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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테러리즘 속 이슬람 (2018)

동방박사님 2023. 10. 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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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슬람은 왜 테러의 종교가 되었나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근원을 밝히다


이슬람 테러리즘을 논함에 있어 많은 학자들이 테러리스트 개인의 신앙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슬람 테러리즘’을 지난 40여 년 동안 새로이 나타난 현상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수많은 분석가들이 미국이 대외정책 때문에 테러의 타깃이 되었다고 믿으며, 빈곤을 포함한 사회경제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이 책의 저자인 이븐 워라크는 이슬람교가 태어난 7세기경부터 진정한 이슬람을 부흥시키겠다는 폭력적인 움직임은 항상 존재해왔으며, ‘이슬람 테러리즘’의 근본 원인 또한 이슬람 신학(특히 지하드라는 개념 및 ‘옳고 그름’을 강요하는 정신) 및 이슬람의 역사에 있다고 주장한다. ISIS나 탈레반과 같은 지하디스트 테러조직을 단순히 욕구불만에 빠진 폭력적이고 가난한 사이코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리즘은 전략적으로 철저하게 계획된 행위이며, 테러리스트들의 목표는 쿠란과 수나, 하디스에 드러난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근간으로 이슬람국가를 건립하는 것이다.

목차

감사의 글
들어가는 글

제1장 근본 원인의 오류
이슬람 테러리즘: 빈곤도, 교육의 부족 때문도 아니다 | 이스라엘-아랍 분쟁 때문도 아니다 | 미국의 외교정책 때문도 아니다 | 서양의 제국주의 때문도 아니다 | 십자군 전쟁 때문도 아니다

제2장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한 해명들
인간행위, 자유의지, 책임 | 동력으로서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의의 | 소비에트 연방과 공산주의 | 나치즘의 이데올로기 | 이슬람, 혹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이데올로기

제3장 지하디스트 안의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다윈
이슬람 테러리즘의 수정주의적 시각 | 중동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의

제4장 원인 요인으로서의 이슬람 교리
쿠란 | 샤리아 우월주의 | 수나와 무함마드 | 샤리아 | 신앙: 하나님과 타우히드 | 선행을 명하고 악행을 금함 | 내세: 이슬람의 삶이 아닌, 이슬람의 피와 죽음

제5장 지하드의 의미
지하드의 정의 | 지하드에 대한 설명 | 지하드를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

제6장 지하드, 이론과 실천
쿠란 속의 지하드 | 지하드에 대한 초기 무슬림 학자들의 견해 | 지하드에 관한 하디스 | 법적 정의

제7장 지하드의 목표
마흐디 | 순교 | 순교에 대한 보상 | 지하드에 관한 법학파들 | 지하드의 영적 본질 | 위대한 지하드와 덜한 지하드 | 결론

제8장 무함마드의 운동과 초기 정복 활동
이슬람의 이데올로기

제9장 최초의 테러리스트?
하와리즈파의 기초 교리 | 하와리즈파의 후기 역사 | 하와리즈 운동의 의의

제10장 사흘 이븐 살라마, 바르바하리 및 비다
광신적 테러리즘과 바르바하리

제11장 바그다드의 종교적 폭력사태, 991-1092년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제12장 이븐 타이미야
초기 생애와 교육 | 권력에의 충돌과 투옥 | 이븐 타이미야의 성격 | 지하드에 대한 요청 | 선행을 명하고 악행을 금하는 일에 관한 고찰 | 이븐 타이미야의 반-몽골 파트와 | 맞서 싸워야 할 무리들 | 혁신, 이단, 종교적 소수자들 | 더 많은 혁신들 | 수피파와 시아파 | 유대인, 기독교인, 알 딤미 | 지하드의 위대한 재생산가

제13장 17세기 이스탄불의 카디자델리 운동
카디자드 메흐메드 | 카디자델리파의 영향 | 이븐 타이미야의 영향

제14장 이븐 압드 알 와하브와 18세기 개선 및 개혁
18세기 | 근본주의와 18세기 카이로의 종교 폭동에 관한 견해 | 와하브주의의 탄생 | 나즈드와 한발리 전통 | 와하브 이전의 신앙과 관행 | 무함마드 이븐 알 와하브 | 영향력 및 일부 교리 | 이븐 알 와하브의 다른 글들 | 와하브주의의 진정한 원인과 목적 | 와하브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크완 | 와하브주의의 영향

제15장 사이드 아불 알라 마우두디
이슬람 지배하의 인도, 13-14세기 | 샤이흐 아흐마드 시르힌디와 16세기 | 샤 왈리 알라와 18세기 | 사이드 아흐마드 브렐뤼 | 사이드 아불 알라 마우두디

