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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럽의 장대한 역사를 모아둔 기억 저장고
핵심만 간추린 합스부르크 가문 천년사
합스부르크 가문을 빼놓고 유럽사를 논할 수 있을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가문으로 400년,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 가문으로 또다시 100년, 그들은 누구보다 오랫동안 유럽의 권력을 쥐고 흔들며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왔다.
그들의 역사는 유럽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고, 수많은 국가와 민족을 다스린 영광스러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왕위계승 전쟁, 근대화와 민족주의 분쟁 등으로 위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고 만다.
이 책은 10세기 작은 귀족 가문에서 출발해 유럽을 지배하다가 20세기에 결국 무너져 내리기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다사다난한 여정을 주요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핵심만 골라 압축했다.
곳곳에 배치된 가계도와 지도, 부가 정보글은 당시 복잡한 인물 관계와 유럽의 세력구도, 낯선 개념 등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종교개혁, 나폴레옹 전쟁, 1차 세계대전 등 세계를 뒤흔든 사건마다 중심에 있었던 그들의 역사는 너무도 치열하고 역동적이다.
그 굽이치는 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유럽사가 한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오늘날 유럽의 모습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목차
합스부르크 가문 주요 인물 가계도
프롤로그
1장 합스부르크 가문의 기원
2장 합스부르크 가문 최초의 왕들과 1282년 오스트리아 통치의 시작
3장 황제에 등극한 합스부르크 가문
4장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럽 팽창
5장 형제끼리 황위를 주고받은 카를 5세와 페르디난트 1세
6장 패권을 잡은 에스파냐
7장 황제 루돌프 2세와 마티아스
8장 30년 전쟁과 합스부르크 가문
9장 다모클레스의 검 아래 놓인 합스부르크 가문
10장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
11장 침체기와 과도기
12장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오스트리아 통치
13장 1차 세계대전
저자 소개
저 : 안드레아 C. 한저트 (Andrea C. Hansert)
독일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시민 문화 보호의 역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로 사회 발전과 문화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프랑크푸르트 역사 위원회에서 수여하는 요한 필립 폰 베트만 연구상을 받았다.
대학, 박물관, 재단 등과 협업하며 왕성하게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누가 왕이 되는가?: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합스부르크 가문과 ...
역 : 조한밀
어린 시절 10여 년 동안 독일에서 자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독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첫 직장생활을 항공사에서 시작했으나, 문화 교류에 공헌하고 싶다는 오랜 목표를 이루고자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해외에 소개하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유럽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주한독일문화원, 주독일한국문화원 등의 기관을 위해 다양한 글을 번역했다.
책 속으로
무엇보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독보적으로 만든 것은 그들이 다스린 광활한 영토였다. …
그들은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에서 헝가리, 네덜란드, 에스파냐, 포르투갈, 남이탈리아의 여러 왕국, 중남미의 식민지 지역과 수많은 군소 지방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토를 통치했으며 독일 서남부에 남아 있던 가문의 본토와 아프리카 북부 해안의 거점들까지 다스렸다.
말 그대로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프롤로그」중에서
1250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눈을 감으면서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프리드리히 2세의 사망으로 슈타우펜 왕조가 순식간에 몰락하자 신성로마제국은 약 20년 동안 대공위 시대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렸고, 그 결과 왕권도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처럼 손발이 마비된 제국의 어수선한 상황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1273년에 독일 왕으로 선출되면서 비로소 정리되었다.
결국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일개 백작들이 왕위에 올랐다.
물론 합스부르크 가문이 황제관을 차지하기까지는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이 1273년에 귀족 서열의 꼭대기에 오르고 이때를 기점으로 신성로마제국을 대표하는 통치 가문의 반열에 들어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3장 황제에 등극한 합스부르크 가문」중에서
---「1장 합스부르크 가문의 기원」중에서
프리드리히 4세는 1452년에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두 개를 로마에서 치렀다.
