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5.중동이슬람

이슬람 전사의 탄생 (2015) -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동방박사님 2023. 10. 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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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는 지금 3차 대전 중일까? 1, 2차 세계대전 때처럼 국가 간의 전면전은 아니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이슬람 대 서방 간의 전쟁이라는 성격을 띤 분쟁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를 후세의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9·11 이후 이슬람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전, 내전, 내란, 소요, 테러를 비롯해 최근 파리에서 벌어진 ‘샤를리 에브도’ 테러나 IS의 일본인 인질 살해 등을 보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이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의 속살을 본격적으로 보려면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점으로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부터 2014년 IS의 탄생까지 지난 35년간 이슬람권에서 벌어진 일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안내를 따라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에서 IS의 탄생까지를 차근차근 살펴보면 왜 이곳의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 분쟁,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분쟁, 아랍 대 서방(이스라엘) 구도의 반외세 분쟁, 세속주의-이슬람주의 분쟁, 독재정권 등 권위주의 세력과 민중 사이의 민주화 분쟁,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의 분쟁, 중동 역내 국가 사이의 국가 분쟁 등 여러 겹의 갈등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그 어떤 구도도 선-악의 틀로 간단히 해석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 세계는 3차 대전 중?

1부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
1 사우디 왕국과 와하비즘
2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의 레닌’ 쿠틉
3 6일 전쟁,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변곡점
4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전야

2부 현대 이슬람주의의 헤지라, 아프간 전쟁
5 크리스마스 침공
6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7 아프간으로 가는 이슬람 전사들
8 아프간 전쟁의 변곡점
9 소련의 철군

3부 글로벌 지하드
10 글로벌 지하디스트의 탄생
11 걸프전, 아랍 연대의 붕괴
12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주의화
13 알제리, 더러운 내전의 원형

4부 9·11로 가는 여정
14 떠오르는 탈레반
15 빈 라덴의 헤지라
16 테러의 새로운 유형
17 빈 라덴을 잡아라
18 ‘긴 전쟁’의 시작

5부 테러와의 전쟁, 멍청한 전쟁
19 9·11 ‘성화요일 작전’
20 아프간이냐, 이라크냐?
21 토라보라 전투와 빈 라덴의 탈출
22 중동 개조론과 군 개조론
23 이라크 전쟁의 시작
24 종전 선언과 함께 시작된 전쟁
25 탈레반의 부활

6부 끝나지 않는 전쟁
26 오바마의 전쟁과 빈 라덴 제거
27 ‘아랍의 봄’은 ‘지하디스트의 봄’으로
28 이슬람국가(IS)의 탄생

후기
주석

저자 소개 

저 : 정의길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 국제부, 정치부, 사회부 등을 거쳐 오피니언넷 부문 및 국제 부문 편집장으로 일했다. 현재 〈한겨레〉에 ‘지정학의 풍경’ ‘정의길 칼럼’ 등을 쓰고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은행 장학생으로 1999~2001년 미국 럿거스대학교와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저서 《지정학의 포로들》 《이슬람 전사의 탄생》 《뜨거운 지구촌》, 논문 〈아시아 외환위기 때의 자본 통제 논...

책 속으로

“이성은 개에게 던져줘라.”
탈레반이 자신들의 종교경찰 청사에 내붙인 표어이다. 이성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힘이라고 우리는 배웠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척도로 알고 있다. 인간사와 인류사 발전의 동력으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이성의 상실이나 모자람을 탓하지,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탈레반은 그 이성 자체를 부정하고, 더 나아가 악으로 본다. 우리는 그런 세계관을 가진 탈레반 등 현대 이슬람주의 세력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 p.5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완패한 이후 중동과 이슬람권의 대중들은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당시 이집트 대통령으로 대변되던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에 실망감을 느끼고, ‘이슬람이 해답’이라는 이슬람주의 세력에 끌리기 시작한다. 나세르 등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은 애초의 건강한 개혁 성향을 상실하면서 독재정권화 되어갔다. 아랍 대 서방 및 이스라엘의 투쟁 구도에,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권위주의 정권 대 민중이라는 투쟁 구도가 추가됐다. --- p.10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려고 무자헤딘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사주를 받은 단체들이 뉴욕 맨해튼 등에서 공공연히 무자헤딘을 모집했다는 주장도 있다. 무자헤딘 이슬람 전사들은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가, ‘불경한’세속주의 정권과 미국 등의 외세를 이슬람 세계에서 축출하는 이슬람주의 무장 투쟁을 벌인다. 아프간 전쟁이 이슬람주의와 그 무장 투쟁 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하고 키운 이슬람 전사들과 나중에 싸우게 되고, 소련은 이 아프간 전쟁으로 결국 붕괴의 단초를 보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국제 질서였던 미국과 소련 주도의 냉전이 붕괴되고, 그 대신에 이슬람권에서 새로운 분쟁 구도가 싹트게 된 것이다. 9·11 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도 이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다. --- p.12~13

