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샤대학
[ 同志社大學(동지사대학) ]
일본 교토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
도시샤대학일본 교토. 시인 윤동주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학교로 학교 안에는 그의 대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구분 -사립
개교일 -1875년
설립자 -니지마 조
소재지-일본 교토
면적 -871㎢
건물연면적 -267㎢
전임교원수 -1,929명(2011)
학생수 -2만 7,537명(2011)
장서량 -일본서적 약 158만권, 외국서적 약 88만권
홈페이지
http://www.doshisha.ac.jp
1875년 그리스도교 전도사이자 교육자였던 니지마 조[新島襄:1843∼1890]가 세운 도시샤에이학교[同志社英學校]가 전신이다. 설립 당시의 교사는 니지마 조와 미국인 선교사 제임스 D.데이비스(James D. Davis) 2명이었으며, 학생은 8명이었다. 1904년 도시샤전문학교로 교명을 바꾸었고, 1912년 '전문학교령'에 따라 도시샤대학이 되어 신학부와 영문과·정치경제부를 개설하였다. 1920년 '대학령'에 따라 대학이 되었다가, 제2차세계대전 뒤인 1948년 교육제도 개편에 따라 새로운 체제의 대학이 되었다.
2011년 현재 신학부·문학부·사회학부·법학부·경제학부·상학부·정책학부·문화정보학부·공학부·생명의과학부·스포츠건강과학부·심리학부·글로벌커뮤니케이션 등의 학부와 신학연구과·문학연구과·사회학연구과·법학연구과·경제학연구과·상학연구과·종합정책과학연구과·문화정보학연구과·공학연구과·생명의과학연구과·스포츠건강과학연구과·심리학연구과·글로벌스터디즈연구 과 등의 대학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속도서관에는 일본서적 약 158만권, 외국서적 약 88만권의 도서가 소장되어 있으며, 부설시설로는 언어문화교육연구센터·이공학연구소·아메리카연구소·인문과학연구소·그리스도교문화센터·학술정보센터 등이 있다.
그리스도교 정신과 국제주의에 입각한 자유스러운 학풍 속에서 많은 인재를 길러낸 대학으로 유명하며, 우리나라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이 이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메인 캠퍼스는 교토시 가미쿄구[上京区]에 있는 이마데가와 캠퍼스로, 이 외에 교타나베시(市)에 교타나베[京田邊] 캠퍼스가 있다. 도시샤대학·대학원, 도시샤여자대학·대학원, 도시샤중·고등학교, 도시샤여자중학교 ·고등학교, 도시샤코리중학교 ·고등학교, 도시샤국제중학교 ·고등학교, 도시샤초등학교, 도시샤국제초등학교 및 도시샤유치원과 함께 학교법인 도시샤를 구성하고 있다.
윤동주
[ 尹東柱 ]
1917∼1945. 시인.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아버지는 영석(尹永錫)이며,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아우 일주(一柱)와 당숙 영춘(永春)도 시인이다. 1931년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대랍자(大拉子)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 졸업하였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가을에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일경에 검거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생을 마쳤다.
교우 관계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함께 하숙 생활을 하였으며 그의 자필 시집을 보관, 출간한 정병욱(鄭炳昱), 초간 시집에 추모시를 쓴 유령(柳玲), 연희전문학교 후배 장덕순(張德順), 고향 후배 문익환(文益煥) 등이 있다.
처녀작은 15세 때 쓴 시 <삶과 죽음>·<초한대>이며, 이 두 편의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 습작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표된 작품을 살펴보면 광명중학교 4학년 당시 간도 연길(延吉)에서 나온 ≪가톨릭 소년(少年)≫에 동시 <병아리>(1936.11.)·<빗자루>(1936.12.)·<오줌싸개지도>(1937.1.)·<무얼 먹구사나>(1937.3.)·<거짓부리>(1937.10.) 등이 있다.
연희전문시절에는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 文友≫에 게재된 <자화상>·<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이 있다.
그리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20세를 전후하여 10여 년간 전개된 그의 시력여정(詩歷旅程)은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잃음으로써 삶의 현장을 박탈당한 동일성의 상실이 그 원천을 이룬다.
초기 시에서는 암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동시(童詩)에 깃들인 유년적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현실 파악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는 <겨울>·<조개껍질>·<버선본>·<햇빛·바람> 등이 있다.
후기 시로 볼 수 있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에 쓰여진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준다.
<서시>·<자화상>·<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윤동주의 시는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명령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였다. 동시에 특정한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체험한 것을 인간의 항구적 문제들에 관련지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에 도달하였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고, 1968년 연세대학교 교정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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