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한일관계사 연구 (전공분야>책소개) 456

재일 한국인의 역사

책소개 재일 한국인의 역사가 형성된 기점을 1905년 을사조약때부터라고 한다면 거의 1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재일 한국인의 역사에 대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잇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은 재일 한국인의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치기에 참고가 될 수 있으리라는 취지에서 쓰여진 '재일 한국인의 역사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본서는 재일 한국인을 전체적으로 포괄하여 객관적인 역사 사실을 전하고자 하였다. 즉 사실 중심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해방 전과 해방 후의 재일 한국인의 역사와 사회에 대하여 정밀하게 서술하였다. 목차 머리말-재일 한국인의 역사를 전하기 위하여 역사 교과서 재일 한국인의 역사 읽기-김인덕(성균관 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일본 속의 백제 구다라

책소개 일본 속에 남아있는 백제 문화의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목차 머리말 - 구다라나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 고대에 오사카로 진출했던 백제인들의 생생한 모습 고대 백제인 터전 오사카 중심지 '남백제초등학교'의 오늘 백제인 대화백으로 이름났던 구다라노 가와나리 고대 왜왕실의 백제인 장관 사케노키미의 터전 오사카 시내 한복판의 '백제대교''백제왕신사' 일본 왕실에서 세운 구다라스의 '백제사 사적공원' 부여 왕흥사 터 발굴 문화재와 일본 아스카 백제 불교 - '백제옷'입었던 왜왕실의 만조백관 성왕 때 건너간 백제 재봉사 백제 왕족이 일본에 전한 견우 직녀의'7월7석' 전설 오사카 땅의 광대한 구다라스 터전 - 백제 부여의 구드래, "구다라는 큰나라" 오사카 심장부 난바와 백제 "일본인의 조상은 한반..

전란기 대마도

목차 백촌강전투와 대마도|이근우 고려 말의 왜구와 대마도|이영 1419년 대마도 정벌의 의도와 성과|이규철 삼포왜란의 발생원인과 대마도|심민정 임진왜란과 강화교섭 - 쓰시마번과 고니시 유키나가를 중심으로|이계황 러일전쟁과 대마 - 황궁의 대화재와 '대마도해전'의 성격을 중심으로|이민원 태평양전쟁과 대마도|김윤미 참고문헌

부산과 대마도 2천년

책소개 부산에서 보는 대마도, 대마도에서 보는 부산은 오랜 한일관계사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한일관계사라는 용어를 쓰지만, 특별한 시기를 제외하면 그 핵심은 부산 혹은 경남지역과 대마도의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과 대마도의 관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관계사를 논의한다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해도 지난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바로 부산과 대마도의 오랜 관계를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목차 제1장 대마도와 고대한일관계사 정효윤 제2장 통일신라시대의 對馬島 이근우 제3장 고려말,조선 전기의 왜구와 대마도 이 영 제4장 조선 전기의 부산과 대마도 하우봉 제5장 조선 후기 부산과 대마도 鄭成一 제6장 幕末ㆍ明治 초기 對馬州 정치사 개관 현명철

대마도의 진실

책소개 “대마도는 원래 우리 땅이다!” 지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대마도 본격 이해서 우리나라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외국 땅이 있다. 바로 지금의 일본 땅, 대마도이다. 일본 본토보다 한반도와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마도에는 실제로 일본인보다 한국인 방문객이 훨씬 많다. 한국 사람들이 이처럼 대마도를 많이 찾는 이유는 우리의 역사가 대마도에 고스란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고 시대부터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고, 대륙에서 해양으로 전파되는 문물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징검다리 역할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삼국 시대 이래로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속한 우리의 영토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책소개 조선시대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통신사’들에 대한 얘기다. 특히 1592년 발생해 7년간 참화를 빚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 에도시대에 파견된 사신들에 대한 얘기다. 지금까지 통신사는 ‘조선통신사’의 이름으로 여러 곳에서 출간되어 왔지만, 일본학자나 재일사학자의 저서 혹은 한일간 공동연구의 결과물이 번역되어 나온 것이고, 모두 학술서의 범주에 있어, 일반독자들이 ‘통신사’ 하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연구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에도시대의 기행문’을 연구하였으며, 일문과 교수로 재직하는 지금도 에도시대에 관심을 가지고 통신사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저자는, 통신사에 대한 관심이 학자층에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책의 집필 동기로 들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들어가는 ..

