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전쟁연구 (박사전공>책소개)/1.전쟁사

전쟁이 만든 세계 (2025) - 500년간 지속된 서구의 군사혁명과 전쟁으로 가는 어두운 길

동방박사님 2025. 3. 6. 06:42
728x90

책소개
세계적인 군사학자의 마지막 경고
“전쟁으로 가는 어두운 길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과거의 교훈은 곧 잊혀지고 만다.”

지난 500년 동안의 안타까운 역사는 서구 국가들이 공격 본능을 통제하거나 전쟁을 피할 수 없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세계가 더 많은 전쟁을 겪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21세기의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이전 세기들보다 결코 낮지 않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보다 더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앞으로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헛된 희망을 품은 사람들이 값비싼 희생을 치렀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30년 전쟁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500년 동안의 주요 전쟁을 심층 분석하고 있는 본서는 평생을 전쟁사 연구에 헌신한 저자의 야심 찬 저작으로, 세상이 어떻게 끊임 없이 전쟁을 재창조하는지 그리고 전쟁이 어떻게 세상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는지를 역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목차
1부 제1차 군사-사회 혁명: 근대국가와 근대 군대의 출현

1장 서구세계와 어두운 전쟁의 길
2장 근대국가와 군사 제도의 발전
3장 근대국가의 등장

2부 제2차·제3차 군사-사회 혁명: 변화의 동인

4장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3부 제4차 군사-사회 혁명: 제2차와 제3차 군사-사회 혁명의 결합

5장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전쟁
6장 제1차 세계대전: 1914~1916
7장 현대전의 시작: 1916~1918
8장 혁신과 전쟁 준비: 1920~1939

4부 세계 무대에서의 군사-사회 혁명

9장 유럽의 전쟁: 1939~1941
10장 제2차 세계대전: 1939~1945
11장 공중전과 해상전 1942~1945
12장 지상전: 1942~1945 기동전과 산업적 소모전
13장 태평양전쟁

5부 제5차 군사-사회 혁명의 출현

14장 일어나지 않은 전쟁
15장 어두운 미래

감사의 글


저자 소개
저 : 윌리엄슨 머리 (Williamson Murray) 
오하이오주립대학교의 명예 교수였으며, 해병대대학교Marine Corps University의 앤서니 D. 마셜 대사 전략 연구의장Ambassador Anthony D. Marshall Chair of Strategic Studies을 역임했다. 주요 전쟁, 군사 혁신 및 대규모 전략에 관한 2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였다.


역 : 고현석 
연세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 과학부, 〈경향신문〉 생활과학부, 국제부, 사회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과학기술처와 정보통신부를 출입하면서 과학 정책, IT 관련 기사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현재는 과학과 민주주의, 우주물리학, 생명과학, 문화와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기획하고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마지오의 『느낌의 진화』와 『느끼고 아는 존재』를 비롯하여 『지구 밖 생명을 묻는...

책 속으로
변화는 프랑스혁명 때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고, 산업혁명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에서 이런 변화는 전쟁의 성격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단속 평형이라는 비유는 19세기 중반 이전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변화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포착한다. 

17세기 후반, 총검을 고리를 통해 총구 주위에 끼우는 기술이 개발되는 등 중요한 혁신이 이뤄졌지만, 

이런 혁신이 군사 작전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전쟁방식은 그 핵심에 혁신과 적응에 대한 의지가 내재돼 있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기술과 전술의 변화는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됐다.

 이는 곧 전쟁의 성격이 그 이전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했다는 뜻이다.

 특히 20세기에는 과학, 기술, 혁신이 상호작용하면서 전장이 점점 더 치명적으로 변화했다.
--- p.26

30년 전쟁의 종식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국제 관계와 유럽 국가들의 성격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 따라 강대국들은 더 이상 종교를 이유로 싸우지 않게 됐다. 

이와 비슷한 정도로 중요한 것은 근대국가와 군사 조직의 출현이었다. 