전쟁은 무기에 따라 1세대(창, 활, 칼 등), 2세대(총, 포 등), 3세대(전투기, 전차, 잠수함 등)로 구분하기도 한다. 3세대를 지나 지금은 기습·타격 등의 게릴라전과 해킹 등의 정보전, 통신교란 등 군사적·비군사적 수단을 총동원해 상대의 정치적 목적을 무력화하는 4세대 전쟁의 시대이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슬람권 분쟁을 일관된 분쟁이라고 보면, 이는 전형적인 4세대 전쟁이다. 그 규모는 한 나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과 미국 등 서방 간의 분쟁은 이러한 성격이 짙다. --- p.20

콜로라도 주립 교육대학에서의 유학 생활은 쿠틉에게 이슬람의 주적이 미국임을 확인시켰다. 이슬람의 고난은 타락에서 비롯됐으며, 그 타락은 서구 현대화 문명에 오염됐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결벽 강박증 증세까지 보이는 쿠틉에게 킨제이 보고서로 대표되는 미국의 성 문화는 인간이 할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을 경배하는 교회에서 남녀가 부둥켜안는 댄스파티를 벌이는 현실 앞에서 쿠틉은 신을 조롱하는 서구의 세속을 봤다. 그는 이집트와 이슬람 세계가 미국에서 만개한 이런 서방 자본주의 문명을 닮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이슬람이 겪는 고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 p.49

브레진스키는 아프간에서 소련의 퇴치를 위해서라면 파키스탄의 핵 개발도 용인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는 파키스탄을 핵무장으로 이끌었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그 후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등 냉전 이후 미국의 최대 안보 현안이던 핵 확산 문제를 야기한 모델이었다. 현재 25년 가까이 계속되는 북한 핵 개발 위기도 따지고 보면, 그 근원의 하나는 아프간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파키스탄의 핵 개발은 북한에 기술적 지원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선례를 제공했다. --- p.122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이슬람 세계를 격동시켰다.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던 이슬람주의 세력이나, 이슬람주의 세력의 도전에 전전긍긍하던 이슬람 세계 각국 정부가 일제히 아프간으로 눈을 돌렸다. 이슬람주의 세력은 아프간에서 자신들이 자유롭게 성전을 펼칠 무대로서의 가능성을 봤다. --- p.138

아프간 무자헤딘들은 지하드나 순교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겨 전쟁으로 내몰린 이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슬람주의자나 지하드주의자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땅과 나라를 되찾겠다는 실질적인 목표를 지니고 참전했다. 반면 아랍아프간들은 지하드나 순교라는 추상적인 자신들의 대의에 따랐다. 그들에게 소련군과의 전투는 지하드와 순교로 가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 p.149

아프간 정책과 공작의 주무부인 CIA 입장에서는 소련군 철군 이후는 자신들의 소관 사항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CIA 역사상 가장 성공적 공작이 될 아프간 전쟁의 온전한 승리만을 남기고 싶어 했다. 소련이 아프간에서 굴욕적으로 도망치는 그 순간을 덧칠할 정치적 협상을 바라지 않았다. CIA 근동부는 아프간 공작이 소련의 힘과 침략에 맞서는 것이었다며, 소련군이 완전히 철군할 때 CIA도 아프간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공작을 이제 재건 프로젝트로 바꾼다는 것은 실수라고 강조했다. 소련 철군 이후의 아프간은 파키스탄 정보부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파키스탄 정보부가 자신들이 지원하던 헤크마티아르 등 이슬람주의 세력의 정부를 세울지라도, 아프간에 대한 파키스탄의 헤게모니만 존재한다면 미국의 이익에 중대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논리의 결론은 무자헤딘, 특히 파키스탄 정보부가 선호하는 헤크마티아르 등 이슬람주의 세력에 대한 계속된 지원을 통해 나지불라 정권을 신속히 붕괴시켜 소련의 영향이 배제된 새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 p.172~173