조선의 최고외교관 이예

책소개 세종의 치세를 만든 이예의 삶과 외교 리더십 우리나라가 특별히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거나, 영토가 넓은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 사이에서 수천년을 생존해 온 것은 역대 왕조에서 지속해온 "실용외교"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의 '불리한' 지리적 위치를 사대교린이라는 외교 정책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한 점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예: 조선 최고의 외교관』에서는 이 '사대교린' 외교 정책을 가장 뛰어나게 추진한 세종 시대의 외교에 대한 연구와 답사의 결과물이다. 이예는 세종대 1400년부터 1443년까지 40여 차례가 넘게 매년 한 차례씩 현해탄을 건너가 667명의 포로를 송환해오는 등 대일 외교의 중심적인 활약을 한 인물이다. 이 책은 크게 이예가..

초량왜관

책소개 초량왜관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부산포에는 470년 동안 왜관이 존재했었다. 그중 후반기인 1678년(숙종 4) 새띠벌 초량에 왜관을 설치한 이후 200여 년을 이어왔다. 왜관, 그중에서도 초량왜관을 논하지 않고 부산의 역사를 살펴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초량왜관은 빼앗긴 것도, 수탈당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조선의 제도와 법령으로 왜인을 다스리고, 그들을 교화함으로써 일본을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만든 공간이다. 왜인들에게 교역을 허락하고, 그들과 문화를 교류하면서 200년 동안 조·일 두 나라의 평화를 이뤄냈다. 초량왜관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화평 비용으로 왜인들에게 빌려준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간략하게 왜관의 역사를 기술하고 조선 시대 후반기에 설치된..

조선통신사 일본견문록

책소개 재일역사학자 강재언이 조선시대에 일본을 다녀간 조선통신사들의 기행문을 통해서 조선과 일본의 교류사를 정리하고 양국이 어떤 미래를 열어가야 할지를 조망한 책이다. 경제적 풍요와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당시 일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해외 유출이 금지된 조선의 서적까지도 발행하고, 통신사의 방일을 유교에 관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계기로 활용한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후기로 갈수록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격하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진구황후가 원정한 이후 한국은 일본에 복종하여 조공을 바쳤다는 조공국사관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저자는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묘하게 변해가는..

일본으로간 조선 선비들

소개 조선통신사란 무엇인가, 그들은 왜 일본으로 갔나? 조선통신사란 조선 후기, 17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일본에 파견되었던 사신(使臣)이자 문화사절단을 뜻한다. 1607~1811년 모두 열두 번의 사행이 있었다. 참여한 인원은 평균 470명가량이었고, 기간은 1년 정도 걸렸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새로 건립한 막부(幕府, 바후쿠)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조선에 사행을 요청했다. 일본을 찾은 조선 사신의 행차는 도쿠가와 막부의 위상 과시와 민심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이 임진왜란을 복수하기 위해 일본을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었기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조선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했던..

조선통신사의 길에서 오늘을 묻다

책소개 현황파악조차 안 된 조선통신사 관련 국내 유산을 발로 뛰며 1차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다. 조선통신사의 노정은 국내노정과 일본노정으로 나뉘는데, 국내 노정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하행(下行) 노정과 일본에서 돌아온 사행이 부산을 출발하여 서울에 이르는 상행(上行) 노정으로 이루어진다. 서울에서 출발한 조선통신사 행렬은 충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어 영천, 경주, 울산을 지나 동래로 들어와서는 일본으로 향하는 배를 띄울 때까지 머물렀다. 일본에 들어가 에도에서 관백에게 국서를 전달한 뒤 다시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들어온 사신은 사행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한양으로 바삐 길을 나서는데, 이때는 “갈 때는 좌도(左道)를 거치고 올 때는 우도(右道)를 거친다”(『춘관지(春官志)』)는 원칙에 따..