제16장 S. K. 말리크 준장과 쿠란이 말하는 전쟁
파키스탄의 이슬람화

제17장 하산 알 반나와 무슬림형제단
무슬림형제단의 이데올로기 | 필수적 폭력 |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의 전체주의적 본질

제18장 아민 알 후세이니와 나치
알 후세이니, 이슬람, 그리고 폭력 | 극단적 무슬림의 진정한 영웅 | 통합을 위한 노력들

제19장 사이드 쿠틉
핵심 사상 | 해결책: 지하드

제20장 무함마드 압드 알 살람 파라즈와 도외시된 임무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념

제21장 압둘라 아잠과 무슬림 영토의 방어
학자의 잉크, 순교자의 피

제22장 아이만 알 자와히리
예언자의 깃발 아래에 선 기사들

제23장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이란 혁명
호메이니 득세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 | 1979년 이란 혁명이 이슬람 세계에 미친 영향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 이슬람 혁명 | 이슬람의 헌법 | 이란이슬람공화국 | 국가폭력

제24장 결론
지하드의 부활
 

저자 소개

저 : 이븐 워라크 (Ibn Warraq)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지르는 무수한 폭력 행위의 원인이 이슬람 교리 자체에 있음을 주장하는 논쟁적인 글로 유명한 이슬람 학자이자 「뉴잉글리시리뷰」의 시니어 에디터다. 지은 책으로는 『나는 왜 무슬림이 아닌가(Why I Am Not a Muslim)』, 『서구를 위한 변론(Defending the West)』 등이 있다.
 
역 : 서종민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국제 정치학, 경제학을 복수 전공하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번역 감수성을 보여주어, 미래가 기대되는 신예 번역가이다. 번역가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헤르만 지몬 프라이싱 : 가격이 모든 것이다』『불안해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 : 쓸데없는 걱정과 이유 모를 불안에서 벗어나는 52가지 방법』『이슬람의 시간 : 이슬람의 역사, 종교, 정치 제대로...

책 속으로

나는 지난 수십 년간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믿음, 다시 말해 ‘이슬람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파시스트라고 불러도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연구에서 나는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그리고 기호론자인 움베르트 에코가 꼽은 ‘시간 초월적 파시즘(혹은 원형 파시즘Ur-Fascism)’의 전형적인 특징 열네 개를 가지고 와서 이슬람이 어떻게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고 있는지를 논한다.
또한 이슬람은 전체주의로 묘사되기도 해왔다.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가 2008년에 쓴 글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찰스 왓슨과 조르주 앙리 부스케는 이슬람이 그저 전체주의적 체제에 불과하다고 말한 반면, 버트런드 러셀, 쥘 몬느로, 체슬라브 밀로즈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슬람과 공산주의를 비교했다. 칼 구스타브 융, 칼 바르트, 아돌프 히틀러, 사이드 아미르 아르조만드, 막심 로댕송, 만프레드 할펀 등은 이슬람이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유사한 점이 있음을 지적했다(파시즘과 나치즘은 주로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1937년 이집트의 기독교 선교사였던 찰스 왓슨은 이슬람을 전체주의라고 묘사하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꿰뚫는 수백만 개의 뿌리들에는 모두 종교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으며, (이슬람은) 이를 통해 무슬림 사람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제리아대학교, 보르도대학교의 법학교수였으며 이슬람법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혔던 조르주 앙리 부스케(1900-1978)는 이슬람에는 이슬람법과 지하드라는 두 가지 전체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지하드라는 이슬람식 개념은 결국 전 세계를 단일한 권력 아래에 굴복시키기 위한 정복을 의미하는 데에서 더욱 그러하다.
--- [제2장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한 해명들] 중에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즉각적인 목적은 군사 활동으로서의 지하드(성전)이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지구를 이슬람 아래에 두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서구 세계의 다양한 세속 헌법 등이 아닌 샤리아에 의해 지배된다. 무슬림들은 다른 그 어떤 종교나 법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쿠란에 따르자면 무슬림들만이 완전한 진실을 알고 있으며, 이슬람만이 모든 국가들에게 최선이 될 수 있다.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께 수락되지 않을 것이며,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리라(Q3. 알 이므란, [이므란의 가족], 109)”, 이슬람은 진실의 종교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반드시 예속되어야 하며 세금을 바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최후 심판의 날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과 선지자들이 금지한 것을 금기시하지도 않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이라면 제아무리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의 우위를 알고 세금을 지불할 때까지 정복의 대상이 되리라(Q9. 앳 타우바, [회개], 29).” 이슬람은 결국 세상을 압도할 운명이기 때문에, 다른 특정 교리를 이슬람과 동등한 지위로 받아들이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분이 복음과 진리의 종교를 선지자에게 보내어 그것을 모든 종교 위에 있도록 하시었으니 다만 다신교도들이 증오하더라(Q9. 앳 타우바, [회개], 33).” Q48. 알 파스, [승리], 28 및 Q61. 알 사프, [전쟁의 대열], 9에서도 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 [제4장 원인 요인으로서의 이슬람 교리] 중에서