이슬람주의는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발원해 인류의 절대적 가치가 된 인간 이성과 그 힘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신봉하는 이성이 빚어낸 사회와 그 현실은 결코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이슬람권의 현실은 더욱 그랬다. 그 속에서 절망한 대중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신의 섭리와 의지로 회귀하려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 p.258

왜 부시 행정부 인사들은 이미 현실화되고 전례가 있던 알 카에다 등 초국적 지하디스트 테러 그룹들의 위협에 무신경했을까? 버겐은 그 이유가 간단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냉전 시대의 안보관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이다. 라이스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위원회의 소련 전문가였다. 월 포위츠는 1970년대 국방부에서 소련의 위협에 대비하는 ‘팀 비(Team B)’라는 작업을 주도하며 공직에 입문했다. 이 팀은 소련의 군사 위협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잘못된 결론을 입안했다.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각각 비서실장과 국방장관으로 재직했다. 이들 모두의 견해는 국가 차원의 위협이라는 냉전 시대의 정신 상태에 고착되어 있었다. --- p.318

미군의 개전 초기 승리는 전술 승리이긴 하지만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게릴라 부대에 불과한 탈레반 병력이 정규전으로 미군에 맞선다는 것 자체가 이미 미군의 승리를 내포하고 있었다. (…) 하지만 탈레반이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다시 게릴라 부대로 돌아갔을 때 사정은 달라졌다. 이들은 소련이 침공한 아프간 전쟁 때 소련군을 공포에 떨게 하던 무자헤딘 게릴라로서 미군 앞에 나타난다. 미국과 미군은 초기 승리에 도취했다. 개전 초기의 승리가 자신들의 새로운 전쟁 개념의 개가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탈레반이 과거에 자신들이 키웠던 무자헤딘이라는 사실을, 그 무자헤딘 중에서도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전투 의지를 갖춘 무자헤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는 아프간 전쟁은 지독한 망각의 반복이다. 이 망각의 역사는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조성했던 소련의 처지를 자신들이 답습해 반복하게 한다. --- p.331

막무가내식 미국 침공 계획이 현실화되자, 이라크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침공을 피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후세인 정권은 타리크 아지즈(Tariq Aziz) 부총리까지 내세워 미국 내 이라크 전쟁의 기획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장과 간접적으로 접촉했다. 이라크 쪽은 미국 회사들에 석유 등 자원 이권 제공, 유엔 감시하의 선거, 미국의 직접 사찰, 이라크가 수감 중이던 알 카에다 요원 인도, 아랍-이스라엘 평화 과정에 관한 미국 정책에의 전적인 협조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펄의 대답은 “우리는 바그다드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는 것이었다. --- p.368

이미 2006년에 미군의 폭격으로 자르카위가 숨진 뒤 방향성을 상실한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는 그 후‘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이름과 조직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헤게모니를 놓고 지하디스트 진영이 내부 갈등을 빚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당시 미군 사령관이 주도한 반폭동 전략은 주민과 부족 세력들의 협조를 얻어서, 이라크 내 알 카에다 등 극렬 이슬람주의 세력을 고립시켜나갔다. --- p.427

시리아 내전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이어 지하디스트 세력에 또 하나의 성전 무대가 됐다. 이라크 내 알 카에다 세력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더 나아가 전 세계 지하디스트 세력이 이곳으로 다시 몰려들었다. 무장 투쟁 공간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자금과 무기가 그들에게 제공됐다. 시리아 내전이 강대국과 중동 지역 국가 및 세력의 대리전쟁으로 격화됐기 때문이다. --- p.436~437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에서 나란히 질주하던 누스라전선과 이라크이슬람국가의 관계는 2013년 4월 13일, 바그다디의 육성성명으로 완전히 새 국면으로 들어갔다. 그는 누스라전선이 이라크이슬람국가에서 파생된 조직이며, 이제 두 조직을 다시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로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바그다디의 발표는 폭탄이었다. 골라니는 즉각 이를 부인했지만, 중동 역내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의 대개편이 시작됐다. --- p.445~446