국가는 여전히 용병을 모집했지만,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연대 단위로 모집됐다.

 모집한 용병들은 평시에도 마우리츠 공작과 구스타부스 아돌푸스의 새로운 전술 시스템이 요구하는 규율에 따라 일 년 내내 복무하게 됐다

장교와 하사관이 주의 깊게 지켜보는 가운데 군대는 일렬 종대를 이뤄 맹렬한 포격과 돌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사실상 17세기 후반 유럽의 군대는 로마 군대의 훈련된 대형을 재창조한 셈이다.
--- p.73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쟁 비용이 점점 더 증가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군사비 지출은 연평균 535만5,583파운드였지만, 미국 독립전쟁 기간 동안에는 이 비용이 1,215만4,200파운드로 늘어났다. 

영국의 국가 부채도 이 두 기간을 비교할 때 3,620만 파운드에서 2억4,290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비용 지출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파산하지 않은 것은 1715년, 5% 수익률의 영구 연금 보험을 판매함으로써 금융 혁명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연금보험 가입자는 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없었지만, 이자율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면 재무부는 가입자에게 연금보험 납입액을 돌려줬다. 

또한 연금보험 소유자는 주식시장이 상승하면 다른 투자자에게 자신이 보유한 연금보험을 팔 수도 있었다.
--- p.87

영국 재정의 밑바탕에는 산업혁명이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처음으로 사람의 힘, 물, 풍력 이외의 동력을 이용해 생산 공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석탄은 놀라운 변화를 이끈 기계의 원동력이었다. 기업가 정신도 상상력과 지원을 제공했다. 

《캠브리지 유럽 경제사》는 “산업혁명을 이끈 이러한 혁신의 풍부함과 다양성은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능력과 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생물 동력원을 무생물 동력으로 대체하고, 특히 열을 작업으로 전환하는 엔진을 도입함으로써 인간에게 새롭고 거의 무한한 에너지 공급의 길이 열렸다.

” 산업혁명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경제적·재정적 지원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벌어진 25년 동안에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 p.145

1859년 북부의 공장 노동자는 109만6,548명이었지만 남부는 12만 8,530명에 불과했다.

 돌이켜보면, 공장 노동자의 수가 많다는 것은 북부 연방에 상당한 이점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 남부 백인들은 북부의 ‘하층민(공장 노동자)’은 총소리만 듣고도 도망갈 것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북부 연방의 많은 공장 노동자들은 군용 철도와 증기선 수리공장에서 일하면서 고장 난 기관차, 화물차, 증기선을 수리하고 군대에 보급품을 공급하는 창고를 세우는 일을 도왔다. 

셔먼 장 군의 애틀랜타 함락은 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관차 제작과 수리가 연방주에 집중되면서 엔진, 브레이크, 차축 온도검지장치 바퀴를 유지 및 수리하는 데 필요한 정비사들이 북부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남부 연맹의 철도는 수리 부족으로 계속 붕괴된 반면, 북부 연방은 철도 시스템과 여객 및 화물 열차를 확장할 수 있었다.

 1863년과 1864년 사이에 일리노이 중앙 철도는 기관차 수를 112대에서 148대로, 화물차 수를 2,312대에서 3,337대로 늘렸다.

 1865년까지 북부의 철도는 1860년에 비해 철도 선로가 70% 증가한 반면, 남부의 철도 선로 증가율은 0%에 머물렀다.
--- p.185

미국 남북전쟁과 독일 통일전쟁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지만 후자가 왜 훨씬 더 빨리 끝났는지는 군사 역사가들에게 항상 수수께끼였다. 

