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보산 사건 이후 파괴된 평양의 화교 거리. 1931년 7월만보산 사건만보산 사건(萬寶山事件)은 1931년 7월 2일에 중국 만주 지린성 장춘시 관성구 싼싱바오(三姓堡)에 있는 만보산 지역에서 당시 만주로 대량 이주한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 사이에 수로(水路) 문제가 발단이 되어 일어난 충돌 및 유혈사태로, 만주사변을 촉발했다. 만보산 사건은 일본의 술책도 있지만 임오군란 때 청나라의 경제적 침략자로서 동원된 한족 화교들에 대한 반감에 의한 조선인들의 민중 항의이기도 하였다. 국제연합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였던 구웨이쥔의 보고서를 따르면 평양 지역 사망자는 133명이다.만보산 사건의 배경이 된 이퉁 강 관개수로만보산 사건의 배경과 진행일본은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만주 개척에 따른 많은 혜택을 홍보하여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