6월 29일,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의 지도자 바그다디는 이슬람국가를 선포했다. 영국보다도 더 큰 영토, 모술 중앙은행에서 확보한 5억 달러의 현금, 최소한 매달 1,200만 달러의 세금과 석유 밀매를 통해 얻는 엄청난 수입, 정부군이 버리고 간 탱크와 헬기, 장갑차 등 첨단 미군 장비, 그리고 자신들의 영토로 밀려드는 외국의 이슬람주의 전사들이 이슬람국가의 기반이다. 이는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의 네트워크 조직인 알 카에다, 아프간 주민들의 정권에 그친 탈레반 정부를 넘어서는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의 신기원이었다.
--- p.454
 

출판사 리뷰

이슬람 무장 세력, 그들은 누구인가?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에서 이슬람국가(IS)의 탄생까지
국제전문기자의 안내로 살펴보는 중동 분쟁의 미로


세계는 지금 3차 대전 중일까? 1, 2차 세계대전 때처럼 국가 간의 전면전은 아니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이슬람 대 서방 간의 전쟁이라는 성격을 띤 분쟁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를 후세의 역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9·11 이후 이슬람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전, 내전, 내란, 소요, 테러를 비롯해 최근 파리에서 벌어진 ‘샤를리 에브도’ 테러나 IS의 일본인 인질 살해 등을 보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이 진행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의 속살을 본격적으로 보려면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시계를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점으로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부터 2014년 IS의 탄생까지 지난 35년간 이슬람권에서 벌어진 일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결과
- 소련의 해체와 이슬람 무장 세력의 부상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1979년 아프간 전쟁 이전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만든 사우드 가문과 현대 이슬람주의 토대를 마련한 와하브파의 동맹에서부터 무슬림형제단의 탄생, ‘이슬람주의의 레닌’이라 불리는 쿠틉, 쿠틉의 후계자인 자와히리,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변곡점이 된 6일 전쟁, 이후 지하드주의와 와하비즘의 확산, 그리고 이란의 이슬람 혁명까지 이슬람권 분쟁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2부에서는 1979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아프간 전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이란 이슬람 혁명의 기운은 이웃 아프가니스탄에도 번진다. 사회주의 성향의 세속주의 정부에 대한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이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군대에서도 반정부 봉기가 일어난다. 정부는 소련에 S.O.S.를 치고 군사를 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소련 역시 아프간 공산 혁명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전쟁의 끝에 소련 해체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베트남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본 미국, 특히 CIA는 ‘아프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들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소련과 사회주의 정부에 맞서는 이슬람 세력(무자헤딘)에 엄청난 무기와 군사 교육을 지원한다. 소련에 맞선 무자헤딘의 전과에 이슬람주의 세력은 고무되어 갔고, 아프간 전쟁은 지하드(聖戰)가 되었다. 각국의 이슬람주의 청년들이 속속들이 아프간 전쟁에 참전하고, 이슬람 부호들은 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모금에 나섰다. 오사마 빈 라덴이 1차로 부상한 것도 이 시절 모금전문가로 활약하면서이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후, 소련은 결국 철군을 선언한다. CIA는 쾌재를 불렀다. 그들이 뿌린 씨앗이 후일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 체.