바로 결혼식과 황제 대관식이었다.
로마에 도착한 프리드리히 4세는 그곳에서 처음 본 포르투갈의 엘레오노르와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3일 뒤 국왕 부부는 교황의 집전으로 대관식을 거행했고, 이때 프리드리히 4세는 황제 ‘프리드리히 3세’로 즉위했다.
합스부르크 가문 최초의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장 황제에 등극한 합스부르크 가문」중에서
프리드리히 3세는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갈등에 대처하고 자신의 행동 범위 안에 있는 기회를 제때 포착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신이 합스부르크 가문을 선택해 세상에 보냈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프리드리히 3세가 즐겨 사용한 ‘A.E.I.O.U.’라는 비밀스러운 문자 배열만 봐도 그의 원대한 꿈을 엿볼 수 있는데, 이 표어를 두고 후세는 ‘오스트리아는 세계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Austria Erit In Orbe Ultima)’, ‘지상의 모든 제국은 오스트리아에 복종한다(Austriae Est Imperare Orbi Universo)’ 등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3장 황제에 등극한 합스부르크 가문」중에서
한편 막시밀리안 1세는 혼인 정책을 광범위하게 폈는데, 특히 프랑스에 맞서 추진한 정략결혼은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아들 미남공 필리프와 딸 마르가레테를 각각 1496년과 1497년에 카스티야·아라곤 왕가의 자녀들과 결혼시켰다. 하지만 마르가레테의 남편이자 에스파냐의 왕위 후계자인 후안이 결혼식을 치른 직후 세상을 떠나면서 에스파냐 왕위는 필리프와 그의 아내인 에스파냐 왕녀 후아나에게 넘어갔다.
---「4장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럽 팽창」중에서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이 가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장장 4세대에 걸쳐 근친혼을 반복했기 때문에 이렇게 영유아기 사망률이 높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자녀 세대의 경우 조상들의 수자가 현격히 적었다.
일반적인 부모 밑에 태어난 자녀는 6세대 위에 조상이 64명 있었지만, 레오폴트 1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조상이 12명에 불과하다.
즉 합스부르크 가문의 경우에 조상의 수가 일반적 경우의 20퍼센트에도 못 미친 것이다.
이렇듯 정치적·권력적 이유로 거듭된 근친혼의 결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많은 일원이 허약한 몸과 신체적 결함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혼인 정책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단절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9장 다모클레스의 검 아래 놓인 합스부르크 가문」중에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실레시아를 제외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세습영지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카를 7세에 이어 바이에른 공작이 된 그의 아들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를 포함해서 모든 선제후도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을 황제 ‘프란츠 1세’로 선출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 본인은 황후로 대관하길 거부했다.
그녀는 프란츠 1세에게 결정적 힘을 실어준 합스부르크 가문의 실권자였기 때문에, 황제보다 서열이 낮은 황후로 기록에 남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 강자의 위상을 되찾고 황가로서의 명예도 회복했다.
이처럼 전세를 역전시킨 것은 마리아 테레지아 개인이 이루어낸 성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다.
---「10장 마리아 테레지아와 요제프 2세」중에서
세르비아 비밀조직에서 총기 훈련을 받은 보스니아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이때를 노려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
이 사건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진 오스트리아와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제 암살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된 세르비아인들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평화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 프란츠 요제프 1세도 전쟁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끝내 생각을 굳혔다.
