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문학의 이해 (독서>책소개)/4.한국고전문학

조선의 베스트셀러 (2012) - 조선 후기 세책업의 발달과 소설의 유행

동방박사님 2023. 6. 2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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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음란서생'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윤서가 음란소설 작가 추월색으로 재탄생하기까지의 조선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출판업자들의 고군분투를 흥미롭게 그려내었다. 비록 팩션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조선 사람들이 책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동분서주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호기심을 해결할 수 조금이나마 있엇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에 불기 시작한 소설 열풍과 이에 편승하여 돈을 받고 소설을 대여해주던 세책업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조선의 도서대여점 세책점은 서울에서만도 서른 곳이 넘었을 정도로 성행했다고 한다. 필사본이라 탈자, 오자가 나오는 경우가 흔해 독자들의 불만도 커서 책에 낙서를 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세책의 낙서를 통해서도 비싼 책값에 대한 서민들의 부담감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서적 유통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한 사람의 경영인이자 편집자인 출판업자들의 면면 역시 세책에 관련된 기록들을 통해 제시하였다 . 당시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한 수많은 사람들이 탐닉한 소설 읽기에서 우리 조상이 향유하고 살아가던 일상의 풍경과 진면목을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세책 이야기를 열며

1장 조선 후기 독서 풍경
규방 여성에게 불어 닥친 소설 열풍 | 세책을 찾는 사람들

2장 세책, 조선의 문화상품
상업 출판의 숨은 고수들 |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 | 세책 열어보기
방각본 소설과 세책본 소설의 진검승부

3장 향목동 세책 거리를 걷다
세책점과 도시의 풍광 | 지도로 본 세책 거리|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세책점

4장 세책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상업문화의 진수-중국의 출판과 세책 | 세책업의 선진국-일본의 세책업과 카시혼야
유럽의 세책이야기

세책 이야기를 마치며
미주
부록
더 읽어볼 만한 책들
 

저자 소개

저 : 이민희 (李民熙)
 
강화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천방지축하며 자연과 역사 속에서 자랐다. 연세대 국문학과에 입학, 대학교 1학년 때 미 대륙 횡단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국문학과 비교문학, 인접학문과의 소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고전 비교문학으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로 건너오라는 꿈을 꾼 뒤, 바르샤바 국립대학교에 가서 5년 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출판사 리뷰

음란서생의 음란소설은 정말 있었을까?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들이 어두운 밤거리를 분주히 오간다. 으슥한 골목에서 다급히 문을 두드리는 여자.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책 한 권을 받아들고 서둘러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조선시대 소설을 읽고 쓰는 즐거움에 빠진 사람들을 다룬 영화 <음란서생>의 첫 장면이다. 생소하지만 신선한 소재로 많은 주목은 받은 이 영화는 당대 최고의 문장가 윤서가 음란소설 작가 추월색으로 재탄생하기까지 조선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출판업자들의 고군분투를 흥미롭게 그렸다.
잘 엮어진 한 편의 팩션(faction)으로 유교문화의 엄숙주의를 뒤집는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소설’이라는 소재가 주는 현재성과 소설 읽기라는 공통된 경험이 그 배면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가장 큰 흥밋거리이며 다른 시간과 세상 그리고 삶을 체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100여 년 전 조선 사람들이 소설에 빠져 밤을 꼬박 지새우고 책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일이 그렇게 낯선 일은 아닌 것이다.
<조선의 베스트셀러>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사회에 불기 시작한 소설 열풍과 이에 편승해 돈을 받고 소설을 대여해 주던 세책업자들의 이야기를 엄밀한 학문적 탐구와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냈다. 사대부가의 여성이나 하층민이 주로 찾았던 소설은 조선시대 내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주류문화의 배척 속에서도 그 깊이와 폭을 넓혀 이제 당당히 우리 문학의 한 자리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돈을 받고 소설을 대여하던 세책업과 세책업자, 그리고 그 독자와 소설 유통을 책임졌던 수많은 주체들을 재발견하는 장을 통해 우리 문학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조선 여인들 소설에 홀리다
조선 후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국내 고소설 작품만 해도 약 858종에 이르며 다양한 형태의 이본을 모두 합친다면 그 수는 수만 종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중국의 1164종, 이본을 모두 합친 일본의 1만 40편에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양이다. 짧은 한문단편소설부터 180책이나 되는 대하장편소설까지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임진왜란 이후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소설은 국문으로 번역되는 등 그 인기가 날로 높아갔다. 당시 국내에 들어온 중국소설은 『삼국지』『수호지』『서유기』등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작품들로,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영웅들의 활약과 충성, 음모, 술수, 사랑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한 편을 읽으면 중국의 역사를 헤아리고 세상과 집안을 경영하는 법과 처세술, 그리고 세계관까지 가질 수 있어 초기 소설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중국에서 유입된 많은 소설이 음란하고 무익하다는 이유로 “패관잡서는 인재 가운데 가장 큰 재앙”이라 일갈한 정약용의 비판도 소설의 인기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학규가 “비단옷을 입은 부녀자들이 언문 번역 소설 읽기를 좋아해 기름불을 밝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에 새겨가며 몰래 읽는다”고 당시의 세태를 묘사했듯, 중국에서 들어온 통속소설은 유행처럼 번져 소설 발달을 자극하는 동인이 되었다.
한문으로 쓰인 초기 소설의 주 독자층은 사대부 남성이나 외교 분야에 종사하던 아전, 역관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국문으로 번역된 이후에는 그 폭이 더욱 넓어졌다. 특히 학식을 갖춘 사대부가 여성들이 책을 번역하여 읽는 일이 빈번해졌다. 오희문은 딸의 청을 들어 『초한연의』를 번역했고 숙종조의 학자 조성기는 그의 어머니를 위해 종종 소설책을 구해드리는가 하면 직접 『창선감의록』이라는 소설을 지어 바치기도 했다. 한평생을 좁은 집안에서 갇혀 지내야했던 여성들에게 소설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유교사회의 속박에 억눌렸던 심사를 풀어내는 데 그만이었던 것이다.
여성들의 소설 탐독은 대단해서 구중궁궐 안까지 그 열기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왕실 도서관이었던 낙선재에서는 ‘장편가문소설’이라 불리는 소설들이 다량 발견되었는데, 이 소설들은 가난한 선비들이 창작한 것으로 세책점을 통해 유통되다 궁중에까지 흘러들어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등장한 국문소설은 결코 화려하다거나 공식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 사대부 주도의 유교사회에서 멸시되고 배척당하던 국문소설은 규방의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문학 창작 및 독서 문화의 고양을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국문으로 필사되어 유통되던 세책본 고소설에 대한 여성들의 사랑은 각별했다.