쿠틉의 세계에서 정치와 종교는 한몸이나 다름없었다. 지하드는 곧 “신앙을 목도하는 일이자 신앙에 내재되어 있는 일이며, 신앙을 가지고자 함은 곧 현존하는 자힐리 체제의 세계에 신앙을 사회학적으로 적용시키고자 노력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지하드는 “이슬람의 영토나 그 안에 살고 있는 무슬림에 대하여 어떤 거대한 위협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드를 행하는 이유는 그 메시지의 본질 안에 있으며, 인간사회의 실제 조건들 속에 있다. 단순히 방어가 필요하다는, 어쩌면 임시적이고 제한적인 이유 때문에 행하는 것이 아니다.” 쿠틉의 말에 따르자면 사실 이슬람은 지하드를 개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슬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자에 대한 종노릇으로부터 전 인류를 자유롭게 하는 데 앞장서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은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할 권리를 가진다. (중략) [이슬람은] 그 어떤 정치체제의 간섭이나 반대 없이, 인간의 이성과 직관에 직접 말을 걸고자 한다.” 이 때문에 “자유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인 (중략) 그 모든 정치체제를 전멸시키는 것은 곧 무슬림들의 의무가 된다.” 쿠틉은 자신이 저술한 쿠란 주해서에서, “이슬람을 위해 싸우고자 하는 것은 곧 이슬람의 생활방식과 그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반면 신앙은 그 모든 압력들과 장애물들을 제거한 후에 개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싸움은 보편적인 싸움이다. “이슬람이 스스로를 지리적 경계나 인종적 한계 등에 가둔 채 나머지 인류를 버리거나, 인류가 악과 부패가 들끓는 곳, 또 전능하신 하나님 이외의 다른 자들을 주인으로 섬겨야 하는 곳에서 고통받도록 놔두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중략) 지하드를, 혹은 하나님을 연유로 싸우는 일을 그 옹호적인 형태와 더불어 전투적인 형태로도 행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임을 깨닫게 된다.”
--- [제19장 사이트 쿠틉] 중에서
 

출판사 리뷰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에서 이슬람국가(IS)의 탄생까지
이슬람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이슬람 테러리즘의 근본 원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많은 서구의 지도자들은 해당 테러 행위가 이슬람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말해왔다. 무슬림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는 열망, ‘이슬람 혐오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다는 소망, 그리고 동료 시민들의 종교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서구의 전통 때문에 이슬람을 비판한다는 것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숱한 폭력 행위에 대한 이 책의 논리는 명확하다. 그들의 폭력이 결국 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쿠란과 하디스의 가르침에 있다는 것. 결국 이슬람 신앙은 20세기에 이미 우리가 경험했던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 없으며, 따라서 21세기에 우리가 무찔러야 할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말이다.
이슬람교가 태어난 7세기경부터 진정한 이슬람을 부흥시키겠다는 폭력적인 움직임은 언제나 존재해왔으며, 주로 당시 무슬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이를 이끌었다. 작금의 무슬림 사회가 초대 무슬림 지도자들의 이상에 따르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7세기경 아즈라키트파 등의 단체들은 잊혀버린 신앙과 의식들을 되살리고자 했으며, 순수한 무슬림 신앙을 더럽힌 행위들을 이슬람의 요체에서 씻어내고자 했다. 한 예시로 데오반드파 극단주의자들은 지난 8~9세기 이슬람의 발전을 거부하는 이들로, 그 사상은 1762년에 세상을 떠난 샤 왈리 알라의 철학에 특히 잘 드러나 있다.
9세기부터 10세기 초반까지의 바그다드에는 여러 종류의 종교적 폭력이 들끓고 있었다. 이를 이끈 사흘 이븐 살라마와 바르바하리 등의 사상 지도자들은 혁신(비다)을 거부하면서 991년~1092년 사이 바그다드에 더 큰 종교적 폭력을 몰고 왔다. 17세기 이스탄불에서 일어난 폭력적인 카디자델리 운동은 18세기의 아라비아의 이븐 압드 알 와하브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결국 오늘날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와하브파의 극단주의는 인도에까지 전파되었으며,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아라비아 경계를 훨씬 넘어서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처럼 근본주의 운동은 이슬람 역사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며, 현대의 지하디스트들 또한 스스로의 이슬람 전통에 일관적으로 기대어서 행위와 계획을 도덕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슬람 테러리즘의 원인이 이슬람 교리 자체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