다만 독일 통일전쟁이 벌어졌던 상황과 프로이센의 전략을 책임졌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역량이 이 전쟁의 결과와 많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프로이센군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의 군사 작전 수행 방식도 뛰어났지만, 비스마르크의 정치적·전략적 틀이 없었다면 프로이센 군대가 그렇게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군사 예산을 둘러싼 국왕과 제국의회 간의 권력 다툼이 일어난 뒤인 1860년에 총리가 됐다. 비스마르크는 헌법을 무시하고 필요한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당시 덴마크 국왕이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하자 독일의 공국들은 (당시 덴마크가 지배하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에 대한 덴마크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1864년에 시작된 치열한 전쟁으로 이어졌지만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압도적인 힘으로 단 9개월 만에 해결됐다.
--- p.207

제1차 세계대전은 프랑스-프로이센전쟁 이후 거의 반세기에 걸친 평화 기간 동안 서구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민족주의가 발단이 되었다. 

21세기에도 우리는 이런 민족주의의 징후를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은 “일은 이제 어느 선에 다다랐고, 그걸 끄집어내릴 수 없게 됐다.

 독일은 고집스럽고 무모하며 서투르게 분화구를 향해 질주하면서 우리 모두를 함께 끌고 갔다.”라고 말했다. 

이 전쟁의 첫 단계는 1888년, 카이저 빌헬름(빌헬름 1세)의 죽음과 함께 독일제국의 외교 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비스마르크의 시대가 종식되면서 시작됐다. 

철혈 재상이 물러나면서 독일은 나침반을 잃었고, 새로운 카이저인 빌헬름 2세는 전략적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비스마르크와 같은 경각심을 전혀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민족주의적 움직임에 편승했다.

 빌헬름 2세의 유일한 관심사였던 군대조차 일관적이지 못한 지휘 체계로 인해 혼란이 가속됐다.
--- p.222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인 전간기에 기술과 능력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1930년대 중반 레이더의 등장이 몇 안 되는 예외적인 경우일 정도로 그 시기에는 놀라운 기술적 진전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무기들은 전장에서의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었고, 이에 따라 군사 교리와 전술 개념의 변화가 요구됐다. 

전간기에 눈에 띄는 것은 내연 기관의 성능 향상이 작전 속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무선 통신과 그것에서 파생된 레이더의 개선은 지휘 및 통제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무기의 전술적 사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군사 조직이 전투를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는 무기 시스템의 수가 아니라 전투를 수행하는 전술 및 작전 시스템의 문제였다.

 따라서 평시 훈련과 연습을 어느 정도 범위로 얼마나 많이 현실적으로 수행했는지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전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p.307

1939년 9월 1일, 히틀러가 폴란드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당시 히틀러는 스탈린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막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가 폴란드의 독립을 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입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 결과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해 봄 히틀러는 영국의 행동에 분노하면서 뮌헨 협정의 참가국들을 싸잡아 벌레 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폴란드 침공 직전인 8월 중순에 소련과의 협상으로 폴란드의 입지가 절망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독일 경제가 어려웠고 독일군의 무장 계획도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1939년의 전쟁은 독일에게도 큰 도박이었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왜 자신도 도박으로 여겼던 일을 감행했을까?
--- p.341

미국은 무기 대여 프로그램을 통해 연합국들의 전쟁 지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과 소련이 주요 수혜국이었는데, 영국은 313억 달러, 소련은 100억 달러 어치의 무기를 대여받았다. 

1944년 6월까지 미국 정부는 소련에 항공기 1만1,000대, 장갑 전투 차량 6,000대, 트럭과 지프차 30만 대를 지원했다. 또한 미국은 소련 철도를 지원하기 위해 기관차 350량, 평판차 1,640량, 레일과 차축, 바퀴 50만 톤을 대여하기도 했다.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에 따르면 스탈린은 전쟁 후 “미국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나치 독일과 일대일로 싸워야 했다면 독일의 압력에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p.413

원자폭탄의 아이러니는 원자폭탄이 적의 결정적인 궤멸을 보장하는 동시에 그런 승리가 원자폭탄을 사용한 나라의 궤멸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1940년대 후반 이후 원자폭탄의 영향은 전쟁을 네 가지 구체적인 형태로 세분했다. 