사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100년 동안 치러진 전쟁이 대부분 단기간 내에 끝난 것은 물론이고 국지전에 불과했던 이유는 메테르니히가 구축한 균형 체제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메테르니히 시대를 몸소 경험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발칸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그 불꽃이 다른 지역으로 튀지 않고 몇 달 안에 승패가 결정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의 발칸제국 침공은 세르비아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던 러시아를 도발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13장 1차 세계대전」중에서
공화국과 의회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현시대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복위하거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일은 영영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은 장대한 역사를 모아둔 기억의 저장고인 동시에 수많은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와도 같았기 때문에, 동반 성장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유럽 공동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합스부르크 가문의 의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에필로그」중에서
출판사 리뷰
짧고 굵게 압축한 합스부르크 천년사의 정수
10세기 알자스 지방에서 시작된 합스부르크 가문은 300여 년이 지나 1273년 루돌프 1세가 독일 왕으로 등극하면서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또 두 세기가 지난 1452년에 프리드리히 3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이후 영토 팽창을 거듭한 그들은 카를 5세, 막시밀리안 1세 등이 활약한 16세기 후반에 이르러 유럽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이후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왕위계승 전쟁, 근대화와 민족주의 분쟁 등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점차 내리막길을 걸었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같은 걸출한 인물이 등장해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1918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하고 만다.
독일 역사학자 안드레아 한저트는 이 책에서 출발부터 몰락까지 합스부르크 가문의 천년사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다사다난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흥망성쇠와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반드시 알아야 할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요령 있게 간추렸다.
곳곳에 배치된 가계도와 지도, 부가 정보글은 당시 복잡한 인물 관계와 유럽의 세력구도, 낯선 개념 등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혼인 정책과 유전병이 전부일까?
세계사의 주역 합스부르크 가문의 진면모
합스부르크 가문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가장 먼저 그들이 다스린 광활한 영토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세력 확장의 비결이었던 혼인 정책은 합스부르크 가문을 대표하는 특징이다.
에스파냐, 헝가리 등의 왕위계승권을 혼인을 통해 획득하며 영토를 넓힌 것이 잘 알려져 있지만, 작은 귀족 가문에서 독일 왕을 거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혼인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어렵게 획득한 왕좌를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했는데, 이는 유전병과 후사 단절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면모는 그들 역사의 일부일 뿐이다. 이 책은 유럽을 움직이는 주역으로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계사에 남긴 굵직한 발자취를 잘 보여준다.
종교개혁 당시 합스부르크 가문은 로마 가톨릭과 반(反)종교개혁을 수호하는 핵심 세력으로 활약했다.
자신들의 통치 지역에서 개신교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음을 고려할 때, 합스부르크 가문의 선택이 개신교였다면 역사는 다르게 쓰였을 것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이에 맞서 동맹국들과 함께 나폴레옹을 무너뜨렸으며, 향후 100여 년간 유럽의 질서를 확정한 빈 체제를 주도했다.
그러나 슬라브인을 제국 내부로 통합하려다가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이라는 유례없는 대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전쟁을 결심한 것이 빈 체제하의 세력 균형이 여전히 작동한다고 여겨, 단기간에 국지전으로 끝나리라고 오판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독특한 지배구조를 이해하면 유럽의 오늘이 보인다
유럽의 중세사와 근대사를 읽다 보면 우리에게 생소한 점들 때문에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배구조다.
군주 한 사람이 한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여러 나라를 다스린 일이 빈번했다.
그 중심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었다.
이 책은 이 낯설고 복잡한 지배구조의 원리에 대해, 여러 나라가 같은 사람을 군주로 삼지만 제각기 독립국으로 존재하는 체제, 즉 ‘동군연합(同君聯合)’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군주들은 이런 지배구조 아래 신성로마제국 시절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뿐만 아니라 헝가리, 네덜란드, 에스파냐, 포르투갈, 남이탈리아의 여러 왕국 등 다양한 국가와 지방을 다스렸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세운 이후에도 그 안에는 여러 국가가 속해 있었고, 헝가리인·체코인·폴란드인·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우크라이나인·루마니아인·슬로바키아인·슬로베니아인·이탈리아인 등 많은 민족이 섞여 살았다.
점차 민족 분쟁이 터져 나오고 그것이 절정에 달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패배함에 따라 이들은 제각기 독립하면서 나라를 세웠다.
이 책은 복잡하게 얽힌 중·동부 유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리고 유럽의 통합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깨닫게 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873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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