조선의 도서대여점을 가다
조선시대에는 책을 매매하는 상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따라서 서적 간행은 국가의 통제 하에 소규모로 이루어졌으며, 책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 서적을 구하기 위한 서적 사무역이 활발해지고 책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나타나 책을 판매하는 일이 성행하자 책의 상거래에 대한 인식 또한 점차 개방적으로 바뀌어 갔다. 지식의 독점이 이루어지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러나 책을 공급하는 곳이 다변화되고 공급량이 늘었다고는 해서 모든 사람들이 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값은 일반 서민들이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비쌌기 때문이다. 세책점은 이런 잠재적인 독자들을 노리고 17세기 후반 경부터 등장했다. 돈을 받고 필사한 책을 빌려주던 세책점은 서울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쾌가는 이것(=패설)을 깨끗이 베껴 쓰고 무릇 빌려 주는 일을 했는데, 번번이 그 값을 받아 이익으로 삼았다”는 18세기 채제공의 기록은 그 당시 세책점 풍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원래 가가호호 방문하여 책을 팔던 쾌가가 겸하던 세책업은 점차 전문 세책업자들에게 넘어갔는데, 세책업자들은 한 군데 가게를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영업 형태를 선택했다.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서울에만도 서른 곳이 넘는 세책점이 성행했다고 한다.
세책점에서 빌려주던 세책은 필사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글씨가 단정치 못한 것이나 탈자, 오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책을 읽은 독자의 불만은 그대로 세책에 ‘댓글’의 형태로 남아있다. 특히 여러 책으로 분철 한 것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빌리는 책값도 만만치 않았던 서민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예로 『김홍전』에는 “책 주인 들어보소. 단권인 책을 네 권으로 만들고 남의 재물만 탐하니 그런 잡놈이 또 어디 있느냐?”고 쓴 글이 남아있다. 또 오늘날 대학가나 화장실 낙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음담패설과 음화도 종종 그려져 있다.
이런 독자들의 불만에 대응하는 세책업자의 반응은 자못 점잖으나 책을 더럽히는 독자들에 대한 경고성 멘트도 잊지 않았다. “말이 비록 허무맹랑하나 또한 장난으로 보기에는 우스운 말이 많으니 착실히 보시고 부디 낙장은 마옵소서”라든지 “이 책에다 욕설을 쓰거나 잡설을 쓰는 폐단이 있으면 벌금을 낼 것이오니 이후로 깨끗이 보시고 보내주시옵소서”라는 글로 대응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세책의 낙서들을 보면 <음란서생>에서처럼 작가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잘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책을 필사하는 일은 빈한한 선비의 호구지책이었기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인 작가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황가’와 같은 출판업자들의 면면은 세책에 관련되어 남아있는 기록들을 통해 자세히 그려볼 수 있다. 그들은 서적 유통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한 사람의 경영인이자, 문화기획자 그리고 편집자로서 조선 후기 소설 문화를 이끌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의 힘
최남선은 「조선의 가정문학」이란 글에서 세책점에서 필사해 대여하던 소설책들에 대해 “이런 소설들 대개가 가정을 중심으로 인생 여정의 파란을 그리고 또 거기 임하는 태도를 가르쳐준다고 할 만한 것으로 사막 같은 가정에 이것이 샘 자리가 되고 골방 속에 갇혀 지내던 부인네에게 달 밝고 별 깜박거리는 시원한 하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진 춘향전이나 홍길동전 외, 수많은 소설들이 규방 여성들과 서민들의 무료한 밤을 달래주었다. 대중의 취향이 바뀌고 인쇄기술의 발달로 세책본 고소설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홍길동의 신출귀몰과 춘향의 일편단심에 매료된다. 이야기의 힘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것이다.
당시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한 수많은 사람들이 탐닉한 소설 읽기에서 우리 조상이 향유하고 살아가던 일상의 풍경과 진면목을 재발견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