첫 번째 형태는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절박한 상황에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강대국들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경쟁적으로 더욱 정교한 핵무기와 발사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기술과 과학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물론 혁신과 적응이 필요했다.
--- p.540

북한군은 장갑 전투 차량과 200여 대의 소련제 전투기 등으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남한은 전차가 한 대도 없었고 포병도 열세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에 시작된 남침은 시작 즉시 양측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스탈린의 남침 승인은 그가 내린 최악의 전략적 실수 중 하나로 기록된다.

 우선, 미국이 개입했고,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기존의 중화민국 대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이사국으로 대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소련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련이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전쟁 개입에 대한 유엔의 공식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전략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침공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미국이 군사적 수단을 외교 정책과 균형을 맞추도록 만들었다는 데 있다.
--- p.550

1945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지식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제5차 군사-사회 혁명이 넓은 의미에서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다른 이들의 검토에 맡기고자 한다. 이 혁명은 군사 조직에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고 전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지만, 지난 5세기 동안 인류가 열정적으로 추구해온 끔찍한 전쟁의 본질 자체는 변화시키지 못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비극적으로 끝난 전쟁 경험은 미래의 모든 미군 및 정치 지도자들이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한다. 하지만 그들 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베트남전쟁 이후에 일어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베트남전쟁의 비참한 되풀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말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미국인들은 미래에도 자신들의 실수를 반복하면서 비틀거릴 것이다.
--- p.587

출판사 리뷰
세상은 전쟁을 재창조하고
전쟁은 세상을 재창조한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쟁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난 500년간 전쟁은 끊이지 않았으며, 그것이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의 세계대전이든 국지적인 전쟁이든 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항상 존재해왔다. 전쟁사 연구의 선구자이자 탁월한 군사 전문가인 저자는 30년 전쟁부터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500년간의 전쟁사를 5단계의 군사-사회 혁명으로 분석하며 《전쟁이 만든 세계》를 통해 그 통찰을 공유한다. 저자는 서구의 전쟁 역사를 체계적으로 구분하며, 각 단계가 어떻게 현대 문명을 형성했는지 심도 있게 추적한다. 특히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결합이 가져온 폭발적 변화에 주목하는데, 이 두 혁명의 만남은 전쟁의 규모와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으며, 현대의 물류, 금융,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형성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라는 관점에서 저자는 전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대부분을 형성했으며 지금도 끊임없는 변화를 예견한다고 설명한다. 전쟁의 근본적인 본질은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적응은 서구의 전쟁 방식을 지속적으로 바꿔놓았으며, 군사 영역에서의 혁명은 물류, 금융, 경제 및 일반 조직 문화와 같은 분야의 더 큰 사회적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쟁부터 현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시대별 주요 전쟁들이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키고 국제 질서를 재편해왔는지 보여준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과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전쟁 패러다임을 보여주는데, 저자는 이를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미래 전쟁의 향방을 예측한다. 또한 중동의 지속적인 갈등과 대만 해협의 긴장 등 현대의 주요 분쟁들이 과거의 전쟁들과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30년 전쟁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500년간의 전쟁사를 통해 본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일어나지 않은 전쟁’과 ‘어두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5부로, 저자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놀랍도록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하며, 인간의 호전적 본성이 5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경고한다. 더불어 지난 50년간의 역사는 세계가 더 많은 전쟁을 겪게 될 것임을 암시하며, 21세기의 전쟁 가능성은 이전보다 결코 낮지 않다는 충격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평생을 전쟁사 연구에 헌신한 저자의 이 야심작은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현대 문명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특히 최근의 국제 정세와 맞물려 이 책이 제시하는 통찰과 경고는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오며, 독자들에게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현대 분쟁의 본질을 더 깊이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추천평
“점점 더 위험해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책.”
- 앨브리지 A. 콜비 (미국 국방부 차관)


“전쟁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저자의 학문 여정에 정점을 찍은 위대한 업적.”
- 월스트리트저널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2970714>