미국이 뿌린 씨앗들
- 빈 라덴, 알 카에다, 탈레반, 후세인


3부와 4부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성장, 그리고 탈레반의 부상을 살펴본다. 무자헤딘의 후원자에서 출발해 점점 전투의 경험까지 쌓아가던 빈 라덴은 아프간 전쟁 말기 ‘자지(Jaji) 전투’에서의 승리(사실은 소련군의 전술적 후퇴에 가까웠다)로 영웅으로 부상한다. 그리고 쿠틉의 후계자 자와히리와 동맹을 맺고 그 안에서 주도권을 잡아간다.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알 카에다’이다. 이 사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후의 혼란을 탈레반이 정리해갔다. 애초에 이슬람을 공부하며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각종 종교 의례를 제공하던 일종의 하위 성직자였던 탈레반들은 아프간 전쟁 때 무자헤딘 투쟁에 뛰어들면서 한 세력이 된다. 이들은 1996년 카불을 함락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그리고 바로 이때, 빈 라덴은 아프간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한다. 이미 당시 빈 라덴은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1993년 초 CIA 청사 앞과 월드트레이드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새로운 유형의 테러가 시작되었고, 1996년 1월 CIA는 빈 라덴 추적반 ‘알렉스테이션’을 가동했다. 사우디는 이미 빈 라덴을 국외로 추방한 상태였다. CIA는 이후 수차례 빈 라덴 제거 공작을 펼치지만 번번이 결단력 부족으로 작전에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이 다가왔다.
이 사이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게 이라크다. 1980년 이라크는 이란과 전쟁을 벌인다. 아프간 전쟁의 발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인접국으로 확산될 기미가 보였다. 더구나 이라크는 수니파가 시아파를 지배하는 형국이어서 이란 시아파들의 혁명에 힘입어 이라크 시아파들이 봉기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여기에 친미국가에서 반미국가로 돌변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견제도 보태졌다.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지원으로 이란과 전쟁을 결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8년간의 전쟁은 이라크에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오히려 미국 지원의 간접 통로였던 사우디 등 주변국에 채무만 지는 신세가 되었다. 걸프전의 발단이 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이런 배경에서 발생했다.
걸프전에서 중요한 것은 아랍 국가들이 적어도 그전까지 외세에 대해서는 똘똘 뭉쳐 저항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그게 깨졌다는 것이다. 미군과 미군에 기지를 제공한 사우디에 대한 반감이 오히려 이라크를 응원하는 심리를 불러 일으켰다. 걸프전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지만, 이는 후일 또 다른 분란의 씨앗이 된다.


끝없는 전쟁의 시작
- 9·11 테러에서 IS의 탄생까지


5부에서는 부시의 실패한 ‘테러와의 전쟁’을 집중 조명한다. 9·11 테러에 대한 신호가 여러 차례 감지됐음에도 안일하게 대처한 백악관, 9·11 이후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연관성이 없음에도 알 카에다와 빈 라덴 제거보다는 이라크 침공에만 혈안이 되었던 네오콘의 어처구니없는 상황 판단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다. 신형 무기 위주로의 ‘국방 개조’에 혈안이 되었던 럼스펠드의 욕망이 상황을 어떻게 그르쳤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은 빈 라덴을 잡는 데는 실패하고, 명분도 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지구적 갈등만 불러일으켰다. 부시가 항공모함에서 ‘임무 완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이라크전 승리를 선언한 이후, 이라크는 내전의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특히 후세인 시절 주류를 형성했던 수니파들이 반란과 폭동의 대열에 앞장선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전에 빠져있는 동안 아프간에서는 다시 탈레반 세력이 힘을 회복한다.
6부는 오바마 취임 후 미국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고 빈 라덴 제거에 집중하여 2011년 5월 1일 결국 빈 라덴을 제거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알 카에다 이라크지부는 ‘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이름과 조직을 바꿔 새롭게 시작한다. ‘아랍의 봄’은 시작되었지만 지리멸렬한 세속주의 정치세력과 친서방 세력에 대한 반감으로 오히려 이슬람주의 세력이 힘을 얻어갔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누스라전선’이라는 알 카에다 연계 세력이 반군 진영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갔고, ISI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며 누스라전선과 연대해갔다. 그 과정에서 ISI의 지도자 바그다디는 누스라전선과 ISI를 통합해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를 만든다고 선언한다. 이는 알 카에다 본부와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것이다. 알 카에다는 ISIL을 파문했지만, 알 카에다의 통제에서 자유로워진 ISIL은 더욱 공격적인 활동을 펼친다. 그리고 2014년 6월 29일 ‘이슬람국가(IS)’를 선포한다.


중동 현대사가 미로일 수밖에 없는 이유
- 겹겹이 쌓인 분쟁의 구도와 갈등의 역사


이 책의 안내를 따라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에서 IS의 탄생까지를 차근차근 살펴보면 왜 이곳의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 분쟁,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분쟁, 아랍 대 서방(이스라엘) 구도의 반외세 분쟁, 세속주의-이슬람주의 분쟁, 독재정권 등 권위주의 세력과 민중 사이의 민주화 분쟁,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의 분쟁, 중동 역내 국가 사이의 국가 분쟁 등 여러 겹의 갈등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그 어떤 구도도 선-악의 틀로 간단히 해석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국제전문기자인 저자는 “평소 독자들로부터 맥락 없이 보도되는 중동 등 이슬람권 분쟁을 체계적으로 설명해달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며, “특히 9·11 테러를 전후한 이슬람 무장 세력의 활동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소개된 책이 국내에 없다는 현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슬람 무장 세력을 비롯한 이슬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