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버트 (1863~1949)
헐버트는 "한국의 은인"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으로 칭송 받는 인물이다. 그는 23세
때 국립 육영공원의 영어교사로 처음 한국에 와 5년 동안 교사생활을 한 후 귀국하였다가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왔다. 헐버트는 주로 문서선교에 헌신했는데, 그가 한국에 관해서 쓴 글들은 한국을 외국에 알리는 창구가 되었다. 그는 1903년에 창설된 한국YMCA의 초대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헐버트는 특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에는 고종황제의 밀사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외교적인 도움을 호소했으며, 1907년에는 고종에게 혜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외교적인 통로로 활용하기를 권고하여 이준 등 세 사람의 밀사를 파견 하도록 하였다. 헐버트 자신도 헤이그로 가서 유럽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호소 하였다. 헐버트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 고종으로부터 비자금을 독립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 달라는 밀명을 받는등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노력 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로 병탄된 후에도 헐버트 강연과 기고를 통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헐버트는 광복후 이승만의 초청으로 87세의 노구를이끌고 한국에 다시 왔다가 1949년 8월5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트 사원 보다 한국에 묻히고 싶다" 는 유언에 따라서 양화진에 안장 되었다. 양화진에는 태어난진 1년만에 죽은 아들 (쉘던 헐버트 1896~1897) 도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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