조선통신사

책소개 신뢰와 우호의 한일관계를 활짝 연 한류의 원점을 찾아서 임진왜란·정유재란 후 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은 교류 재개를 위해 전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착수한다. 1607년 제1차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후 에도시대 260년 동안 조선에서 12차례에 걸쳐 일본과 교류한 우호사절이 조선통신사이다. 정치가와 군인뿐만 아니라 학자와 의사, 화가, 서도가, 음악가, 요리사 등 500명이 넘는 통신사 일행은 일본이 다시 조선을 침략할 속셈은 없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도 하면서 큐슈九州에서부터 에도江戶로 향하는 각 지역마다 서민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모습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의 '도카이도 53역참東海道五十三次'을 비롯한 많은 그림으로 남아있다. 오늘의 한일 양 시민..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책소개 .조선 문인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일본 무사사회의 파노라마 호감과 반감, 동질성과 이질성이 교차하는 조선 문인들의 에도(江?)시대 견문기를 통해 평화적 공존의 역사적 기원을 찾는다 우리에게 일본은 무엇이었나? 영원한 이웃 일본과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작업은 언제나 이 질문에서 시작하게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한다’(맹자·주자)고 여기던 조선 문인들은 ‘호전적’이며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무사의 나라, 에도시대 일본과 마주해 이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눈빛과 표정, 몸짓·태도에서 무엇을 읽어냈을까? 이 책 『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는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부터 1764년까지 170여년간의 일본 견문기 35종을 바탕으로 조선의 일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책소개 명분을 내세우며 세상을 품고자 했던 조선의 자긍심 선비와 자신의 영지를 얻기 위해 할복도 서슴지 않았던 일본의 꽃 사무라이! 이들은 '사士'라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나 문인과 무사로 나뉘었다. 그들이 낳은 정신은 오늘날에도 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호사카 교수가 두 엘리트의 기원과 탄생과정, 교육법과 독특한 문화, 대표적인 인물들의 활약상까지 치밀하게 비교분석하여 평생 연구해온 성과를 담은 글이다. 선비와 사무라이는 어떤 배경에서 태어나 무슨 교육을 받았으며, 어떻게 국가에 등용되고 국정을 이끌었는지 한일 역사의 라이벌, 선비와 사무라이 속에 감춰진 서로 다른 유전자와 놀라운 비밀을 살펴볼 수 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한일을 대표하는 정신, 붓과 칼 선..

천황가의 가문은 백제 왕가의 혈통인가

책소개 일본의 침략사 때문에 한일관계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호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키히토 천황은 천황의 모계 중에 백제 혈통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파문을 일으켰다. 예로부터 천왕이 백제 후손이라는 설이 전해지긴 했지만 천황이 직접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천황 가문은 백제 왕가의 혈통인가』는 천황 백제 기원설에 대해 한·중·일 역사서를 바탕으로 사실을 고증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책을 비교 분석하여 믿을만한 역사적 사실을 유추해내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나 신의 경지로 받아들이는 천황의 조상이 기마민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어 일본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방증해준다. 일본에 미친..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 날조된 천황37명과 일본고대사

책소개 무려 2,679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어온 일본 천황가(天皇家)는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일본 사람들은 일본을 통치한 천황가(天皇家)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초대 천황이라는 신무(神武)가 기원전 660년에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이때부터 서기 687년에 즉위한 40대 지통(持通)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왕조교체도 없이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697년 즉위한 문무(文武)천황부터 현재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천황가의 왕통이 계속된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는 기원전 660년 즉위하였다는 신무 이래 2019년 현재 시점까지, 무려 ..

소가씨 4대 : 고대 일본의 권력가문

책소개 미완의 왕조 소가씨 100년의 흥망 일본고대 최고·최대의 권력가 소가씨 집안을 천황, 외척, 도래인이라는 키워드로 파헤친다 고대일본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소가씨 가문 그 핏줄은 현재의 천황 집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소가씨 가문은 6~7세기 동안 4대에 걸쳐 번영하였다. 그런 일본고대의 권력가문이 한반도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계 씨족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현재 천황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 ‘소가씨의 핏줄’이 어떠한 흐름 속에 자리매김하였는지,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 관계, 특히 백제를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와의 관계를 시야에 두면서 살펴본다. 목차 머리말·100년 권력 소가씨 4대 이야기 제1장 이나메와 긴메이 천황 제2장 우마코와 스이코 천황, 쇼토쿠 태자 제3장 에미시·..

결코 피할수 없는 야스쿠니문제

책소개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야스쿠니 문제가 과연 어떤 문제이고, 어떤 순서로 생각을 정리해가는 것이 좋은지를 논리적으로 밝히며 스스로의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고이즈미 수상의 최근 발언이나, 야스쿠니 과련 재판진술서 및 발언, 신문기사와 각 종 기고 등 야스쿠니와 관련된 생생한 발언들을 가감 없이 들려주며 독자들이 스스로 자기입장을 정리할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 고이즈미 수상의 5번째 신사참배로 다시 문제가 불거지면서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수상의 참배에 한국이나 중국 정부가 반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역사왜곡 21가지

책소개 이 책은 일본 평화헌법의 개정 움직임,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분석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일본의 역사왜곡 21가지’를 일제강점기, 개화기, 조선시대, 고대사 순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독자들이 어떤 역사 왜곡의 파도가 밀려오고, 거짓의 역풍이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진실의 노를 저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한국, 일본 간의 가깝고도 먼 역사 인식차이 제1부 독도, 왜 일본 땅이라 우기는가? 뿌리 깊은 독도 망언사 독도, 알아야 지킨다 미래의 독도를 지켜 나가기 위한 노력 제2부 역사 왜곡의 주범과 배후 한국사와 관련한 역사 왜곡 망언사 역사 왜곡의 주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