면대를 공유하는 현대와 다르게, 조선 시대에는 개인별로 전용 대야를 소유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 본인, 그리고 하인들까지 각자의 방에 자신의 대야를 걸어두었다. 따라서 하인까지 두며 살았던 부유한 양반 가정의 경우에는 한집에서 사용하는 대야만 해도 열 개가 넘어갔다. 

밥그릇보다 대야의 수가 더 많았다. 그렇기에 조선 시대 사람들이 부분욕을 선호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전신욕을 즐기던 시절보다 더 지저분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2부 3.알몸을 보이는 것은 예가 아니다」중에서

이러한 구조는 20세기 초반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위생경찰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과 대비 되는데, 일본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이 제도를 유지했다.

 일제에게 조선 사람들이 실제로 신체를 깨끗하게 관리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배하는 자에게 지배받는 자는 항상 관리와 감독의 대상이었다. 

공중목욕탕은 몸을 씻는 장소인 동시에 일본인의 시선으로 조선인의 신체와 청결을 검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2부 9.차별과 감시의 공간」중에서

이태리타월은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는지 모조품까지 나왔다.

 1969년 한 장당 30원에 판매하던 이태리타월을 모방해서 장당 28원씩 1,200장을 팔아치운 위조범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특허 소유자인 김필곤에게 “까불면 죽인다”며 협박도 했다.

157 1974년에는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모조품 5만 4,000장을 한 장에 33원씩 전국의 공중목욕탕에 판매한 사람이 특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렇듯 이태리타월은 단순한 목욕 도구를 넘어서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3부 7.누구나 때가 있다」중에서

인구의 이동이 잦고, 직업과 목적에 따라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도시에서는 지역 기반의 공동체가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오래된 공중목욕탕에서는 여전히 사적이고 지역에 기반을 둔 집단이 형성되고, 시간이 흐르며 공동체로 고착되었다. 만날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중목욕탕에 모였다. 

마치 농촌의 마을회관이나 정자와 같았다. 이곳의 구성원들은 지역사회와 이웃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했다. 공중목욕탕은 도시 거주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3부 9.목욕탕은 추억으로 남아」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화가 된 목욕, 변화하는 목욕 풍경

인류는 언제부터 목욕을 해왔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목욕의 흔적은 유적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에 있다. 기원전 3000년 전에 형성된 고대 도시 모헨조다로의 곳곳에는 수로와 우물이 있고, 중앙에 대목욕탕이 자리 잡고 있다.

 목욕은 인류 문명과 함께해 왔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종만의 고유한 행동은 아니다. 

어류, 조류, 다른 포유류들도 몸을 목욕을 하기 위해 모래나 진흙에서 구르고, 돌에 몸을 문지른다. 

신체를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욕구는 동물의 본능이다. 

그러나 인류의 목욕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목욕하는 방식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번 변화하고 후대에 전승된다는 것이다. 

인류에게 목욕은 습성을 넘어선 관습이자 문화이다.

목욕 문화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끼친다. 청결에 대한 관념, 종교적 교리, 목욕 시설의 보급과 도구의 개발, 자연환경까지 목욕에는 수많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얽힌다. 

4체액설을 믿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목욕은 체액의 균형을 맞추는 의료 처치였지만, 열린 모공을 통해 나쁜 공기가 몸에 들어온다고 믿었던 중세 유럽에서 목욕은 불결하고 두려운 행위였다. 

한국의 목욕탕에는 뜨거운 물을 담은 욕조가 필수적이지만, 고여 있는 물을 불결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목욕 시설에 탕을 만들지 않는다.

탕에서 때를 불려 이태리타월로 온몸을 벅벅 미는 현대 한국식 목욕도 다양한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 

한국의 목욕 문화는 삼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라졌는데,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개울에서 몸을 씻었던 고려의 풍습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에서는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고, 불결함을 미개함으로 간주하는 제국주의적 위생관은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탄압하는 근거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새마을 운동으로 지역 곳곳에 공중목욕탕이 세워졌고, 비누의 보급과 이태리타월의 발명으로 때밀이가 유행하게 되었다. 

찜질방이 등장해서 다른 나라에까지 찜질방 문화가 퍼지는 한편, 수도 시설의 보급으로 공중목욕탕에 가본 적이 없는 세대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목욕의 방식과 거기에 담긴 의미는 언제나 달라져왔다.

인더스 문명부터 현대 한국까지 광범위한 목욕 이야기!

이 책은 목욕을 둘러싼 역사적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고대 그리스부터 일본까지 세계사를 다루는 1부, 삼국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한국사를 다루는 2부, 해방 이후의 한국 공중목욕탕을 다루는 3부로 구성된다.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 오스만튀르크 제국, 중세 유럽, 산업혁명 시기 영국, 아메리카 선주민, 미국, 핀란드, 인도, 일본까지. 

인더스 문명부터 근현대 한국까지 다루며 목욕이라는 일상적 행위가 인류의 문명의 핵심적인 문화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책에 실린 다양한 도판과 일러스트 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에서 살펴보는 세계 각국의, 과거의 목욕 풍경은 현대 한국인에게는 꽤나 낯설다. 내용과 관련된 유적 사진과 유물 이미지를 실어 독자들의 내용 이해도를 높였고, 찜질방 쉼터나 목욕탕 탈의실처럼 사진으로 실을 수 없는 목욕탕 풍경의 경우 일러스트를 활용해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목욕은 당시 사회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풍습이다. 목욕은 위생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죄를 씻어내는 속죄 행위이자, 영혼을 정갈히 하는 종교 의식이고, 일상 속의 향락이며, 친교를 위한 사교 행위이고, 계급 유지를 위한 계몽적 행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신도 목욕탕에 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99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